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견망】
15. 불교성지 기원정사(祇園精舍)
부처님께서 상주하셨던 정사(精舍)로는 마가다국 라자그리하의 죽림정사 외에도 또 기원정사(祇園精舍)가 유명한데 이곳도 불법을 널리 펼쳐 중생제도에 무량한 이로움을 준 불교의 성지다.
마가다국과 이웃한 코살라국은 수도가 사왓티(한자로는 사위국舍衛國이라고 함)였고 파사닉(波斯匿 빠세나디) 왕이 다스리고 있었다. 이 나라에 수달(須達 수닷따)이란 수석 대신이 있었는데 재산이 아주 풍족했다. 그의 부유함은 웬만한 나라와 맞설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천성적으로 남에게 베풀기를 좋아했다. 대체로 가난하고 궁핍한 이들을 구해주었고 고아나 노인 등을 위로하는 등 좋은 일이라면 무엇이든 최선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다.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그를 가리켜 ‘급고독장자’(給孤獨長者 아나타삔디카: 고독한 이들에게 베푸는 장자라는 의미)이라고 존칭했다.
장자에게는 일곱 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위로 여섯은 이미 결혼했고 막내아들만 남았다. 이 아들은 용모가 의젓하고 아름다워 그가 가장 아끼던 자식이었다. 이에 용모가 단정한 배우자를 물색하고 있었는데 친지들에게 부탁해 널리까지 수소문했다. 당시 한 바라문이 그를 위해 마가다국에 가서 신붓감을 물색했다.
당시 마가다국의 수석대신인 호미장자(護彌長者)에게 묘령의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었는데 경국지색의 예쁜 미녀였다. 장자는 재산이 아주 많았고 또한 삼보(三寶)를 공경하고 믿으며 관대하고 선행을 베푸는 현자(賢者)였다.
한번은 호미장자의 집에서 큰 보시모임을 열어 많은 재물을 나누어주었는데 사람마다 다 받아가게 했다. 그는 사랑하는 딸에게 재물을 나눠주는 역할을 맡겼다.
바라문은 이 성대한 시주 모임에서 이렇게 예쁜 아가씨를 보고는 몹시 기뻐하며 곧 주인을 만나려 했다. 하인을 통해 말을 전하자 호미장자가 그를 안으로 맞아들였다. 두 사람이 서로 인사를 나눈 후 바라문이 환하게 웃으며 장자에게 혼담을 청했다.
“대장자(大長子)께서는 귀국의 수상으로 부유하면서도 잘 베푸십니다. 우리나라 수상이신 급고독(給孤獨)장자 역시 부유하고 존귀하신데 널리 많은 사람들에게 베푸시니 두 집안은 정말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활달하고 아름다운 따님은 단정하고 위엄 있는 급고독 장자의 아드님과 잘 어울리는 한 쌍입니다. 외람된 말씀이긴 하지만 제가 중매쟁이가 되어 양가의 아름다운 인연을 맺어주고 싶은데 어르신의 뜻은 어떠신지요?”
그러자 호미장자가 흔쾌히 허락했다.
이때 마침 사왓티에 온 상인이 있었다. 바라문은 곧 그를 통해 인편으로 편지를 보내 이 일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게 했다. 수달장자가 이 편지를 받고는 몹시 기뻐하며 직접 귀중한 보배와 재물을 지니고 아들의 혼사를 위해 라자그리하로 왔다. 그는 또 이렇게 가는 길에도 수시로 곤궁한 이들에게 보시했다. 사왓티에 이르니 호미장자가 마중 나와 환대한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수달장자가 사돈댁에 가보니 온 가족이 무슨 큰 잔치를 준비하듯이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심지어 호미장자조차 몸소 나서 잔치 준비를 감독하고 있었다.
수달장자가 속으로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까닭을 물었다.
그러자 호미장자가 “부처님과 제자들을 초대해 공양하려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수달이 물었다.
“부처님이 무엇입니까? 비구가 무엇입니까?
그러자 호미장자는 그에게 부처님의 위덕과 비구에 대한 숭경(崇敬)을 말해주었다. 수달이 이 말을 듣고는 크게 기뻐하며 당장 부처님 처소로 찾아가고 싶었으나 시간이 이미 늦어 날이 밝기만을 기다렸다. 그는 아직 어둠이 채 가시기도 전에 마음이 뜨거워져서 서둘러 부처님을 뵙기 위해 길을 나섰다.
죽림정사에 도착해 부처님의 찬란한 금신(金身)과 당당한 위신(威神)을 직접 보니 사돈에게 들은 말보다 백배는 더 뛰어났다. 진실로 귀로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 못했다. 이에 수달장자는 더욱 공경하는 마음이 우러나왔다. 하지만 부처님께 예경(禮敬)하는 법을 몰라 곧바로 세존께 여쭈었다.
