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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연심 (21): 도를 묻다

요연(了緣)

【정견망】

오공이 마침내 진전(真傳)을 얻고 조사가 수행의 심법(心法)을 전하니, 정기신(精기神)을 수련하여 단(丹)을 맺고, 장생의 도체(道體)를 만드는 등인데, 이런 것들은 도가(道家)의 것이라 불이법문(不二法門)의 문제가 있어 여기서 깊이 파고들진 않겠다.

이때 근원(根源)을 설파하자, 오공은 심령(心靈)에 복이 이르러 구결(口訣)을 확실히 기억했다. 그는 깊은 은혜에 감사드리며 조사에게 절을 올리고 뒷문으로 나가 살펴보았다. 동방의 하늘은 미세하게 희어졌고, 서쪽 길에는 금광(金光)이 크게 드러났다. 길조였다! 이는 손오공이 이미 금광대도(金光大道)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도(道)를 증명할 곳이 서방임을 예시한 것이다. 장차 일어날 일의 복선을 미리 깔아둔 것이다.

오공은 좋은 일을 얻고는 원래 길을 되돌아가서 보니 룸메이트들은 여전히 곤히 잠들어 있다. 아! 자신이 진전을 얻을 때 사형(師兄)들은 오히려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세인(世人)은 미혹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얼마나 많은 기연(機緣)을 속절없이 흘려보내는가! 이 증도(證道)의 꽃다운 시기가 안타깝구나. 이에 자신의 침상을 흔들며 크게 외쳤다.

“날이 밝았어요! 날이 밝았어! 일어나세요!”

사람들이 일어났지만, 손오공이 이미 몰래 진전을 얻어 하룻밤 사이에 초범탈속(超凡脫俗)했음을 알지 못했다. 그들은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단순한 일상을 보내며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여전히 큰 포부 없이 그저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기를 바라고 있다. 이렇게 하루가 가고, 한 해가 가고 또 한 해가 가니 일생을 사는 것이 마치 하루와 같다. 이들은 모두 오공보다 먼저 입문했지만, 중문 밖에서 배회하며 한 치도 얻지 못했고, 평생 안문의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땅히 진전을 얻지 못할 운명이었으니, 이것이 바로 차이다.

오공은 은밀히 호흡을 고르며 심법(心法)을 수련했고, 눈 깜짝할 사이에 3년이 흘렀다. 실력이 많이 자랐지만, 그는 여전히 참아내며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다. 어쨌든 사형들과 똑같이 3년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은 여전히 그랬지만, 그는 오히려 근기를 처음 이루고 대도(大道)를 이룰 희망이 생겼다. 남에게 알리면 좋지 않은데 사람과 비교하면 사람이 분통이 터지는 법이다!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불공평함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만약 누군가 알고 자극을 받아 격분하여 오공에게 이빨을 드러내면 어쩔 것인가. 아직 조심하는 것이 좋다. 세월이 평온하고 너도 좋고 나도 좋으면 얼마나 좋은가, 왜 소란을 자초하는가.

사실 오공이 좋은 것을 얻었을 때, 조사 역시 그에게 외부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진 않았다. 하지만 원숭이는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이치를 알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손오공의 비범한 점이다. 어쩌면 조사가 일부러 말하지 않고, 몰래 손오공의 심성(心性)을 관찰했을 수도 있다. 만약 흉금이 작아서 가망이 없다면, 오공은 언제든지 도태되어 쫓겨날 수 있었다. 믿기지 않는다면 뒤편을 보라. 손오공이 겨우 소나무로 변신했을 뿐인데, 조사는 즉시 나타나 그를 사문(師門)에서 쫓아냈다. 이런 놀라운 효율을 보였는데, 조사가 그를 무시하고 제멋대로 자라도록 내버려두었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사부가 도제(徒弟)를 이끄는 것은 늘 관심을 갖고 주시하는 것이 아닌가! 내버려두는 것은 고험(考驗)이고, 관여하는 것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방할(棒喝)하는 것이다. 의발(衣鉢)을 전수받았다면 반드시 대도(大道)의 모습대로 성장해야 한다. 잘못 성장하면 사부가 책임 추궁을 당한다. 사부의 마음이 넓은 것은 겉으로 보이는 현상일 뿐, 진전(真傳) 제자의 일사일념(一思一念)을 주시해야 하며, 길을 잘못 걸으면 제때 방할해주어야 한다. 제자가 가망이 없어 사부에게 폐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도가(道家)의 진전은 보통 한 대(代)에 오직 한 제자에게만 전하며, 그나마 제도하는 것은 여전히 부원신(副元神)이었다. 제자가 많으면 사부도 이끌 수 없다. 도제 하나를 이끄는 것도 마치 유모가 아이를 기르는 것처럼 온갖 마음을 써야 하니, 아주 골치 아프다.

이렇게 3년을 풀어놓아 오공이 작은 성취를 이룰 때까지 기다린 후, 조사는 다시 보좌(寶座)에 올라 대중에게 설법했다. 그가 이야기한 것은 공안(公案)과 비유였고, 논한 것은 겉모습과 껍데기였다. 보라, 먼저 영양가 없는 형식적인 말들을 하며 분위기를 조성했다. 마치 오공을 위해 특별히 도(道)를 설하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러다 갑자기 화제를 바꿔 묻는다.

“오공은 어디 있느냐?”

원숭이가 호명되자 재빨리 앞으로 나가 무릎을 꿇고 먼저 공경하는 마음을 바친다.

조사는 뻔히 알면서도 오공이 무엇을 수련하는지 모르는 척 묻는다.

오공이 대답했다.

