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중국역사정술】 상(商) 35: 은 말기의 세 현인

글/ 신전문화 중국역사연구모임

【정견망】

미자(微子), 기자(箕子), 비간(比幹)은 모두 은상(殷商) 말기의 유명 인사들이자 모두 은 왕조의 종친들이다. 이들은 상조(商朝) 최후시기에 각기 다른 선택을 했다. 때문에 역사에서는 은말(殷末)의 세 현인이라 부른다. 공자는 《논어・미자》에서 이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미자는 그를 떠나버렸고 기자는 그의 노예가 되었고 비간은 간하다 죽었으니 공자는 ‘은나라에 세 인자(仁者)가 있었다’고 했다.”

이들 셋은 모두 상주왕의 가까운 지친(至親)들이다. 미자는 상주왕의 큰형이고 비간은 숙부였으며 기자 역시 주왕의 가까운 친척이었다. 당시 이들의 직위는 기자는 승상인 부사(父師), 비간은 부승상인 소사(小師), 미자는 경사(卿士)였다.

주왕이 신을 업신여기고 주색(酒色)에 빠지자 세 사람이 힘껏 막아보았지만 더는 방법이 없자 큰 걱정에 빠졌다. 이들은 일찍이 한차례 작은 회의를 했는데 《상서‧미자》에 이들의 대화가 남아 있다.

“부사・소사여! 은나라가 덕정(德政)을 닦지 않아 천하를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조상들께서 위로 공적을 이뤄 놓으셨으나 주왕은 술에 푹 빠져 여자들의 말만 듣다가 결국 성탕(成湯)의 덕정을 어지럽히고 그르쳐 후세에 이르렀습니다. 은나라 사람들은 나이가 많건 적건 모두 초야에서 도적질이나 좋아하고 내란을 일으키길 즐겨 하여 공경들과 사대부들은 서로 스승으로 삼아 법도도 없으며 죄를 지어도 붙잡히는 일이 없습니다. 이에 하찮은 백성들도 덩달아 일어나 서로 적이나 원수가 되었습니다. 지금 은나라는 전장(典章)제도가 모두 무너지려 하고 있습니다. 마치 강을 건너는데 나루터나 언덕이 없는 것과 같습니다. 드디어 은나라가 망할 시기가 도달한 것 같습니다.”

“부사여! 소사여! 내가 떠난다면 어디로 가야 하겠습니까? 우리 은나라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낼 수 있겠습니까? 지금 그대들이 나에게 알려주지 못해 정녕 무너져 버린다면 이를 어쩌면 좋겠습니까?”

그러자 부사인 기자(箕子)가 말했다.

“왕자님, 하늘이 엄중한 재앙을 내려 은나라를 망하게 한다 해도, 주왕은 두려워하지 않고 원로들을 등용하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은나라 백성들은 천지신명께 지내는 제사도 함부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 진실로 나라를 다스려 나라가 잘 다스려진다면 제 한 몸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나 죽는다 해도 끝까지 다스려지지 않는다면 떠나 버리는 것이 낫습니다.”

“상나라는 장차 재앙이 있을 것이니 우리는 함께 그 패망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만약 상나라가 멸망하더라도 우리는 남의 노예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나는 왕자님께서 떠나시길 권합니다. 내가 옛날에 말한 것이 그대를 자극했나 봅니다. 왕자님께서 떠나지 않으시면 우리는 아주 망하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각자 생명을 보전해서 각기 선왕(先王)께 헌신해야 합니다. 나는 도망가는 것을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과거 제을(帝乙)이 태자를 세울 때 기자는 미자의 품행이 단정하고 어진 것을 보고 미자를 후계자로 삼을 것을 주장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었다. 지금 이미 많은 해가 지났지만 그는 여전히 유감스러워 하고 있다.

반면 비간은 한마디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죽음을 각오했고 간언할 준비를 마친 것이다. 이를 가리켜 “소사가 대답이 없는 것은 반드시 죽음을 각오한 것이다.(少師不答,志在必死)”라고 한다.

미자 무도한 자를 버리다

미자는 제을의 장자로 원래 이름은 계(啓)다. 미(微)라는 땅에 봉지(封地)를 받았기 때문에 미자라 불리는데 성을 더하면 자미자(子微子)가 된다. 자(子)성은 그의 손에서 일부 변화가 발생하게 된다.

미자는 제을의 장자이자 상주왕과 같은 모친 소생의 큰형이다. 그가 태어날 때 모친은 아직 비(妃)에 불과했다. 주왕은 비록 동생이지만 그가 태어날 때 모친이 왕후(王后)였기 때문에 미자와 둘째 동생 중연(中衍)은 모두 서출(庶出)이 되고 주왕이 적자(嫡子)가 된 것이다.

제을의 병이 심해졌을 때 비간이나 기자 등 대신들과 후계자 선임을 놓고 상의한 적이 있다. 원래 제을과 왕후는 미자를 후계자로 세우고 싶었지만 상조 말기 왕위 계승이 적자계승제로 바뀌면서 사관(史官)들이 예법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다.

