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劉曉)
【정견망】
명조 가정(嘉靖) 연간 호역(胡懌)이란 인물이 복건포정사(福建布政使)를 지냈다. 어느 날 그는 상서(尙書) 임준(林俊)을 연회에 초대했는데 다른 관리들도 동반하였다. 이 자리에서 임준은 갑자기 원인을 알 수 없는 상태로 졸다가 한참 후에야 깨어났다.
잠에서 깨어난 임준은 현장에 있던 관리들에게 자신이 방금 지부(地府 저승)에 불려갔는데 지부의 염라왕이 바로 북송의 명신 범중엄(範仲淹 범문정공)이었다고 했다. 염라대왕이 그에게 24년의 수명을 감축한다고 선고했는데, 그 이유는 그가 500마리의 소를 죽였기 때문이다. 임준은 마침 자신이 한 일이 아니라며 변명하려 했다.
염왕은 또 “네가 직접 죽였다는 게 아니라 옛날 네가 현령을 지낼 때 소 잡는 것을 금지하지 않아서 백성들이 마구 죽였다는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임준이 급히 말했다.
“제가 현령으로 있을 때 일찍이 어느 해 어느 달 어느 날 백성들이 소를 잡는 것을 금지한다는 방문을 붙인 적이 있습니다.”
염라대왕이 이를 듣고 아래 관리에게 조회하여 문서를 올리라고 하여 이번에 임준을 세상에 돌려보냈다.
관리들이 놀라움을 금치 못했는데, 임준은 12년 만에 세상을 떠났으니, 아마도 그 방문을 붙인 일 때문에 수명 감축이 24년에서 12년으로 줄었던 것이다.
임준이 겪은 일은 신(神)의 눈에는 모든 것이 훤히 드러나 아무리 작은 일도 숨길 수 없음을 입증한다. 또 그가 지부에서 만난 염라대왕이 북송의 명신 범중엄이라는 것은 민간 전설이 허황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흔히 염라대왕으로 불리는 염왕(閻王)은 지부의 신으로, 생령(生靈)의 수명과 생사를 관장한다. 민간 전설에 따르면 역사상 네 사람의 유명인사가 죽은 후 염라왕이 되었다고 하는데, 이들은 각각 수나라 대장 한금호, 북송 명신 포증(包拯 포청천), 범중엄, 구준(寇準) 등이다.
특히 범중엄(范仲淹)은 소주(蘇州) 오현(吳縣) 출신으로 두 살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어머니가 재가한 후 의붓아버지의 성을 따랐다. 자라면서 어머니를 여의고 응천부(지금의 하남성 상구현 남쪽)로 건너가 공부했다. 후에, 마침내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 관리가 되자 어머니를 직접 모셨다.
송 인종(仁宗) 시기 범중엄은 권력자를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하며 일을 열심히 했다. 벼슬길에 몇 차례나 기복을 겪었지만 개의치 않았다. “천하 사람들이 근심하기에 앞서 근심하고 천하 사람들이 즐거워한 후에야 즐거워한다(先天下之憂而憂 後天下之樂而樂)”는 명문을 남겼다. 즉, 고생스러운 일은 앞장서고 즐거운 일은 남보다 뒤에 선다 뜻이다.
관리가 된 후, 비록 생활이 풍족해지긴 했지만 범중엄은 여전히 검소한 생활을 좋아했다. 손님을 초대하지 않는 평소 식사에서는 두 가지 고기요리를 동시에 먹지 않았다. 처자식 모두 옷차림이 매우 간소했다. 자신과 가족에게 이렇게 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베풀기를 좋아했다.
1050년 61세의 범중엄은 세 번째로 항주(杭州)로 좌천된 후, 고향인 소주에 의장(義莊)을 설립했다. 즉 소주 오현(吳縣)에 천여 묘(畝)의 밭을 마련하여 매년 “쌀을 받아 같은 조상을 둔 여러 방계 종족들에게 사람 수에 따라 먹고 입고 혼례 및 장례에 공급하는” 것이다. 의장을 운영한 주요 목적은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구제하고 그들에게 먹고 입고 혼례나 장례 치르는 비용을 제공하는 것이었다.
범중엄은 또 ‘의장규범(義莊規矩)’을 직접 만들어 적절한 관리자를 뽑는 방법도 제안했다. 2년 후 범중엄이 사망했을 때 의장은 이미 잘 발전했고, 그의 후손들은 그가 만든 규칙을 따라 4년마다 개정하여 왕조가 바뀌어도 의장을 발전시켰다. 명나라 말에 이르러 범씨 의장이 확대되었고, 범중엄의 후손 범윤림(範允臨)이 100무의 땅을 기부했다. 청나라 초기 대동(大同)지부의 범요(範瑤)가 1000무를 기부했다. 청나라 선통(宣統) 연간에 이르러 의장 밭은 5,300무에 달할 정도로 잘 운영되었고 무려 800년 이상 지속되었다.
범중엄이 세상을 떠난 후, 민간에서는 그가 “저승에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것을 보았다”는 전설이 돌았다. 남송 공명지(龔明之)가 쓴 《중오기문(中吳紀聞)》에서도 범중엄이 염라왕이 된 일을 기록했다.
책에는 공명지의 증조부가 세상을 떠난 뒤 오칠일(즉 사후 35일)이 되자 전날 밤 꿈에 증조부가 집으로 돌아와 빨리 옷상자를 열어보라고 했다. 그 후, 새 옷을 꺼내 들고 갔다.
그가 이렇게 조급한 것을 보고 증조할머니가 물었다.
“무슨 일로 이렇게 조급하십니까?”
그러자 이렇게 대답했다.
“내일 범문정공(范文正公)을 뵙게 되니 의관을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오.”
“범공이 왜 명부(冥府)에 계십니까?”라고 묻자 또 이렇게 대답했다.
“공은 본래 천인(天人)이오. 지금은 생사대권(生死大權)을 관장하시오.”
증조할머니가 깨어난 후 꿈속 장면을 회상하다가 사람이 죽은 뒤 오칠일이면 염라왕을 만난다는 불교 경전이 생각났다. 범문정공이 총명하고 정직하니 신(神)이 되어 사람의 생사를 관장하는 염라왕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송나라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범중엄은 400-500년 동안 신으로 일했고, 세상의 생사윤회를 관장했으며, 아마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들이 많을 것이다.
참고자료: 《중오기문(中吳紀聞)》, 《환구명인덕육보감(寰球名人德育寶鑒)》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79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