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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이야기: 신선을 만났으나 입문하지 못한 이동양

덕혜(德惠)

【정견망】

이동양(李東陽)은 자가 ‘빈지(賓之)’, 호가 ‘서애(西涯)’로 명나라 정덕제(正德帝) 때 보정(輔政)대신 중 한 사람으로, 관직이 내각수보(內閣首輔 역주: 일인지하 만안지상의 재상에 해당)에 이르렀다. 그의 본관은 호남 다릉(茶陵)인데 당시 다릉은 호광(湖廣) 장사부(長沙府)에 속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동양을 흔히 ‘이다릉’ 또는 ‘이장사(李長沙)’라 불렀다.

정덕제 때 그는 나라를 위해 황제의 총애를 받던 대(大) 태감 유근(劉瑾)을 상대하면 여러 차례 암투가 있었고, 또 민간에서는 백성들이 떠돌고 도적들이 난을 일으키는 등 어려움이 많았다. 그는 때문에 노심초사하느라 정신적 압력이 너무 심해 여러 차례 은퇴하려고 마음먹었다.

어느 날 그는 조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뒤 국사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는데, 조복의 띠도 풀기 전에 한 도사(道士)가 찾아와 뵙고자 하니 이동양이 도사를 들어오게 했다.

도사는 도포를 입고 자색 옥환(玉環 옥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도사는 조복의 두루마기를 가리키며 “이 띠가 좋기는 하지만 어찌 내 팔찌와 같겠소. 그걸 버리고 입산하는 게 어떻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즉, 조복을 입고 두루마기를 매고 벼슬을 하는 것은 좋지만, 내 자색 옥환보다 못하니 벼슬을 내려놓고 함께 입산하면 어떻겠느냐는 뜻이었다.

이동양은 도사가 그에게 벼슬을 그만두고 입산하여 수행하게 하려고 함을 알았다. 하지만 아직 인간 세상에서 할 일이 있다고 느껴 “관직에 오래 머물 생각은 없지만 입산을 하려면 그래도 세월이 필요합니다.”라는 완곡한 말로 당장 관직을 버리고 수도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도사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이 (수행과) 인연은 있지만 (수행할) 몫은 없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가더니 정원에 이르자 작은 소리로 몇 마디 읊조린 뒤 “검을 밟고 구름을 타고 올라갔다.” 이동양은 이 모습 보고 비로소 자신이 선연(仙緣)을 놓쳤다는 것을 알았다.

이 기록에 나오는 이동양은 비록 수행할 기연은 놓쳤지만 분석해보면 그는 분명 수련자를 존중한 사람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하여 비교적 짜증이 날 때 다른 사람이 와서 방해하기를 원하지 않지만, 그는 도사가 만나기를 청한다는 말을 듣고 즉시 그를 만나보았다. 도사가 원하는 대로 그가 할 수 없었지만 직접적으로 거절하지 않고 완곡하게 거절하였다. 이 두 가지로 보면 그의 수도인(修道人)에 대한 존경심을 알 수 있다.

사실 이동양으로 대표되는 중국 고대 주류인사들인 유가 사대부(士大夫) 계층은 모두 신불(神佛)이나 출가인에 대한 믿음과 존중을 가지고 있었다. 유독 오늘날 중국 공산당만이 신불과 수련인에 대해 부정하고 폄하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다. 이를 통해 보자면 중국 공산당은 역사상의 이단이자 절대적인 비주류(非主流)로 중공은 중국 역사나 문화 및 중국 인민을 아예 대표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중공은 중국이 아니다!

자료출처: 《용당소품(湧幢小品)》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8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