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淸雅)
【정견망】
소동파(蘇東坡)는 워낙 박학다재(博學多才)해서 여러 가지 일에 대해 자신만의 독특한 견해를 지녔다. 일찍이 그가 남긴 회화에 관한 짧은 이야기가 한편 있는데 매우 흥미롭다.
촉(蜀 지금의 사천 지역)에 서예와 그림을 좋아해서 수백 점의 서예와 그림을 소장하고 있던 두(杜) 처사(處士)가 있었다. 그는 특히 대숭[戴嵩 역주: 소 그림으로 유명했던 당대(唐代)의 화가이자 정치인]이 그린 《투우도(鬪牛圖)》를 좋아해서 비단으로 두루마리를 만들고 권축(卷軸)은 옥으로 장식해 늘 몸에 지니고 다녔다.
어느 날 그가 그림을 말리려고 두루마기를 펼쳐놓았는데 한 목동이 지나가다 이 그림을 보고는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그림에 그린 것이 투우란 말입니까? 소가 서로 싸울 때는 뿔에 힘을 주고 꼬리는 두 뒷다리 사이에 끼우는데, 이 그림을 보면 소가 꼬리를 들고 흔들면서 싸우고 있으니 틀렸습니다.”
두 처사는 목동의 말이 옳다고 여기며 미소를 지었다.
고인(古人)은 “농사일은 밭 가는 농부에게 물어보고, 비단 짜는 일이라면 시녀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이 이치는 변하지 않는다.
화가라면 마땅히 자신이 그리는 그림의 모든 세부적인 사항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분명 대송이란 화가는 《투우도》를 그릴 때 실제 투우 장면을 본 게 아니라 자신이 상상해서 그렸을 것이다.
남송(南宋)의 문호 육유(陸遊)는 “책에서 얻은 바는 결국 그 깊이가 얕으니 제대로 알려면 몸소 실천해야 한다(紙上得來終覺淺,絕知此事要躬行)”라고 했다. 즉 상상으로 얻은 것은 그리 믿을 수 없다는 말이다.
세상 사람들은 문제를 바라볼 때 지상담병(紙上談兵)으로 실천이 없어선 안 된다. 결국은 다 자신이 서툰 대가를 치르게 마련이다. 《투우도》란 이 그림이 소 치는 목동에게 무시를 당한 것이 바로 그 실제 사례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697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