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道生)
【정견망】
11. 문자의 겁난
이 장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한자 간체화(簡體化) 및 파괴에 대해 개략적으로 말해보고자 한다. 중국 공산당의 한자 간체화는 주로 다음 몇 가지 방식으로 나타났다.
1) 동음(同音)문자를 대량으로 삭제하고 병합해 자상(字象)을 혼란시키고 대응을 잃어버리게 했다.
예를 들면 얼굴을 뜻하는 ‘면(面)’과 국수를 뜻하는 ‘면(麵 간체자로는 面)’은 원래 전혀 다른 글자로 자상(字象)이 전혀 다르지만 이를 한 글자로 합병해 하나의 상(象)으로 만들어 자상을 혼란시켰다. 결과적으로 흘면(吃面)이라고 쓰면 대체 얼굴을 먹는 것인지 아니면 국수를 먹는 것인지 알 수 없다.
더 예를 들자면 머리카락을 나타내는 발(髮 간체자는 发=發)과 발생을 뜻하는 발(发=發)이 같은 글자가 되고, 왕후(王后)의 후(后)가 전후(前後)의 후(後)와 같은 글자가 되며, 곡식을 뜻하는 곡(穀)이 계곡을 뜻하는 곡(谷)과 같아지고, 배에서 노를 젓는다는 뜻의 화(划 삿대)와 계획(計劃)의 획(劃)이 같은 글자가 된다.
또 찻상(茶几)의 궤(几)가 거의(幾乎)라고 할 때 기(幾)와 같은 글자가 되고, 점복(占卜)의 복(卜)이 무를 뜻하는 나복(蘿蔔)의 복(蔔)과 같은 글자가 되며, 버릴 사(捨)가 숙소를 뜻하는 사(舍)와 같은 글자가 되고, 정복(征服)의 정(征)과 상징(象徵)의 징(徵)이 같은 글자가 되며, 구실(藉口)의 자(藉)가 돈을 빌린다고 할 때 차(借)와 같은 글자가 되는 등등이다.
2) 자형(字形 글자 모양)을 파괴해 중화문자를 불구로 만들었다.
예를 들어, 일부 누리꾼들이 전문적으로 다음과 같은 순구류(順口溜)를 만들었다.
가족[親⤑亲으로 바뀌면서 見이 사라짐]은 서로 보지 않고,
사랑에는 마음이 없고[愛⤑爱로 바뀌면서 마음이 빠짐],
생산에는 생기는 게 없고[産⤑产에서 生이 사라짐],
공장은 텅 비어 있고[厰⤑厂에서 안이 모두 사라짐],
국수에는 밀이 없고[麵⤑面에서 麥이 빠짐],
운송에는 차가 없고[運⤑运에서 車가 사라짐],
이끌 때는 길이 없고[導⤑导에서 道가 사라짐],
아이는 머리가 없고[兒⤑儿에서 머리가 없어짐],
나는데 날개가 부러지고[飛⤑飞에서 날개 일부가 생략됨],
구름에는 비가 없고[雲⤑云으로 雨가 사라짐],
셔터에는 문이 없고[開關⤑开关에 門이 생략됨],
향(鄕)에는 남자가 없고[鄕⤑乡에서 郞이 사라짐],
물건을 사면 도살용 칼 아래 머리가 있고[買⤑买],
나아가면 우물 속으로 들어간다[進⤑进].
이런 것들은 모두 현재 중국의 상황을 보여주는 동시에 자상(字象)의 변화와 대응하는 것이다.
중화문자는 원래 박대(博大 넓고 큰)한 자상을 지녀왔을 뿐만 아니라 5천 년 넘게 역사를 공연하는 과정 중에 심후한 내함(內涵)을 축적해 왔다.
예를 들어 《삼국연의(三國演義)》는 모두 ‘의(義)’라는 한 글자의 내함을 표현했고, 악비(岳飛)와 양가장(楊家將)은 모두 ‘충(忠)’이란 함의를 풀어냈으며, 소무(蘇武)와 문천상(文天祥)은 ‘절(節 절개 또는 지조)’의 경계를 드러냈다.
중화 문자는 오천여 년 발전 과정에서 중화 역사와 문화 과정을 담았기에 이미 중화 신전문화와 융합되어 하나가 되었기에 심원(深遠)한 내함을 쌓아 대단히 넓고 심후하게 변해 심지어 신불(神佛)마저 찬탄할 정도로 되었다.
중공은 단지 문자를 거세했을 뿐만 아니라 중화 신전문화를 철저히 파괴시켜 중화문자의 내함을 단절시키고 신성(神聖)을 잃은 부호로 만들어버렸다. 한 누리꾼이 청말(淸末) 광서제 연간에 간행된 사전 《징충몽학당자과도설(澄衷蒙學堂字課圖說)》과 중공이 편찬한 《신화자전(新華字典)》을 비교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신화자전》에서는 ‘당(黨)’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1. 정당,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중국 공산당을 가리킨다.
