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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명수(命數)를 정확히 예측한 이인

안문(顏雯)

【정견망】

술수(術數)는 고대 중국의 심오하고 정심한 일종의 과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역대로 음양술수(陰陽術數)에 능통한 사람들이 적지 않게 출현했다. 그들은 오행·팔괘·천문·역법(曆法) 속의 여러 요소들을 대응·조합해서 인사(人事)의 길흉, 나아가 한 나라의 흥망과 성패(成敗)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런 방식이 드러내는 것은 우주・천체 운행의 법칙이며, 사람은 이런 규율하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다시 말해 일찌기 명수(命數 운명)가 정해진 것이다.

사료에 나오는 이인(異人)과 방사(方士)에 대한 기록은, 크게는 황제가 임명한 국사(國師)에서 작게는 길거리에 있는 점쟁이도 기본적으로 사람들이 직접 듣거나 직접 본 사실들이다. 《북몽쇄언(北夢瑣言)》의 편찬자는 일찍이 “매번 한 가지 일을 들으면 감히 혼자 자신하지 못했고 여러 번 참고하고 교정한 후에야 비로소 붓으로 적었다”고 말한 바 있다. 그래서 그 일화는 《태평광기》, 《자치통감》 등 후대에 전해지는 사료에도 많이 기록되어 있다.

1. 궁중의 일을 알아낸 세외고인 정산고

전촉(前蜀)의 고조(高祖) 왕건(王建 847-918년)이 재위할 때 한주(漢州) 면죽(綿竹)현에 술수를 아는 노인이 있었는데 이름은 정산고(鄭山古)였다. 어느 날, 군교(軍校 장교) 황승진(黃承真)이 식량을 운반하다가 이곳을 지나갔다. 정산고는 마침 그를 찾아가 만나서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이 나라에는 오행에서 금(金)이 부족하니 불길한 징조가 있습니다. 올해 궁중에 큰 불이 날 것이며, 갑신, 을유년에는 더 많은 생령(生靈)이 도탄에 빠지는 일이 생겨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할 것입니다. 이제 제가 비술(秘術)을 당신에게 전수할 테니, 조정에 들어가면 반드시 촉주(蜀州)께 상주해주시기 바랍니다. 만약 이 비술이 액을 없애고 악을 물리칠 수 있다면, 미래의 살벌한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면 공덕이 무량합니다. 이것도 수도인들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저를 도와주신 것으로 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이 세 번 말했는데도 촉주께서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어쩔 수 없고 하늘에 맡길 수밖에 없습니다.”

황승진도 이 말을 듣고 걱정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이렇게 긴요한 일을 다 말씀해 주셨으니 물불 가리지 않고 가겠습니다.”

황승진은 촉주에게 상소문을 썼지만 세 번을 올려도 전하지 못했고 급기야 울분에 피를 토하며 죽었다. 바로 그해 11월, 촉의 궁중에 큰 불이 났고, 왕건의 침전인 백척루와 그 안의 많은 보물들이 모두 타서 잿더미로 변했다. 불길은 사나워 다음날 아침까지도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 왕연(王衍 본명 왕종연)이 뒤를 이어 제위에 올랐으나 을유년(925년)에 이르러 전촉은 무너졌다. 70일간의 전쟁으로 생령이 도탄에 빠졌고, 전촉은 망하게 되었다.

그 비술은 당시 능주(陵州) 판관 손광헌(孫光憲)이 일찍이 본 적이 있는데, 그 안에는 대략 5~6천 자가 들어있었는데 당시 세상에 전해졌던 《음부(陰府)》 및 《황제음부경(黃帝陰符經)》과는 크게 달랐다고 한다. 황승진도 “세간에 보기 드문 기문(奇文)으로 문장이 유창할 뿐만 아니라 한 필, 한 획이 오행과 대응했다”고 말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한대(漢代)부터 면죽 일대에는 도참(圖讖)의 학문에 정통한 사람이 적지 않았다고 하는데, 정산고는 아마 그 중의 한 사람일 것이다.

2. 정권교체를 예측한 수행자 강신

당조(唐朝) 말기에 봉주(鳳州) 동쪽 골짜기에 강신(強紳)이란 사람이 부처 수련을 하며 살았다. 그가 수행한 것은 삼계(三戒)의 법으로 또한 구름의 기운을 관찰해 나라의 흥망을 점치고 천자의 길흉을 예측할 수 있었다.

