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도진(李道真)
【정견망】
2. 제도입덕(帝道立德)
나중에 점차 사회문명이 발전하고 물질생활이 풍부해짐에 따라 인류 도덕(道德)이 타락하기 시작해 심령(心靈)이 더는 순진(純真)하지 않게 되었고, 각종 사심(私心)과 욕망에 의해 오염되어 총명하고 교활해지고 서로 다투게 되었다. 이리하여 인류는 점차 자연히 대도(大道)와 간격이 생겼고 신(神)으로부터 더욱 멀어져 신력(神力)이 점차 사라졌고 자연환경 역시 따라서 갈수록 악화되었다. 인류는 자연만물을 적(敵)으로 삼기 시작했고 서로 해칠까 경계하면서 생존상태가 점차 고통스럽고 힘들게 변했다.
때문에 황도(皇道)는 서서히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낙서(洛書)》에는 “황도에 흠이 있어 몰락한 후 제도(帝道)가 흥성하기 시작했다.”[6]고 했다.
이에 중화민족은 만장한 삼황(三皇) 시기를 지나 이번 차례 오천년 문명 오제(五帝) 시기로 진입했다. 오제 시기는 이번 차례 중화문명의 시작으로 황제(黃帝)로부터 기원한다. 사실 오제 시기 역시 단순히 다섯 제왕이 탄생한 시기를 가리키는 게 아니라 다섯 제왕으로 대표되는 시기를 말한다. 황제가 시조(始祖)가 되고 순(舜)임금에서 끝나는데 시간상으로 약 천년 정도 간격이 있다. 황제, 소호(少昊), 전욱(顓頊), 제곡(帝嚳), 요제(堯帝 요임금), 순제(舜帝 순임금) 등이 모두 이 시기 제왕들이다.
《설문해자》에는 이런 기록이 있다.
“제(帝)는 제(諦)와 같은 뜻으로 의미는 세간 만물의 진리를 포함해 천하를 통치하는 군왕의 호칭이다.”[7]
《관자•진법편(真法篇)》에서는 “천도(天道)를 통찰하고 깨달을 수 있는 이가 바로 제(帝)다.”[8]라고 했다.
《예기•시법(諡法)》에서는 “천지의 도를 본받아 천지처럼 박대(博大)한 덕을 건립한 것을 가리켜 제(帝)라 한다.”[9]고 했다.
《상서대전(尚書大傳)》에서는 “제(帝)가 천도(天道)를 본받아 도덕을 건립하고 형법(刑法)을 설립했다”[10]고 했다.
이상 논술을 근거로 천지만물을 통찰해 대도(大道)를 깨닫고 대도를 존중해 ‘덕(德)’을 세우고 ‘덕’으로 천하백성을 교화하는 이를 가리켜 ‘제(帝)’라 함을 알 수 있다.
삼황 시기 인류는 선천의 순진무사(純真無私)한 상태에 처해 있었기에 그 어떤 오염도 받지 않았다. ‘황(皇)’은 직접 천도(天道)를 드러내 몽매(蒙昧)한 이들을 개화시켰고 심령이 순진하고 간단했던 초기 인류는 도(道)속에서 자연히 본성에 따라 행동했기에 무위(無爲)의 다스림을 시행하고 천하가 도속에 있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나긴 사회발전 과정 중에서 인류의 심령(心靈)은 서서히 더는 순진하지 않게 변했고 각종 사심과 욕망에 오염되어 서로 속이고 빼앗기 시작했고 사회에서도 이에 상응해 범죄와 전쟁 등의 재앙이 나타났다. 이때 인류는 이미 대도(大道)에서 벗어나 더는 백성들이 자연스레 본성에 따라 행동하게 맡겨둘 수 없었기에 반드시 ‘덕(德)’을 세워 천하 백성들의 언행(言行 말과 행동)을 규범하고 이를 통해 도(道)의 표준으로 되돌아가게 이끌어야 했다.
