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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련에 대한 고금의 논설 19: 초연하게 세상 밖에서 세상 일을 하다

이각(李覺)

【정견망】

환개(桓闓)는 어디 사람인지 모른다. 화양(華陽)선생 도홍경(陶弘景 단양 사람으로 형주 목을 지낸 허목의 7세손이다)을 섬기며 하인으로 있었다. 10여 년을 열심히 일했는데 성격이 근엄하고 말이 적었으며 잡일을 하는 외에는 별달리 하는 일이 없었다.

어느 날 두 선동(仙童)이 백학(白鶴)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화양은거(華陽隱居 도형경이 은거한 곳)의 정원에 내려왔다. 평소 3층 누각에 살면서 손님을 만나지 않고 은거하던 도홍경이 기뻐하며 그들이 타고 온 수레 앞으로 나아가 맞이하려 했다.

그러자 선동이 말했다.

“태상께서 환(桓) 선생님을 모셔 오라 했습니다.”

그런데 도홍경의 문인과 제자가 수백 명에 달했지만 그중 환 씨 성을 가진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이에 문인들에게 물어보니 잡일을 하는 하인 중에 환개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에 환개를 불러 어떤 도(道)를 닦았고 또 무슨 연고로 태상의 부르심을 받게 되었는지 물어보았다. 이에 환군(桓君 환개를 존칭한 것)이 대답했다.

“묵조(默朝 일종의 내단 수련법)의 도(道)를 다년간 수련했으며 직접 태제(太帝)를 뵌 것은 9년이 되었기에 오늘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가 하늘로 올라가려 할 때 도홍경이 절을 올리고 스승으로 섬기려 하자 환군이 한사코 겸양하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 이 한 문(門)에서 오직 근면히 수련하기만 하면 성취할 수 있습니다. 만약 (당신께) 아무런 허물이 없다면 어찌하여 인간 세상에 매어있게 되었을까요? 당신의 상황을 제가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이에 환군은 하늘 옷을 입고 백학을 타고 하늘로 올라갔다.

3일 후 환군이 비밀리에 도홍경의 거처로 내려와서는 말했다.

“선생의 공(功)은 이미 아주 깊습니다. 그런데 《본초》 책을 쓰실 때 거머리 등 동물성 약재를 쓰셨더군요. 비록 사람에게는 이롭지만 생명을 해치는 것입니다. 바로 이 이유 때문에 12년 후 형체를 풀어(形解) 속세를 떠나 봉래(蓬萊)의 도수감(都水監)으로 가실 겁니다.”

말을 마친 후 곧 떠났다.

도홍경은 이에 동물성 약재를 풀이나 나무로 대신해서 《별행본초(別行本草)》 3권을 지어 잘못을 속죄했다. 대동(大同) 2년 병진년 3월 12일 임오일에 속세를 떠났다. 향년 81세였고 안색이 조금도 변하지 않았으며 행동도 자연스러웠다. 실내에 향기가 며칠간 흩어지지 않았다. 14일에 그의 의관을 가져다 뇌평산(雷平山)에 묘를 만들었다. 나중에 마추(馬樞)라는 사람이 도(道)를 얻은 후 사람들에게 알리길 도홍경 선생이 봉래에서 도수감이란 직책에 있다고 했다.

(《신선감우전(神仙感遇傳)》)

【평가】

1. 수련의 층차는 표면에 달려 있는 게 아니다

도홍경(陶弘景)은 명문가의 후손으로 17세 때 이미 강학(江學), 저현(褚炫), 유준(劉俊) 등과 함께 ‘승명 사우(升明四友)’란 이름으로 세상에 이름이 알려졌다. 여러 가지 벼슬을 했고 또 여러 왕들과 양원제(梁元帝), 양무제(梁武帝) 등 황제들과도 교분이 두터웠다. 그는 또 문장이나 지리 역산(曆算)에도 뛰어났다. 또 천문을 관측하는 혼천의(渾天儀)를 만들기도 했다. 《진고은결(真誥隱訣)》을 엮었고 또 《노자(老子)》에 주석을 달았으며 모두 2백여 권의 책을 펴냈다.

양무제의 국정을 도와 나라를 안정시켰기 때문에 양무제는 국사(國事)에 관한 일이 있으면 늘 그의 의견을 물어보곤 했다. 다년간 도(道)를 닦았고 문리(文理)가 정교하고 박식해 그 끝이 없었다. 그러나 도홍경은 오히려 자기 밑에 환 씨 성을 지닌 사람이 도를 얻었음을 몰랐다.

