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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을 보면서 치욕을 참아내다

이쌍익(李雙翼)

【정견망】

왕술(王述 303~368년)은 자(字)가 회조(懷祖)로 동진(東晉) 시기의 관리로 태원(太原) 진양(晉陽) 출신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남전후(藍田侯 작위)를 물려받았는데 모친을 모시는데 효성이 지극했다. 가난하고 힘들어도 편안히 여기며 검소하게 살았다. 나중에 관직이 상서령(尙書令)과 산기상시(散騎常侍)에 이르렀다.

태화(太和) 3년(368년)에 세상을 떠나자 시중(侍中)・표기장군(驃騎將軍)에 추증되었고 시호가 ‘간(簡)’이다.

왕술은 평소 성격이 급해서 쉽게 화를 냈다. 한 번은 계란을 먹으려고 젓가락으로 찌르려다 찔리지 않자 화가 나서 계란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그런데 계란이 멈추지 않고 계속 구르자 침대에서 내려와 나막신으로 밟으려 했지만 밟히지 않았다. 그러자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계란을 잡아 입안에 넣고는 박살을 낸 후에야 뱉어냈다.

이 이야기가 알려지자 모두들 그를 비웃었다. 그는 안으로 자신을 반성하고 아울러 시시각각 자신을 단속했다. 특히 중요한 관직에 오른 후에는 늘 부드럽고 조화로운 방법으로 일을 처리했다.

당시 사혁(謝奕)이란 관원이 있었는데 성격이 아주 거칠었다. 일찍이 한 가지 일로 왕술과 맞지 않자 왕술을 몹시 원망하며 악독한 말로 그에게 욕을 퍼부었다. 그러나 왕술은 단 한 마디 말도 하지 않고 벽을 향해 서서는 그가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붓도록 그냥 내버려 두었다. 반나절이 지나 사혁이 실컷 욕을 하고 떠난 후에야 비로소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그에게 함양(涵養)이 있다고 칭찬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동료들은 그를 ‘청정간귀(清貞簡貴 역주: 깨끗하고 절개가 있으며 말이 적다는 뜻)’라고 높이 평가했다.

[역주: 시호 법에 따르면 ‘간(簡)’은 너그럽고 남을 헐뜯지 않았다는 뜻이다.]

한때 계란에 화가 나서 계란조차 놓아주지 못했던 사람이 뜻밖에도 ‘벽을 보며 치욕을 참을 수 있었’으니 왕술은 실로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나중에 왕술이 기른 자녀들도 모두 우수했는데 그의 아들 왕탄지(王坦之)는 신하로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랐다. 원대(元代) 학자 오량(吳亮)과 허명규(許名奎)가 지은 《인경(忍經)・권인백잠(勸忍百箴)》에는 “백가지를 참을 수 있는 사람은, 백 가지 복의 근원”이라 했다. 이 말은 진실로 그러하다!

자료출처: 《진서(晉書)》와 《세설신어》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4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