2. 사적(私的)인 이해관계로 형성된 집단.
3. 옛날에는 친족을 가리켜 부당(父黨 부계), 모당(母黨 모계), 처당(妻黨 처계)이라 했다.”
반면 《징충몽학당자과도설》에서는 이렇게 풀이했다.
“5백 가구를 당(黨)이라 하는데 가령 향당(鄕黨), 당인(黨人)이 있다. 주조(周朝) 제도에 다섯 집을 1비(比)라 했고 5비를 1여(閭), 5여를 1족(族), 5족을 1당(黨)이라 했다. 당이란 벗이자 돕는 것으로 벗이 돕고 잘못을 감추기 때문에 편당(偏黨)과 붕당의 당이 된다.”
둘을 서로 비교해보면 《신화자전》에는 아무런 지식이나 함의도 없고 그저 무미건조한 몇 가지 해석만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독자들에게 ‘당’의 내원은 무엇이고 의상(意象)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알려주지 않는다.
이번에는 ‘궤(跪)’에 대한 설명을 보자.
먼저 《신화자전》의 설명을 보자.
“1. 두 무릎을 땅에 꿇고 허리와 고관절을 곧게 펴는 것이다.
2. 발을 뜻한다.”
《징충몽학당자과도설》에서는 이렇게 풀었다.
“궤(跪)란 꿇어앉는 것으로 꿇어앉아 절하는 것이다. 고인(古人)은 바닥에 앉는 것을 좌(坐)라 했고 좌는 궤와 비슷하다. 그러므로 손님과 주인 사이에 늘 궤례(跪禮)를 행했다. 지금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거나 존장(尊長)에게 예를 행할 때면 무릎을 꿇어 공경한다. 또한 일궤(一跪), 양궤(兩跪), 삼궤(三跪)의 구별이 있다. 서양인들은 무릎을 꿇는 예절이 없어서 비록 임금을 만나도 그저 모자만 벗고 몸을 숙일 뿐이다.
원래 송대(宋代) 이전 고인들은 늘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때는 지금처럼 높은 의자가 없었고 늘 바닥에 앉았다. 즉 무릎을 바닥에 대고 엉덩이를 발뒤꿈치에 올려 상반신을 곧게 펴는 것이다. 이는 아주 장중하고 우아하게 앉는 자세다. 이렇게 무릎을 꿇고 앉는 자세를 가리키는 전문단어가 바로 기좌(跽坐)다. 일본 사람들은 지금까지도 일상생활 중에 이런 자세가 남아 있는데 이것은 과거 중국 대당(大唐)에서 배워간 것이다.
당시 중국 사회에서는 무릎을 꿇고 절하는 예법이 널리 사용되었고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이 자연스런 일이었다. 기좌(跽坐) 자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엉덩이가 발뒤꿈치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편하다. 여기에 두 손과 머리 동작을 결합하면 읍(揖)을 하거나 계수(稽首 머리를 바닥에 닿게 하면서 천천히 오래하는 절)하거나 돈수(頓首 머리가 바닥에 닿지만 잠시 머무르는 절)하는데 모두 공경을 표시하는 절이다. 가령 편지를 쓸 때 마지막에 동년배 사이에 흔히 돈수(頓首)라 쓰는데 이는 서로 높고 낮은 구별이 없고 그저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범수세진왕(範雎說秦王)–범수가 진왕에게 유세하다》에 보면 “진왕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선생께선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러자 범수가 두 번 절했고 진왕 역시 두 번 절했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볼 수 있다시피 고대에 무릎을 꿇고 절하는 것은 상호적인 것으로 기좌(跽坐)에서 발전해 나온 존경의 뜻을 표시하는 일종의 장중한 예절이니 이것이 바로 궤의 내원이다.”
또 다른 사례로 ‘섬(陝)’을 보자.
《신화자전》에서는 “우리나라 섬서성(陝西省)을 말한다”라고 풀었다.
《징충몽학당자과도설》에서는 이렇게 풀이했다.
“주 성왕(周成王) 때 주공(周公)이 섬(陝 고대 지명)의 동쪽을 다스렸고 소공(召公)이 서쪽을 다스리면서 섬(陝)을 경계로 삼았다. 오늘날 섬서(陝西)라 부르는 곳이 바로 소공이 다스리던 지역이다. 이곳은 자고로 제왕의 산실로 주(周)와 진(秦)이 이곳에서 발원했고 한 대(漢代) 이후로는 줄곧 관중(關中)이라 불렀다. 진실로 하늘이 내린 영웅의 땅으로 신강(新疆)이며 농촉(隴蜀)은 특히 이곳이 인후(咽喉 목구멍으로 중요한 요충지란 뜻)에 해당한다.”
