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漢學)
【정견망】
《예기(禮記)》에서는 말한다.
“양(陽 임금이나 군자)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하늘에서 징조가 나타나 일식이 되고 음(陰 신하나 소인)의 일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하늘에게 징조가 나타나 월식이 된다.”라고 했다.
《후한서 황후기》〈순렬양황후(順烈粱皇后)〉 이현(李賢)의 주해에는 “황후가 어려도 총명해서 이전의 득실을 잘 알아서 비록 덕(德)으로 나아가도 감히 교만하게 함부로 하지 않았으며 매번 해와 달의 징조가 있으면 곧 자신을 낮추고 허물을 구했다.”라는 구절이 나온다.
고대에는 이처럼 일식(日蝕)이 발생하면, 명군(明君)과 어진 황후는 모두 당황하고 두려워하면서 자신의 허물을 공경하게 찾아내 고쳤으니 이는 수련에서 ‘안으로 찾음’과 비슷하다. 그러나 현대에 이르러 현대인들은 일식을 단지 “해와 달, 지구가 일시적으로 일직선으로 정렬되는 현상으로 달이 태양 빛을 가리기 때문에 지구의 해당 지역에서 태양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 하면서 고인(古人)들이 우매하고 무지하다고 여긴다.
하지만 정말로 그러한가? 사실, 코페르니쿠스가 종교에서 말하는 ‘지구 중심 이론(천동설)’을 부정하고 브루노가 코페르니쿠스의 ‘태양 중심 이론(지동설)’을 부정한 것은 둘 다 낮은 수준의 견해일 뿐이다. 왜냐하면 지구는 더 큰 환경인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와 브루노의 시야는 마치 개미와 같아서 자신보다 큰 사람의 시각을 이해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일식에 대한 옛날과 지금 일부 사람들의 인식 역시 이와 같다.
이런 차이가 생기는 이유는 현대인들이 인류의 일체, 즉 의식주 및 사상과 행위, 생사(生死) 등이 모두 고급 생명에 의해 배치된 것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일부 지혜로운 현대인들은 어떤 나쁜 현상을 만나면 이를 하늘의 경고라 여기고, 경고에 따라 재앙을 피한다. 반면 좋은 현상을 만나면 문을 나서면 기쁜 일이 있고 시장을 개방하면 크게 길하다는 등의 예견을 말할 수 있다. 또는 서로 일치하거나 상반되는 깨달음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신(神)을 믿는 심성이 남아 있는 것으로 무의식중에 인생이란 배치된 것임을 아는 것이다. 고대에는 설사 악인일지라도 하늘의 경고를 받았다.
동한 말기, 간신 동탁(董卓)이 제거되기 전에 동요에 다음과 같은 노래가 유행했다.
“천리초 어찌 생생한가 열흘이면 살 수 없다네(千里草、何青青,十日卜,不得生)”。
[역주: 여기서 천리초는 동董을 파자한 것이고 십일복은 탁卓을 파자한 것이다. 즉 동탁이 지금은 멀쩡해 보이지만 머지않아 죽을 것임을 암시한다.]
‘일식’은 일종의 천상(天象)으로 신은 이를 사용해 나라의 형편과 백성의 형편, 임금의 언행에서 실수 등을 점화하는데 사용해 왔다. 때문에 명군이나 어진 황후, 충신, 양장(良將), 효자들은 모두 황공해하면서 안으로 찾아 자신을 반성하고 하늘의 뜻에 순응했다.
