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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진경의 운명을 예지한 당조(唐朝) 비구니

유효(劉曉)

【정견망】

사람이 믿거나 말거나, 사람의 운명은 처음 태어날 때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사람은 정해진 극본에 따라 인생이라는 연극을 끝까지 연기할 수밖에 없다. 아마 미혹중의 세인들에게 인생이란 미리 짜인 한 바탕 연극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인지, 하늘은 또 다른 층차의 천기를 꿰뚫어 볼 수 있는 사람을 세상에 배치해, 인연 있는 사람의 운명을 미리 좀 알려준다. 당나라의 유명한 대신이자 서예가인 안진경(顏真卿)이 바로 자신의 운명을 예견한 한 여인을 만났다.

낭야(琅琊) 안(顔) 씨 출신인 안진경은 사람됨이 강직하고 특히 충과 효를 존숭했다. 본인도 몸소 힘써 어머니께 효도하고 조정에도 충절을 다했다. 당 현종(玄宗) 개원(開元) 22년(734년), 진사에 급제해 교서랑(校書郞)에 임명되었다. 이후 모친이 사망해 3년 상을 지켰고 현위(縣尉), 내사(內史), 감찰어사(監察御史), 전중시어사(殿中侍御史)를 역임했다. 이후 평원(平原) 태수로 좌천되었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흔히 ‘안평원(顏平原)’이라 불렸다.

안사의 난 때 안진경은 의병을 이끌고 반군에 맞서 뛰어난 군사적 재능을 보여 한때 하북(河北)을 광복시켰다. 후에 헌부상서(憲部尙書)에 임명되었다. 당 대종(代宗) 때 벼슬은 이부상서・태자태사(太子太師)에 이르렀고, 노군공(魯郡公)에 봉해졌기에 사람들은 ‘안노공(顏魯公)’이라고 불렀다.

흥원(興元) 원년(784년)에는, 반란군 장수 이희열(李烈烈)에게 파견되어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대의(大義)를 다하다 반군에게 목을 매여 살해당했다. 향년 76세. 그가 살해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조왕(嗣曹王) 이고(李皋)와 삼군 장수와 병사들은 모두 통곡했다.

나중에 당 덕종(德宗)은 그를 위해 5일 동안 정사를 폐하고 사도(司徒) 벼슬을 추증하고 시호를 ‘문충(文忠)’이라 했다. 어떤 이는 안진경을 찬양하며 “천부적인 기질을 타고나, 공정과 충성이 걸출했으며, 사조(四朝 네 황제를 모셨다는 의미)를 거치며, 한뜻으로 견정했다.”

신기하게도 안진경의 운명에 대해 이미 아는 기인(奇人)이 하나 있었다. 당조(唐朝) 위현(韋絢)이 편찬한 《융막한담(戎幕閑談)》이란 책에는 이런 기이한 일이 기록되어 있다.

안진경 부인의 집안 친척 중 범(範)씨 성을 지닌 도행(道行)이 깊은 비구니가 하나 있었는데 관상을 잘 보아 사람의 운명과 길흉을 알 수 있었다.

현종 천보(天寶) 원년(742년), 안진경은 섬서 예천(禮泉)에서 현위를 지냈다. 746년, 그는 특별히 범 씨 비구니를 찾아가 자신의 운명을 물었다. 먼저 그는 자신이 조정에서 뛰어난 인재를 뽑는 제과(制科)에 나가면 결과가 어떻게 되겠느냐고 물었다.

범 씨가 대답했다.

“당신이 원하는 일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오늘부터 한두 달 뒤면 당신은 반드시 승진하여 조정에 들어가겠지만 반년 안에는 외국인과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나중에 재난을 면치 못할 것이며 좌천당할 것입니다.”

안진경이 이어서 물었다.

“앞으로 오품(五品) 관직에 이를 수 있겠습니까?”

당조의 5품 관리에는 간의대부, 어사중승, 국자박사, 급사중, 중서사인 등이 포함되어 있다.

“당신의 관직은 1품에 가까울 터인데, 바라는 게 너무 낮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안진경은 자신이 5품 관리가 되어 주홍색 관복에 은색 물고기 주머니를 두르고 아들이 작은 태상재랑(太常齋郎 관직명)이 될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말했다.

안진경의 말에 범 씨 비구니는 의자 위에 깔린 자색 천을 가리키며 말했다.

“당신의 이후 관복 색깔은 이러할 것이며 공업(功業)과 명예와 절개는 천하 사람들이 다 칭찬할 것이며 수명은 일흔을 넘을 것입니다. 그 이후 일은 물을 필요가 없습니다.”

참고로 보라색 관복은 3품 이상 고위 관리들만 입는다.

범 씨의 말을 들은 안진경은 궁금해서 칠십이후의 일을 거듭 캐물었다.

그러자 범 씨가 그에게 말했다.

“안랑(顏郞 안진경을 가리킴)은 남보다 총명하니, 일을 묻는 데 꼬치꼬치 캐묻지 않아도 됩니다.”

