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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연소 전기】 “반호는 탁하고 양호는 맑으니” 하늘이 충신과 간신을 명확히 가르다

앙악

【정견뉴스】

양육랑. (천외객/정견망)

용정(龍亭) 공원은 북송(北宋) 황궁의 유적지로 현재 중국 하남성 개봉시 용정구 내에 위치한다. 이곳 정원은 대송(大宋) 궁전의 웅혼한 기개와 황실 원림의 수려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공원 내의 양가호(楊家湖)와 반가호(潘家湖)는 돌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주 보고 있는데, 그 아름다운 풍광은 사람들을 도취시켜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이 두 호수는 서로 멀지 않고 물길이 서로 통하지만, 한 곳은 맑고 한 곳은 탁하다. 처음 이곳을 찾은 여행객들은 어째서 이런 기묘한 현상이 있는지 신기해하곤 한다. 현지 가이드는 이 두 호수 배후에 현지에서 천 년 동안 전해 내려오는 신기한 이야기가 있다고 말한다.

일곱 아들이 나가 하나만 돌아온 양가장의 진충보국(盡忠報國)

송 왕조가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 송 태조 조광윤이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고, 동생인 태종이 즉위한 후 북방을 수복해 형이 못다 이룬 유업을 완수하고자 했다. 그가 북한(北漢)을 평정하고 원래 북한의 명장이었던 양업(楊業) 일가를 영입하면서 송군의 실력이 크게 증강되었고, 연운(燕雲) 16주를 수복하려는 계획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후 송태종은 요(遼) 성종이 즉위한 초기에 정권이 불안정한 틈을 타 친정을 결심하고, 전국력을 기울여 세 갈래 나눠 북벌을 감행했다. 양가장 병사들은 서로(西路)의 주력으로서 가는 곳마다 파죽지세로 승리했다. 이때 요나라를 섭정하던 소태후(蕭太后)가 송태종을 금사탄으로 유인해 담판하자는 계책을 세워 송태종과 양가장 장수들을 한꺼번에 잡으려 했다.

양업은 속임수가 있을까 우려해 태종과 용모가 닮은 장남인 양대랑(楊大郎)을 송태종으로 변장시켜 연회에 참석하게 했고, 소태후 역시 천경왕(天慶王)에게 자신을 대신해 금사탄으로 가게 했다. 그러나 담판 도중 양대랑은 천경왕에게 정체가 탄로 났고, 요병은 즉시 송군을 포위했다. 양가장 여러 아들이 분전했으나 요나라 병사의 수가 워낙 많아 대랑, 이랑, 삼랑이 차례로 전사하고 사랑, 오랑은 실종되었다. 육랑 양연소(杨延昭)는 송태종을 보호하며 후퇴해 성공적으로 포위망을 뚫고 나왔다.

육랑이 위험에서 탈출한 후 부친과 칠랑을 구하러 가겠다고 청했으나, 적군이 너무 많아 결국 송군은 포위에 빠졌다. 양업은 두 아들에게 구원병을 청하러 떠나게 하고 자신은 남은 병사들과 함께 진가곡(陳家谷)을 지켰다.

칠랑은 안문관으로 돌아가 총사령관인 반미[潘美 자가 인미(仁美)]에게 구원을 요청했다. 그러나 반미는 예전에 칠랑이 자신의 아들을 때려죽인 일로 사사로운 원한을 품고 악독한 흉계를 세워 칠랑을 살해했다. 양업은 구원병 없이 고립되어 포로가 되어 욕을 당하지 않으려 이릉(李陵)의 비에 머리를 부딪쳐 자살함으로써 순국했다. 결국 양가장 장령 중 오직 양연소 한 사람만이 포위를 뚫고 조정으로 돌아오니, 출전 전의 예언인 “일곱 아들이 나가 여섯째만 돌아온다”는 말이 응험되었다.

원래 출전하기 직전 양업이 일곱 아들과 오대산에 올라 불공을 드리고 방장 지총(智聰) 선사를 친견했을 때, 지총 선사는 양가장 장수들이 이번 행차에서 반드시 큰 재난을 당할 것을 예견했다. 하지만 천기를 누설할 수 없어 단지 갑옷을 벗고 귀농하여 은거하라고만 권했다. 그러나 양업은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이 컸기에 이번 전쟁으로 분란이 종식되기를 희망했다. 지총 선사는 간곡하게 “금사탄 쌍룡회에 일곱 아들이 나가 여섯째만 돌아올 것이다[金沙灘雙龍會,七子去六子回]”라는 게어를 남기고 양업에게 몸조심하라며 산 아래로 배웅했다.

양업은 하산 후 이 사실을 부인(사태군佘太君)에게 알리고 아들들을 거느리고 전장에 나갔다. 부인은 처음에는 여섯 아들이 돌아오고 한 아들만 돌아오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결국 양연소가 귀부한 후에야 “일곱 아들이 나가 여섯째만 돌아온다”는 의미가 양육랑 한 사람만이 무사히 돌아온다는 뜻임을 깨닫게 되었다.

[역주: “七子去六子回”를 직역하면 “일곱 아들이 나가 여섯 아들이 돌아온다”인데 고문에서 육자(六子)는 여섯째 아들로도 풀 수 있다. 즉 “일곱 아들이 나가 여섯째 아들이 돌아온다”가 된다.]

