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명나라 때 주홍모(周洪謨 1421년~1492년)란 고관이 있었다. 자는 ‘요필(堯弼)’이며, 관직은 예부상서(禮部尙書)까지 올랐고, 시호는 ‘문정(文定)’이다. 그는 청렴하고 성실하며 온 힘을 다해 직언하고 《영종실록》, 《헌종실록》을 편수했다. 이 주홍모가 ‘생사(生死)’라는 시를 지었다.
“생사윤회의 일에 아득했는데
전신(前身)이 선학의 영(靈)으로 환화해 나왔네.
그때 양주의 꿈에서 깨어나니
화려한 겉모습은 다시 정(丁)씨로 돌아왔구나.”
生死輪回事杳冥
前身幻出鶴仙靈
當年一覺揚州夢
華表歸來又姓丁
이 시에는 어떤 뜻이 담겨 있는가? 그 이면에는 원래 자기의 전세(前世)를 탐구하는 이야기가 있다.
주홍모는 출생 직후 매우 마르고 왜소했다. 아버지가 이 때문에 걱정하자, 점쟁이가 그에게 말했다.
“이 아드님은 양주(揚州) 정(丁)처사의 후신입니다. 그 사람이 선행이 있었고 또 천 냥을 기증해 옥청궁(玉淸宮)을 짓게 했으니 천제(天帝)께서 가상히 여겨 댁에 태어나게 한 것입니다. 나중에 가문이 크게 번창하는 건 반드시 이 아들에게 달려있으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이 중에 주홍모의 전생을 양주 정처사로 지목했다. 훗날 또 다른 점쟁이가 그의 전세(前世) 집이 양주에 있었는데 아주 부유하다고 말했다.
생면부지인 두 점쟁이가 동시에 그가 전생에 양주에서 살았다고 지적했지만, 두 점쟁이는 전생에 그의 이름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때문에 주홍모는 자신이 전생에 정씨라고만 알고 있었다.
주홍모가 경성에 과거를 보러 갈 때, 물길로 갔는데 양주의 한강(邗江) 강변에서 정박하다가 밤에 꿈을 꾸었다.
꿈에 누군가가 그에게 말했다.
“네 앞길 만 리에 평생 청빈할 것이다.”
주홍모가 물었다.
“당신은 누구인가?”
그 사람이 대답했다.
“나는 네 전생으로 호는 우학산인(友鶴山人)이고 성은 정(丁)씨로 집은 유양(維揚)에 있다!”
말을 마치고 표연히 떠나갔다.
그해 주홍모는 과거 시험에 방안(榜眼)으로 합격했다. 방안이란 장원 바로 다음 2등을 말한다. 또 15년이 지나 주홍모는 남경(南京) 한림원시독(翰林院侍讀)으로 남경 한림원의 일을 주관했다. 또 유양태수 왕서(王恕)와 알게 된 후 전생의 수수께끼를 풀려고 왕서에게 편지를 썼다. 그 편지에 관련 내용을 자세히 적고, 위에 기술한 시 ‘생사(生死)’를 첨부했다.
왕서는 편지를 본 후 매우 흥미가 있어 곧바로 현지의 모든 노인들을 소집했다. 주홍모가 제공한 자료에 따라 정씨 성에 호는 우학산인, 가정이 부유하다 등의 정보만 물었는데 뜻밖에도 정말로 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었다. 나문절(羅文節)이란 노인이 단서를 제공했다.
“우학산인의 이름은 정학년(丁鶴年)이라 하는데 제 친구 정종계(丁宗啟)의 부친으로 호북 무창 사람입니다. 그의 형 중 3명이 진사에 급제했습니다. 하지만 정학년은 공명을 추구할 뜻이 없었고 시로 유명했습니다. 원나라 말기에 은거했으며 명나라 건문(建文) 연간(1399년~1402년) 사천성 성도(成都)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중에 정학년에 관한 정보를 자세히 조사해보니 그는 원래 원말명초(元末明初)의 시인으로 고향은 호북 무창이었다. 증조부 때부터 상업에 종사했으며 원나라 세조 쿠빌라이를 도와 대부호가 되었다. 이 때부터 후손들의 관운이 형통했다. 정학년은 4대에 걸쳐 원조(元朝) 관리가 되었으며 형제 넷 중 셋이 진사가 되었다. 그는 집안의 막내로 공명을 추구할 생각이 없어 양주에 오랜 시간 은거했다.
원나라가 멸망한 후, 시를 쓰고 독서에 심취하며 의학 연구에 전념했다. 이렇게 책을 가르치고 의사로서 병을 치료하며 살았다. 행적이 일정한 거처가 없이 떠돌았고 승려나 도인을 친구로 삼았고 북경 의약계의 노포인 ‘학년당(鶴年堂)’을 창설했다. 문집으로 《정학년집(丁鶴年集)》이 세상에 전한다.
그밖에 한마디 더하자면 북경 학년당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짧은 점포 소개에서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의 유명 시인이자 의학양생 대가인 정학년이 창건했다고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이런 정보를 알고난 후 주홍모는 마침내 마음속 수수께끼가 풀렸다. 알고 보니 자신이 정학년의 전생(轉生)이었던 것이다. 이 일은 신빙성이 매우 높고, 《이담(耳談)》이나 《용당소품(湧幢小品)》 등 많은 명나라 고서에도 기록되어 있다. 즉, 증거가 확실하다는 것이다.
한편 정학년은 비록 출신은 원나라였지만 원나라가 망한 후 포의(布衣)의 신분으로 반평생 몰락했으니 명나라 과거에 차석으로 급제해 벼슬이 예부상서에까지 이른 주홍모가 굳이 우학선인의 전생으로 행세해봐야 득될 것이 전혀 없다.
정학년과 주홍모의 일생을 보면 겉으로는 완전히 다르다. 정학년은 정말 그 이름처럼 한가한 학처럼 천하를 마음대로 돌아다녔고 벼슬에는 뜻이 없고 반평생을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주홍모는 국가를 위해 관리가 되어 전심전력을 다했다.
하지만 보다 큰 시공(時空)에서 관찰해보자면 하늘은 끊임없는 윤회 속에서 이 생명을 고험했는데 백성이 되어서는 어떠했고, 관리가 되어서는 어떠했고, 동시에 또 동시에 끊임없이 그를 성취시키면서 그의 생명경험을 풍부하게 했다.
이 기록을 통해 볼 때 사람의 진정한 생명은 원신(元神)이며 원신은 끊임없이 윤회하니 무신론은 잘못이다. 어떤 사람은 아마 생각할 것이다.
“원신이 윤회한다면 그 주홍모가 시험을 보러 갈 때 어떻게 꿈속에서 전생의 자신과 대화가 가능할 수 있는가?”
사실 사람의 생명은, 극히 복잡한 조합으로 주원신(主元神)이 있고 또 부원신(副元神)이 있으며 이외에 그리고 삼혼칠백(三魂七魄) 등 수많은 생명체가 존재하기 때문에 기계적으로 문제를 볼 수 없다.
자료출처: 《이담》, 《소보공홍모사략(少保公洪謨事略)》, 《용당소품(湧幢小品)》 등
원주: 정학년이 세상을 떠난 시간에 대해 책마다 설이 조금씨 다르다. 어떤 책에는 건문 연간(1399-1402) 떠났다고 하고 어떤 책은 영락 연간(1403-1424년)이라고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0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