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제자
【정견망】
《서유기》의 당승은 대덕(大德)을 지닌 인물이라 채용한 방법은 모두 닫혀서 수련하는 방법이라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오공은 점오(漸悟) 수련법에 속해 많은 것들을 다 볼 수 있었고 신통도 열려 있다. 이 역시 필수적인데 오공의 신통이 없다면 당승을 보호할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오공이 하늘도 두려워하지 않고 땅도 두려워하지 않음을 알지만 사실 그리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오공은 진상(真相)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진정한 부처나 보살 앞에서는 여전히 아주 조심스럽고 신중하기 때문이다. 제23회 ‘삼장은 근본을 잊지 않고 사성(四聖)이 선심을 시험하다’에서 사실 주로 시험한 대상은 당승이다.
왜냐하면 팔계는 아예 관을 넘기지 못했고 오공은 또 확실히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오공에게는 근본적으로 미혹이 없고 보살의 점화를 볼 수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오공이 감히 미혹을 타파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보살이 당승을 시험하는데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지 않았고 아주 공손했다. 그는 불법(佛法)의 위엄을 똑똑히 알았기 때문이다.
1. 보살이 삼장을 시험하자 오공이 말을 꺼리다
장로가 말했다.
“도제(徒弟)야, 저쪽에 장원(莊園)이 있으니 우리 가서 잠자리를 빌려보자.”
행자(行者)가 듣고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정말 하늘에 상서로운 구름과 서기 어린 노을이 가득 차 있었다. 그는 직감적으로 불선(佛仙 부처와 신선)의 점화임을 알았지만 감히 천기를 누설할 수 없어서 다만 “좋아요, 좋아, 좋아요! 우리 잠자리를 빌려봐요.”라고 했다.
행자가 막 기웃거리고 있는데 문득 뒷문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한 중년 부인이 걸어나오며 간드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무엇 하는 사람이기에 남의 과부 집을 함부로 들어오시나요?”
당황한 대성(大聖)이 “네네(역주: 아주 공손한 대답)”를 연발하며 대답했다.
“소승(小僧)은 동토(東土) 대당에서 왔으며 서방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전을 구하라는 칙지를 받들고 있습니다. 일행은 4명인데 마침 댁을 지나다 날이 저물어 노보살님 댁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그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장로(長老 승려에 대한 존칭)님 나머지 세분은 어디 계십니까? 모셔 오시죠.”
행자가 소리를 높여 불렀다.
“사부님 들어오시랍니다.”
삼장이 비로소 팔계, 사승과 말을 끌고 문으로 들어서자 부인이 대청까지 나와서 맞이했다.
2. 보살이 당승을 고험하자 삼장은 귀머거리 벙어리 행세
“부부 운명에 아들이 없고 딸만 셋입니다. 재작년에 큰 불행이 닥쳐 또 남편을 여의고 수절하다 올해 탈상했습니다. 땅과 가업(家業)만 남아 있을 뿐 친척이 없어 우리 여자들이 그것을 상속받았지요. 시집을 보내고 싶어도 가업을 버리기 어려워 난처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장로님께서 오셨고 그것도 네 분이 오셨네요. 저희 네 모녀가 마침 데릴사위를 들이려던 참인데 여러분도 네 분이시니 딱 좋네요. 의향이 어떠신지요?”
삼장이 이 말을 듣고는 마치 귀머거리나 벙어리가 된 듯 눈을 감은 채 마음을 다스리며 조용히 대답이 없었다.
그러자 부인이 말했다.
“저희 집에는 논과 밭이 각각 300경(頃)이 넘고 산의 과수원도 300경이 넘습니다. 게다가 물소가 천여 마리에 노새와 말은 무리를 이루고 돼지와 양은 셀 수 없답니다. 동서남북 사방에 작은 집과 풀밭이 모두 육칠십 곳도 넘습니다. 집안에는 팔구 년을 먹어도 못다 먹을 만큼의 쌀과 십 년 동안 입어도 못다 입을 비단 옷, 평생 써도 다 쓰지 못할 금과 은이 있지요. 무슨 비단 장막으로 봄을 감췄다느니 금비녀 꽂은 미녀들이 두 줄로 섰느니 하는 말보다 낫지요. 여러분들이 마음을 돌리고 뜻을 바꿔 저희 집 데릴사위가 되신다면 맘껏 영화를 누릴 것이니 고생스레 서쪽으로 가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자 삼장은 또 바보라도 된 것처럼 묵묵부답이었다.
3. 삼장이 관을 넘기자 오공이 미혹을 풀어주다
장로가 말했다.
“우리가 어디에 잠들었는지 보거라!”
행자가 말했다.
“이 소나무 숲 아래 즐겁게 누워있었네요. 그런데 이 멍청이는 어디서 벌을 받고 있나.”
장로가 말했다.
“누가 벌을 받고 있다는 것이냐?”
행자가 웃으며 말했다.
“어제 그 집 여자들은 어디 보살님들인지는 모르겠으나 여기서 우리에게 법술을 부리다 아마 밤중에 가버린 모양입니다. 저팔계는 벌을 받고 있겠지요. ”
삼장이 이 말을 듣고는 합장하며 절을 했다. 뒤쪽 오래된 잣나무 위에 편지 한 장이 걸려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사오정이 급히 가져다 사부에게 보이자 다음과 같은 여덟 구절의 게송이 적혀 있었다.
여산 노모가 속세를 그리워한 게 아니라
남해 보살이 산을 내려오시라 청했네
보현 문수 보살은 모두 손님이니
미녀로 변해 숲속에 있었구나
성승(聖僧)은 덕이 있어 속됨 없으나
팔계는 선(禪)이 없어 더욱 범속하구나
이로부터 마음을 조용히 하고 반드시 고쳐야 하나니
만약 태만한 마음이 생긴다면 길이 어려워질 것이다!
黎山老母不思凡,南海菩薩請下山。
普賢文殊皆是客,化成美女在林間。
聖僧有德還無俗,八戒無禪更有凡。
從此靜心須改過,若生怠慢路途難!
4. 수련법이 다르면 고험도 다르다
삼장은 잠겨서 수련하기에 이 한 관을 넘긴 것은 하나의 큰 층차를 제고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팔계는 반(半)미혹상태이기 때문에 비록 보살에게 불경한 성분은 있었지만 그래도 아주 심한 처벌을 받진 않았고 그저 한 차례 제고의 기회를 잃었을 뿐이다. 오공은 점오(漸悟) 상태에 있으니 그에 대한 요구는 훨씬 엄격하다.
우리가 여기서 오공을 보면 수구(修口)하며 천기를 누설하지 않는 동시에 보살에게 아주 공경히 대한다.
“소승은 동토 대당에서 왔으며 서방에 가서 부처님을 뵙고 경전을 구하라는 봉지를 받았습니다. 일행은 4명인데 마침 댁을 지나다 날이 저물어 보살님 댁에서 하룻밤 묵어갈 수 있을까 해서 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오공이 이전의 오만한 태도를 고쳐 자신을 소승이라 부르는 것을 보는데 이런 것들은 모두 전에 당승이 했던 말이다. 오공은 또 명확하게 상대방을 노보살님이라 칭하는데 보살 앞에서 오공의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볼 수 있다.
수련이란 이와 같은 것으로 오공은 점오상태이며 여기서는 아예 그리 많은 제고가 있을 수 없다. 하지만 당승은 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의 큰 층차를 제고했다. 어떤 이들은 늘 수련할 때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사실 진정으로 볼 수 있다면 그럼 제고는 곧 어려워진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49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