하늘의 뜻으로 충신과 간신을 명백히 가르다

양업의 부인은 남편과 아들들의 부음을 듣고 비분강개하여 양연소와 함께 대궐에 들어가 소송을 제기하고 충직한고 선량한 이를 음해한 반미를 처벌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이때 반미는 이미 양연소가 귀경해 고발할 것을 알고, 양업이 공을 노리고 진격했다 패배했다고 먼저 상소했으며 더 나아가 양업 부자가 반란을 꾀했다고 무고했다.

반미는 자신의 딸이 송태종의 총애를 받는 비인 점을 이용해 조정에 당파를 형성한 지 오래였다. 당시 조정 관리의 절반 이상이 반미를 지지했고, 양가장을 지지하는 이는 팔현왕(八賢王)과 어진 재상 구준(寇準) 등 몇몇 대신뿐이었다. 반미는 민간에도 양가장 장수들이 모반했다는 유언비어를 대량으로 퍼뜨려 조정과 민간이 모두 의론이 분분했다. 누가 충신이고 누가 간신인지 분변하기 어려워 송태종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명 구영(仇英)의 《청명상하도(清明上河圖)》 부분도. (국립고궁박물관 제공)

어느 날 태종이 양 부인과 양연소 모자를 불러 말했다.

“짐이 경들의 구함을 입어 험지에서 탈출할 수 있었소. 나는 결코 양가장 장수들이 적과 소통해 반역했다고 믿지 않소. 하지만 반미를 법대로 처단하려면 확곡한 물증이 있어야 하오. 그렇지 않으면 천하 사람들의 입을 막기 어렵소. 일주일 내에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면 그를 단죄하기 어려우니 이 사건은 이대로 끝낼 수밖에 없소.”

그러나 반미는 이미 증거를 모두 인멸했고, 전선의 장수들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사람들은 모두 그의 권세를 두려워해서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

양 부인과 양연소는 참담하게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양연소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어머님, 더 이상 걱정하지 마십시오. 저는 하늘의 뜻이 착한 사람을 저버리지 않으리라 믿습니다. 억울함은 반드시 씻길 것입니다. 저 혼자 천파부(天波府)에 남아 하늘에 기도할 테니, 어머니와 형수님들은 잠시 하동(河東) 고향 집으로 내려가 계십시오.” 양연소는 가족을 배웅한 뒤 홀로 불당(佛堂)에 정좌하여 부친과 형들의 원한을 씻어달라고 기도했다.

다음 날 개봉에 갑자기 광풍이 불고 폭우가 쏟아졌다. 며칠간 계속된 비로 북방의 황하가 범람하여 제방이 터졌고, 수도인 개봉이 물바다가 되었다. 그런데 이 홍수는 마치 눈이 달린 듯했다. 반미의 저택이 가장 먼저 물에 잠겼고 그 당여들의 저택도 피해가 심각했다. 반면 팔현왕과 구준의 저택은 피해가 거의 없었다.

반부(潘府 반미의 저택)와 거리 하나를 사이에 둔 양가(楊家)의 천파부도 바다가 되었으나, 양가 사람들은 이미 떠난 뒤라 손실이 거의 없었다. 신기한 점은 천파의 양부(楊府 양가 저택)를 엄몰시킨 물은 바닥이 보일 정도로 투명했으나, 맞은편 반부(潘府 반미의 저택)는 더럽기 그지없는 냄새나는 물이었다. 반부와 양부는 이렇게 한쪽은 맑고 한쪽은 탁해 선명한 대비를 이루었다.

개봉 백성들이 이 신기한 광경을 보고 입을 모아 말했다. “하늘이 신적을 내려 양가장 장수들의 결백을 돌려주셨다!” 전선의 장수들도 이 소식을 듣고 용기를 내어 증언에 나섰고, 반미가 양가장 장수들을 모함해 해쳤다고 고발했다. 이로 인해 송태종은 반미와 그 당여들을 파직시키는 한편, 양업을 기리는 사당을 짓고 천파 양부를 다시 수축하라는 교지를 내렸다.

개봉 현지 백성들 사이에서는 다음과 같은 민요가 전해졌다.

반호(潘胡)는 탁하고 양호(楊湖)는 맑으니,
양가는 대대로 진충보국했네.
양호는 맑고 반호는 탁하니,
간사한 적이 충량한 신하를 모해했구나.

潘湖濁,楊湖清,
楊家世代精忠保國;
楊湖清,潘湖混,
奸賊謀害忠良臣。

개봉 백성들은 양호의 물이 맑고 투명한 것은 양가장 장수들의 고결한 품덕을 상징하고, 반호의 물이 탁한 것은 간신 반미의 더러운 인격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하늘의 뜻으로 충신과 간신을 구별했다는 이 이야기는 현지에서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고 있다.

참고 사료:
《양가장 목계영 전설》, 베이징 미술촬영출판사 2015년 출판, 고설송 수집 정리
《양가부세대충용통속연의(楊家府世代忠勇通俗演義)》, 명조 작자 미상, 진회묵객 교열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31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