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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재를 털어 많은 사람을 구하고 자손은 대대로 시험에 붙다

안단

【정견망 2025년 11월 14일

중국 고대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7층 부도를 짓는 것보다 낫다. 대강의 뜻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여 쌓은 공덕이 7층 불탑을 세우는 것과 같다는 게 요지이다. 그렇다면 7층 불탑을 세우면 또 얼마나 많은 공덕이 있을까? ‘무량하다’는 말이 있다. 사실, 오래된 불경에도 “백개의 절을 짓는 것이 한 사람을 살리는 것만 못하다”는 기록이 있다.

​한 사람을 살리는 데 이런 공덕이 있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다면? 이러한 무량한 공덕은 세상에서 조금 더 두드러지며, 덕을 심는 사람, 나아가 그 가문과 후손들은 보통 사람들이 얻기 어려운 복을 누릴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래에 있는 이 사람들은 그 가문의 상하와 자손이 여러 세대에 걸쳐 진사에 붙고 장원을 배출할 수 있는데, 그들은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첫 번째는 추태금(鄒泰金)이라는 명나라 선비이다. 숭정 경오년(1630년), 그는 난징으로 향시에 참가하러 갔다. 그때 그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배를 타고 갔다. 진강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강한 바람이 불어 강 위에 많은 배가 뒤집혔고, 배를 탄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졌다. 그러자 추태금은 즉시 자신의 상자를 열고 배에 탄 사람들을 향해 말했다:

“지금 상황이 위급하니, 나는 결코 재물을 아끼지 않겠다. 당신들 물에 들어가 사람을 구해라. 만약 한 명이라도 구해오면 은자 열 냥을 주겠다.”

그러자 옆에 있던 사람들이 다투어 물에 뛰어들어 사람을 구했다. 잠시 후, 물에 빠진 모든 사람이 구조되었다. 추태금의 그 상자에 있던 은도 다 비었다. 당시 인근 금산사에는 오랫동안 수련을 해온 노스님이 있었다. 그는 마침 이를 보고 말했다:

“이 사람에게 큰 덕이 있으니 나는 가도 되겠다.”

말을 마치자 그는 방으로 돌아와 앉아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 해, 추태금은 향시에 합격한 후 집으로 돌아왔고, 다시 금산사를 지나갈 때 노승이 이미 입적한 것을 발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아내는 남자아이를 낳았는데 이름을 추우도라 했다. 청나라 순치 9년(1652년)에 추우도는 장원에 급제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그는 전생에 그 늙은 스님이었다고 말했다.

두 번째는 명나라의 고관 엄눌(嚴訥)(자는 민경敏卿)의 막료인데 그의 성은 서(徐)이다. 어느 해, 강소와 절강 일대에 심각한 수해가 발생했다. 이 서공은 조정에서 재난 구호 소식이 늦어지자, 즉시 상주문을 작성하여 당시 주관 관리였던 엄눌이 황제에게 상주하도록 했다. 엄눌은 섣불리 일을 처리하지 못하고 먼저 사람을 불러 점을 쳤다. 점치는 사람이 그에게 길조라고 말한 후에야 그는 상소를 올렸다. 후에 조정은 곧 재난 구호를 위한 식량과 급료 등 일체의 물자를 내려보내어 많은 이재민을 구했다. 바로 그때 아들 서개법(徐開法)이 태어났다.

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에 한 장교가 변절하여 도적이 되었다. 그는 한 무리를 데리고 수백 명의 양가 부녀자들을 납치하여 서가의 빈 집에 가두고, 서개법에게 간수를 맡겼다. 그러나 도적이 떠난 후, 서개법은 문을 열고 사람들을 보내 그 부녀자들을 모두 집으로 돌려보낸 후, 또다시 자신의 집을 불태웠다. 도둑이 다시 돌아오자 그는 말했다:

“그날 밤 갑자기 집에 불이 나서 사람이 다 타 죽었소.“

도둑은 듣고 화를 내며 갈 수밖에 없었다.

몇 년 후, 서개법의 장남은 순치 기해년 장원에 합격했고, 차남과 삼남은 각각 강희 경술년과 계축년 탐화(주:벼슬의 일종)가 되었다. 일가 삼형제가 모두 ‘삼정갑’에 합격한 것은 그곳에서 드문 일이며, 모두가 이것이 조상 대대로의 덕을 쌓은 결과라고 말했다. 이처럼 곤산삼서는 한때 미담으로 회자됐다. 그 후, 서간학의 다섯 아들들도 모두 진사에 합격했다.

​청나라 초기, 또 다른 감옥의 일을 맡은 관리인 진리(陳理) (자: 후암厚庵)도 반군 도적의 손에서 수천 명의 부인을 구해냈다. 당시 광서(廣西)성 평락(平樂)부에서 근무하다 세상이 어지러워 귀향길에 올랐다. 도중에 도적들이 소란을 피웠지만 그는 가족을 데리고 무사히 고향으로 돌아왔다.

​나중에 그의 두 아들은 모두 진사에 합격하여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되었다. 다섯 명의 손자 중 한 명은 어질고 선량한 성격으로 천거되어 관리가 되었고, 나머지 네 명은 모두 옹정 원년(1723년)에 같이 거인이 되었으며, 이후 각지에서 근무했다. 증손 네 사람도 모두 급제하여 조정에 들어가 관리가 되었다. 현손도 무장이 되어 적지 않은 벼슬을 받았다. 현지 사람들은 진씨 가문이 정말 대대로 혁혁하다고 말했다.

​사람의 일생 복, 녹, 수명은 기본적으로 정해져 있으며, 반드시 인연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권세에 빌붙거나 어느 순간의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전생이나 조상, 부모 세대가 어느 정도 덕행을 쌓아올린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적선한 집안에 반드시 경사가 있다”는 말은 단순한 상서로운 말이 아니라 실질적인 인과관계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4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