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원(清源)
【정견망】
후세에 방향을 알려준 선가(仙家) 학설
갈홍은 일생 수도 외에도 글을 쓰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특히 나부산에서 단(丹)을 수련하던 시기였다. “산 속에서 오랜 세월을 유유자적하며 저술이 그치지 않았다” (《진서(晉書)》 갈홍은 저술이 키만큼 많았지만, 아쉽게도 《신선전(神仙傳)》 《포박자(抱樸子)》 《주후비급방》 등 몇 권밖에 전해지지 않는다.
그 중 《신선전》과 《포박자내편》은 신선과 수련의 일에 대해 고금의 많은 수도자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남조의 도홍경(陶弘景)은 열 살 때 《신선전》을 보고 신선을 닦고 도를 배우려는 뜻을 갖게 됐다. 그는 “벽곡도인법에 능해 은둔처로부터 40여 년, 80여 년이 지나도 건장한 용모를 가졌다.” 죽었을 때도 “평소와 같이 몸을 굽히거나 펼 수 있었고 향기가 며칠 동안 온 산에 자욱했다.”(《남사(南史)》) 즉, 도홍경이 죽은 뒤에도 몸이 마치 살아 있는 것 같았고, 어디서 났는지 향기도 연일 그치지 않았는데 사실 그는 도를 얻어 신선이 되었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기 때문에 보이는 것만 실제라 여기고 신을 믿지 않는 사람도 많다. 이에 대해 갈홍은 “천지가 무한히 큰데 그중 특수하고 기이한 것이 어찌 한계가 있겠는가?”며 “선인(仙人)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세상에 선인이 없다고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포박자내편》)
갈홍은 예를 들어 말했다.
“역사에 신선이 존재한다는 많은 기록이 있다. 유향(劉向)은 《열선전》에 70여 명의 선인을 나열했는데 유향은 학식이 풍부하고 사리에 맑아 그의 기록은 믿을 만하다. 또한 많은 정사(正史)에도 신선들의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후한서》에는 또 위상(魏尚)은 앉으면 나타나고 서면 사라질 수 있었고, 장해(張楷)는 운무(雲霧)를 일으킬 수 있다고 했다. 모두 뛰어난 사관이 기록한 것으로 믿을 만하고 증거도 있다. 이 술법의 일은 모두 신선의 부에 있으니 함부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포박자내편)》
인류가 세계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은 유한한데, 신불(神佛)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신불의 존재를 반대하는 것은 정말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다. “비록 아무리 눈이 밝아도 형태가 있는 것을 다 볼 수는 없고, 비록 아무리 귀가 밝아도 소리가 있는 것을 다 들을 수는 없다.”(《포박자내편》)
갈홍은 후세 사람들에게 신선이 실재하고 선도가 배울 수 있다고 알려주었고, 많은 단약 배합법과 제련 과정을 소개했다. 안타깝게도 현대인들은 갈홍의 단약 제조를 실패한 과학적 시도로 간주하고 그것의 과학성을 인정하면서 미신과 허망함을 크게 비난했다.
갈홍은 “상고 진인(真人)이 장래에 가르칠만한 자를 생각하여 방법을 강구하여 죽음의 재앙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것은 지극한 말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속인은 결코 믿지 아니하니, 이것을 헛된 글이라 한다.”(《포박자내편》)
노자도 “하사는 도를 들으면 크게 웃나니 웃지 않으면 도라고 할 수 없도다.”라고 했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크게 비웃을 뿐 아니라 욕하고, 신고하거나 봉건 미신이란 말을 쏟아내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동시에 갈홍은 또 후세인에게 덕(德)을 중시하는 것이야말로 도(道)를 얻고 장생하는 기초라고 알려주었다. “충효(忠孝), 화순(和順), 인신(仁信)을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 만약 덕행을 닦지 않고 방술(方術)만 연마하면 모두 장생을 얻을 수 없다.”고 말했다.(《포박자내편》) 역사상 금단을 먹으면 신선이 된다고 믿는 사람이 많고, 고관 귀인이나 심지어 황제도 단약을 먹었지만, 심성을 중시하지 않고 덕을 중시하지 않으며 약만 먹어선 효과가 없다. 갈홍은 바로 이 천기를 후세에 수도하는 사람에게 알려준 것이다.
