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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과산에서 양계산이 된 후 마음 원숭이가 바로 잡히다

초약미(楚若薇)

【정견망】

《서유기》 개막편에서 손오공의 유래를 말해준다. 원래는 화과산(花果山) 정상에 선석(仙石)이 하나 있었는데, 천지의 빼어난 기운과 해와 달의 정화를 감수한 후 돌이 갈라지면서 돌원숭이[石猴] 한 마리가 태어났다. 수렴동에서 여러 원숭이들의 왕인 미후왕(美猴王)으로 선발된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음에 번뇌가 생겨 삶의 무상을 한탄하며 윤회에서 벗어나 장생불로(長生不老)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나는 바다를 떠돌며 10여 년 동안 찾아 헤매다가 마침내 영대 방촌산 사월삼성동(斜月三星洞)에 이르러 수보리 조사를 스승으로 삼고 그의 문하에서 장생(長生)의 도(道) 및 근두운(筋鬥雲)과 72가지 변화를 배웠다. 그리고 근두운을 타고 화과산으로 돌아갔다.

그는 또 동해 용왕에게서 “위로는 33천(天)에 이르고 아래로는 18층 지옥까지 닿을 수 있는” 여의금고봉(如意金箍棒)을 발견하고 아주 기뻐했다.

그렇다면 손오공은 정말로 장생불로(長生不老)하며 윤회를 피할 수 있었을까?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의 사부(역주: 수보리 조사)가 말했다.

“너는 비록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람보다 볼이 적다.” 그러면서 비록 사람처럼 구규(九竅)와 팔다리를 가지고는 있지만 결국 사람과 다르기때문에 삼재(三災)를 피하는 법을 그에게 전해주지 않았다. 어느 한번 손오공이 술에 취한 후 꿈에 염라전의 저승사자가 그의 영혼을 유명계(幽冥界)로 데려가는데, 생사부(生死簿)에는 그의 수명이 342세라고 기록되어 있다.

손오공은 자신은 이미 “삼계를 벗어나고 오행 중에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손오공은 여전히 ​​삼계 내에 있었고 단지 모종의 원인 때문에 그의 수명이 연장되었을 뿐이다.

손오공이 기왕 인류(人類)가 아니라면 왜 또 공(功)이 자랄 수 있는가? 이 역시 전반 우주가 괴멸(壞滅)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일종 패괴(敗壞)된 후의 표현이다. 원래 사람의 형상과 도덕이 없으면 수련해서 정과(正果)를 얻을 수 없다. 그러므로 손오공 미래의 길은 생각건대 분명 당승의 서천취경(西天取經)을 위해 준비된 호법(護法)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이를 미리 알고 그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준 것이다. 이는 또한 관음보살이 저팔계와 사승(沙僧 사오정)의 이름을 지어주면서 ‘오(悟)’라는 항렬을 붙인 것과도 연결된다. 이외에도 또한 그에게 용과 범을 제압하는 능력 외에 서역으로 가는 길에 취경인(取經人)을 보호하고 구할 수 있는 능력들도 전수해 주었다.

사실 이것은 또한 일종의 경고다. ‘요괴(妖)’의 길을 걷는다면 수명이 언제든지 끝날 수 있고 오직 정도(正道)를 걸어야지만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기 멋대로 원숭이 부류에서 이름이 있는 것들을 붓으로 모두 지워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좌전(左傳) 장공(莊公)14년》에 이런 말이 나온다.

“사람이 꺼리는 바의 기운이 불처럼 일어나 ‘요(妖)’가 발생합니다. ‘요’는 사람의 마음으로부터 일어납니다. 사람에게 틈이 없다면 ‘요’가 스스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사람이 평상심을 잃을 때 ‘요’가 일어나니 요의 발생에는 까닭이 있습니다.”

즉 사람의 마음이 바르지 않아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멋대로 나쁜 짓을 하면 ‘요’가 일어나고 ‘요’가 된다는 뜻이다.

명부(冥府)에서 손오공의 행적을 옥황상제에게 보고하자 상제는 원래 하계(下界)의 요선(妖仙)을 체포하려 했다. 그러나 태백금성(太白金星)이 나서서 오공을 초무(招撫 달래서 초빙)해서 상계(上界) 어마감(禦馬監)에 임명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손오공이 자신의 관직이 비주류에 속한다고 의심해 ​​천문(天門)을 뛰쳐나와 다시 화과산으로 돌아가서는 스스로 ‘제천대성(齊天大聖)’이라 선포한다. 천병천장(天兵天將)들도 그를 제압하지 못하자 태백금성이 다시 나서 소란을 잠시 진정시키기 위해 손오공을 제천대성에 봉해주자고 청한다.