안진경은 이 말을 듣고 나서야 그만두었다.

한 달여 후 조정은 마침 경사를 맞아 온 나라가 경축했다. 이날 제과에서 안진경은 장원 급제를 했다. 곧바로 장안위(長安尉)에 임명되었다. 몇 달 지나지 않아 감찰어사로 승진했다. 감찰어사로 재직하는 동안, 그의 부하 중 한 명인 가서한(哥舒翰)이라는 돌궐 사람이 있었는데, 조회에서 반(班)을 이끌면서 늘 큰 소리로 말하곤 했다. 이에 안진경이 사람을 시켜 그를 탄핵하게 했다, 가서한은 이에 대해 큰 불만을 품었다.

가서한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느껴 하서(河西)에 나가 종군(從軍)하여 절도사 왕수(王倕)의 휘하에서 일했고 나중에 아장(衙將)으로 승진했다. 여러 차례 토번을 격파했고 천보 육재(747년)에 우무위원외장군(右武衛員外將軍), 충농우절도부사(充隴右節度副使) 등을 맡았다.

천보 팔년(749년), 그는 석보성(石堡城) 전투를 일으켜 대승을 거두고 특진(特進)・홍려원외경(鴻臚員外卿) 및 어사대부(御史大夫)직을 받았다. 이 공로로 그는 당 현종을 만났을 때 안진경이 자신에게 한 처분에 대해 이야기했다. 현종은 가서한을 달래기 위해 안진경을 좌천하라고 명령했다. 모든 것이 범 씨의 말 그대로였다.

당 대종 시기 안진경은 형부상서와 이부상서를 차례로 지냈는데, 과연 보라색 관복을 입었다. 779년 대종이 승하하자 안진경은 의례사(儀禮使)를 맡았고 태자소사(太子小師)와 태자태사(太子太師)를 역임하며 태자를 가르쳤다. 강직하고 정직해서 아첨하지 않다가 재상인 노기(盧杞)의 미움을 샀다. 노기는 덕종에게 채주(蔡州) 반군 이희열의 군에 안진경을 파견해 성지(聖旨)를 낭독하게 했다.

총명한 안진경은 이 성지를 받고 나서야 범 씨가 따져 묻지 말라고 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범 씨 아주머니의 말대로 나는 이번에 반드시 반군에게 해를 당할 것”이라며 탄식했다.

역사책에는 안진경이 도를 닦은 사람이란 기록이 있다. 《태평광기》와 《별전(別傳)》에 따르면 안진경이 죽임을 당하기 전에 금대(金帶)를 풀어 사자에게 주며 이렇게 말했다.

“나는 전에 도(道)를 닦던 사람이었으니 신체를 보전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에 그를 죽이러 온 자들이 그의 말에 따라 먼저 목을 졸라 죽이고 나서 다시 묻었다.

나중에 반란이 평정된 후, 안진경의 가족이 그의 시신을 들고 경성으로 돌아가 다시 매장하려 했다. 가족들이 관을 파헤쳐 열어보니 그의 몸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손발이 부드러웠고, 수염과 머리칼은 검푸른 색이었으며 주먹으로 쥐고 있었으며, 손톱이 자라서 손등을 뚫고 나와 있었다. 부근의 사람들이 모두 놀라워했다. 가는 도중에 관이 점점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는데 나중에 안장된 곳에 가서 열어보니 빈 관이었다.

《별전》에서는 또 안진경이 채주로 떠나기 전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가 이번에 채주에 가면 반드시 역적들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다. 나중에 나를 데려다 화음(華陰)에 매장하거라. 관을 열어서 보면 분명 남들과 다를 것이다.”

안진경은 아마 시해(尸解)했을 것이다.

10여 년 후, 안진경 집안의 하인이 낙양 동덕사(同德寺)에서 흰 장삼을 입은 안진경을 만났다. 처음에 안진경이 외면하자 하인이 따라서 성 동쪽에 있는 채소밭으로 갔다. 안진경은 할 수 없이 자신이 안진경임을 인정하고, 또 아들 조카의 정황을 대충 물어보았다. 품에서 황금 열 냥을 꺼내 그에게 주며, 집안에 쓰는 경비에 보태라고 했다. 또 그에게 빨리 돌아가라고 보내면서 “돌아가면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하인이 집에 돌아와 이 기이한 일을 말하자 안진경의 가족은 크게 놀랐다. 그 금을 팔러 가서 보니 진짜 금이었다. 안진경의 아들은 말을 사서 그 하인과 함께 나는 듯이 달려와 찾아보았다. 다시 옛날 그 자리에 이르렀으나 눈에 보이는 것은 잡초뿐 아무것도 없었다. 당시 사람들은 안진경이 시해되어 신선이 되었다고 말했다.

아마 안진경에게 선연(仙緣)이 있었기 때문에 범 씨 비구니가 그의 운명에 관한 진기를 알려주었을 것이다.

참고자료: 《융막한담(戎幕閑談)》, 《태평광기(太平廣記)》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0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