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광신부(廣信府) 영풍현(永豐縣 지금의 강서성 상요上饒시 광풍廣豐구)에 수도인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여빈자(呂貧子)’라 불렀다. 그는 남송(南宋) 때 영풍현에 와서 삼관도원(三官道院)에 띠 집을 짓고 수행했다. 여빈자는 60여 년 동안 이곳에 은거했고 사망한 후 도원 오른쪽에 묻혔다. 그가 죽은 후 어느 해, 어느 영풍 사람이 공무차 하남(河南)에 파견되었다.
그가 하남에서 일을 마치고 뜻밖에 여빈자를 우연히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술도 마셨다. 저녁때가 되자 여빈자는 그를 집에 데려다 주겠다며 눈을 감으라고 했고, 곧 닭과 개 소리가 들리더니 이미 영풍으로 돌아왔는데, 집에 돌아와 보니 시간은 삼경(밤 11시~새벽 1시)이 지나지 않았다. 그가 현 관아로 돌아가자, 현령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하남에서 돌아왔는가 물어서, 그는 사건의 경과를 자세히 말했다.
현령이 듣고는 이상하게 여겼다.
“여빈자는 죽지 않았는가?”
그래서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기 위해 여빈자의 무덤을 파보게 하니 무덤이 비어 있었고, 그 안에는 여빈자의 영정과 시(詩) 및 짚신 두 짝만 있었다. 짚신을 파내자 짚신이 두 마리 학이 되어 날아갔다. 이 기적을 보고 사람들은 모두 여빈자가 수련에 성공하여 시해(尸解)의 방법으로 떠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요시 광풍구에는 지금도 ‘백학반(白鶴畈)’이란 지명이 있는데, 여빈자의 짚신 두 짝이 백학 두 마리가 되어 날아간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이에 여빈자의 초상을 여러 사람이 도관에 봉안했는데, 명나라 천순(天順) 연간(1457~1464년)에 지부(知府)인 김선(金銑-자는 종윤宗潤, 호는 성암省庵)이 가져갔다.
그 지방에는 오직 여빈자의 시만이 남아 있는데, 그 시는 다음과 같다.
“복전(福田)이 큰 곳은 대부분 죄가 많고, 복전이 작은 곳은 죄가 적구나
나는 복이 없는 사람이니 복이 없으니 번뇌도 없네.
낡은 병 하나와 낡은 저고리 하나.
생사(生死)는 걱정하지 않고, 도적도 근심하지 않네.
평상심으로 사물을 대하며 그 시일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면
설령 신선이 되진 못할지라도 또한 보리도(菩提道)를 증명할 수 있으리.”
福田多處作孽多,福田少處作孽少。
我是無福人。無福無煩惱。
一個破燒瓶,一領破衲襖。
一不憂生死,二不憂盜賊。
平心待物去,候他時日到。
假饒不作仙,也證菩提道。
“금오(金烏 태양)가 서쪽으로 떨어지든
옥토끼(玉兎 달)가 동쪽에서 솟아오르든
염부제(閻浮提 속세)에 잠시 머물다 가나니
갈 때 손 떼면 그만이로다.”
不管金烏西墜,任他玉兔東升。
住則閻浮且住,去時撒手便行。
“60년 간 이곳에 와서 살았는데
영대(靈臺)의 빛이 주전자를 닮았구나
문득 낡은 집이 바람에 쓰러져도
집안에는 아무 일도 없다며 기뻐하누나.”
六十年來此地居;靈台光映似水壺。
忽朝破屋風吹倒,且喜家中事事無。
이 시를 통해 볼 수 있다시피 여빈자는 인생에 대해 활달한 태도를 지녔고 가난 따위는 조금도 걱정하지 않았다. 반대로 자신은 “복이 없으니 번뇌가 없다”고 했다. 또한 자신이 거주하던 집이 바람에 쓰러져도 웃으며 아무 일도 없다면서 기뻐했다.
[역주: 이 시에서 낡은 집은 여빈자의 육체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즉 사람이 죽어 육체가 무너져도 진정한 생명의 주인인 원신(元神)은 여전히 살아 있으니 원신 입장에서 보자면 사실 사람의 죽음이란 아무 일도 없는 것이다.]
자료출처: 《이신(耳新)》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79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