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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한 발 화살로 세 하천을 넘다 (상)

앙악(仰岳)

​【정견망】

오늘날 삭주(朔州) 지역에는 이런 민요가 전해진다. “발은 안문관(雁門關)을 딛고, 손은 담자산(擔子山)을 나르고, 화살은 대청산(大青山)까지 쏘았네….” 이 노래는 북송(北宋)의 영웅 양연소(楊延昭)가 신전(神箭)으로 적을 물리쳤다는 전설을 찬양하는 것이다.

당시 양연소는 삼관(三關)을 지키며 요(遙)나라 군대를 격파하고, 요나라 사령관를 압박해 협상에 나오게 했다. 요나라 측에서는 “한 화살 거리” 만큼 후퇴하기로 결정했는데, 기껏해야 몇백 미터에 불과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양연소의 신력(神力)으로 쏜 화살이 200여 리(裏) 떨어진 대청산까지 날아갔다.

한번 쏜 화살이 대청산까지 날아갔다는 전설 외에도, 현지에서는 양연소가 신전으로 세 하천(三川)을 쏜 이야기가 전해진다.

도마관(倒馬關)에서 한번 싸운 후, 양연소는 일부 부대를 주둔시켰다. 비록 이 관구(關口 중요한 요새)를 얻긴 했지만, 전투 중 전마(戰馬)가 병들어 싸울 수 없게 되자 어쩔 수 없이 후방으로 보내야했다. 그는 새로운 말을 고르려 했지만 아무리 다녀도 마음에 드는 말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이 없이 어떻게 요나라 철기(鐵騎)와 맞설 수 있겠는가?

양연소는 며칠 동안 언덕 위에서 아래 강물을 바라보며 울적했다. 그때 갑자기 잔잔한 강물 위로 파도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는데 마치 한 마리 백룡(白龍)이 물속에서 노니는 것 같았다. 파도가 점점 가까워지자 자세히 살펴보니 한 필의 백마(白馬)였다.

이 백마는 파도를 타고 강변으로 올라온 후, 재빨리 산을 오르니, 잠시 후 양연소 앞에 도착했다. 이 말은 키가 크고 덩치가 컸으며, 흰 털에 기둥처럼 두껍고 튼튼한 네 다리, 그릇처럼 큰 발굽, 새하얀 갈기가 흔들리고, 눈빛은 기개로 가득 차 그야말로 살아 있는 백룡 같았다.

백마는 양연소 앞에 순순히 멈춰 섰다. 양연소는 이 장대한 말을 보고 한눈에 매료되었다. 그는 안장을 가져와 말에 올라탔다. 말은 마치 바람과 구름을 타고 달리듯 빠르고 안정적으로 그를 태우고 산 위를 달렸다. 양연소는 시승 후 매우 만족스러워하며 기쁨에 넘쳤다.

바로 그때 산 아래에서 함성과 욕설이 들려왔다. 요나라 장수 한창(韓昌)이 다시 그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다! 그는 지난번 패배 후 분개했고, 며칠 후 기병대를 이끌고 자신의 설욕을 복수할 준비를 했다.

한창이 소리쳤다. “양연소, 배짱만 있다면 산에서 내려와 나와 한번 싸우자! 계속 산만 지키고 있다면 어찌 영웅이라 할 수 있느냐? 오늘 우리 한번 자웅을 가려보자!”

양연소가 대답했다.

“한창, 만약 오늘 또 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

한창이 말했다. “만약 내가 패배하면 화살을 세 번 쏜 만큼의 땅을 양보하겠다. 하지만 네가 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

양연소가 대답했다.

“만약 내가 지면 성안으로 퇴각하겠다!”

“좋다! 약속을 했으니 꼭 지켜야 한다!”

이 말을 끝으로 양연소는 병사들과 함께 산을 내려왔다. 한창은 어리둥절했다! 양연소가 언제 저런 백마를 손에 넣었단 말인가?

하지만 이미 말을 끝낸 그는 어쩔 수 없이 양연소와 맞섰다. 두 사람은 수백 합을 겨뤘지만, 누구도 이기지 못했다. 갑자기 한창의 군마, 사후수(獅吼獸)의 발굽이 길가 돌 틈에 걸렸다. 양연소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창을 겨누었지만, 한창의 목에 바짝 붙어 멈췄다.

명대 《양가부세대충용통속연의(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 삽화 – ‘육랑이 조정 대신을 구하러 돌아오다’. 공유영역)

그는 창을 든 채 물었다.

“한창, 이제 패배를 인정하느냐?”

한창이 대답했다.

“내 말의 발굽이 돌틈에 끼어 네가 틈을 탄 것이지, 네 능력이 아니다.”

양연소가 대답했다.

“좋다, 준비되면 다시 하자!”

