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각(李覺)
【정견망】
좌자(左慈)는 자가 원방(元放)이고 여강(廬江) 사람이다. 오경(五經)에 밝았고 아울러 성상(星象 역주: 별자리로 드러나는 천상의 변화)에 통달했다. 한조(漢朝)의 운이 쇠퇴해져 천하에 대란이 일어날 것을 미리 보고는 이렇게 탄식했다.
“이렇게 어지러운 세상을 만나면 벼슬이 높은 자는 위험하고 재물이 많은 자는 죽을 것이다. 금세에 세상의 부귀영화란 탐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이에 도(道)를 배웠는데 특히 육갑(六甲)에 밝아서 귀신을 부릴 수 있었고 앉아서 요리가 나오게 할 수 있었다.
천주산(天柱山)에서 수련에 전념하다가 석실에서 《구단금액경(九丹金液經)》을 얻어 온갖 변화를 부렸는데, 일일이 기술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 소문을 들은 위(魏)나라 조공(曹公 조조를 말한다)이 그를 불러다 석실(石室)에 가두고는 사람을 시켜 지키게 했다. 1년 동안 곡식을 끊게 한 후 나오게 했으나 안색이 전과 같았다.
조공은 속으로 ‘사람이라면 먹지 않고 살 방법이 없다’고 여겨 그를 분명 좌도(左道)라 여겨 죽이려 했다.
좌자가 이를 미리 알고는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게 해달라[고향에 돌아가 섭생할 수 있게 해달라는 의미]고 청했다.
조공이 말했다.
“어째서 이런 말을 하시오?”
좌자가 대답했다.
“저를 죽이려 하시니 물러나길 청하는 것입니다.”
조공이 말했다.
“그럴 마음은 없었소. 그러나 선생의 뜻이 고결하니 구차하게 잡지는 않겠소.”
그리고는 좌자를 위해 주연(酒宴)을 베풀어주었다.
좌자가 말했다.
“오늘 멀리 떠나려 하니 청컨대 조공과 잔을 나눠 술을 마시길 청합니다.”
조공이 “좋소”라고 말했다.
이때 날이 추웠지만 술을 데워 아직 온기가 남아 있었다. 좌자가 자신의 비녀를 뽑아 술에 죽 그었더니 잠시 후 비녀가 마치 먹을 간 것처럼 완전히 없어져버렸다.
원래 조공은 술을 나눠 마시자고 할 때 마땅히 자신이 먼저 마시고 나서 좌자에게 주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좌자가 비녀를 뽑아 술잔의 술을 반으로 나누자 그 사이가 몇 촌이나 벌어졌다. 좌자가 그 반잔의 술을 마시고 나서 나머지 절반을 조공에게 주었다. 이에 조공이 좋아하지 않았다.
또 조공이 이를 아직 마시지 않았는데 좌자 스스로 마저 마시겠다고 청했다. 다 마시고 나서는 잔을 용마루에 던지니 잔이 걸려 흔들리는 것이 마치 새가 고개를 아래위로 흔드는 것과 같았다. 마치 떨어질 듯 하면서 떨어지지 않았다. 좌중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잔을 쳐다봤는데 한참 후에야 결국 떨어졌다. 이때 좌자는 이미 사라져 자기 처소로 돌아갔다.
조공이 그를 죽이기 위해 그가 죽음을 피할 수 있는지 시험해보았다. 좌자를 체포하라는 명령을 내렸는데 좌자가 양떼들 속에 들어가 추적하던 자들은 양떼와 분간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양떼 숫자를 세어보니 과연 한 마리가 많았다. 좌자가 변화한 것을 알고는 추적자가 말했다.
“주공(主公 조조)께선 단시 선생님을 뵙고자 하실 뿐이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러자 한 마리 큰 양이 앞으로 나서더니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정말로 그런가?”
관리들이 서로 말했다.
“이 꿇어앉은 양이 바로 좌자다!”
그러면서 막 그 양을 잡으려하는데 다른 양떼들이 일제히 말했다.
“정말로 그런가?”
