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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역사정술】 상(商) 19: 태무의 부흥

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태갑(太甲)이 세상을 떠난 후 아들인 옥정(沃丁)이 상조(商朝) 제5대 군왕이 되었다. 옥정제 때 왕조 개창의 원훈(元勳)인 이윤이 사망했다.

뒤이어 옥정의 동생 태강(太康)이 즉위했고 태강이 세상을 떠난 후 그 아들인 소갑(小甲)이 즉위했다. 소갑이 세상을 뜨자 동생인 옹기(雍己)가 즉위했는데 일부 제후들이 더 이상 상을 종주국으로 인정하지 않고 조회하러 오지 않았다. 옹기제가 세상을 떠난 후 동생인 태무(太戊)가 뒤를 이었다.

국가연방식의 조정은 제후국에 의존해야 했는데 제후들이 종주(宗主)를 싫어하면 조회하러 오지 않았다. 《사기》에서는 “은나라의 도가 쇠해지자 제후들 가운데 조회하러 오지 않는 이가 있었다”라고 표현했다.

태무는 상조 제9대 군주로 그의 통치하에서 상조가 다시 강대해졌기 때문에 역사에서는 이를 ‘태무부흥(太戊復興)’이라 한다.

‘태무부흥’ 시기에 분명히 아주 많은 일들이 발생했겠지만 지금에 와서 언급할 수 있는 일화는 오히려 얼마 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일부 원인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기》에는 이 시기에 발생한 한 가지 사건을 기록해놓았다.

“상조 수도인 박(亳)에 요사한 뽕나무와 닥나무가 있어 조정에서 함께 자라기 시작했는데 하룻저녁 사이 한 아름만큼 커졌다. 태무제가 두려워하여 이척(伊陟 이윤의 아들)에게 묻자 이척이 대답했다. ‘저는 요사함이 덕행을 이기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지금 임금님의 정치에 잘못은 없으신지요?’ 태무제가 그의 말을 따르자 요사한 뽕나무가 말라죽었다.”

당시 태무제가 두려움을 느낀 이유는 괴상한 초목이 자라는 것을 청생(靑眚)이라 하는데 이는 군주의 품행에 뭔가 문제가 있거나 또는 공경하는 마음이 없어서 생겨난 것으로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궁정은 나무가 크게 자랄 곳이 아닌데 하룻밤 사이에 이런 일이 나타났다면 이는 장차 큰 난이 닥칠 징조가 아닌가?

《제왕세기》에는 이 사건에 관해 더 자세한 내용이 나온다. 태무제는 이척의 위로를 받은 후에도 여전히 마음을 놓지 못했다. 돌아온 후 자신이 직접 하늘의 뜻을 물어보았다. 그 결과 얻은 대답은 “뽕나무와 닥나무는 들에서 자라니 조정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으로 조정이 망한다는 뜻이었다.”

“태무제는 상서로운 뽕나무를 보고 공경하게 수행했다.(大戊遇祥桑,側身修行)”

태무는 재위 기간이 아주 길어서 무려 75년에 달했다. 《상서‧무일(無逸)》에서는 주공의 말을 인용해 “옛날 은나라의 중종(中宗)은 엄숙하고 공경하며 어질고 두려워해서 천명을 스스로 헤아리며 백성 다스리는 것을 공경하고 두려워해서 감히 거칠게 하거나 안락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중종이 나라를 향유한 것이 75년이었습니다.”라고 했다.

“선왕(先王)의 정치에 힘쓰고 노인을 모시는 예에 밝자 3년이 지나 멀리 통역이 필요한 곳에서 오는 나라가 76개였다.”

즉, 그의 노력 하에 상나라는 국력이 다시 강해졌고 인근의 제후들만 귀순한 게 아니라 심지어 아주 멀리 떨어진 제후들까지도 사신을 파견해 조회하러 왔다. 여기서 중역(重譯)이란 언어가 달라서 통역이 필요했다는 뜻으로 중국에서는 이미 3천 여 년 전부터 이미 통역이 있었다.

이 책에는 또 태무 집권 당시 활기찬 모습들을 볼 수 있다.

“태무제 46년 나라에 큰 풍년이 들었다.”

“태무제 58년 포고(蒲姑)에 성을 쌓았다.” 여기서 포고는 지금의 산동성 빈주(濱州)시 박흥(博興)현으로 상나라 도읍인 박에서 1300여 리 떨어진 곳이다. 당시 상조의 세력범위가 이미 동부 해안까지 미쳤음을 알 수 있다.

“태무제 61년 동쪽에서 9개의 이민족이 손님으로 왔다.”

즉 동쪽에 있던 9개 민족이 조현하러 왔다는 뜻이다.

정말로 “요사함이 덕행을 이길 수 없음(妖不勝德)”을 알 수 있다.

한편 상족과 마찬가지로 현조(玄鳥)의 알에서 태어난 진조(秦朝) 왕족 역시 태무제 때부터 흥성하기 시작했다. 《사기・진본기(秦本紀)》에 따르면 “대렴(大廉)의 현손(玄孫)에 맹희(孟戲)와 중연(中衍)이 있었는데 새의 몸으로 사람의 말을 했다. 태무제가 소문을 듣고 그들에게 수레를 몰게 할지 점을 치자 길하게 나왔다. 이에 그들에게 수레를 몰게 하고 아내를 주었다. 태무제 이래 중연의 후손들이 대대로 공을 세우고 은나라를 보좌해 영씨(嬴氏) 성을 널리 빛내 마침내 제후가 되었다.”

한편 머지않은 장래에 상조를 대신해 중원을 차지할 주(周)왕조 역시 성장하고 있었고, 보다 먼 장래에 주조(周朝)를 대신할 진왕조(秦王朝)는 태무제가 그들을 위해 좋은 요람을 만들어주었다.

참고문헌:
1. 《사기》
2. 《진서(晉書)》
3. 《제왕세계》
4. 《금본죽서기년소증(今本竹書紀年疏證)》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8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