한창이 말에서 내려 병사들을 시켜 곤경에서 벗어난 후 다시 양연소와 싸웠다. 두 사람이 계속 싸우는데 전투 도중 양연소가 말과 하나가 되어 양가창법(楊家槍法)의 절기를 선보이며 한창의 급소를 직접 공격하자 눈이 어지러워진 한창이 일순간 피하지 못하고 투구가 맞아떨어졌다. 그는 깜짝 놀라 온몸에 식은땀을 흘리며 몸을 돌려 달아났다.

양연소는 창을 든 채 그를 추격하며 “한창, 이번에는 마땅히 패배를 인정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외쳤다.

한창은 “누가 네가 굴복한단 말이냐?!”라고 반박하면서 다시 몸을 돌려 양연소와 싸웠다. 두 사람이, 몇 차례 더 공수를 주고받았다. 이번에 양연소가 일부러 허점을 보이면서 몸을 돌려 달아났다. 한창이 창을 찌르자 양연소가 절기인 말과 함께 몸을 돌려 창을 쓰는 “회마창법(回馬槍法)”을 시전하자 한창이 버티지 못하고 말에서 떨어져 땅바닥에 쓰러졌다.

양연소가 창으로 한창의 몸을 누르며 “한창, 이번에는 패배를 인정해야지!”라고 물었다.

한창은 “아, 인정한다! 이번에는 내가 졌으니 약속한 대로 화살 세 번 쏜 거리만큼 물러나겠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황제가 사용하던 어용 활. 이 활은 청대 건륭제가 사냥할 때 사용했던 것으로, 뿔 표면에 만주어와 한자가 새겨져 있다. (공유영역)

양연소는 “내가 첫 화살을 쏠 테니 보거라.”라고 말했다.

그는 말을 타고 산으로 올라갔다. 정상에 도착한 그는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장궁(長弓)을 꺼내 특별히 만든 깃털 화살을 걸고 호흡을 조절한 다음 활을 끝까지 당겨 첫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유성처럼 북쪽 지평선을 향해 날아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산 아래 있던 한창은 공포에 질려 “화살이 어디로 갔지?”라고 계속 물었다. 양연소는 웃으며 “수십 킬로미터 떨어진 산꼭대기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창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직접 양연소와 함께 일행을 이끌고 화살을 찾으러 나섰다. 두 기병이 수십 킬로미터를 달려간 후, 화살이 반쯤 꽂힌 큰 바위산을 발견했다. 그들이 그 산을 살펴보러 갔을 때, 한창이 물었다. “어떻게 이 화살이 당신이 쏜 것이라 말할 수 있는가?”

양연소가 말했다.

“내 화살에는 내 이름이 새겨져 있네. 직접 확인해 보게.”

한창이 보니 화살 위에 “양육랑(楊六郎 역주: 양 씨 가문에서 항렬상 여섯 번째 아들이란 뜻으로 양연소를 가리킨다.)”이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어 깜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그는 처음에는 화살 한 발이 기껏해야 2~3리, 세 발 합해 기껏해야 10리(약 4km)밖에 날아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양연소가 쏜 화살은 무려 50리 넘게 날아간 것이다.

양연소가 이어서 말했다.

“이제 첫 번째 화살을 찾았으니 두 번째 화살을 쏘겠네.”

명(明) 대진(戴進)의 ‘화살 시험’(공유영역)

한창이 황급히 말했다.

“속임수는 쓰지 마라. 우리가 각자 최전선에 병사들을 보내 보게 하자. 화살이 날아가는 것을 봐야만 한다.”

양연소는 어쩔 수 없이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은 북쪽 길을 따라 경기병 몇 명을 꽤 오랫동안 배치했다. 한창이 마침내 양연소에게 두 번째 화살을 쏘도록 허락했다.

반나절 후, 양측 병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양연소는 두 번째 화살을 쏘았다. 이 두 번째 화살 역시 “휙” 소리를 내며 북쪽으로 날아가더니 시야에서 사라졌다. 한참 후, 최전선에 있던 병사들이 두 번째 화살이 내원천(淶源川), 울현천(蔚縣川), 단보천(團堡川)이란 세 개의 큰 하천을 건넜다고 보고했다. (주 1)

한창이 이 말을 듣고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고 즉시 자신의 결정을 후회하며 말했다.

“안 된다! 이 일을 소 태후(蕭太后)께 어떻게 설명한단 말이냐?”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시 군대를 이끌고 양연소와 싸웠다.

(계속)

주 1: 저자가 직접 조사한 바에 따르면, 양연소가 삼천 건너 활을 쏜 지역은 하북성 보정시 내원현(淶源縣)에서 장가구(張家口)시 천보촌(川堡村)으로 그 거리는 약 200km에 달한다.

참고자료:
《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明朝 佚名 著 秦淮墨客校閱
《楊六郎威鎮三關口》河北人民出版社1984年出版 趙福和 李巨發 等人 搜集
《楊家將外傳》河北少年兒童出版社 1986年出版 趙雲雁 搜集整理

(에포크타임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53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