897년 왕건(王建)이 군대를 이끌고 진주(秦州)와 봉주를 병합했다. 그가 한 무리의 군사를 거느리고 도성에 나타나자, 강신이 옆에 있던 신료 손광헌에게 말했다.

“10년만 지나면 천하에 여러 천자가 한꺼번에 나타날 겁니다.“

과연 907년 주온(朱溫 주전충)이 후량(後梁)을 세우자 마은(馬殷)은 초왕(楚王)에 봉해지고 전류(錢鏐)는 오월(吳越)왕, 왕용(王鎔)은 조왕(趙王)이 되었고 왕건도 자립해서 왕이 되었다. 이때부터 오대십국(五代十國)의 구도가 점차 형성되었다.

나중에 촉군(蜀軍)이 기산(岐山)을 공격하여 하루아침에 진(秦) 땅을 평정하겠다고 공언했다. 강신은 “진왕(秦王)은 사려가 깊지만 경거망동하기 쉽다. 비록 그가 천하의 패자는 되지 못하지만 천수를 다할 것이다. 하지만 촉군은 결국 진 땅을 공략하지 못하는데, 진천(秦川) 일대가 폐허가 되는 것이 안타깝다.”라고 했다. 그 후 진왕 이무정(李茂貞)이 연전연패하다가 최후에 후당에게 항복하였다. 그가 죽은 바로 이듬해, 전촉도 2대 군주가 우둔하고 무도하여 나라를 잃었다.

3. 후계자를 알아낸 수도자 황만호

당말 전촉(前蜀) 시기, 중경(重慶) 무산현(巫山縣)에 고당관(高唐觀)이 있었는데, 파동군(巴東郡)의 촌민 황만호(黃萬戶)가 이곳에서 수도를 하기 전에 이미 한 도사에게 육정(六丁)의 법을 배웠고 또 일부 물건을 바꿀 수 있는 법술(法術)도 좀 배웠다. 당시 융주자사(戎州刺史) 문사로(文思輅)도 이런 법술을 배웠는데, 그가 종이로 생선을 잘라 물에 넣으면 물고기가 살아났다. 이때 황만호가 부적 한 장을 넣으면 수달 한 마리가 나와 물고기를 잡아먹었다.

문사로는 황만호가 병을 치료할 수 있는 쇠 채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고 법술로 그것을 가져왔지만 그가 부주(涪州)에 도착했을 때 쇠 채찍은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그는 쇠 채찍이 이미 황만호의 손에 돌아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지에 양희고(楊希古)라는 사람이 황만호에게 도술을 배우고 싶어 했다. 그가 오자마자 황만호는 그에게 “당신 집에 초상이 났다”고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어머니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

어느 날, 전촉의 고조(高祖)가 황만호를 궁으로 불러들여 아들들을 모두 앞에 세우게 했다. 고조(高祖)는 그에게 앞으로 왕위를 계승할 수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봐달라고 했다. 황만호는 왕연(王衍)을 가리키며 “바로 이 사람”이라고 말했다.

당초 장남인 왕종인(王宗仁)은 어려서부터 병에 걸려 대통을 이을 수 없었고, 차남인 왕종의(王宗懿)가 태자가 됐다. 나중에 태자가 피살되자 왕건은 나머지 두 아들 중 한 명을 다시 세울 계획을 했다. 그가 가장 태자로 세우지 싶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막내아들 왕종연(王宗衍 즉 왕연)이었다. 설사 나중에 태자로 세웠더라도 다른 한 명을 세우려고 했다. 그런데 얼마 후 이 아들도 갑자기 죽었다. 왕건은 죽을 때가 되어 왕연을 보며 “내가 온갖 전투를 치르며 이 대업을 세웠는데 네가 지킬 수 있겠느냐”라고 탄식했다. 보아하니 왕건은 이미 암암리에 왕연의 왕위 계승뿐만 아니라 전촉의 멸망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그때 청성현(青城縣)에 마(馬)화상이 있었는데, 득도한 고승이었다. 그는 이미 35년이나 가부좌를 하고 있었다. 황만호는 죽기 전 가족에게 “마화상이 나를 찾아왔으니 가야 한다”고 말했다. 바로 이 해에 마화상도 세상을 떠났다.

참고자료: 《북송쇄언(北夢瑣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