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李覺)
【정견망】
계자훈(薊子訓)은 제(齊) 사람이다. 젊을 때 일찍이 주군(州郡)에서 벼슬을 했으며 효렴(孝廉)으로 천거되어 낭중(郎中)에 제수되었다. 한때 군대에서 종군했으며 부마도위(駙馬都尉)를 지냈다. 사람들은 아무도 그에게 도(道)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
고향에 있을 때 남과 일을 할 때면 오직 신의와 겸손으로 했다. 이렇게 3백년을 지냈어도 용모가 늙지 않자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호사가들이 그를 따라다녔지만 그가 늘 복용하는 약물이 무엇인지 보지 못했다. 성품이 청렴하고 담백한 것을 좋아했으며 한가할 때면 늘 《주역》을 읽었고 짧은 문장을 짓곤 했는데 모두 뜻이 있었다.
한번은 이웃집에서 아이를 안고 있는 것을 본 자훈이 아이를 안아보길 청했다. 아이를 안다가 실수로 땅에 아이를 떨어뜨렸는데 아이가 죽고 말았다. 이웃집에선 평소 자훈을 존경했기에 감히 슬픈 기색을 보이지 못하고 묻어버렸다.
이렇게 20여일이 지나자 계자훈이 이웃을 찾아가서 물었다.
“아이를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웃이 말했다.
“그 아이는 팔자에 성인으로 자랄 운을 타고나지 않았습니다. 죽은 지 이미 여러 날 지났으니 다시 보고 싶지 않습니다.”
이에 자훈이 밖에 나가 아이를 안고 돌아오자 가족들이 의심하면서 감히 받으려 하지 못했다.
자훈이 말했다.
“아이 받는 걸 괴로워하지 마시오. 본래 당신 아이입니다.”
이때 아이가 엄마를 알아보고는 웃으며 안기려 했으나 이웃은 의심하면서 믿지 못했다. 자훈이 떠난 후 부부가 전에 아이를 매장한 곳을 찾아가 관을 열어보니 관 안에는 길이 6~7척 가량의 진흙 인형만 놓여 있었다. 이 아이는 나중에 장성했다.
한번은 머리와 수염이 하얗게 센 노인들이 자훈과 마주 앉아 옛날이야기를 나눴는데 하룻밤 사이에 모두 검게 변했다. 도성의 귀인(貴人)들이 이 말을 듣고는 겸허하게 그를 뵙고자 하지 않는 이가 없었지만 그가 오게 할 방법이 없었다. 마침 자훈의 이웃집 아이가 태학(太學)의 학생으로 있었다. 여러 귀인들이 계책을 만들어 태학생을 불러서는 말했다.
“자네가 부지런히 공부하는 것은 부귀를 꾀하기 위함일세. 하지만 자네가 계자훈을 불러오기만 한다면 힘들이지 않고 부귀를 얻도록 해주겠네.”
학생이 이 제안을 승낙하고 고향에 돌아가 계자훈을 섬겼다. 날마다 물 뿌리고 마당을 쓸며 그를 모신 지 수백일이 지났다. 계자훈이 그의 의도를 알고는 물었다.
“너는 도(道)를 배우지 않으면서 어찌 이렇게 하는 것이냐?”
학생이 여전히 숨기자 계자훈이 말했다.
“너는 어찌하여 사실대로 말하지 않고 터무니없이 꾸며대기만 하느냐? 내 이미 너의 의도를 잘 알고 있다. 여러 귀인들이 나를 만나 보고자 하는 것이니 내 어찌 한차례 수고를 아껴 네가 영예로운 지위를 얻지 못하게 하겠느냐? 너는 도성으로 돌아가거라. 내가 언제 그곳에 가겠다.”
학생이 몹시 기뻐하며 하직하고는 도성에 가서 귀인들에게 언제쯤 계자훈이 당도할 거라고 말했다. 그런데 약속한 날이 되었지만 자훈이 출발하지 않자 학생의 부모가 그를 찾아갔다.
계자훈이 말했다.
“자네들은 내가 약속을 잊어버려 자네 아들이 신용을 잃고 임용되지 못할까 걱정하는가? 내 지금 식사한 후에 곧 떠날 것이네.”
그리고는 반나절 만에 2천리를 가서 곧바로 도성에 도착했다. 태학생이 급히 나와 절을 하며 맞으니 계자훈이 물었다.
“누가 나를 만나고자 하느냐?”
태학생이 말했다.
“선생님을 뵙고자 하는 사람이 아주 많으나 감히 선생님을 오시게 할 순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계신 곳을 알면 마땅히 스스로 찾아올 것입니다.”
계자훈이 말했다.
“내가 천리를 마다하지 않았거늘 어찌 약간의 걸음을 아끼겠느냐? 나를 만나려는 사람들에게 각각 손님을 사절하라고 말해주거라. 내가 내일 아침 각자의 집을 방문할 것이다.”
학생이 이 말을 여러 귀인들에게 알려주니 귀인들이 각기 다른 손님을 사절하고 청소를 했다. 때가 되자 계자훈이 정말 왔다. 모두 23집에 그가 있었다. 조정의 벼슬아치들은 각기 계자훈이 자기 집을 먼저 찾아왔다고 여겼다. 다음날 조정에서 계자훈이 언제 집에 왔는지 물어보니 23명이 그를 본 시간이 모두 같았고 옷차림이나 안색까지 같았다. 단지 주인의 뜻에 따라 말했기 때문에 대화만 달랐다. 도성에서는 크게 놀라 기이하게 여겼는데 그 신비한 변화가 이와 같았다.
