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주지하다시피 중의(中醫) 이론은 유구한 역사를 지닌 박대정심(博大精深)한 것으로 중국 문화의 정화(精華) 중 하나다. 서양의학 이론과 비교하자면 많은 사람들이 중의는 비교적 “허황하고(玄)” 이해하기 어려운 반면, 양의 이론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쉽다고 여긴다.
중의학을 배워본 사람들이라면 알겠지만 중의 기초이론은 주로 《황제내경》 등 몇 부의 고서(古書)에 근거하는데 《황제내경》은 그 자체가 한 부의 수련서적이자 양생서적이다. 때문에 중의 이론은 자연히 속인 층차의 것을 뛰어넘는 것과 융합되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의의 형신(形神)학설, 음양(陰陽)학설이나 침구학의 경락이나 혈위 등이다. 어느 곳에서든 대법이 인류문화에 남겨준 수련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없다. 때문에 속인들이 이런 것들을 보면 허황하다고 여기는데 특히 패괴한 현대 인류에 대해 말하자면 이해하기가 더욱 어렵다.
중의의 경락과 혈위는 천목(天目)으로 인체 다른 공간의 정황을 본 것으로 이는 육안으로 보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장기간 양의는 해부학 실험을 통해 경락과 혈위의 존재를 부정하려고 시도해 왔다. 해부학은 현대과학이 우리 이 물질공간 속에서 인체구조를 연구하는 한 가지 방법이지만 그것은 다른 공간의 존재를 실증할 수 없다. 때문에 이런 시도는 헛수고에 불과하다.
고대 중의 대가들은 모두 천목이 열려 있었고 그들이 환자에게 침구치료를 할 때는 천목으로 경락과 혈위를 직접 보았기 때문에 취혈(取穴)이 아주 정확했고 침으로 병을 제거할 수 있었다. 그러나 현대 중의는 단지 인체 표면이 골성(骨性) 표지만 사용해 대략적인 혈위의 위치를 확인하기 때문에 취혈이 정확하지 않다. 그러니 그 효과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중의 장상학설(臟象學說)에서는 장(臟)과 부(腑) 사이에 관계가 있다고 하는데 가령 심(心)과 소장(小腸)이 표리(表裏)가 되고, 간(肝)과 담(膽)이 표리가 되며, 폐와 대장이 표리가 되는 등을 말한다. 현대의학의 해부학으로는 이를 해석할 방법이 없다. 이런 것들은 모두 다른 공간에서 볼 수 있는 장과 부의 관계다.
리훙쯔(李洪志) 선생님은 《전법륜》 제8강에서 “내장의 틈새 부분에 혈관은 없지만 오히려 맥은 있다.”하셨다. 또 중의에서 말하는 ‘기(氣)’ 역시 다른 공간에서만 볼 수 있는 물질존재의 현상이다. 중의 이론 중에서 형신학설, 음양학설은 더 말할 나위도 없는데 모두 속인 층차를 뛰어넘는 수련의 것이다. 때문에 중의 기초이론은 수련의 고층차 이론을 지도로 하는 과학이다.
전통 중의이론에서는 “정기가 안에 있으면 사기가 교란할 수 없어(正氣存內,邪不可干)” 사람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정기가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중의에서는 병이 들기 전에 치료할 것을 주장하는데 즉 예방을 위주로 한다.
“사계절에 순응해 추위와 더위를 적당히 하고, 희로애락 등 감정변화를 조절해서 편안하게 살며, 성관계를 절제하고 강약을 조절”할 것을 주장한다.
이는 매사에 자연스러움에 따르고 명리정(名利情)에 담담해야 한다는 관점을 체현한 것으로 즉 마음이 바르고 덕(德)을 중시해야만 신체가 건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들은 연공하는 사람이 가장 낮은 층차에서 반드시 도달해야 할 요구이다. 리훙쯔 선생님은 《전법륜》에서 수련생들에게 진정한 연공인이 되라고 요구하셨다. 때문에 그렇게 많은 수련생들이 짧은 시간 안에 신체가 건강한 상태에 도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예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명리(名利)에 담담하며 늘 좋은 일을 하고 또 채식을 하며 염불하는 노인들이 흔히 장수하고 또 신체도 건강한 것을 본다. 심지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자신이 사망하는 날을 미리 알기도 하며 세상을 떠날 때도 심신이 편안해서 아무런 고통도 없다. 전통문화에서는 이를 가리켜 ‘선종(善終)’이라 말한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런 상황을 보기가 아주 드물다.
리훙쯔 선생님은 《전법륜》 제3강에서 말씀하셨다.
“이렇게 하면 당신의 에너지장(能量場)에 덮인 범위 내에 있는 사람은 모두 이득을 볼 수 있어 그는 아마 아주 편안한 감을 느낄 것이다. 당신이 거리에서 다니든, 직장이나 집에서든 모두 이런 작용을 일으킬 수 있다. 당신은 무의식중에 당신의 장(場) 범위 내에 있는 사람, 그의 신체를 조정해 줄 수 있는데, 이런 장은 일체 바르지 않은(不正確) 상태를 바로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대법 수련을 2년 정도 한 후 13살 여자 환자가 내게 말했다.
“어젯밤에 머리가 아팠는데 내일 선생님을 찾아가서 진찰을 받으려고 생각하자 머리가 아프지 않았어요.”
나는 당시 이 말을 듣고 아주 신기하게 여겼는데 이후 이런 말을 하는 환자들이 끊이지 않고 나타났다. 그들은 내게 가까이 오면 불편한 증상이 곧 좋아진다고 했다.
한번은 내가 어느 여자 환자의 경추를 검사한 후 그녀가 말했다.
“선생님이 제 경추를 만졌을 때 온몸이 아주 편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말로는 표현할 수 없네요.”
또 어느 날 언니가 내게 말했다.
“네가 내 병을 봐줄 때면 약을 쓰지 않아도 병이 금방 좋아져.”
내가 생각해보면 이는 “불광(佛光)이 널리 비추니 예의가 원만하고도 밝음”을 체현한 것으로 즉, 대법의 위력을 체현한 것이다.
과거에 한 가지 이야기가 있다. 화살을 아주 잘 만드는 사람이 가장 높은 경지에 이르면 더는 화살을 쓰지 않고 활을 들기만 해도 새를 떨어뜨릴 수 있다고 한다. 이를 가리켜 “화살을 쏘지 않는 활쏘기(不射之射)”라고 한다. 내 생각에는 미래의 중의(中醫) 명가들도 아마 이럴 것이다.
최고 경지에 이르면 약 처방만 내고 약을 짓지 않거나 심지어 약 처방조차 내지 않고도 병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수련생 문장에서 언급했다시피 미래의 좋은 의사는 가장 먼저 높은 층차의 수련자일 것이다. 나는 이 말에 대해 아주 찬성한다.
만약 당신이 중의사(中醫師)인데 뛰어난 의사가 되고 싶다면 나는 진지하게 정법수련(正法修煉)인 파룬따파(法輪大法)를 추천하는 바이다.
이상은 개인의 체험이니 틀린 점이 있다면 시정해주기 바란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423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