“제자는 요즈음 법성(法性)이 제법 통했고, 근원도 점차 견고해졌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네가 법성에 통하고 근원을 깨달았다면 이미 신체(神體)에 주입된 것이다. 다만 삼재(三災)의 무서움을 방비해야 한다.”

대도(大道)를 참오(參悟)하려면, 먼저 도를 묻는 마음이 견정해야 하는데, 대도의 변두리를 만졌다면 본원(本源)으로 돌아가는 길에 들어선 것이다. 오행(五行) 중에 있지 않고 삼계(三界) 밖으로 나가려면, 오행을 초월하고 삼계의 극한을 초월해 타파한 후에야 설 수 있다.

오행은 인생의 생사윤회(生死輪廻)를 주관하고, 삼계는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다. 뛰쳐나가려면 층층의 인피(人皮)를 벗고 근골(根骨)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사지(死地)에 놓인 후에야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 도심(道心)은 반드시 천 번 백 번 단련을 거쳐 조금의 흔들림이 없을 만큼 강대해져야 한다.

도를 묻는 것은 자신의 심의(心意)를 확고히 하는 것이니 곧 명심(明心)이다. 그다음 겹겹의 마난(魔難) 속에서 제대로 해내는 이것이 바로 견성(見性)이다. 명심견성(明心見性)이란 개지개혜(開智開慧)해서 반본귀진(返本歸真)하는 초석이다.

오공이 이 말을 듣고 한참을 생각하다 말했다.

“사부님 말씀은 틀렸습니다. 저는 늘 도(道)가 높고 덕(德)이 융성하면 하늘과 수명이 같아지고, 수화(水火)가 서로 조화를 이뤄 온갖 병이 생기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삼재의 무서움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공은 자신이 도(道)를 묻고 마음을 단련해, 선(善)을 근본으로 삼고, 더 높이 수련할수록 덕행(德行)이 더 커짐에도 좋은 보답을 얻어 장생하지 못하고 어찌하여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조사가 의혹을 풀어주었다.

“이것은 일반적인 도가 아니라, 하늘과 땅의 조화(造化)를 빼앗고 해와 달의 현기(玄機)를 침범하는 것이다. 단(丹)이 이루어진 후에는 귀신도 용납하기 어렵다…”

알고 보니 수련 역시 아주 위험한 일이었다. 삼계의 제약 범위 내에서 수련하면 당연히 좋은 사람에게 좋은 보답이 따르고, 이번 생에 복보를 다 쓰지 못하면 또 다음 생에 지니고 전생해서 여전히 복을 누리고 소모할 수 있다. 다만 수련하고 또 수련해도 여전히 바둑판의 바둑알일 뿐이며, 이를 움직이는 것은 천도(天道)이다. 모든 운명은 천도(天道)에 의해 배치되는데, 결국 인과응보에 불과할 뿐이다. 장생(長生)하는 자는 신선[仙]이다. 당신이 천도(天道)를 뛰어넘어 생사윤회를 초월하고, 바둑알로 만족하지 않고 그 바둑을 두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그럼 곧 천도를 타파해야 한다. 그것은 곧 천도를 거스르는 역천(逆天)의 행위이다.

삼계(三界)의 이치가 반대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왜냐하면 이곳은 우주 고층에서 잘못을 저질러 쫓겨 내려온 생명들을 수용하는 감옥이자 우주의 쓰레기장이기 때문이다. 비록 삼계 생명도 수련할 순 있지만, 쓰레기를 재활용하는 것 역시 오직 삼계 내로 제한된다. 오염원을 상계(上界)로 가져갈 수는 없다. 삼계는 인류 생존에 필요한 지구, 지구를 둘러싼 순환 체계를 포함하는데 심지어 전반 은하계가 삼계에 속한다. 이는 우주 고급 생명에 의해 강제적으로 격리된 지대(地帶)다. 본래 충분히 순수하지 못하고 흠이 점점 많아져 층층이 방출된 생명들이 생명의 본원인 그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기란 불가능한 것이다.

왜냐하면 염색 공장에서 거꾸로 염색되지 않은 흰 천이 나올 수 없듯이, 누구든 인류 사회라는 이 거대한 염색 항아리에 들어와서 물들지 않고 본래의 모습을 나타내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금 역사는 이미 말법 시기의 십악독세(十惡毒世)에 이르렀고, 인심이 옛날 같지 않으며 도덕이 패괴(敗壞)했다. 인류는 이미 바닥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고, 업력에 물들어 엉망진창이 되어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린 지 오래다. 나빠짐[壞]의 끝은 멸(滅)이다.

멸은 종점이자 또한 시작점이며, 본색(本色)을 조금이라도 보존해, 멸의 과정에서 본심의 선량함을 일깨우고, 악을 버리고 선을 따르며 신성(神性)을 각성해, 본원으로 돌아가기를 발원하는 것이 바로 정화(淨化)다. 그러므로 물극필반(物極必反)이라 대법(大法)이 널리 전해진 것이다. 바로 이 성주괴멸(成住壞滅)의 마지막 단계에서 사람에게 한 차례 기회를 주어, 멸망 속에서 절망을 딛고 다시 태어나게 했다. 생명 본원 속의 선(善)을 각성해, 법을 얻어 수련하며, 근기(根基)를 다시 만들면 정법제자(正法弟子)가 된다.

이는 바로 창세주(創世主)의 자비로, 만고(萬古)의 기연(機緣)을 주신 것이다. 사람을 지옥에서 건져 올려, 자신의 가장 순수한 생명 본원으로 씻어주셨으며, 줄곧 수련에서 가호해, 각종 마난을 뚫고 지나가 금강(金剛)과 같은 의지를 만들어, 중생을 일깨우고, 성숙으로 나아가 신우주의 세계 속에서 원만하게 하셨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7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