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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무선종(樂舞仙蹤) 7: 무풍이 흥하자 신적이 점차 사라지다

진우(真愚)

【정견망】

초기의 악무(樂舞)는 이처럼 큰 에너지를 지녔고 직접 신(神)과 소통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바로 이때 인류의 사상이 순정(純淨)하고, 마음이 성실하고 선량했으며 아무런 욕망과 집착이 없어 단순하고 간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악무의 에너지를 극치까지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점차 인류의 물질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인류의 욕망은 갈수록 더 커졌고 심령(心靈)이 더 이상 간단하고 순결하지 않게 되어 사회 인심도 복잡해져서 오염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육욕(肉慾)의 향락을 추구하고 물질적 이익을 쫓기 시작했고 정신 에너지는 점차 약해지고, 점차 신(神)으로부터 멀어져서 자연과 대도를 등지게 되니 신(神)이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다.

《상서・이훈(伊訓)》에는 “이윤이 태갑을 가르치면서 선왕이신 상탕(商湯)께서 관리들에게 경계하시길 ‘감히 하루 종일 궁중에서 춤추고 실내에서 멋대로 노래하는 것을 무풍(巫風)이라 하는데…임금이 무풍에 물들면 나라는 반드시 망합니다.”[1]라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은 초기의 음악이 이미 백성을 교화시키고, 하늘을 감동시키며 신과 소통하는 등의 역할이 점차 오락과 향락을 제공하는 등의 역할로 변질되었음을 설명한다. 음악이 인류가 정(情)을 방종하는 오락 도구로 완전히 전락해 일종의 삿되고 음란한 풍조를 형성하면 이를 가리켜 ‘무풍(巫風)’이라 한다. 이는 국가의 풍기를 훼손하고 사회도덕을 패괴시킨다.

《관자·경중갑(輕重甲)》에는 “옛날 하(夏) 걸왕 때 궁중에 3만 명의 여악(女樂)이 있었는데, 매일 새벽 단문(端門)에서 큰 소리로 노래해서 춤과 음악 소리를 큰길에서도 들을 수 있었다. 그녀들은 모두 호화로운 옷을 입었다.”[2]라는 기록이 있다.

즉, 하조(夏朝) 말기에 이미 ‘무풍’이 흥성했음을 알 수 있다. 악무가 인류가 마음껏 정을 즐길 수 있는 도구로 전락했을 때, 신과 소통하는 능력이 역사 속에서 서서히 사라졌고 그 배후의 신기한 에너지 역시 갈수록 미약해졌다.

《악기(樂記)》는 현존하는 가장 최초이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음악 관련 저술로 《예기》에 수록되어 유가의 경전이 되었다. 사마천의 《사기》에도 수록되어 있으나 약간의 차이가 있고 이름도 《악서(樂書)》라 한다.

《악기》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악(樂)의 작용은 사람의 마음을 바로잡는 것이다.”[3]

“그러므로 아무리 성대한 악(樂)이라 해도 사람이 즐기기 위한 듣기 좋은 소리가(音) 아니며, 아무리 성대한 제례(祭禮)라 해도 사람의 구미에 맞는 맛있는 음식이 아니다. 가령 ‘청묘(淸廟 주나라 문왕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묘)’에서 사용하는 비파는 위로 붉은 현과, 아래로 성긴 구멍만 있을 뿐이며, 한 사람이 부르면 세 사람이 따라 부를 뿐이지만 깊은 의미를 담고 있다. 또 대향(大饗)의 예는 술 대신 현주(玄酒 맹물)을 사용하고 비린내 나는 생선을 진설하며, 태갱(太羹)에는 간을 하지 않지만 그 남은 맛이 있다. 때문에 선왕(先王)이 예악을 제정한 이유는 사람들의 입과 배 및 눈과 귀를 만족시키기 위함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자신의 좋고 나쁨의 감정을 조절하도록 가르쳐주고 사람을 도리의 바른 규범으로 되돌아가게 하려는 것이다.”[4]」

“사람이 태어나서 평화롭고 고요한 것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이다. 사물에 감촉해 움직이게 되는 것은 인간 본성의 표출이다. 사람이 외부 사물의 도래를 감지하면 마음속에 좋고 나쁜 정서가 생긴다. 만약 좋고 나쁜 정서를 마음속에서 절제하지 못하면 지혜는 사물에 미혹되어 최초의 평화롭고 고요한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게 되며 하늘이 준 본성도 사라져 버린다. 외부 사물이 사람을 유혹하는 것은 끊임이 없으며 또 사람의 좋고 나쁜 감정이 절제되지 않을 때 외부 사물이 도래하면 사람은 사물에 동화되기 마련이다. 사람이 사물에 동화되면 하늘의 이치가 없어지게 하고 사람의 욕망도 다하게 만든다. 이에 윗사람을 거스르고 속이려는 마음이 생기고 음란하고 방탕하며 반란을 일으키려는 일이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강자가 약자를 핍박하고 다수가 소수를 업신여기며 총명한 자가 어리석은 자를 속이며 용맹한 자가 나약한 자를 괴롭히고 병자가 요양을 하지 못하며 노인, 어린이, 고아, 과부가 그 자리를 얻지 못하게 되니 이는 큰 혼란이 일어나는 근원이 된다.”[5]