‘제(帝)’는 바로 이때 천운(天運)에 따라 태어났다. 그들은 천지만물을 통찰해 이를 통해 대도를 깨달았고 또 ‘덕(德)’을 세워 천하 백성들의 언행을 규범지어 백성들이 도(道)로 되돌아오게 이끌어 무위의 다스림이란 최종목표에 도달했다. 이것이 바로 노자(老子)가 말한 “도를 잃은 후에 덕이 나타났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도’와 ‘덕’에는 어떤 구별이 있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덕(德)은 도(道)에 따라 세운 준칙이다. 중국의 오래고 신비한 천서(天書) 《주역》에서 표현한 것은 사실 바로 일종의 대응관계이다. 즉 천상의 변화가 대응하는 인간세상에 변화를 일으킨다. 동시에 《주역》은 또 천도(天道) 운행에 대응해 덕(德)을 생성하는 과정을 펼쳐냈는데 이것이 바로 건도(乾道 하늘의 도)가 곤덕(坤德 땅의 덕)을 만드니 이에 순응하는 자는 길하고 거스르는 자는 흉하게 된다.
좀 생소한 이론이라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으니 아래에 간단한 사례를 들어 설명해보고자 한다.
인류가 순진무사(純真無私)할 때는 근본적으로 속임수가 무엇인지 몰랐고 그 어떤 계략이나 기교도 없었다. 사람이 말을 하면 그대로 믿었고 천하에 속임수가 없었다. 이때 인류의 마음 속에 근본적으로 성신(誠信 성실과 신의)이란 이런 개념이 없었다. 왜냐하면 속임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때의 인류는 애초 성신을 강조할 필요가 없었다. 이는 바로 천진무구한 아이처럼 아예 기만을 모르는데 그에게 성신을 말하면 오히려 그의 심령을 복잡하게 오염시킬 뿐이다. 이것이 바로 도(道)다. 생명이 가장 순진무사한 선천(先天) 상태로 돌아가면 일체는 다만 자연히 본성에 따라 행동할 뿐이다. 이때의 ‘도’는 무형(無形)의 것으로 천하는 모두 도 속에 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도’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데 그는 천지만물을 유지하는 자연스럽고 조화로운 운행기제다.
인류가 발전함에 따라 인류의 심령이 점차 더는 순진하지 않게 되었고 각종 사심과 욕망에 오염되어 계략과 기교가 나타났고 속임수와 쟁투 등이 나타났다. 이때 천하는 도(道)에서 벗어난 것으로 천하의 조화와 평형이 깨져 생명이 서로 해치기 시작해 각종 고통과 재난을 가져왔다. 천하를 다시 조화롭고 아름다운 상태로 되돌리자면 반드시 생명을 ‘도’로 회귀시켜야 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큰 지혜를 지닌 생명이 천지만물 사이에서 도를 깨달아야 했는데 다시 말해 천지만물을 유지하고 조화롭게 하며 완벽하게 하는 기제를 깨달아야 했다.
때문에 ‘도(道)’가 모습을 드러내게 했고 이를 통해 참조할 표준을 세워 생명이 회귀할 수 있게 했다. 이렇게 세워진 참조표준이 바로 ‘덕(德)’이고 천지 사이에서 도를 깨달아낸 큰 지혜의 생명이 바로 ‘제(帝)’다.
예를 들면, 생명이 도(道)에서 벗어나 속임수가 생긴 후 원래 있었던 사회 조화를 깨뜨리니 이때 상응해서 ‘성신(誠信)’이란 이런 일종의 ‘덕(德)’이 생겨나 생명의 편이를 바로잡아 생명이 도로 되돌아오게 한다. ‘덕’이란 바로 이렇게 서서히 세워진 것이다.
그러므로 ‘덕’이란 ‘도’에 근거해 세워진 표준이자 또한 ‘도’가 인간 세상에 드러난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천하 만물이 모두 도(道)속에 있을 때는 덕(德)이란 이런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때 ‘도(道)’는 완전히 무형의 것이다. 생명이 도에서 벗어난 후 자연스런 조화가 깨지자 비로소 참조와 대비가 생겼으니 도는 관찰되어 나온 것이다. 마치 위(上)란 참조와 대비가 없으면 곧 아래(下)란 이런 개념을 세울 수 없는 것과 같은데 그것들은 한 몸이며 같이 존재한다.
