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
【정견망】
고대의 유명한 도가 수련인 허손(許遜)은 세상을 떠날 때 대낮에 승천하여 도교의 4대 천사 중 한 명으로 존경받았으며, 세칭으로는 허진군, 허천사 혹은 허정양이라고 불렸다. 그러나 그가 날아오를 때 한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따라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필자는 여기서 이 모자(母子)의 이야기를 소개한다.
당시 예장(豫章 지금의 장시성 난창)에는 우모와 그의 아들 우열이라는 한 쌍의 모자가 있었다. 우모는 출가하여 도를 닦는 대신 사회에서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도가에 대한 존경과 수련하려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자주 말했다. “나는 천 년 전에 서산에 거주했었고, 세상의 고단한 일들을 잠시 쉴 수 있을 때, 나는 그곳으로 돌아가 도를 수련하고 본래의 곳으로 돌아갈 것이다.”
우모의 아들은 우열(자는 도미) 이며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를 매우 공경했으며 가난한 가정 형편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생활에 필요한 것을 공양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으며 부족함이 없었고 마을 사람들은 그의 효행을 높이 평가했다.
진 무제 시기에 예장 사람 오맹과 허손은 도법을 전파하기 시작했으며, 그들은 홍애산에서 수련하고 법단을 설립하여 전도를 시작했다. 후에 오맹이 죽자 허손은 부적으로 좋은 일을 하는 방식으로 전도를 시작하여 세상의 인심을 구했다, 부근의 사람들은 모두 그를 믿고 받들었다,
허손은 가끔 집에 돌아왔는데 사람들은 그가 용을 타고 왕래하는 것을 보았다, 거리가 멀지만 지척에 있는 것처럼, 짧은 시간에 두 곳을 왕복할 수 있었다. 이 기적을 보고 믿는 사람이 더욱 많아졌다. 우모와 우열도 그의 신자가 되었고, 매우 경건하고 충성심이 강했다.
우열은 허손을 진심으로 믿었고, 순박하고 충후하여 허손은 그를 매우 신뢰했다. 때때로 임무를 맡기면 그는 최선을 다해 완수했다. 우모와 우열은 허손 스승을 모시기 위해 허손의 거처에서 북동쪽으로 80여 보 떨어진 곳에 초가집을 지었다. 그들 모자는 아침저녁으로 허순을 공손히 섬기며, 태도가 공손하고 경건하며 장중하고 엄숙하여 결코 게으름을 피운 적이 없었다. 우모는 종종 산 아래에서 꽃과 과일을 따서 산에 올라가 허손에게 바쳤다. 허손은 그녀의 진심 어린 마음과 수련을 통해 신선이 되려는 확고한 포부에 감사하며, 늘 그들 모자가 신선이 되도록 제도하려 했다.
후에 허손의 공덕이 원만해지자, 태상노군은 옥진상공 최문자와 태원진경 하구중에게 허손을 “구주도선대사 고명주자”로 임명하도록 명령하여 백일비승하여 신선이 되게 하였다. 허손은 비승하기 전에 우모와 우열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황천 상제님의 명령을 받들어 인간 세상을 떠나 하늘로 갈 것이다. 이 세상에 오래 머물 수 없으니, 너희들은 나 이후에 신선이 되어 나중에 하늘에서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모와 우열은 허손과 한동안 헤어져 있다가 훗날 하늘에서 다시 만날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몹시 슬퍼하며 경건하고 간곡하게 허손과 함께 가자고 부탁했습니다, 허손은 잠시 고려 후에 그들의 요구에 동의했다, 즉시 영약을 내려 그들에게 먹이고 진결을 직접 전수했다, 그래서 그날 오시에 그들은 허손과 함께 백일비승했다. 우모가 물을 긷는 데 사용한 우물은 줄곧 보존되어 있었고, 마을 사람들은 우모와 우열이 항상 검소했기 때문에 너무 많이 장식할 수 없었다.
기록에 따르면 우모와 우열은 마지막 비승 전에야 영약과 진결을 얻었다. 필자는 우모와 우열에게는 영약과 진결이 매우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신선이 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사실 그들이 허손을 굳게 믿고 존경하는 마음, 숭경하는 마음, 그리고 확고부동한 존경하는 마음이었다.
오늘날의 수련자들에게는 스승님과 대법에 대한 믿음과 존경과 숭배의 마음이 확고해야 하며, 이것이 중요한 기초이다. 물론 다른 측면도 사부님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5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