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제자 시방(十方)
【정견망】
전에 내가 다니던 직장에 베테랑 기자가 한 분 있었는데, 그는 평생 중국 명산대천을 두루 다녀 견문이 아주 넓고 박학다식(博學多識)했다. 그의 취미 중 하나가 각지를 다니며 명의(名醫)들을 만나면 허심탄회하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수십 년을 다니다 보니 병을 진단하는 많은 방법을 습득했다.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늘 그에게 도움을 청하곤 했다.
당시 중국에서 1자녀 정책이 전면적으로 시행되면서, 단번에 아들이냐 딸이냐가 현실적이면서도 아주 민감한 문제로 대두되었다. 직장 동료 중 한 명이 늦게 결혼했는데, 남편이 독자라서 아들을 낳고 싶어 했다. 임신한 후 베테랑 기자를 찾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감별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나는 진맥에 대해 매우 회의적이었는데 몇 분 후 베테랑 기자가 자신 있게 아들이라고 말했다. 몇 달 후, 여자 동료는 원하는 대로 아들을 얻었다.
한 번은 내가 그 기자에게 물어보았다.
“사람이 막 임신하면 아직 태아가 자라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성별을 알 수 있어요?”
그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주 간단해, 남자는 양(陽)이고 여자는 음(陰)이니 만약 임산부의 맥상(脈象)에 남자 맥이 나타나면 바로 아들이고 그냥 여자 맥상이면 딸이라네. 때문에 정확할 뿐만 아니라 맥을 보기도 쉽지.”
당시 나는 그의 능력이 대단하다고만 느꼈다. 다른 사람들은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만 알 수 있지만 그는 맥만 짚어도 아주 똑똑히 말할 수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속에 담긴 이치가 얼마나 정심(精深)한 것인지는 자세히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중에 내가 결혼하고 또 임신하고 나서야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늦게 결혼해서 늦은 나이에 아이를 출산하기 때문에 처음에는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하지 않았고 다만 기쁜 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임신 기간이 길어지고 많은 검사를 거치면서 호기심도 점차 사라졌다.
초음파를 하면서 한가한 김에 담당 의사에게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 알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의사는 뜻밖의 대답을 했는데 쉬울 때도 있고 어려울 때도 있는데 또 꼭 정확한 것도 아니라고 했다. 과연 그는 한참을 보고도 명확히 대답하지 못했다. 태아는 성장했지만 다리에 가려져서 생식기를 명확히 볼 수 없다고 했다. 나중에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각도가 맞지 않아서 성별을 알 수 없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아직 양방 기술이 선진적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음 에피소드 이후 양방에 대해 마음속으로 의문 부호가 생겼다. 일은 아주 간단한데, 같은 병실에 있던 한 백인 여성이 아들을 낳자 젊은 부부는 기뻐하면서도 좀 유감스러워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딸이 태어날 것을 대비해 많은 것을 준비했어요. 의사도 매번 초음파 검사를 할 때마다 우리에게 딸이라고 했고, 아기 이름까지 미리 지어놓았거든요.”
나는 비로소 좀 어리둥절해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선진적인 기술과 장비로도 태아의 성별조차 알아낼 수 없고, 오히려 중간에 퇴사한 예전 직장의 베테랑 기자만도 못했다.
오늘 책에서 태극 음양이기(陰陽二氣)에 관한 설명을 보면서 당시 베테랑 기자가 맥을 짚고 태아의 성별을 판별했던 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다지 신비한 것도 아니었다.
아들은 순양지기(純陽之氣)이고 딸은 순음지기(純陰之氣)이니, 일단 아들의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하면 순양(純陽)의 몸이니 당연히 맥에 양강(陽剛)한 기가 나타날 것이다. 이는 순음의 몸에서는 나타날 수 없는 것이니 당연히 아들을 임신한 맥상이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딸의 맥상은 음(陰 역주: 산모의 음)에 음(陰 태아의 음)이 더해지기 때문에 임산부의 맥상이 여전히 여자의 맥상이 되고 그럼 당연히 딸을 임신한 것이다.
화타는 이미 2천 년 전에 어떤 기구도 사용하지 않고 조조의 머리에 종양이 있는 것을 보았고, 감히 두개골을 열고 종양을 제거하려 했다. 우리 직장의 베테랑 기자는 바쁜 와중에 두 가지 기술을 배웠는데, 임신부가 임신한 초기 즉 양방 수단으로는 아직 사람 형상조차 알아볼 수 없을 때 손가락 몇 개만으로 태아 성별을 감별할 수 있었다. 이것이 선진적인 것이 아닌가?
자세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마땅히 중국 문화에서 벗어나야 하는가, 아니면 중국 고대문명을 다시 봐야 하는가? 설마 우리가 정말로 화수분을 지키면서 눈은 오히려 멀리 떨어진 작은 철제 그릇을 보고 경탄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가까운 것을 버리고 먼 곳을 찾으면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가장 신성한 진짜 보물을 지나쳐 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196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