양자를 대비해보면 차이가 곧 드러난다. 편폭의 제한으로 여기서는 이상 몇 가지만 예로 든다.
양자를 비교한 후 누리꾼은 이렇게 말했다.
“《신화자전》의 글자 해석은 중화문화의 내원을 철저히 단절시켰고 뜻을 풀이하는 과정 중에 종교・신앙을 삭제하고 억지로 투쟁・무신론을 주입해 오직 나만 귀하다는 과대망상의 이념으로 오염시켰다. 이로 말미암아 조상들이 창조한 한자는 거의 강시처럼 변해 버렸으니 이를 통해 문화적인 소양을 얻기란 대단히 어렵고 왜곡된 해석과 세뇌에 속아 넘어가기는 아주 쉬워졌다. 지식이 많을수록 진리와 진상(真相)에서는 더욱 멀어지는데, 그들은 의도적으로 글자와 단어의 역사문화적인 연계를 단절시켰다. 주석의 원칙은 바로 오늘날의 뜻으로 글자를 풀이한 것이다. 오늘날 사용하는 것을 사용해 지식의 중요한 부분을 제거해 죽어버린 지식으로 만들었고 역사적인 연계를 차단시켰을 뿐만 아니라 당신이 연계하는 것을 저지한다. 이렇게 되자 한자는 모두 아주 메마르고 무미건조한 것으로 변해버렸다.”
또 다른 누리꾼은 《신화자전》에 대해 “중화민족 지혜의 뿌리와 문화적인 혜명(慧命)을 잘라버리는 자전”이라고 정의했다. 중공 정권이 수립된 지 수십 년이 지나면서 “한 세대 한 세대 중국인들은 이렇게 완전히 이념화된 극독(劇毒)의 물건을 중국 인문세계 속에 들어가게 했고” 그들은 “이로부터 중화민족의 유구한 인문세계로 들어갈 가능성을 처음부터 상실했다.”
세상 그 어느 민족도 자신의 문화와 역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목숨조차 아까워하지 않는데, 왜냐하면 그것이 민족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그 어느 민족도 직접 자신의 손으로 자신의 문화를 파괴하진 않는다. 이것은 미친 짓이고 자손을 단절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마치 한 사람이 영혼을 상실해 악귀(惡鬼)가 몸에 달라붙은 것처럼 중공은 중화(中華)에 이렇게 달라붙었다.
필자는 우리 동포들이 중화의 조상을 똑바로 알고 부체(附體)된 이 악귀를 버리고 중공사령(中共邪靈)을 신주대지(神州大地)에서 몰아내 화하 신전문화를 중흥시키길 희망한다.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덧붙이자만 필자는 파룬따파(法輪大法) 수련자다. 대법을 수련한 후 수련 층차가 제고되면서 사존(師尊)께서 내 지혜와 능력을 열어주셨고 이때부터 일반인들이 볼 수 없거나 알 수 없는 많은 것들을 보거나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필자의 모든 지혜와 지식은 전부 파룬따파에서 내원한 것으로, 대법에서 이탈하면 나는 단지 아무런 지혜나 능력도 없는 무지한 생명에 불과할 뿐이다.
이 시리즈 문장에서 필자의 인식은 모두 대법을 수련하는 중에 개인적으로 얻은 지식과 깨달음이지만 다만 필자 개인 층차의 인식을 대표할 뿐이다. 파룬따파는 우주의 근본 대법으로, 그 어떤 신불(神佛)이나 생명이 평생을 다 바쳐 연구한다 해도 그 진정한 내함을 모두 깨달을 수는 없다. 여러분이 만약 큰 지혜를 갖추고 싶다면 그럼 스스로 수련해서 체험하고 깨달아야 한다.
(완결)
참고문헌: 《易經》, 《韓非子》, 《山海經》, 《呂氏春秋》, 《淮南子》, 《說文解字》, 《春秋元命苞》, 《曆代名畫記》, 《易通卦驗》, 《北史·江式傳》, 《三五曆記》, 《五運曆年紀》, 《述異記》, 《摩訶婆羅多》(Mahabharata), 《薄伽梵往世書》(Bhagavata Purana), 《牧童歌》(Gita Govinda), 《黃帝內經》, 《新唐書》, 《字說》, 《孝經援神契》,《文字論》, 《焦氏易林》, 《康熙字典》, 《尚書》, 《進學解》, 《梁四公記》, 《法華文句》, 《慧琳音義》, 《勸學篇》, 《晉書·衛恒傳》, 《古今文字志目》, 《書斷》, 《懷來縣志》, 《水經注》, 《序仙記》, 《北都賦》, 《澄衷蒙學堂字課圖說》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397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