이에 추적하는 이들은 누가 좌자인지 몰라 체포할 수 없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조공에게 좌자가 있는 곳을 안다고 고하자 다시 사람을 보내 체포하게 했다. 이때 좌자가 숨을 수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일부러 사람들에게 자신의 신적(神跡)을 보여주기 위해 체포되어 감옥에 들어갔다. 옥리(獄吏)가 그를 고문하려 하는데 옥 안에 좌자가 있고 옥 밖에도 좌자가 있어 누가 진짜인지 몰랐다.
조공은 좌자가 소란을 피우자 더욱 그를 싫어해 저잣거리로 보내 죽이라고 했다. 하지만 잠깐 사이에 형장(刑場)에서 좌자가 간 곳이 없어졌다. 이에 저잣거리의 문들을 봉쇄하고 좌자를 수색하게 했다. 또 좌자의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그의 외모에 대해 묻자 “한쪽 눈이 애꾸이고 푸른 갈건과 푸른 홑옷을 입고 있으니 이런 사람을 보면 체포하라”고 알려주었다. 그러자 잠시 후 저자 사람들이 모두 애꾸눈에 푸른 홑옷과 푸른 홑옷을 입었다. 병사들이 누가 좌자인지 구별할 수 없었다.
이에 조공이 널리 그를 추적해 보이는 즉시 바로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후 어떤 사람이 좌자를 알아보고 바로 목을 잘라다 조공에게 바쳤다. 조공이 크게 기뻐하며 그가 가져온 머리를 보니 한 다발의 띠풀이었다. 그 시체를 찾아오게 했으나 역시 간곳이 없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형주(荊州)에서 좌자를 만났다. 당시 형주자사 유표(劉表) 역시 좌자가 민중을 현혹시키는 자라고 여겨 잡아 죽이려 했다. 유표가 현란할 정도로 멋진 군대를 이끌고 나오자 좌자는 유표가 자신의 도술을 보고자 한다는 것을 알고 천천히 걸어 나와 유표에게 말했다.
“부족하나마 군사들에게 향응을 제공하려 합니다.”
유표가 말했다.
“그대는 혼자 몸이고 우리 군사들은 매우 많거늘 그대가 어찌 제공할 수 있단 말인가?”
좌자가 거듭 말하자 유표가 사람을 시켜 살펴보게 하니 술 한말과 말린 고기 한 속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10명이 들어도 옮기지 못했다.
이에 좌자가 이를 직접 들고 와서는 칼로 포를 베어 땅에 던지면서 백 명에게 나눠주고 술과 포를 군사들에게 나누어 주게 했다.
매 병졸마다 석 잔의 술과 포 한 조각씩을 나눠주었는데 그 맛이 보통의 술이나 포와 똑같았으며, 만여 명에게 나눠줬는데도 술과 포의 양이 줄지 않았다. 더불어 당시 유표의 주변에 자리 잡은 수십 명의 빈객(賓客)들이 모두 크게 취할 정도로 마시고 먹을 수 있었다. 이에 크게 놀란 유표는 끝내 좌자를 해칠 뜻을 품지 않았다.
그 후 며칠 후 좌자는 유표를 떠나 동오(東吳)로 들어갔다.
동오에 서타(徐墮)라는 자가 도술로 유명했는데 단도(丹徒)에 살았다. 좌자가 그의 집을 찾아갔는데 문 앞에 식객(食客)과 소 수레(牛車) 6~7대 있었다. 식객들이 좌자를 우습게보고 그를 속였다.
“서공(徐公)께서는 집에 계시지 않습니다.”
좌자는 그가 자신을 속이는 줄 알고 돌아갔다. 그런데 손님이 보니 소가 버드나무 가지 위에서 다니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나무에 올라가서 보면 소가 보이지 않았다. 나무에서 내려오면 다시 소가 나무 위에서 다니는 것이 보였다. 또 수레바퀴에 온통 가시덩굴이 자라나더니 한 척이나 자랐다. 잘리거나 끊어지지 않았고 수레를 밀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손님이 깜짝 놀라 서타에게 이를 알렸다.