환개는 사람들에게 거칠고 세속적이며 무지하게 보였는데 단지 고생스럽게 일만 했고 하늘 일도 없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 그는 다년간 묵언 수행하고 있었으며 초연하게 세상 밖에 있으면서 세상일을 해왔던 것이다. 천목으로 다른 공간에서 태제를 뵌 지 벌써 9년이 되는 고인(高人)이었다.

사실 오늘날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들 중에는 환개와 같은 이들이 아주 많다. 어떤 이는 심지어 더욱 어눌하고 더욱 어리석게 보일 수 있다. 악경 및 악경의 협박을 받은 죄수들이 그들을 사람으로 대하지 않았지만 9년간 묵묵히 그 일을 실천한 후에야 비로소 주위 사람들이, 파룬따파 수련자들에게 깊이 감춰진 예지(睿智)가 있고 사부님을 도와 사람을 구하는 위대한 업적을 쌓았음을 점차 깨닫게 되었다.

위엄을 부리지 않아도 나오는 그런 위엄은 수련 층차에서 내원한다. 사람의 눈은 에너지를 볼 수 없고 소위 인간의 ‘형세’에 좌우된다. 표면적으로 보자면 수련인은 손에 닭 잡을 힘조차 없어서 늘 박해당하고 맞아 죽거나 맞아서 불구가 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되돌아보면 어느 노교소에서 파룬궁 수련자들이 가부좌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는가? 사람은 비록 감옥 속에 있지만 마음은 대법의 아름다움을 향하니 그 신은 이미 감옥 속에 없다. 모두들 옥졸들이 대법제자에게 위선적이라고들 하는데 왜 거짓을 해야만 하는가? 그건 수련자의 위엄에서 내심에서 우러나온 공경과 전율 때문이다.

도홍경과 같이 속세와 수련 양쪽 모두 성취를 이룬 사람조차 명백해진 후에야 가르침을 청했는데 하물며 지금의 죄수들이야 어떠하겠는가! 이지가 늘 존재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감히 불경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은거’가 수련이 아님을 안다. 마치 소화상(小和尙)이 경문을 읽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피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바로 이미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사람보다 낮은 것은 수련을 말할 수 없고 더욱이 ‘신의 길을 걸어감’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어찌 사람을 초월하는 우주법리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오직 글자만 읽을 뿐이다.

또 속인의 학식이 깊다고 해도 이는 사람 속에서 뜻을 얻은 것에 불과하다. 단지 표면적인 성취일뿐이며 다시 말해 세간의 고만한 일이다. 수련자에 대해 말하자면 세상일은 원래 옳고 그름이 없는 것으로 그저 돌아가면서 업력을 갚을 뿐이다. 만약 세상일을 일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면 이는 본말이 전도된 헛수고에 불과하다. 선동과 백학 앞에서 도홍경은 스스로 몸 둘 바를 몰랐으니 이는 우리 동수들이 귀감으로 삼을 수 있다. 마음속에 층층의 중생이 있고 그들을 위해 최대한도로 자신을 포기할 수 있 것이 바로 수련이다.

2. 생명의 평형

앞 문장에서 환개는 도홍경이 세상에 남겨진 원인을 알아본 후 거머리 등 동물성 약재를 사용해 생명을 해쳤기 때문이라고 알려주었다. 이에 도홍경은 속죄한 후에야 도(道)를 얻었다.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황개와 도홍경은 비록 하나는 백일비승(白日飛升)하고 하나는 시해(尸解)해서 삼계(三界) 내의 신이 되었지만 모두 사람보다 높은 저층공간의 생명이다. 그들의 생명에 대해 말하자면 모두 삼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했으니 진정하게 “생사를 마쳤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절대로 살생을 해선 안 된다. 고서(古書)에 유사한 성취를 한 사람은 소수가 아니다. 그러나 생명은 부동한 층차에 부동한 법이 있다. 저층차의 법은 그 한 층차에서 관념을 형성하게 되는데 이는 수련자가 보다 높은 층차로 돌파하는 장애가 된다.

오늘날 우리는 모두 대법(大法)을 같이 수련하지만 이 큼(大)을 얻는가 얻지 못하는 가는 법에 대한 이해에 달려 있다. 모두 3가지 일을 하고 있지만 왜 하고 있고 또 어떻게 하는지가 지극히 중요하다. ‘발정념’을 예로 들어보겠다.

부동한 층차에서 생명의 비자연적인 존망(存亡)을 겨냥해 발정념으로 사람을 통제하는 배후의 사악한 요소를 제거하는 것에 대해 말하자면 나는 이런 길을 걸어왔다.

사부님께서는 1996년 《정진요지》〈원용〉에서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생명의 평형 역시 부동한 표현형식이 존재한다. 수련자로서 우선 마땅히 일체 집착을 내려놓고 속인의 사회상태에 부합해야 하는데 이 역시 한 층의 법을 수호하는 표현이다.”