“고타마께서는 평안하십니까?”
세존께서 곧 그를 자리에 앉게 하셨다. 잠시 후 다른 사람이 들어와서 오체투지(五體投地)하며 부처님 발 앞에서 정수리를 대며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바퀴 돌고 물러났다. 수달장자는 속으로 놀라서 생각했다. ‘공경하는 법은 마땅히 이러해야 한다!’
이에 황급히 일어나 부처님께 다시 예를 올렸다. 나중에 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도를 깨달아 바로 수다원과를 얻었다.
수달이 세존께 청했다.
“마가다국은 불법(佛法)의 교화가 흥성해 무량한 중생을 제도했으니 행복과 이익이 이보다 더 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저희 가련한 사왓티는 아직도 삿된 견해와 신앙만 있고 외도(外道)가 횡행하여 부처님과 비구의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으니 진실로 어둡고 긴 밤과 같습니다! 바라옵건대 세존께서 평등하게 널리 제도하시어 우리나라로 오시어 모든 것을 교화해주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이 그에게 말씀하셨다.
“출가인이 거처하고 도를 실천함은 세속과는 다릅니다. 속가(俗家)에서는 살 수 없는데 그곳에 정사가 없으니 어디에 거주하겠습니까?”
그러자 수달이 의연히 말했다.
“제자가 당장 넓고 큰 정사를 짓겠습니다. 그러니 부처님께서 오셔서 교화하고 이끌어주시기 바랍니다.”
세존께서 묵묵히 허락하셨다. 이에 수달장자는 아들의 혼사를 무사히 치르고 나서 다시 부처님을 찾아뵙고 작별인사를 드리면서 자신과 같이 일을 주관할 사람을 하나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부처님께서 이에 사리푸트라(사리불)를 보내셨다.
가는 길에 장자가 사리푸트라에게 물었다.
“세존께서는 하루에 몇 리나 가십니까?”
“하루에 20리를 가십니다.”
그러자 장자는 곧 이십 리마다 간단히 머물며 쉴 수 있는 정사(亭舍)를 짓고 음식을 준비하게 한 후 사람을 남겼다. 그는 사왓티까지 가면서 줄곧 이렇게 했다.
본국에 돌아온 후 수달장자는 매일 사리푸트라와 함께 적당한 장소를 구하기 위해 여러 곳을 돌아다녔다. 조건은 우선 시내에서 멀지 않아 비구들이 걸식하기 편해야 하고, 또한 조용하고 한가해서 떠들썩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둘러보아도 적당한 곳이 없었고 오직 제타(祗陀) 왕자의 동산만이 성에서 너무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데다 땅이 넓고 큰 나무들이 즐비한데다 맑은 샘과 연못이 있었다.
수달장자가 이에 태자를 찾아가 이 동산을 팔라고 하자 태자가 웃으며 말했다.
“내가 돈을 쓸 일이 없는데 동산을 팔아서 무엇 하겠습니까? 게다가 이 정원은 내가 자유롭게 노닐 수 있는 곳인데 어떻게 팔 수 있겠습니까?”
수달장자가 거듭 팔라고 권하면서 돈은 달라는 대로 주겠노라고 하자, 태자가 농담 삼아 말했다. “이 동산을 전부 황금으로 덮기라도 한다면 모를까요.”
수달장자가 즉석에서 “그럼 거래가 성사된 것입니다.”라고 하자 태자가 후회하며 말했다.
“방금 한 말은 농담이었소. 내가 동산을 팔아 무얼 한단 말이오?”
하지만 수달장자는 엄숙하게 말했다.
“태자께서 하신 말씀이니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이에 사람을 불러 재판으로 시비를 가리려 하자 태자가 어쩔 수 없이 승낙했다.
수달장자는 즉시 창고를 열어 자신의 황금을 가져다 동산에 깔기 시작했다. 하지만 땅이 워낙 넓어서 절반밖에 깔지 못했다.
이때 태자가 생각했다.
“부처님은 분명 큰 위덕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수달과 같은 사람이 자신의 전 재산을 아끼지 않고 공양할 수 있겠는가?”
이에 수달에게 말했다.
“그만하면 충분합니다! 충분해요! 나머지는 다 깔지 않아도 됩니다. 동산은 그대가 사서 공양하는 것으로 하고 숲과 나무는 내가 공양한 것으로 칩시다.”
그래서 이곳의 이름이 ‘기수급고독원(祗樹給孤獨園 제타와나라마: 제타왕자의 나무와 급고독 장자의 동산이란 뜻)’이 된 것인데 간단히 기원(祇園)이라 불린다.
