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목(木木)
【정견망】
진표는 백제 사람(역주: 진표가 활동한 시기는 통일신라시기니 신라 사람이지만 구 백제 지역 출신이라 이렇게 표현함)이다. 금산(金山)에 집이 있고 대대로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갔다. 나중에 살생을 일삼는 사냥꾼으로서 내심 깊은 곳에서 부끄러움을 느껴 깊은 산 속에 들어가 칼로 머리를 자르고 땅에 부딪치면서(역주: 당시 유행하던 수행법의 일종으로 자신의 몸을 때리거나 두들겨 죄업을 없애며 참회하는 것) 미륵보살께 자신에게 계를 내려달라고 청했다.
진표는 이렇게 먹지도 마시지도 않으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기도를 올렸다. 그러자 칠일 째 되는 날 지장보살(地藏菩薩)이 손에 금석장(金錫杖)을 들고 나타나 그의 몸을 두드리며 말했다.
“여래불(如來佛)께서 네가 회개하려는 마음을 보시고 몹시 기뻐하셨다. 하지만 너는 이전에 지은 업이 가볍지 않으니 계를 받기 전에 참회할 필요가 있다. 고해(苦海)를 벗어날 수 있는가 여부는 전적으로 네 정력(定力)에 달렸다.”
보살은 이 말을 마치고 사라졌고 진표는 격려를 받아 더욱 경건하게 기도를 드렸다.
두 번째 칠일(즉 14일)이 되던 날 무서운 얼굴을 한 악귀(惡鬼)가 나타나 진표를 잡고는 절벽위에서 아래로 던졌다. 진표는 공중에서 고통스럽게 버텼다. 그러자 신기하게도 절벽에서 떨어진 진표는 오히려 피부 하나 다치지 않았다. 그는 보살이 자신을 보우(保佑)한신 것임을 알았다. 그는 기쁜 나머지 다시 절벽을 기어 올라갔고 또 석단(石壇) 위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 악귀가 날마다 와서 각종 두려운 표정을 지으며 진표를 위협했다.
진표는 이를 악물고 견뎌냈다. 이렇게 7일이 지나자 악귀가 보이지 않았고 길상(吉祥)을 알리는 새가 와서 울며 말했다.
“보살님이 오셨다.”
진표가 몸을 일으키니 사방이 흰 구름에 둘러 쌓였고 이미 은색(銀色 역주: 보살을 상징) 세계가 되었다.
하늘에서 달그락 거리는 소리가 나더니 하늘 가득 꽃잎이 떨어져 내려왔고 위엄과 의장을 갖춘 호위 하에 여래불께서 느린 걸음으로 진표 앞으로 오셨다. 손으로 진표의 정수리를 만지며 말씀하셨다.
“선재(善哉)로다 대장부야, 계를 구하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
이렇게 3차례에 걸쳐 정식으로 진표를 위해 계를 주시고 아울러 법의(法衣)와 기와 발우 및 진표(真表)라는 이름을 하사하셨다. 진표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여래불이 또 무릎 아래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내셨는데 희면서 밝고 매끈한 것이 마치 상아 같았다. 하지만 상아나 옥은 아니었다. 첨자(簽子 쪽지) 하나에는 9자가 적혀 있었고 또 다른 곳에 8자가 적혀 있었다.
천주(天主 역주: 여래불을 가리킴)께서 진표에게 말씀하셨다.
“만약 사람들이 계율을 받고 싶어 한다면 반드시 먼저 자신의 죄과를 참회하게 하거라.”
그리고는 또 108개의 작은 첨자를 꺼내서는 진표에게 알려주었다.
“이 108개의 작은 첨자는 매 첨자마다 인간세상의 한 가지 번뇌가 적혀 있다. 일부 죄인들이 여래의 용서를 바라지만 죄과의 크기에 따라 90일, 40일, 21일 등으로 서로 다르게 참회해야 한다. 기한이 되면 너는 장차 9와 8 두 첨자를 108개 작은 첨자 속에 섞어 불상 앞에서 공중에 던지게 하거라. 첨자가 땅에 떨어지면 참회자가 부처님의 용서를 받을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만약 108개의 작은 첨자가 사방으로 날아가고 오직 9와 8 첨자만 중앙에 있다면 그럼 상등(上等)의 계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여러 첨자가 비록 멀리 떨어졌지만 1개나 2개 첨자만 9와 8 첨자와 부딪쳤다면 어떤 번뇌인지 똑똑히 보아야 하며 그 사람에게 다시 이 방면의 번뇌를 참회하게 해야 한다. 그 후 다시 번뇌를 회개하고 8, 9첨자와 함께 던져서 만약 작은 첨자가 중심에 나오면 그럼 중등(中等)의 계를 받을 수 있다. 만약 여러 첨자가 9와 8 첨자 속에 묻혀서 보이지 않으면 그럼 죄가 아주 깊은 것으로 계를 받을 수 없다. 설사 90일을 다시 참회한다 해도 단지 하등(下等)의 계만 얻을 수 있다.”
여래불은 또 진표에게 당부했다.
“‘8자’는 새로 지은 죄업을 표시하고 ‘9자’는 태어나면서 지닌 죄업을 표시한다.”
이렇게 당부를 마치신 후 여래불은 상서로운 구름을 타고 떠났다.
진표는 이에 하늘 옷(天衣)과 하늘 발우(天缽)를 지니고 산을 내려갔다. 하산할 때 초목이 고개를 숙이며 길을 덮었고 계곡 역시 높고 낮은 구별이 없어졌으며 짐승들이 앞에서 길을 열었다.
그가 하산할 때 공중에서 어떤 목소리가 촌민들에게 알렸다.
“보살께서 출산하시는데 어찌하여 영접하지 않느냐?”
잠시 후 많은 사람들이 촌에서 뛰쳐나왔다. 어떤 이는 옷을 벗어 길 위를 덮었고, 어떤 이는 융단이나 이불을 길 위에 깔아 진표가 밟고 지나가게 했다. 진표는 사람들의 뜻을 이해하고 일일이 밟고 지나갔다.
이때 한 여인이 길 위에 반폭 흰 비단을 깔아놓았는데 진표가 급히 발을 수습해 피했다. 여자가 왜 자신을 다른 이들과 평등하게 대하지 않는지 묻자 진표가 말했다.
“내가 자비하지 않은게 아니고 평등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다만 위에 돼지가 있는 것을 보았기에 그것이 다칠까 걱정되어 피하려 한 것이다.”
진표는 돼지를 치우고 나서야 흰 비단을 밟고 지나갔다.
그때 이후 늘 호랑이 두 마리가 진표의 좌우를 따랐다. 진표가 그것들에게 말했다.
“나는 성안으로 가고 싶지 않으니 너희들은 나를 따라 조용히 수련할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러자 호랑이가 그를 어느 장소로 데려갔다. 진표는 이 자리에서 가부좌를 했다. 나중에 사방에서 믿음을 지닌 이들이 누가 권하지 않아도 몰려오더니 금산사(金山寺)란 절을 지었다.
자료출처: 《신승전》
역주: 이렇게 점찰(占察)로 점을 쳐서 자신의 과보를 점치고, 그 결과에 따라 참회 수행하는 것을 점찰법이라고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436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