즉, “본처의 아들이 있는데 첩의 아들을 세울 수는 없다”는 논리로 미자를 세우는데 반대했다. 이에 상주왕이 후계자가 된 것이다.

상주왕은 최후 몇 년간 혼미해져서 정사를 등한시하며 주변의 권고도 듣지 않았다. 미자는 홀로 그 몸을 선하게 하려고 결심했지만 떠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태사인 기자가 미자더러 외국으로 떠나 주왕과 함께 하지 말고 성탕(成湯)이 남긴 종사(宗祀)와 혈통을 보전할 것을 건의했다. 장차 은상이 멸망하는 날 정말로 성탕의 후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기자는 “왕자님께서 떠나지 않으시면 우리 은 왕실의 종묘(宗廟)는 곧 몰락해서 주인이 없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던 것이다.

미자는 왕실 장자의 신분으로 적지 않은 물건들을 관장하고 있었는데 즉 왕실의 제기(製器)였다. 제기란 제사를 지내는데 전문적으로 사용하는 기구를 말하는데 왕실의 성물(聖物)에 해당한다. 미자는 이들 성물을 지니고 또 다른 동생 중연과 함께 상주왕을 떠나 봉지인 산동 미산(微山) 일대로 가서 몸을 숨겼다. 또 이때 자씨 성의 일족들 중 상당수가 그를 따라갔다.

나중에 무왕이 상(商)을 멸망시킨 후 미자는 상왕실의 종묘와 예기를 갖고 무왕앞에 나타났다. 그는 무왕의 군영 앞에 찾아와 상반신을 드러내고 두 손을 등 뒤로 결박한 후 무릎을 꿇고 기어서 들어왔다. 또 사람을 시켜 왼쪽에는 양을 끌고 오른쪽으로 띠 풀을 들고 정중하게 무왕에게 항복해 상족(商族)인들이 하늘의 뜻에 순종하고 도(道)가 있는 사람의 신하로서 복종할 뜻을 표시했다. 무왕은 이에 큰 감동을 받아 직접 그의 결박을 풀어주었고 그의 원래 작위를 회복시켜주었다. 즉 일반적인 투항자로 대우하지 않았다.

주조(周朝)가 세워진 후 두 번째 분봉(分封)할 때 미자는 지금의 상구(商丘) 동쪽 원래 상조(商朝) 지역에 있던 송(宋)나라를 받았다. 그는 이곳에서 상조의 옛 전례(典例)에 따라 상족의 종사를 모셨다. 지리적으로는 지금의 하남성 동부 및 인근 산동성, 안휘성, 강소성의 일부 지역을 포함한다. 이때부터 사서에서는 미자계를 가리켜 ‘송미자(宋微子)’로 부른다. 주 왕실은 송미자를 아주 존중했다.

송나라는 건국된 지 750여 년이 지나 ‘춘추오패[春秋五霸 역주: 보통 춘추오패를 말하면 제환공(齊桓公), 진문공(晉文公), 초장왕(楚莊王), 오왕 합려, 월왕 구천을 말하지만 논자에 따라서는 진목공(秦穆公), 송양공(宋襄公), 오왕 부차를 꼽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송양공을 오패의 하나로 본 것.]’의 하나가 된다.

​동한(東漢) 시기 왕부는 《잠부론(潛夫論)・지성씨(志姓氏)》에서 은상의 유민들은 나중에 기본적으로 송나라에 남았다고 했다. 자(子)성은 나중에 화(華)씨, 환(桓)씨, 대(戴)씨, 공(孔)씨, 사(沙)씨, 사마(司馬)씨, 목이(目夷)씨, 향(向)씨 등 51개의 성으로 갈라지는데 자못 장관이라 할 수 있다.

미자는 도(道)를 준칙으로 삼아 무도(無道)한 자와 함께 하지 않았다.

“나라에 도가 없으면 숨고 나라에 도가 있으면 나타났으니” 이는 천도(天道)에 순종함을 선택한 것이다.

미자는 또 풍채가 뛰어난 공자(公子)였다. 상조 왕족은 흰색을 아름답게 여겼는데 상조의 국통(國統)을 계승한 미자는 여전히 흰색을 숭상했다. 한번은 그가 흰색 의관을 입고 흰 수레를 타고 손님으로 방문하니 풍류가 넘쳐났다. 백마 탄 왕자님의 원형이 바로 이 미공자(微公子)였다. 《시경・주송・손님(有客)》에 그를 찬탄하는 시가 남아 있다. 모시에서는 미자가 주나라 사당을 방문했을 때의 모습을 읊은 노래라고 한다.

손님이 오셨네 손님이 오셨네
백마 타고 오셨네
의젓하고 듬직하네
일행들도 말쑥하네
오늘 하루 묵으소서
하루 더 묵으소서
말고삐를 건네주어
말을 매게 하소서
뒤를 따라 다니면서
편케 해드리다
큰 덕을 지닌 분이니
하늘이여 큰 복을 내리소서

참고문헌:
1. 《상서‧미자》
2. 《사기‧송미자세가(宋微子世家)》
3. 《여씨춘추》
4. 《풍속통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407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