《사기 천관서(天官書)》나 《한서 천문지(天文志)》 《후한서 천문(天文)》 등 정사(正史)에는 모두 별의 운행이 국가와 인류에 대한 영향을 기록해 놓았다.[대응하는 당시의 시공과 후세의 시간, 일 및 사람의 변화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는데 신(神)은 부동한 시간, 일, 사람을 겨냥해 부동한 배치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금목수화토(金木水火土) 오대(五大) 행성 및 주천(周天)하는 별은 현대인들이 보기에 행성과 항성이 각기 운행하는 궤도가 있는 것이다. 그들은 인류에 대한 신(神) 배치 속에는 나라와 인류의 길흉화복과 행성·항성의 운행 궤도를 대응시켜 인류를 점화하는데 사용하는 것임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러나 단지 점화의 범위에 그칠 뿐만 아니라 천상의 법칙은 인간세상의 법칙을 좌우한다. 물론 현대 일부 인류는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심지어 신(神)조차도 승인하지 않으며 이렇게 대응하는 배치가 있다는 것 자체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별의 운행과 지상의 나라와 인류가 대응하는 이런 배치는 단지 표상(表象)으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부분에 불과하다. 우주에서 99% 이상의 형상(形象)은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의 눈이 감지할 수 있는 주파수가 대단히 좁기 때문이다. 가령 휴대폰 전파 신호는 도처에 존재하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그것을 볼 수 없는 것과 같다.
별들이 운행하는 이런 움직임은 다른 공간에서 일종의 형상을 만들어 내는데 반대로 이해하면 바로 사람이 주먹을 쥐고 일종의 자세를 취하는 것과 같다. 사람이 주먹을 푼 후에도 전에 주먹을 쥐었던 자세와 운행은 여전히 존재함을 사람은 모르는데 사람이 느끼지 못하고 볼 수 없어서 다시 사용할 방법이 없다. 그런 별들의 운행 궤도는 공동으로 다른 공간에서 직접적으로 지구에 작용한다.
지금 사람들은 태양 흑점이 폭발한 에너지가 지구에 작용하는 것 처럼 태양 입자가 지구를 공격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지만 그것들은 천상(天象)이 작용하는 힘에 비하면 함께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작용하는 힘이 같은 공간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령 천상(天象) 중에서 “형혹성이 심을 지킨다[熒惑守心]”거나 “태백성이 하늘을 지난다[太白經天]”고 하는데 사람의 눈으로 보자면 화성(火星)과 금성(金星)이 운행하는 상황이지만 사람의 눈으로는 볼 수 없는 그 부분의 형상은 또 무엇일까? 그것은 어떤 형상인가? 사실 그것은 시공의 거리마저도 변화가 발생한다. 그런 빛을 내는 항성은 인류가 보기에 그것들은 너무 멀어서 모두 수많은 광년 떨어져 있어서 영원히 도달할 수 없을 것과 같다. 아울러 또 각자의 운행 궤도에서 고정되어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것 같다.
그러나 인류를 초월하는 수련인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 다수는 바로 눈앞 가까운 곳에 있으며 만약 그들이 소통하려 하면 순간적으로 사람 눈앞에 나타날 수 있다. 또한 인체 크기에 대응해 드러날 수 있는데 어떤 것은 아주 작아져서 빛을 내는 작은 풍선이나 진주처럼 변하고 어떤 것은 직접 각종 형상으로 드러날 수 있다. 크기 개념과 온도 역시 육안으로 본 세계와는 전혀 다른데 육안으로 본 별은 하나하나 모두 방대한 물건이고 아주 뜨겁거나 아주 차갑지만 마치 태양처럼 뜨겁다거나 또는 수많은 지구를 담을 수 있다는 등등이다.
분문은 일부 전통문화에 대한 개인의 견해일 뿐이며 성상(星相)이나 주역(周易) 등에서 내원한 것이 아니다. 수련인에게는 불이법문(不二法門)의 요구가 있으니 본문을 보고 굳이 성상이나 주역을 연구할 필요는 없다.
주 1. 천구식일(天狗食日)
중국 고대에는 일식은 천구(天狗 하늘 개)가 태양을 먹는다고 했다. 이에 대해 다양한 해석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달이 바로 천구라는 것이다. 달은 원래 지난 시기 지구의 인류가 만든 것으로 밤을 비춰주고 지구를 수호하기 위해 제작한 것이다. 그렇다면 천구의 의미 속에는 수호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01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