생명이 도에서 벗어나 원래 있던 조화를 깨뜨리면 곧 대비와 참조가 생겨나는데 이때의 ‘도(道)’는 곧 ‘모습을 드러내고’ 제(帝)는 곧 천지만물 사이에서 깨달아낸 이 한 세트의 조화롭고 완벽한 기제로 표준을 세워 생명이 조화로 되돌아가게 하는데 이것이 바로 ‘덕’이다. 때문에 생명이 대도에서 벗어나 속임수가 생겨날 때 성신이 세워지고, 악(惡)이 생겨나니 곧 선이 세워지고 쟁투가 생겨나니 곧 겸양이 생겨나는 등과 같다.
생명이 순진무사(純真無私)할 때는 일체가 다 자연스럽게 본성에 따라 행해도 도(道)속에 있어 천하가 완벽하고 조화롭기 때문에 근본적으로 ‘덕(德)’을 이용해 언행을 규범할 필요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황도(皇道)’이다. 다시 말해 공자가 만년에 늘 말하던 궁극적인 경계인 “마음에서 하고자 하는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從心所欲而不逾矩」)” 것이다.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란 사실 바로 도(道)속에 회귀한 후의 것으로 일체가 자연스럽게 본성에 따라 행동한다. 이는 공자가 평생의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덕을 닦아 최종적으로 도(道)로 회귀한 과정이자 유가(儒家)에서 도달할 수 있는 정점이니 바로 도가(道家)로 회귀한다. ‘덕(德)’이 완비되어 무형(無形)에 도달할 때 바로 ‘도(道)’로 들어간다.
제는 도를 깨닫고 덕을 세워 천하백성을 도(道)의 표준으로 돌아가도록 이끌며 최종적으로 무위의 다스림을 실현한다. 이는 후천적인 무위의 다스림으로 황도 시기 선천적인 무위의 다스림과는 차이가 있다.
사료의 기록에 따르면 오제시기 마지막으로 무위의 다스림에 가까운 제왕이 바로 요제(堯帝)다.
요제 만년에 천하는 아주 잘 다스려졌다. 《고사전(高士傳)》에 이런 기록이 있다.
“요제(堯帝) 때 천하가 태평하고 조화롭자 백성들의 생활도 자재(自在)하고 근심이 없어져 천하 곳곳이 모두 인간세상의 선경(仙境)과 같았다. 이때 한 80대 노인이 길가에서 땅을 두드리며 즐거움을 노래했다. 사람들은 노인이 근심 없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모두들 감탄하며 “이는 모두 요 임금의 성스런 덕이 주신 것이로구나!”라고 했다. 그러자 노인이 이 말을 듣고는 “해 뜨면 일하러 나가고 해 지면 쉬며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고 밭을 갈아 먹고사는데 임금이 내게 무슨 덕이 있단 말인가?(日出而作,日入而息,鑿井而飲,耕田而食,帝何德於我有哉)”라고 말했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유명한 《격양가(擊壤歌)》의 유래다. 이 노래는 요제 당시 세상이 무릉도원처럼 아름다웠음을 묘사하는데 의경(意境)이 깊고 화면(畫面)이 편안하면서도 질박하다. 이 역시 요제가 천하를 잘 다스린 후 백성들의 풍속이 순진해져서 모든 것이 자연에 순응해 마치 제왕이 아예 없는 것과 같았음을 보여준다.
주:
6. 《낙서(洛書)》:「皇道缺故帝者興。」
7. 《설문해자》:帝,諦也。王天下之號也。
8. 《관자•진법편(真法篇)》:「察道者帝」。
9. 《예기‧시법(諡法)》:「德象天地稱帝。
10. 《상서대전》:「天立五帝以為相,四時施生,法度明察,春夏慶賞,秋冬刑罰,帝者任德設刑,以則象之,言其能行天道,舉錯審諦也。」
원문위치: https://zhengjian.org/node/242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