글/ 목목(木木)
【정견망】
기역(耆域)은 천축(天竺 인도) 사람이다. 사람됨이 호방하고 신기한 일들을 행했다. 그는 늘 중원과 서역 지역을 두루 왕래했는데 행방이 일정하지 않았다.
한번은 기역이 양양(襄陽)에서 배를 타고 장강을 건너려 했다. 하지만 배 주인이 그의 의복이 남루하고 외국의 승려인 것을 보고는 그를 무시하며 탑승을 거부했다. 그런데 배가 반대쪽 강변에 도달해보니, 기역이 이미 그곳에 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이 속으로 모두 기이하게 여겼다.
이때 갑자기 두 마리 호랑이가 나타나더니 기역을 보고는 뜻밖에도 귀를 내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기역이 손으로 호랑이 이마를 쓰다듬어 주자 곧 몸을 돌려 떠나갔다. 당시 강변 양쪽에서 이를 본 사람들이, 이 신승(神僧 기역)을 따르며 뒤를 떠나려하지 않았다.
진(晋)나라 혜제(惠帝, 290~306) 말기 기역이 낙양(洛陽)에 왔다. 여러 도인(道人)들이 모두 와서 예를 올리는 기역은 편안히 앉아 얼굴빛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때로는 혹 사람들에게 전생에 대해 알려주기도 하였다. 예를 들면 지법연(支法淵)은 전생에 양(羊)이었고 축법흥(竺法興)은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는 또 모든 승려들의 의복이 화려한 것을 꾸짖으며, 본래의 법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그가 낙양에 있던 궁성을 보고는 여러 사람들에게 말했다.
“도리천(忉利天)의 천궁(天宮)과 비슷하지만 하나는 자연적으로 이뤄진 것이고 하나는 사람이 만든 것이다.”
그는 또 사문 기사밀(耆闍蜜)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궁성을 지은 목수는 도리천에서 왔고 건물이 완성되자 다시 천상으로 돌아갔다. 건물 용마루 기와 밑에 아마 1천5백 개의 그릇이 있을 것이다.”
당시 분명 이런 소문이 돌았는데 이 궁성을 건축한 장인이 기와 밑에 그릇을 만들었고 또 건물을 완공한 후 살해당했다고 했다.
이때 형양(衡陽)태수 등영문(滕永文)이 낙양 만수사(滿水寺)에 머물고 있었다. 어느 날 갑자기 두 다리가 굽어 펴지지 않는 병에 걸려 걸을 수 없었다. 1년이 지나도 낫지 않았다.
기역이 가서 보고는 말했다.
“병이 낫고 싶소이까?”
그러고는 맑은 물 한 잔과 버들가지 하나를 가져다 버들가지로 등영문에게 물을 뿌리며 주문을 외웠다. 이렇게 세 번 반복하고는 등영문의 두 무릎을 끌어당겨 일어서게 했다. 그러자 곧 일어나서 옛날처럼 걸을 수 있었다.
기역은 이런 괴상한 병을 앓게 된 이유는 그가 일을 할 때 신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등영문은 예전 행동을 반성하면서 몹시 부끄러워했다.
두 사람이 사찰 안을 산보하다 수십 그루의 사유수(思惟樹) 나무가 말라죽은 것을 보았다.
기역이 물었다.
“나무가 죽은 지 얼마나 되나요?”
등영문이 대답하였다.
“이미 여러 해 되었습니다.”
기역이 나무를 향해 주문을 외우자 곧 나무가 녹색으로 변하더니 싹이 나고 입이 자라 꽃이 피어났다. 그의 신통이 사람을 놀라게 했다.
한편 더위가 한창 기승을 부릴 때, 어떤 사람이 오래된 체증으로 거의 죽을 뻔했다. 기역이 물그릇을 환자의 배 위에 올려놓고, 흰 천으로 배를 덮었다. 수천 번 주문을 외우며 발원하였다. 그러자 곧 고약한 냄새가 풍겨나며, 온 집안에 깊이 배어들었다.
이 때 환자가 말했다.
“나는 살아났다.”
기역이 사람을 시켜 천을 걷자 그릇 속에 마치 진흙 앙금 같은 것이 몇 되나 있었고 고약한 냄새가 나서 가까이 갈 수 없었다. 환자는 얼마 후에 좋아졌다.
서진 말기 낙양이 내란으로 크게 어지러워지자 기역이 낙양을 떠나 천축으로 돌아가려 했다.
이에 낙양의 승려들이 기역에게 영원히 새길만한 교훈을 남겨주시길 청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이자 기역이 높은 자리에 올라가서 말했다.
“수구하고 몸(身)과 생각(意)을 거두며, 모든 나쁜 일을 삼가고 하지 말며 일체 선을 수행하라. 이리하면 속세를 벗어날 수 있노라.(守口攝身意,慎莫犯眾惡。修行一切善。如是得度世)”
대중들이 너무 뻔한 말이라 여덟 살 동자라도 다 외는 내용이니 다른 심오한 이야기를 해주길 바라자 기역이 웃으면서 말했다.
“비록 여덟 살에 외웠어도 백 살이 되어도 실행하지 않으면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사람들은 모두 득도한 사람을 공경할 줄 알면서도, 이를 실행하면 자신도 득도한다는 것을 모른다. 내가 한 말은 비록 적지만 실행하는 사람에게는 이익이 많다.”
이렇게 작별하고 떠났다.
당시 낙양에서 수백 명의 사람들이 각각 기역을 점심 식사에 초대했다. 기역은 이들 모두에게 가겠다고 약속했다. 이튿날 아침 5백 집에 모두 기역이 있었다. 사람들은 처음에는 모두 그가 자기 집만 방문한 것으로 생각했으나 나중에 서로 물어보고 나서야 비로소 분신(分身)이 내려온 것임을 알았다.
기역이 서역으로 돌아간 후 어디서 세상을 마쳤는지는 모른다.
(《신승전(神僧傳)・1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29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