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희(洪熙)
【정견망】
《삼국연의》에는 수경(水鏡)선생이란 신비로운 인물이 등장한다. 그는 미래를 내다보는 예지력이 있어 천하 대세를 손바닥 보듯 꿰뚫고 있었다. 그는 유비가 훗날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기세를 얻을 것이라 예언했으며, 기재(奇才) 제갈량을 추천하면서 “주군은 얻었으나 때를 얻지 못한다”는 한마디로 핵심을 찔렀다. 후인의 평가에 따르면 만약 수경 선생이 세상에 나왔다면 삼국시대의 역사가 분명히 바뀌었을 거라고 한다.
유표(劉表)가 유비를 양양(襄陽)의 모임에 초대해 채모(蔡瑁)가 군사를 이끌고 그를 추살하려 했다. 다행히 보마(寶馬)인 적로(的盧)가 밝은 주인주(明主)을 알아보고 넓은 단계(檀溪)를 훌쩍 뛰어넘어 추격병을 따돌렸다. 유비가 말을 달려가던 중 소를 타고 피리를 부는 한 아이를 만났다. 초면임에도 목동은 유비의 자(字)인 “유현덕(劉玄德)”이라 불러 그를 알아보았다.
유비는 이처럼 외진 마을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이가 있음에 크게 놀랐다.
목동의 말에 따르면 그의 사부인 사마휘(司馬徽)가 일러준 것이라 했다. 사마휘(?-208)는 실제 역사 인물로 후한 말의 명사이며 사람들은 그를 수경선생이라 불렀다. 그는 도학(道學), 경학(經學), 기문(奇門)과 병법에 정통했다. 박학다식하고 사람을 알아보는 안목이 뛰어나 당시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다.
《삼국연의》에서 수경선생은 목동에게 요사이 유비가 올 것이라 말하며 그의 대략적인 용모를 일러주고 당세의 영웅이라 칭했다. 목동은 사부의 당부대로 유비를 단번에 알아본 것이다. 목동의 안내로 유비가 어느 저택 앞에 이르러 중문에서 들려오는 아름다운 거문고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그러자 거문고 소리가 뚝 그치더니 한 사람이 웃으며 집 안에서 나왔는데, 그가 바로 수경선생이었다.
이 수경선생은 참으로 기인(奇人)이었다. 그는 거문고 소리 중에 갑자기 높은 음조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집 밖에 영웅이 엿듣고 있음을 알아채고 마중을 나온 것이다.
수경선생이 처음 등장할 때 나관중은 “소나무 같은 체격에 학의 골격이며 풍채가 비범하다”(松形鶴骨 器宇不凡)는 여덟 글자로 그를 묘사했다. 마치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세외고인(世外高人) 같았다. 유비가 수경을 보고 황급히 절을 올리자 수경은 “공께서 오늘 다행히 큰 화를 면하셨구료!”라고 말한다. 유비가 오늘 큰 재난을 당했으나 다행히 흉한 일을 길함으로 바꾸었음을 미리 알고 있었던 것이다.
소설 제35회의 묘사를 보면 수경선생은 앞날을 내다보는 능력뿐 아니라 특이공능(特異功能)까지 갖추어 유비의 모습과 그가 겪은 고난을 미리 보았음을 알 수 있다.
유비는 본래 자신이 피난 중임을 숨기려 했으나 수경이 한마디로 갈파한다.
“숨길 필요 없습니다, 오늘 분명히 난을 피해 이곳까지 왔을 것이오.”
유비는 그제야 쫓겨 온 사실을 털어놓으며 자신의 운명이 기박함을 한탄했다. 수경선생은 그를 위로하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다만 당신 주변에 유능한 사람이 없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유비는 주변에 관우, 장비, 조운 같은 무장과 손건, 미축 같은 사람들이 있다고 여겼으나, 수경은 유비에게 “경륜 있고 세상을 구할 재주”를 지닌 인물이 부족하고 보았다.
동요 해석 “용이 하늘로 날아오르리”
이 대화에서 수경은 유비에게 천하의 기재인 복룡(伏龍)과 봉추(鳳雛)를 추천했고, 또 한 가지 예언을 풀이해 주며 유비가 훗날 “천명을 받아” “용이 하늘로 날아오를” 것이라고 단언했다. 당시 인생의 밑바닥에서 낙담해 있던 유비는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 절을 올리며 감사를 표시했다.
수경이 언급한 동요는 건안 초기에 형주 일대에 퍼졌던 것이다. 동요치고는 내용이 자못 심상치 않다. “8, 9년 사이에 쇠하기 시작하여 13년에 이르면 남는 것이 없으리라. 결국 천명은 돌아갈 곳이 있으니 진흙 속의 잠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리라.[八九年間始欲衰,至十三年無孑遺。到頭天命有所歸,泥中蟠龍向天飛]”
“8, 9년 사이에 쇠하기 시작한다”는 말은 건안(建安) 8, 9년경 유표의 전처가 죽고 후처인 채 부인이 전처 소생의 아들을 후계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유씨 가문에 혼란이 생기는 것을 뜻한다. “13년에 남는 것이 없다”는 말은 유표가 건안 13년에 죽은 뒤 문신과 무신들이 뿔뿔이 흩어질 것임을 예견한 것이다. 그리고 “천명이 돌아갈 곳이 있으니 진흙 속의 잠룡이 하늘로 날아오르리라”가 바로 유비와 대응한다는 풀이였다.
