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북송(北宋) 시기 황각(黃覺)이란 시인이 있었는데 자는 민선(民先)으로 복주(福州) 포성(浦城 지금의 복건성 남평南平시 포성현)사람이다.
진종(真宗) 경덕(景德) 2년(1005년) 진사가 되었고 당시 시인으로 자못 유명했다. 아쉽게도 남아 있는 시나 문장이 그다지 많지 않다. 벼슬은 전중승(殿中丞)까지 올랐다. 청렴하고 정직한 것으로 유명했고 《전송시(全宋詩)》에 그의 시 두 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 황각이 신선 여동빈을 만난 적이 있다. 기록에 따르면 어느 날 황각이 여관에서 한 도사가 술을 마시는 것을 보았다. 평소 신을 믿고 도(道)를 공경했던 황각은 그를 청해 함께 술을 하자고 했다. 두 사람이 한자리에 앉아 잔을 들 때 도사가 젓가락으로 술을 묻혀 무심코 ‘려(吕)’자를 쓴 것 같았다.
황각은 문득 상대방이 바로 명성이 혁혁한 신선 여동빈(呂洞賓)이라고 느꼈다. 때문에 더욱 자신을 낮추고 공경하게 대했다. 술을 다 마신 후 도사는 소매 속에서 동전 열 개를 꺼내 황각에게 주었는데 그중 큰돈이 7개, 작은 돈이 3개였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다.
“수(數)를 늘릴 수는 없네.”
알기 쉽게 말하면 수량이 더 많아질 수 없다는 것이다. 이어서 한 촌 길이의 약 한 재를 주었는데 매년 첫날 조금씩 갈아서 술과 함께 삼키면 1년 내내 병이 없을 거라고 했다.
이때부터 황각은 매년 정월 초하루가 되면 선인이 준 약을 약간 갈아서 술과 섞여 복용했는데 과연 1년 내내 병에 걸리지 않았다. 비록 매우 아껴 먹었지만 시간이 오래 되어 그가 72세가 되자 다 써버렸다. 그는 신선이 그에게 큰돈 7개와 작은 돈 3개를 준 것은 그의 수명이 73까지 임을 예시한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 일을 기념하기 위해 시를 지었는데 그중 전해 내려오는 한 구절이 이렇다.
“침상에 누워 지낼 날 많지 않으니 손가락 꼽아보니 내년이 73이로구나(床頭曆日無多了,屈指明年七十三)”
과연 그는 73세에 세상을 떠났다.
여동빈이 황각에게 약을 준 것은 단지 황각이 그에게 술을 함께 마시자고 청했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의 위인됨이 청렴하고 정직한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좋은 사람만이 신의 보우를 받을 수 있다. 여동빈이 그의 수명을 예지할 수 있었던 것은 신선은 수련성취한 사람이며 여동빈 역시 수련 성취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수련인은 어느 정도 수련이 되면 신통이 나오는데 우주와 인생의 실상을 볼 수 있고 미래를 예지할 수 있다.
자료출처: 《한창괄이지(閑窗括異志)》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6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