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성(馨星)
【정견망】
중국인들이 왜 “덕(德)”을 그렇게 중시하는지, 많은 말이나 표현이 없어도 그 내함을 똑똑히 이해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보기에 “덕(德)”이란 글자 속에는 “진선인(真善忍)” 세 글자가 포함되어 있음을 깨달았는데, 이는 개인의 이해에 불과하지만 중국인들은 그야말로 그 핵심을 아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왜 중국을 신주대지(神州大地)라고 부르는가? “조(祖)”와 “종(宗)”이라는 글자는 중국인들에게 비할 바 없이 깊은 생각과 아득히 먼 동경을 불러일으키는데, 문자 그대로 그리움이다. 하지만 “조종(祖宗)”이란 두 글자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이들이 얼마나 될까?
단순히 글자 모양만 보면 “조(祖)”는 “신(神)”과 유사하지만, 사실 생명의 가장 높은 곳에서 보자면 완전히 다르다. “祖”에서 “且”는 “德”의 “目”과 더 유사하다. 세상 사람들도 ‘조(祖)’와 ‘덕(德)’을 말하지만, 당연히 층층 하늘이 있고, 층층 다른 경지가 있다. 가장 높은 곳의 ‘조(祖)’가 모든 것을 창조했으며, ‘신(神)’, ‘불(佛)’, ‘도(道)’, ‘선(仙)’, ‘인(人)’ 등은 창조된 생명들이다. 따라서 생명은 마땅히 ‘감사하는 마음[感恩]’을 가져야 하며, 이는 단순히 민족의 예절과 전통을 뛰어넘어 생명의 본성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는 ‘생명’이 본래 지닌 우주의 선량(善良)한 특성에서 나온 것이며, 자연스러운 ‘생명’의 상태이자 행동 방식이다.
‘생명’으로서, 만약 ‘감사’의 본성을 잃는다면, 분명 그것은 타락의 시작이다. 즉, 그 어떤 생명이든, 인간 세상에 떨어졌든 아니든, 하늘에 대한 경앙(敬仰)과 신봉(信奉)을 잃는다면 계속해서 미끄러져 내려가 결국에는 도태되거나 소각될 것이다. 생명의 선량한 본성이 없다면 이는 곧 자신을 파괴하는 것으로, ‘조(祖)’를 인정하지 않고 ‘종(宗)’으로 돌아가지 못한다.
‘종(宗)’이라는 글자는 사실 그물의 한 면을 열어놓는 것을 의미하며, 인간 세상에서는 ‘종법(宗法)’이라고 불리는데 즉 사람이 되기 위한 요구를 의미한다. 가장 높은 경지의 ‘종’은 ‘천법(天法)’, ‘천리(天理)’를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조(祖)’는 ‘천(天)’을 의미하는데, 더 높고 더 높고 더 높은 곳으로 가다 보면 결국 진정으로 가리키는 것은 ‘창세주’다.
‘종(宗)’은 ‘법(法)’이라 말할 수 있으며, 더 높은 곳에서는 창세주께서 알려주신 ‘법리(法理)’를 의미한다. 이는 생명의 선량한 본성을 길러내고, 생명이 어떻게 타락과 부패를 피하며, 어떻게 돌아가서 자신을 다시 만드는지 알려준다. 물론 또한 생명의 선악(善惡)에 따라 보응이 있다는 결과를 알려준다. ‘천리(天理)’는 변하지 않으며, ‘천법(天法)’은 모독할 수 없는 것이다. 생명으로서는 선택할 수 있는데 생명의 과거, 현재, 미래는 모두 자신의 선택에 대한 과보(果報)다.
개인적으로 인식하기에 ‘하느님’, ‘천부(天父)’, ‘천주(天主)’, ‘상천(上天)’ 등 세계 각지에서 ‘주신(主神)’을 지칭하는 용어들을 알고보면, 이는 결국 ‘창세주’를 가리킨다.
따라서 인간 세상에서 죄를 기다리는 사람이 어찌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가벼운 죄는 은덕(恩德)으로 다스리는데, 하늘이 ‘은혜를 베푸는’ 것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생명이 ‘은혜를 알고’과 ‘은혜에 감사’함을 이해하고 있는가? 끝없이 추구하고 가지려 하며, 만족을 모르고 무한한 죄업(罪業)을 쌓으며, 명리정(名利情) 속에서 몸부림치며, 서로 싸우고 서로 죽인다. 남의 생명을 무시하고 남이 상처받는 것을 보아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서 오직 개인의 공명(功名)을 이루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구차하게 살아가는데 사실 과거에 선량(善良)했던 자신이 살아 있는지조차 말하기 어렵다.
‘생명’은 사실 ‘존중(尊重)’, ‘존경(尊敬)’, ‘존비(尊卑)’ 등과 서로 연관되어 있다. 고인(古人)은 ‘구오지존(九五之尊)’을 덕행(德行)이 아주 높은 생명을 가리켰는데 즉 성인(聖人)이나 수행인들은 황제도 존중했다. 현대 사회에서 많은 이들에게 ‘쓰레기’로 비난받는 생명은 거의 덕행이 없고, 진심으로 타인을 존중하지 않으며, 오직 공명만을 추구하며, 사람의 ‘인의예지신’을 상실했다. 오직 이기주의를 추구하며 ‘돈’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이는 사실 자신이 자신을 도태시킨 것이다.
부처님의 은혜는 호탕해서 궁우(穹宇)를 밝게 비추니 도도한 속세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해주신 사부님 은혜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0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