반도원(蟠桃園) 오른쪽 끝에 제천대성부(齊天大聖府)를 지었는데 부 안에 2개의 사(司)가 있어 하나는 안정사(安靜司)고 다른 하나는 영신사(寧神司)라 했다. 원서에서는 이 단락의 글자를 이용해 손오공에게 안정(편안하고 조용히 함)과 영신(마음을 편안히 함)이 필요함을 점화해준다. 말하자면 아직 명리심(名利心)을 다 제거하지 못한 것이다. 마음 원숭이[心猿]가 장난을 치고 집착심이 발작할 때의 바로 마성의 일면을 지닌 요(妖)가 드러난다. 그 후 탐욕스럽게 반도를 먹어 치우고, 어주(禦酒)를 훔쳐 마시고, 선단(仙丹)을 훔쳐 먹고, 반도성회(蟠桃盛會)를 방해하고, 천궁(天宮)에서 큰 소란을 피우다가 결국 이랑신(二郎神)에게 붙잡혀 팔괘로(八卦爐)에서 문무화(文武火)로 단련된다. 최후에 여래불에 의해 오행산 아래에 눌리니 이 역시 모두 예상했던 일들이다.

손오공이 천궁에서 큰 소란을 피워, 자기 능력에 의지해 옥황상제의 자리를 차지하려 하는데, 이렇게 명예를 중시하고 승복하지 않으며 멋대로 구는 것은 사실 모두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요기(妖氣)와 마성의 발현이다. 과거에 이 이야기를 각색한 애니메이션 영화 ‘천국의 소란’이 있었는데, 결론 부분을 수정해서 손오공이 오행산 아래에 눌리지 않고 승리한 후 화과산으로 돌아왔다고 했다.

당 문화 사유의 영향을 받아 억압에 맞서 투쟁하고 반대하는 것을 고취하려는 것이다. 이런 당 문화 사유는 많은 사람들의 가치판단에 영향을 미쳤다. 어떤 사람들은 원작에서 이 몇 회에 나오는 손오공이 가장 의기양양하고 천지를 두려워하지 않으며 누구도 어쩌지 못하는 시기라고 말한다. 나중에 서쪽 여행 길에서 만난 많은 요괴들을 제압하지 못하거나 천신(天神)을 모셔와 도움을 받은 후에야 제압할 수 있다. 사실 손오공이 천궁에서 큰 소란을 일으켰을 때 그런 고인(高人)들은 진정으로 손을 쓰지 않았고 그저 이랑신만 추천했을 뿐이다. 그 속에는 당연히 고층 생명의 체계적인 배치가 있다.

제천대성이 포박되어 항요주(降妖柱)에 묶여 칼과 도끼로 잘리고 창과 칼에 찔렸지만 그의 몸을 해칠 의도는 없었으며 화부(火部)의 뭇신들이 불로 태웠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고, 뇌부(雷部)의 뭇신들이 번개로 그를 쳤지만 전혀 다치게 할 수 없었다. 태상노군(太上老君)은 팔괘로에 넣고 삼매(三昧)의 화로 재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화안금정만 연마했을 뿐이다.

이는 손오공이 모종의 내력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데, 그의 신체 역시 더욱 미시적인 층면의 물질로 구성되어 그 층차 이하의 다양한 방법으로는 손상 시킬 수 없음을 보여준다. 아니면 그가 모종의 특수한 사명를 지니고 왔기 때문에 고층 생명의 비호를 받았을 수도 있다. 여래불을 청해 굴복시키게 한 이유는 바로 결자해지로 제천대성이 아무리 신통광대해도 역시 여래불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는 없다.

손오공에게 미래에 경전을 구하러 가는 사명을 맡기려 했다. 천궁의 이런 마난(磨難)은 단지 미래의 기연에 대한 일종의 준비이자 손오공의 성품을 단련시켜 요기와 마성을 제거해서 취경인 표준의 요구에 도달하게 한 것이다. 오행산 아래에서 500년을 눌려 있던 것 역시 이런 단련의 일부분이다.

오행산(五行山)은 나중에 당 황제에 의해 양계산(兩界山)으로 개칭되는데, 즉 여기서부터 서쪽으로 가면 대당(大唐)의 경계를 벗어난다. 이곳에서 손오공은 당승에 의해 구조되었고, 이후 불법(佛法)에 귀의하여 당승의 도제가 되어 당승을 보호해 서천취경의 길을 간다.

양계산은 또한 손오공이 이때부터 마음 원숭이가 바로 잡히는 것으로 요계(妖界)에서 벗어나는 기점이기도 하다. 이때부터 손오공은 정도 수행을 시작해 속인을 뛰어넘어 성인으로 제고하는[超凡入聖] 바른 길을 걷는다. 왜냐하면 자연적으로 태어난 돌원숭이의 마음속에는 애초 사람의 도덕규범이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여래불이 주신 ‘긴고아(緊箍兒)’를 머리에 씌우고, 긴고주(緊箍咒)로 제약해야만 아직 제거되지 않은 마성이 발작해 큰 잘못을 저지르지 못하게 막을 수 있었다.

사람은 만물의 영(靈)으로 천지 사이에서 가장 소중한 생명이다. 사람은 수련하면 신(神)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유기》에 묘사된 취경 이야기는 인간 세상의 수련 문화에 대한 일종의 해석이자 준비로 다시 말해 나중에 우담바라 꽃이 필 때 대법(大法)이나 대도(大道) 수련을 위해서 길을 깔아준 것이다.

“탕탕한 천문이 만고에 열리니 몇 이나 돌아가고 몇이나 왔는가?[蕩蕩天門萬古開,幾人歸去幾人來]”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86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