“생명은 법 중에서 자연히 존망(存亡)이 있다. 우주에는 성(成)ㆍ주(住)ㆍ괴(壞)가 있고, 사람은 생(生)ㆍ노(老)ㆍ병(病)ㆍ사(死)가 있는 것으로, 생명의 평형에는 비자연적인 존망이 마찬가지로 존재하게 마련이다.”

사부님께서는 설법에서 우리에게 어떻게 의학연구 속에서 살생문제를 대하는지 알려주셨다. 《전법륜》에서는 반복해서 살생과 수련의 관계를 강조하셨다.

만약 노병사(老病死)가 사람의 자연적인 존망이라면 의학연구에서 생쥐의 죽음은 바로 사람 이 층 법(法) 속에서 비자연적인 존망이다. 의학연구에서는 생쥐의 생명을 대가로 사람 삶의 질을 제고한다. 사부님께서는 층층 중생을 위해 오셨고 당연히 부동한 층차의 생명의 질을 위해 설법하셨다. 오늘날까지 수련하면서 우리는 사부님께서 애초 왜 우리에게 이 층차의 법을 말씀하셨는지 이해할 수 있는데 그러나 90년대 말에는 원인을 몰랐다.

이 층 법에 대한 이해에 근거해 나는 2000년부터 2001년까지 힘겨웠던 시기를 정확하게 걸어갈 수 있었다. 크고 작은 무수한 논쟁 사람과 신의 대결에서 나는 늘 사부님께 공간장(空間場)을 청리하도록 가지해주십사 요청했고 또 완성했다. 발정념이란 바로 나와 많은 동수들이 미리 걸어갔던 길이다. 매 차례 악(惡)세력의 우리에 대한 성토에 직면해 다른 공간에서 사악한 생명과 구세력의 통제를 제거했기 때문에 결국 모두 ‘공경’하게 물러났다.

나는 수련인은 부동한 진수(真修) 층차 중에서만 비로소 진정으로 법(法)이 무엇인지 볼 수 있음을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또한 우주대법에 대해 이해하는 층차가 부동할 뿐임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왜냐하면 비록 한 층차 높은 법이 한 층차 낮은 법에 비해 우주 진리에 더욱 접근했지만 그러나 높고 낮음을 막론하고 그들은 각자 부동한 층차에서 모두 각자 지도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층의 생명 및 그들보다 낮은 인류에 대해 말하자면 당연히 모두 틀리지 않는다. 이에 우리가 그 층의 법을 이해했다면 곧 마음 놓고 가서 할 수 있는데 결과는 부동한 환경 하에서 행동이 아주 대자재(大自在)할 수 있고 직접 법을 스승으로 삼는 즐거움을 체험할 수 있다. 잘못과 좌절은 사람의 관념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교훈이 아주 많지만 여기서는 상술하지 않는다.

그러다가 2001년 1월 1일 사부님께서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법을 발표하셨다. 이는 나로 하여금 생명의 비자연적인 존망에 대해 더욱 확고히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명혜망에 접속해 매일 박해진상을 읽으면서 내게 발정념은 일과가 되었다. 당시에는 그저 법리의 각도에서 “만악(萬惡) 모두 제거해야 많은 중생 살리네”(《홍음 2》〈유의〉)도리로만 접근했다.

그 결과 나는 직접 마삼가(馬三家) 만가(萬家) 장림자(長林子) 등 수많은 노교소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일일이 무수한 노교소와 감옥 입구를 지나면서 이들 건물이 왜 이렇게 익숙하지? 내가 언제 와 본 적이 있는가? 생각했다. 문득 명백해졌는데 발정념을 할 때 왔었던 것이다.

사부님께서는 내게 매 차례 정념을 모두 헛되이 발하지 않았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우리는 손을 움직이지 않고 발을 움직이지 않아도 남들이 손이나 발을 움직여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할 수 있다. 정념(正念)이 이르는 곳마다 나는 모두 직접 겪어보았다. 오늘날의 매 한가지 일은 모두 대법을 위해 존재한다. 이 과정 중에서 법은 장차 우리를 신(神)으로 단련시킬 것이다!

우리는 도홍경처럼 봉래 도수감이 되진 말아야 한다. 우리의 사명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하며 장래 직책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천체와 중생이 불파(不破)불멸(不滅)하고 영원히 떨어져 내려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하자면 반드시 법을 잘 배우고 사부님께서 가르쳐주신 매 한 층의 법에 최대한 동화하고 매 한 가지 공능도 모두 숙련되게 운용해야 한다. 정법 최후단계에 초연히 세상 밖에서 세상일을 하면서 “비학비수(比學比修)”(《홍음》)하고 정체 승화해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543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