여러 귀인들이 모두 계자훈을 방문하려 하자 계자훈이 학생에게 말했다.
“여러 귀인들은 내가 순임금처럼 눈동자가 두 개거나 또는 요임금처럼 눈썹이 8갈래로 나눠지기라도 한 줄 알고 나를 보려는 것이다. 지금 나를 보아도 나는 도에 대해 말할 능력이 없으니 나는 가야겠구나.”
마침 문을 나서는데 여러 귀인들을 태운 수레가 길을 가득 메우며 오고 있었다. 태학생은 계자훈이 방금 떠났고 동쪽 길에 노새를 타고 가는 사람이 바로 그라고 했다. 모두들 말을 타고 그를 쫓아갔으나 따라잡을 수 없었다. 이처럼 쫓아가길 반나절이나 했지만 서로 떨어진 거리가 한 리 정도였고 끝내 따라잡을 수 없었고 결국 집으로 돌아갔다.
계자훈이 진공(陳公)의 집에 와서 말했다.
“나는 내일 정오쯤에 갑니다.”
진공이 물었다.
“얼마나 멀리 가십니까?”
계자훈이 말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제 진공이 갈포로 만든 홑옷 한 벌을 주었다. 다음날 말한 시간이 되자 계자훈은 곧 죽었고 시체가 굳어서 팔다리가 가슴위에 구부러졌는데 쇠처럼 단단해서 펼 수 없었다. 시신에서는 여러 가지 향이 났는데 거리까지 퍼졌으며 그 향기가 아주 기이했다.
곧 시신을 염해서 관에 넣었다. 관이 나가기 전에 관 안에서 갑자기 천둥소리가 나며 빛을 집을 비췄다. 앉아 있던 사람들이 한참을 엎드리고 조아렸다. 관 뚜껑이 조각나 공중으로 날아갔고 관 안에 시신이 없었으며 신발 한 짝만 남은 것을 보았다. 잠시 뒤 길에 인마와 피리, 북소리가 들렸는데 동쪽으로 가더니 다시는 보이지 않았다. 계자훈이 떠난 뒤에도 100여 일간 수십 리 길에 향기가 남아 사라지지 않았다.
자료출처: 《신선전》
【평가】
1. 생과 사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들을 모두 “생사를 내려놓으면 바로 신이고 생사를 내려놓지 못하면 곧 사람”이란 이치를 잘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런 이치는 어떻게 성립할 수 있는가? 소자훈이 아이를 안다가 실수로 떨어뜨려 죽인 일을 예로 들어보자.
이 인명사고를 처리한 과정을 보면 “이웃집에서 평소 자훈을 존경했기에 감히 슬픈 기색을 보이지 못했다.” 이웃은 평소 계자훈을 존경했고 또 “아이의 팔자(운명)가 성인이 될 수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아무런 원망도 하지 않았다.
사실 계자훈은 이웃집 아이의 인과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이를 구해주기 위해 일부러 “실수”를 한 것이다. 마치 우리가 오늘날 수련 중에서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마난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소자훈은 아이의 “업력”을 없애기 위해 “아이가 생사의 겁난을 겪은” 것과 같은 가상을 보여준 것이다. 그의 목숨 빚은 진흙인형으로 대신 갚게 했고 진짜 아이는 무사히 성인으로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단지 아이의 명(命)속에만 겁난이 있는 게 아니라 부모 역시 마땅히 자식을 잃는 “비통함”을 겪어야 했다. 때문에 소자후은 천기를 알면서도 누설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고인(古人)은 이치에 밝아서 남을 원망하지 않았고 결국은 전화위복이 되었다.
지금 사람이라면 반대로 자기만 알고 마치 눈덩이를 굴리는 것처럼 업을 키워서 서로 반목하고 원수가 되었을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무신론의 주도하에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는데 흔히 원한으로 원한을 갚는다.
모든 일에는 인과가 존재하기에 진실로 생사를 돌보지 않고 명리정(名利情)을 중시하지 않으며 우주특성 진선인(真善忍)에 부합할 수 있다면 저절로 복이 따르게 마련이다. 만약 수련자라면 저절로 신(神)으로 성취될 것이다.
수련자가 가상을 진짜처럼 간주하면 수련의 길에서 겁수(劫數)가 된다. 미혹 속에서 깨달아야만 비로소 신이 될 수 있다.
2. 이익추구와 수도(修道)
이 일화에서 23명의 귀인들은 계자훈과 인연이 있었지만 도(道)를 얻지는 못했고 모두들 표상과 이익만 쫓았을 따름이다. 자훈은 이를 똑똑히 알았기에 많은 귀인들이 길을 막을 정도로 그를 만나려 찾아왔지만 만나주지 않았던 것이다.
고층 생명은 사람의 마음을 보며 아울러 사람의 표면적인 공경함이나 기이한 것을 원하지 않는다. 마음이 따라서 올라가지 못하면 형체가 어찌 따라서 올라갈 수 있겠는가? 형식만 구하고 마음을 닦지 않음은 수련자의 큰 금기이다.
3. 분신술과 시해(尸解)
계자훈이 분신해서 23명의 집을 동시에 찾아가고 시해한 후 신발을 남기고 떠나갔으며 수십 리 길에 기이한 향기를 남긴 것은 모두 그가 신전문화(神傳文化)를 남겨놓기 위한 수단에 불과할 뿐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