“악(樂)이란 즐거운 것이다. 군자는 악으로 대도(大道)를 얻어 즐겁고 소인은 사람의 욕망을 채웠기 때문에 즐겁다. 도(道)로 사욕(私慾)을 절제하면 즐거우나 음란하지 않고, 사욕으로 도(道)를 멀리하면 정신이 희미해져서 진정한 즐거움을 얻을 수 없다.”[6]」

“간사한 소리를 들으면 사람의 몸에서 역기(逆氣 거스르는 기)를 불러일으키고, 거스르는 기가 형상을 이루면 음란한 음악이 일어난다. 바른 소리[正聲]를 들으면 사람의 몸에 있는 순기[順氣 정기(正氣)를 말함]가 이에 호응하고, 순기가 형상을 이루면 온화한 음악이 일어난다.” [7]

지금까지 인용한 내용은 《악기》의 논술이다. 이런 표준에 따른다면 현재 인류에게 유행하는 음악과 춤은 대부분 ‘음란한 음악[淫樂]’의 범주에 속해, 사회도덕을 패괴(敗壞 부패하고 망치는)시키는 작용을 일으킨다. 그러므로 신적이 아예 사라진 것이다.

이외에도 《사기》〈악서(樂書)〉에는 다음과 같은 역사 이야기가 실려 있다.

진(晉)나라 평공(平公 BC 558-532)이 새로 지은 왕궁이 완성되어 이에 경축행사를 열고자 했다. 위(衛)나라 영공(靈公 BC 534-493 재위)은 양국의 우호를 위해, 악공(樂工)들을 데리고 진나라의 경축행사에 참가하기로 했다.

위령공이 진나라에 가다가 복수(濮水)라는 강가에 이르러 하룻밤 묵어가려고 수레에서 말을 풀고 임시로 막사를 지어 쉬고 있었다. 한밤이 되자 어디선가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려왔다. 영공은 매우 즐거워 사람을 시켜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들은 사람이 없었다.

영공은 너무나 기쁜 나머지 악사(樂師)인 사연(師涓)을 불러 말했다.

“지금 새로운 곡을 연주하는 사람이 있어 내가 사람을 시켜 이웃에 물었으나 아무도 그 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형상이 귀신과 유사하니 나를 위해 들어보고 악보에 기록하도록 하라.”

사연은 “예”하고 대답하고, 이어서 자리에 단정히 앉아 거문고(琴)를 끌어당겨 그 소리를 들으며 기록했다.

다음날 말하기를 “신이 그 소리를 듣고 음을 얻었으나 아직 익숙하지 못합니다. 청컨대 머무르면서 익히게 해주십시오.”라고 하니 영공이 좋다고 하여 다시 머물렀다.

다음날에 “익혔습니다.”라고 보고했다.

곧, 복수를 떠나 진나라로 가서 진 평공을 만났다.

위령공 일행이 진나라 변경에 도착하자 진평공은 새로 지은 왕궁에서 풍성한 연회를 준비해, 이미 귀빈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연회에서, 취흥이 한창 무르익자 위령공이 말했다.

“근자에 새로운 음악을 들은 것이 있으니 청컨대 연주하도록 해주십시오.”

평공이 말했다.

“좋습니다.”

즉시 사연을 사광 옆에 앉도록 하고 거문고를 주어 연주하게 했다. 연주를 다 마치기도 전에 사광이 줄을 어루만지면서 제지하며 말했다.

“이것은 망국의 음악이니 끝까지 연주해서는 안 됩니다.”

평공이 “무슨 이유로 그러는가?” 하고 묻자 사광이 대답했다.

“이것은 상(商)나라 말년의 악사 사연(師延)이 폭군인 상(商)나라 주왕(紂王)을 위해 만든 “미미지음(靡靡之音: 퇴폐적인 음악)”입니다. 후에 상나라 주왕은 무도(無道)한 정치를 하여 주나라 무왕(武王)에게 왕위를 빼앗겼고, 사연은 주왕을 도와 참혹한 짓을 한 죄로 심판을 받을까 두려워, 도망 다니다 궁지에 빠졌을 때, 거문고를 안고 복수에 몸을 던졌습니다. 그러니 이 곡은 아마도 복수 강변에서 들었을 것입니다. 이 곡은 매우 불길한 것으로 가장 먼저 이 음악을 듣는 사람의 나라는 쇠망할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연(師涓)이 곡을 다 연주하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평공이 “과인이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니 끝까지 듣기를 원하노라.”라고 하자 사연이 연주하여 곡을 마쳤다.