수달과 사리푸트라가 각종 자재를 사서 부처님과 장로들이 기거할 각종 누각과 방을 짓고 휴식장소와 비구들이 목욕할 수 있는 연못을 만들었다. 연못에는 연꽃을 심었고 달콤한 열매와 그늘을 제공할 망고나무도 심었다. 제타태자는 수달에게 받은 돈으로 목재를 지원하고 동산 입구에 아름다운 정문을 세워주었다. 전체 전당(殿堂)과 방이 모두 천이백 칸에 달했다.
한편 사왓티에 있던 ‘육사(六師)’ 외도의 무리들이 왕을 찾아가 사문과 법술로 싸워 만약 사문이 이기면 정사를 세워주고 지면 정사에 들어가거나 입국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주청했다. 왕이 그렇게 하기로 하고 곧 칙령을 내렸다. 수달이 사리푸트라를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자 사리푸트라가 말했다.
“설사 육사의 무리가 땅 위의 초목처럼 많다해도 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습니다.”
그래서 7일 후 성 밖 광장에서 양측이 대결하기로 약속했다. 당일날, 징을 치고 북을 울리며 군중을 모으자 사왓티 사람들이 거리를 텅 비우고 광장으로 몰려들었다.
육사(六師)의 무리는 무려 수만에 달했다. 쌍방이 가부좌하고 앉아 각자 환술(幻術)을 변화시켜 육사가 변화한 것이 모두 사리푸트라에게 깨뜨려졌고 고개를 숙이고 구해달라고 할 때야 대결이 멈췄다.
사리푸트라가 허공에 몸을 날리더니 18가지 변화를 드러내자 모든 백성들이 탄복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그가 다시 설법을 하자 도(道)를 깨달은 사람이 숲처럼 많았고, 6사 외도 수만 명이 사리푸트라를 따라 출가했다.
하루는, 사리푸트라가 수달 장자가 정원에서 끈으로 땅을 측량했다. 존자가 미소를 짓자 장자가 이유를 물다.
사리푸트라가 대답했다.
“그대가 부처님을 위한 정사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이 선(善)한 인연 때문에 당신을 위한 천상의 궁궐이 먼저 지어졌습니다.”
그리고는 도력(道力)으로 수달에게 천상의 궁궐을 보여주었다.
수달이 물었다.
“육욕천(六欲天 역주: 불교에서는 삼계를 욕계, 색계, 무색계로 보는데 이중 욕계에 속하는 6층의 하늘을 말함)중에서 어느 층이 가장 좋습니까?”
“아래 세 하늘은 색정(色情)이 짙고, 위의 두 하늘은 너무 사는게 편안해 방종하기 쉬우니 네 번째 도솔천(兜率天)이 가장 좋습니다. 욕심을 줄이고 만족함을 알며 늘 다음에 부처님 자리를 이어받을 보살님의 설법과 교화(敎化)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자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저는 제4천(도솔천)에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 말이 끝나자마나 나머지 다섯 하늘의 궁궐은 다 사라지고 오직 제4천 궁궐만 담담히 홀로 남았다. 이를 통해 보시를 베풀면 반드시 보답이 있고 인과는 절대 헛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두 사람이 길을 지나가다가 문득 사리푸트라가 걱정스러운 듯이 눈썹을 찌푸렸다. 장자가 이를 보고는 연유를 묻자 존자가 대답했다.
“저 땅위에 있는 개미떼가 보이십니까? 저것들은 과거 비파시불(毗婆屍佛) 때 이곳에서 개미가 되었고 줄곧 칠불(七佛)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겪으며 91겁을 거쳤습니다. 오늘날 대웅세존(大雄世尊)께서 세상에 나오셨을 때에도 여전히 한평생 이곳에서 개미로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추락하기는 쉬워도 올라가기는 어렵고 사람 몸을 잃기는 쉽지만 얻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생사(生死)의 길에서는 복을 짓는 게 먼저고 윤회의 수레바퀴에서는 해탈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렇게 탄식하면서 떠났다!
한편, 정사가 완공되자 수달은 국왕에게 주청해 부처님께 사신을 파견하게 했다. 이에 대중세존께서는 4부 대중(역주: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에 둘러싸여 사왓티로 오셨다. 온 나라 백성들이 향과 꽃을 들고 나가 부처님 일행을 공양했고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부처님께서는 기원정사에 머무시면서 대승과 소승의 각종 경법(經法)을 말씀하시자 파사닉왕 역시 공경하게 믿으며 호법했다. 이렇게 되자 온 나라가 다 불교신자가 되었다. 나중에 소승과위를 얻거나, 벽지불(辟支佛)이 되거나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을 낸 사람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대승경전에서 수많은 방편의 가르침이 바로 이곳에서 설법하신 것이다.
이리하여 기원(祇園)이란 이름은 마침내 세상에 찬란히 빛나게 되었고 중요한 불교성지의 하나가 되었다.
원문위치: https://www.minghui.org/mh/articles/2001/10/27/298220.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