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명나라 초기 운남을 지킨 이는 명나라 대장 목영(沐英)이었다. 그는 자가 문영(文英)이고 호주(濠州 지금의 안휘 봉양) 사람이다. 명조 개국 공신이자 명태조 주원장과 마황후의 양아들이다. 사후 묵녕왕(黔寧王)에 봉해졌으며 자손대대로 운남을 지켰다.
당시 운남의 정세는 상당히 복잡했다. 많은 소수민족뿐 아니라 남방의 미얀마, 월남 등의 나라가 수시로 반란을 일으켜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목영과 그의 후손들은 운남 지역을 안정시키는데 많은 공헌을 했다.
한번은 목영이 황명을 받들어 남방의 팔백식부국(八百媳婦國)을 정벌하러 나갔다. 여기서 ‘팔백식부국’이란 오늘날 태국 북부와 미얀마 동북부로 태국 치앙마이 주변이었다. 역사상 어느 왕이 팔백 명의 아내를 거느렸는데 매 아내마다 각각 요새를 통치했기 때문에 후세인들이 이 사실에 근거하여 이 나라를 팔백식부국이라 불렀다.
목영이 군사를 이끌고 산 정상을 지나는데 정상에서 석단(石壇)을 발견했다. 이에 현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그곳에 대대로 전해지는 이야기가 있었다.
“고대에 적우선(赤羽仙)이란 사람이 산 정상에서 수행했는데 마침내 도를 얻어 원만했다. 득도하는 날 도가의 여신인 태화소실부인(太華少室夫人)이 여러 선관(仙官)을 이끌고 석단에 강림했다. 여신은 ‘금랍과(金臘果)’, ‘목릉자(木陵子)’ 등의 선과(仙果)를 가져와 적우선에게 먹게 했다. 다 먹지 못한 것은 궤짝 속에 집어넣었다. 오늘의 단 동쪽의 석궤(石櫃)가 바로 그것이다.”
목영이 그 말을 듣고는 온갖 방법을 동원해 석궤를 가져가려 했다. 갑자기 석궤가 저절로 열리더니 그 안에서 네 행의 붉은색 글자가 나타났다.
“옹태방감 신경귀경 계식기력 해동목영(翁台方龕,神驚鬼驚,啟食其力,海東沐英)”
[해석하면 석단의 석궤에 신도 귀신도 놀란다. 석궤를 열어 선과를 먹으니 힘이 솟구치니 해동의 목영이다.]
목영은 이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신이 이미 자기가 이 석궤를 열 것을 배치해놓았음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옹태(翁台)란 석단을 가리키며 방감(方龕)은 석궤를 뜻한다. 신경귀경(神驚鬼驚)은 신도 귀신도 놀란다는 뜻이고 해동목영(海東沐英)은 목영이 이해(洱海) 동쪽의 곤명(昆明)을 지킨다는 뜻이다. 그가 자세히 석궤를 검사해보니 3개의 목릉자(木陵子)를 발견했다. 그 모습은 대추 씨앗 같으며 색깔은 푸른색이었다. 그것을 삼키자 몸이 가벼워지고 힘이 솟았다. 정말 계식기력(啟食其力-열어서 먹으면 힘이 난다)이라는 말이 들어맞았다. 팔백식부국을 평정한 후 목영은 산정에 비석을 조각하여 이 일을 기념했다.
이 이야기에서 석궤에서 나온 네 행의 글자는 바로 신(神)이 남겨놓은 것으로 목영이 미래에 그것을 열 것임을 예언한 것이다. 목영이 이런 신기한 일을 만날 수 있었던 까닭은 그에게 이런 연분이 있기 때문이지만 보다 중요한 것은 역사적으로 신이 배치해 놓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 역시 각종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장래를 드러내 세인을 점화한 것이다. 신이 일체를 배치해 놓았으므로 사람은 오직 하늘의 뜻에 따라 행하면 된다.
자료내원: 《기원기소기(寄園寄所寄)》, 《축록기(逐鹿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0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