“한 애꾸눈 늙은이가 있었는데 제가 보기에 중요하지 않은 사람 같아서 선생님께서 계시지 않는다고 속였습니다. 그가 돌아간 후 곧 소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데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서타가 말했다.
“이는 분명 좌공(左公 좌자)께서 오신 것이다. 너희가 어찌 그분을 속일 수 있겠느냐? 급히 서두르면 따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에 여러 식객들을 나눠 좌자를 쫓아가 머리를 숙이고 석고대죄를 올리게 했다. 좌자가 마음을 풀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그들이 돌아가 보니 수레와 소들이 모두 이전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좌자가 동오에서 토역장군(討逆將軍 손책)을 만났는데 그 역시 좌자를 죽이려 했다. 이후 나들이를 가자며 좌자를 청해 말 앞에 가게 하고 뒤에서 찔러 죽이려 했다. 좌자는 말 앞에서 나막신을 신고 죽장을 들고 천천히 걸어갔고, 손책은 말에 채찍질을 하면서 군사를 몰아 쫓아갔지만 끝내 그를 따라잡지 못했다. 손책은 그에게 도술이 있음을 알고 그만두었다.
이후 좌자는 자신의 뜻을 갈선공(葛仙公 갈현)에게 알리고 곽산(霍山)에 들어가 구전단(九轉丹)을 만든다고 했다. 나중에 신선이 되어 떠나갔다.
참고자료: 《태평광기•좌자(左慈)》
【평가】
좌자가 살았던 시대인 동한(東漢) 말은 지금과 유사하게 “현명한 사람은 숨고 권력을 가진 자들이 대접을 받는” 시대였다.
난세(亂世)가 되면 현명한 사람들은 대부분 세상을 피하는 길을 선택한다. 왜냐하면 결국에는 “벼슬이 높은 자는 위험하고 재물이 많은 자는 죽을 것이다. 금세에 세상의 부귀영화란 탐할 만한 것이 못 되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연대에는 또 한 가지 좋은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온갖 마(魔)들이 세상에 나오면 정도(正道) 역시 그 사이에 섞여 있는 것이다. 즉, 혜안(慧眼)이 있으면 보배를 알아볼 수 있는데 각자의 연분과 오성 및 행운을 보아야 한다.
좌자는 그 이름에서 알 수 있다시피 마땅히 ‘방문좌도(旁門左道)’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동한 말 위나라와 오나라 및 유표가 있던 형주에 모두 갔다. 가는 곳마다 사람마음과 질투심 때문에 도처에서 그를 죽이려 했지만 그의 공능 때문에 죽일 수 없었다.
문장의 행간에서 드러나는 것은 이런 말세(末世)일수록 소위 ‘정인군자(正人君子)’들이 반복적으로 소인의 추악한 얼굴을 드러내고 반대로 애꾸눈 좌자가 오히려 사람들에게 빛을 뿌린 것이다.
여기서 특히 주목할 내용은 좌자가 술을 만든 과정과 조조가 질투심을 불러일으키는 대목을 아주 생생하게 묘사한 부분이다. 좌자 역시 오늘날 우리 파룬궁 수련자들처럼 체포되거나 심지어 감옥에 들어갔다. 그는 이 단락의 역사를 남겨놓아 우리에게 말세에 태어나 이런 때를 만나면 세상을 피하려 하지 말고 난속에서 대도(大道)를 구해야 한다고 알려준다. 신(神)이 하려는 일을 사람이 가로막을 수는 없는 법이다.
지금은 보다 큰 범위의 인류가 난세에 처했고 미래로 진입할 희망이 있는 생명은 마땅히 눈을 똑바로 뜨고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
임금이 되려면 마땅히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하는’ 도리를 알아야 한다. 당국자들은 서공(徐公 서타)의 권고에 따라 쫓아가서 “공경하게 예우”하고 “화해”해야 한다. 서공도 도술이 있고 제자들이 있었지만 자신의 능력을 잘 알았고 체면에 얽매이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존중을 받았다. 우리는 난세에 밝은 스승을 만났으니 진정으로 수련하며 숨지 말아야 하는데 그래야 승화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09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