와룡에 대해 “주군은 얻지만 때는 얻지 못한다”고 말해
수경선생은 “복룡과 봉추 중 한 명만 얻어도 천하를 평안케 할 수 있다”고 했다. 삼국 이야기 속에서 제갈량은 문무를 겸비하고 계책이 뛰어났다. 위로는 천문을 알고 아래로는 지리를 알며 지혜와 충절, 모략(謀略)을 한몸에 두루 갖춘 그야말로 발군의 지혜를 지닌 인물이었다. 재간이든, 군사든 정치든 어떤 면에서든 출중한 인재였다. 제갈량이란 기재는 삼국시대를 환히 밝히기에 충분했다.
제갈량은 자가 공명(孔明)이며 사람들이 ‘와룡(臥龍)’선생이라 불렀다. 훗날 유비는 복룡이 바로 제갈공명임을 알고 예물을 갖추어 그를 방문하려 했다. 마침 수경 선생이 신야(新野)에 친구 서서(徐庶)를 만나러 왔다가 서서가 이미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 유비에게 공명을 찾아가 보라고 다시 권했다. 수경은 제갈량이 자신을 관중(管仲)과 악의(樂毅)에 비유하지만, 자신은 그를 주나라의 강자아(姜子牙 강태공)나 한나라의 장량(張良)에 비견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유비와 관우 등은 이 말을 듣고 매우 놀랐다.
수경은 유비와 작별하기 전 하늘을 우러러 크게 웃으며 “와룡이 주군은 얻었으나 때를 얻지 못했으니 안타깝구나!”라는 말을 남겼다. 제갈량이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것에 대해 깊은 탄식을 내뱉은 것이다.
유비는 삼고초려 끝에 소원대로 제갈량을 모셔왔다. 유비가 기반을 잡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절 제갈량의 합류는 금상첨화였다. 제갈량은 출사 후 유비를 도와 형주, 익주, 한중(漢中)을 공략했다. 이 때문에 수경선생은 제갈량이 유비를 만난 것을 주군은 얻었다고 평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때를 얻지 못했다고 했을까.
때를 얻지 못한 제갈량
당시의 형세를 보면 조조가 이미 북방을 평정하여 대세가 기울어 있었다. 관도대전 이후 조위(曹魏)의 대군은 파죽지세로 북방의 군웅들을 소탕했다. 그의 수하에는 사마의, 순욱, 곽가, 하후돈, 허저, 장료 등 기라성 같은 문무백관이 있었다. 조조는 건안 2년부터 16년 사이 여포, 원술, 원소 등을 차례로 물리치며 북방을 통일했다.
또 동오(東吳)는 지리적 이점을 살려 장강이라는 천험(天險)의 요새를 끼고 있었으며, 손견, 손책, 손권 삼대에 걸친 통치로 인재가 풍부했다. 주유, 육손, 노숙, 장소 등의 보좌로 손권은 강동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었다.
여러 영웅들을 비교해보면 유비는 당시 신야(新野)라는 작은 땅에 근거지를 두고 무장이라고는 관우, 장비, 조운뿐이었으며 책사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유비는 천하의 혼란을 보고 한실(漢室)을 부흥시켜 나라를 안정시키겠다는 뜻을 품었다. 융중으로 제갈량을 찾아가던 중 그는 제갈량의 절친한 친구 최주평(崔州平)을 만났다.
치세에서 난세로 가는 천시는 거스를 수 없어
두 사람이 시국을 논할 때 최주평은 예부터 치세와 난세는 일정하지 않다고 보았다. 유방이 기의(起義)해 무도한 자들을 벤 후 난세에서 치세로 접어들었고 200년간 태평성대를 누리다 왕망의 찬탈로 다시 치세에서 난세가 되었다. 이때 광무제(光武帝)의 중흥으로 한실을 재건하여 다시 치세가 되었으나, 다시 200년이 흐른 지금은 천하에 전쟁이 끊이지 않는 난세의 시작이었다. 최주평은 이런 난세에 제갈량을 불러내어 세상을 바로잡으려 하는 유비의 노력이 헛수고가 될까 우려했다. 천시(天時)가 이와 같고 정해진 운수가 이와 같으니 사람이 억지로 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비는 한마음으로 한실을 일으켜 세우고자 천수와 정해진 운명에 맡기지 않고 간절한 마음으로 제갈량을 청했다. 당시 판세는 조조가 이미 천하의 절반을 차지했고 손권의 동오가 또 강남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토와 인재, 인구 모든 면에서 유비는 열악했다. 촉나라는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해야 했다. 유비는 221년 황제에 올랐으나 의형제들의 복수를 위해 오나라를 공격하다 육손에게 패했다. 결국 유비는 백제성에서 병사했고 죽을 때까지 천하 통일의 꿈을 이루지 못했다.
삼국 간의 끊임없는 정벌은 최주평이 말한 것처럼 치세에서 난세로 가는 천시에 부합했다. 수경선생이 제갈량에 대해 “때를 얻지 못했다”고 말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제갈량은 난세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알아봐준 유비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한실 부흥에 온 힘을 쏟으며 국궁진췌(鞠躬盡瘁) 난세에 충절을 연기하는 전설을 남겼다.
(근거: 《삼국연의》 제35회, 37회)
원문위치: https://www.epochtimes.com/b5/21/5/31/n12989678.ht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