역사상 어떤 황제는 단약을 복용하기 전에 사형수에게 시식을 시켰고, 어떤 황제는 인생을 즐기다가 죽을 때가 되면 먹으라고 했는데, 어떻게 되었는지 미루어 보면 알 수 있다. 따라서 현대인들은 단약을 먹고 죽은 황제를 중금속 중독이라고 말하는 것은 사실 매우 단편적이다.
갈홍은 “여러 도계(道戒 도가의 계율)를 보면, 장생을 추구하는 자는 반드시 선(善)을 쌓아 공(功)을 세워 남에게 자비하고 너그러워야 하며 자비심이 곤충에까지 이르러야 한다고 말한다. 또 남의 길을 즐겁게 여기고 남의 고생을 가엽게 여기며, 위급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고, 살생하지 않고 말로 화를 만들지 않고, 남이 얻은 것을 자신이 얻은 것처럼 여기고 남의 실수를 자신의 실수로 여기고, 자기를 귀하게 여기고 자신을 찬양하지 말며, 자신보다 나은 사람을 질투하지 않고, 음적(陰賊)에게 아첨하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하면 덕이 있는 것으로 하늘의 복을 받아 하는 일마다 반드시 성공할 것이니 신선을 구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라고 주장했다.(《포박자내편》)
수도 장생은 먼저 덕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선행을 많이 하고 악행을 하지 않으며 나쁜 마음을 없애야 하는데 이렇게 하면 하늘의 복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악행을 일삼는 자, 사과지신(司過之神 허물을 주관하는 신)도 그의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천지에 사과지신이 있으니, 사람이 저지른 경중에 따라 그 산(筭)을 빼앗는다, 산이 감소하면 사람이 가난하고 질병이 빈번히 발생하며, 산이 다하면 사람이 죽는다. 마땅히 산을 빼앗길 사람은 백 가지 일이 있어도 함께 논할 수 없다.”(《포박자내편》)
갈홍은 이 밖에도 ‘내단(內丹)’, ‘벽곡(辟穀)’ 등 일부 수련 방법과 현상을 소개하고, 도가(道家)의 수련 전적(典籍)을 많이 언급해 다양한 수련법문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세상 만물에는 선과 악이 있고 진실과 거짓이 있는 것이 상생상극의 이치이다.
수련의 방법도 마찬가지로 많은 거짓 도와 삿된 도가 세상에 퍼지고 있는데, 갈홍은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고명하다고 부르거나 작은 술수를 써서 세상을 속이는 것은 적지 않은 해를 끼친다고 지적했다.
“옛날 사람 중에 장각(張角), 유근(柳根), 왕흠(王欽), 이신(李申)의 무리들은 천세(千歲)라 칭하고, 소술(小術)에 의지해 앉으면 있고 서면 사라지며, 형체를 변화시키고 용모를 바꿔, 백성들을 속여 현혹하고, 어리석은 자들을 규합했다. 나아가서는 연년익수(延年益壽)에 힘쓰지 않고 물러나서도 재앙을 없애고 병을 고치는 것을 업으로 삼지 않았으며 결국 간사한 무리를 모아 역란(逆亂)을 일컬었으나 스스로 그 죄를 자복했다. 어떤 이는 양인을 죽이거나 백성들을 기만하여 재물을 모으고 돈이나 비단을 산처럼 쌓아 왕공(王公)보다 부유했다. 방자하고 사치하고 음란했으며 사치스런 옥식(玉食)을 먹었다. 집안에 기생첩이 가득했고 악기가 나열되었고 자객을 고용했다. 위엄은 나라를 기울게 했고 세력은 유사(有司)를 능멸했다. 망명하거나 죄를 짓고 달아나는 자들이 따라서 그들의 소굴로 삼았다.”(《포박자내편》)
옛날에 도를 구하는 것은 매우 어려웠고 비록 도서(道書)가 적지 않았지만 사부의 구전심수(口傳心授)가 없이는 수련할 방법이 없었다. 이로 인해 많은 구도인들이 종종 “만 권의 단서(丹書)를 보고 바보가 되었다”고 했다. 갈홍은 도가 수련의 사부들은 대도(大道)의 주지(主旨)를 널리 공개한 경우는 거의 없으며, 역사상 선가(仙家)가 쓴 도서라 할지라도 교훈과 경고의 언어에 불과하다고 언급했다.