평공이 사광에게 말했다.

“음악 가운데 이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는가?”

“있습니다.”

“들어볼 수 있는가?”

“주군의 덕(德)과 의(義)가 두텁지 않다면 들을 수 없습니다.”

평공이 “과인이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니 듣기를 원하노라.”라고 명령하자 사광은 마지못해 거문고를 끌어당겨 연주했다. 한번 연주하자 검은 학 28마리가 낭문(郎門)에 모여들었으며 다시 연주하자 학들이 길게 목을 빼어 울고는 날개를 펴고 춤을 추었다.

평공이 크게 기뻐하며 일어나 사광을 위해 축수(祝壽)했다. 그리고는 자리로 돌아와서 물었다. “음악 가운데 이것보다 더 슬픈 것은 없는가?”

사광이 대답했다.

“있습니다. 옛날 황제(黃帝)는 귀신을 크게 모았습니다. 지금 주군의 덕과 의가 두텁지 않으니 그것을 듣기에 부족합니다. 그것을 들으면 장차 패망하게 될 것입니다.”

평공이 말했다.

“과인은 이미 늙었노라. 좋아하는 것은 음악이니 끝까지 듣기를 원하노라.”

사광이 마지못해 거문고를 끌어당겨 연주했다. 한번 연주하니 흰 구름이 서북쪽에서 일어나고 다시 연주하자 큰 바람이 몰아치며 비가 내리고 행랑의 기와를 날려 보내자 좌우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달아났다. 평공은 두려워서 낭옥(郎屋) 사이에 엎드려 숨었다. 이후 진나라는 크게 가물어 땅에 초목이 자라지 않는 상태가 3년이나 지속되었다. 평공은 전신이 굽어 곱사가 되었고 죽음을 면치 못했다.

한편, 《왕자년습유기(王子年拾遺記)》에 사연(師延)의 일화가 실려 있다.

사연은 원래 상조(商朝)의 악사였다. 하지만 사람이 워낙 신비해서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일찍이 황제(黃帝) 시기 악관(樂官)을 지냈고, 하조(夏朝)에서도 악관을 지냈으며, 각국의 음악을 통해 그 나라의 흥망성쇠를 예측할 수 있었다. 하조 말년 그는 하조가 곧 멸망하고 상조가 곧 번창할 것을 예측하고 악기를 품에 안도 상탕(商湯)에게 투신했다.

그러나 주왕(紂王)의 치세에 이르러, 주왕이 음란한 소리를 즐기고 여색을 밝혀 사연을 음궁(陰宮)에 가두고 포락형(炮烙刑)을 가하려 했다. 사연이 음궁에서 고아한 음악을 연주하자 그를 지키던 옥졸이 지겨워하면서 말했다.

“이런 것들은 모두 아주 오래 된 가락이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즐겨 듣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사연이 또 음탕한 음악을 연주하면서 긴 밤의 즐거움을 표현하자 간수들이 모두 마음이 흔들려 정신을 잃었고, 사연은 이 기회를 이용해 탈출했다. 탈출하던 도중, 사연은 주 무왕(武王)이 주왕을 토벌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복수(濮水)를 건널 때 물속에 가라앉았다. [8]

(계속)

주:
[1] 《尚書·伊訓》:「制《官刑》,儆於有位。曰:敢有恆舞於宮、酣歌於室,時謂巫風……邦君有一於身,國必亡……」

[2] 《管子·輕重甲》:「昔者桀之時,女樂三萬人,晨噪於端門,樂聞於三衢,是無不服文繡衣裳者。」

[3] 《樂記》:致樂以治心

[4] 《樂記》:樂之隆,非極音也;食饗之禮,非致味也。清廟之瑟,朱弦而疏越,一倡而三嘆,有遺音者矣。大饗之禮,尚玄酒而俎腥魚,大羹不和,有遺味者矣。是故先王之制禮樂也,非以極口腹耳目之欲也,將以教民平好惡而反人道之正也。

[5] 《樂記》:人生而靜,天之性也;惑於物而動,性之欲也。物至知知,然後好惡形焉。好惡無節於內,知誘於外,不能反躬,天理滅矣。夫物之感人無窮,而人之好惡無節,則是物至而人化物也。人化物也者,滅天理而窮人慾者也。於是有悖逆詐偽之心,有淫泆作亂之事。是故,強者脅弱,眾者暴寡,知者詐愚,勇者苦怯,疾病不養,老幼孤獨不得其所,此大亂之道也。

[6] 《樂記》:樂者樂也。君子樂得其道,小人樂得其欲。以道制欲,則樂而不亂;以欲忘道,則惑而不樂。

[7] 《樂記》:凡奸聲感人,而逆氣應之,逆氣成象,而淫樂興焉。正聲感人,而順氣應之, 順氣成象,而和樂興焉。

[8] 《王子年拾遺記》(《太平廣記》引)

 

원문위치: http://zhengjian.org/node/2382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