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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명(立命)과 안신(安身)

우명(宇明)

【정견망】

현대인들은 “안신입명(安身立命)”을 흔히 사람이 몸을 기댈 곳이 있어야 정신적으로 안정된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하지만 우리는 밤낮 열심히 일하고 물질적인 신체가 더욱 얽매일수록 왜 우리의 정신은 더 공허해지는가?

《장자·응제왕(應帝王)》편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남해의 제왕을 ‘숙(倏)’, 북해의 제왕을 ‘홀(忽)’, 중앙의 제왕을 ‘혼돈(混沌)’이라 한다. 숙과 홀 두 사람이 혼돈의 땅에서 만났다. 혼돈이 아주 선량해서 그들을 아주 잘 대접하자 숙과 홀이 혼돈의 덕을 갚기로 했다.

‘사람은 다 일곱 개의 구멍이 있어 보고 듣고 먹고 숨 쉬는데 혼돈에게만 없으니 시험 삼아 그것을 뚫어주자.’

그래서 날마다 하나씩 구멍을 뚫었는데 이레가 되자 혼돈이 죽고 말았다.”

도가(道家)에 따르면, 혼돈이란 우주와 천지가 열리기 전의 원시 생명의 초기 상태다. 인류 개체의 소우주(小宇宙)와 비교하면, 그것은 생명의 본원, 즉 선천적인 신성(神性)이다. 이처럼 우리 물질 신체란 단지 사상(思想)의 거처일 뿐이며, 신성(神性)이야말로 우리 본원 생명의 진정한 자신이다.

애초 진아(真我)가 이 물질 공간에 왔을 때 필경 형형색색의 사물에 이끌렸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신체란 거처가 편안할 수 있는지는 주로 신성(神性) 자신이 주도 작용을 하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당신의 생각이나 신앙 체계가 더 고층차의 신성(神性)과 어긋난다면, 그럼 육안으로는 일시적으로 볼 수 없지만, 신성에 반하는 적들이 신체 거처로 흡수되어 그것들이 당신의 신체를 차지해 개조하려 할 것이다. 이럴 때 설사 물질이 더 많이 쌓인다 해도, 사람은 전반적으로 불안하고 공허하며 편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사람의 이 일생(一生)은 기나긴 세월의 흐름 속에서 살고 죽음은 찰나에 불과하다. 그것이 이렇게 짧은 이유는 대부분 욕망 때문이다. 그래서 고인(古人)은 심성 수행을 몸을 닦는 필수로 여겼다. 오직 명(命)을 바로 세워야 몸이 편해질 수 있다. 이것이 아마 고인이 신(神)과 소통하는 일부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이처럼 작은 철학적 사유가 종종 위대한 지혜와 연결된다. 신은 이런 문화를 수행자를 통해 우리에게 전달하려 한다. 선량한 사람들의 타고난 신성(神性)을 열어 우리의 진정한 자신을 일깨워 이 물질 신체를 주도하게 한 것이다. 즉, 생생세세 축적된 선덕(善德)을 사용해 우리 자기 소우주의 특성을 승화시켜 대우주의 특성에 동화시켜야만 신(神)의 나라로 돌아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곳이야말로 당신이 진정으로 가고 싶어 하는 당신의 진정한 고향이기 때문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7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