정말 쓸모 있는 비결은 오직 사도(師徒) 사이에 입으로만 전할 뿐이고, 일부는 길이가 몇 자밖에 안 되는 흰색 비단에 써서 사부가 비밀리에 간직했다.
“그러므로 나중에 도를 아는 자로써 우길, 용숭, 계백 제가(諸家)들이 각각 천여 편의 글을 저술했으나 거의 교계(敎誡)에 관한 말만 많고, 사람들에게 큰 방향을 제시해 주는 요점은 드러내지 않았다. 지진(至眞)의 비결은 오직 말로만 전하거나, 한 자 비단에 적어 옷깃 속이나 허리띠 속에 지니고 다니는 것에 불과했다. 따라서 사부를 따라 오랜 시간 함께하며 또 부지런하게 시험을 거친 사람이 아니면 얻을 수 없었다.”
“내가 정 선생님 문하가 되어 방서(方書) 보기를 청하니 내게 이르길, 요도(要道)는 한 자의 비단에 적힌 것이면 세상을 구하기에 충분하며 많을 필요가 없다고 하셨다.”(《포박자내편》)
대도(大道)를 얻고 싶다면 먼저 반드시 진정한 명사(明師 밝은 스승)를 찾아야 한다.
“오호라! 장래의 학자는 스승을 구함에 힘써야겠지만, 그렇다고 자세히 가리지 않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천박하고 옹졸한 자, 행실이 천박하고 덕이 적은 자, 공이 작고 인연이 적은 자는 인도를 이루기에 부족하고 또한 사람에게 두터운 은혜를 베풀 공(功)이 없다. 거취를 심사숙고해서 헛수고가 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포박자내편》)
만일 명사가 수련을 지도하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은 마치 물속에서 달을 건지고 안개 속에서 꽃을 보는 것과 같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중국 대륙에 기공 열풍이 불었다. 당시 리훙쯔 선생님이 가르친 파룬궁은 많은 기공들 중에서 두드러져 중국 전역에 신속히 퍼졌고, 놀라운 질병 퇴치 및 건강 효과 외에도 파룬따파는 사람들에게 심성을 제고해 ‘진선인’ 우주 특성에 동화하도록 지도해 진정으로 대도를 닦는 주지를 대중에게 공개해 수련에 뜻을 둔 수많은 사람들이 의지하고 따를 법(法)이 있게 했으니 실로 아주 보기 드문 수련 공법이다.
정법 수련에는 많은 마난(魔難)을 겪어야 하기 때문에 갈홍은 후세 수도인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지극한 도(道)를 닦는 구결은 뜻에 달렸지 부귀(富貴)에 달려 있지 않다.”
“선자(仙者)는 오직 뜻이 성실하고 믿음이 지극해야 하며, 근면하되 나태하지 않고, 편안하고 고요할 수 있어야 얻을 수 있다.”
“장생이 어려운 게 아니라 도(道)를 듣는 것이 어렵고, 도(道)를 듣는 것이 어려운 게 아니라 실행이 어렵다. 실행이 어려운 게 아니라 마침이 어렵다.” (《포박자내편》)
이는 진실로 선가(仙家)의 말이다.
맺는 말
갈홍은 어릴 때 도를 지향했고, 경건하게 스승을 공경했으며, 학문이 넓고 기억력이 뛰어났으며, 재능은 천부적이었고 다른 일에는 초연했다. 그의 일생은 기서를 내고, 군공(軍功)을 세우고, 국책(國策)을 정하며, 금단을 연마했고 인간 세상에서 65년 만에 마침내 대도(大道)를 이루고, 시해선이 되어 올라갔다. 이는 사람이 신(神)으로 수련 성취된 역사적인 견증이자, 미혹중의 세인들이 창세주(創世主)께서 구도하시는 법(法)을 듣고 알 수 있도록 오래 전에 포석을 깔았다.
포박자여 기이하구나! 위대하도다! 유유(悠悠)하도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14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