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효
【정견망】
중공(중국 공산당) 무신론의 영향으로 현재 중국 대륙의 많은 사람은 ‘선악에는 응보가 따른다’는 하늘의 이치를 믿지 않으며, 심지어 욕망과 이익을 위해 살인조차 서슴지 않는다. 지난 9월 대륙의 배우 위멍룽(于朦朧)을 살해한 혐의를 받는 십여 명의 범인 역시 응보가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믿든 믿지 않든, 응보는 결국 닥쳐오기 마련이다.
청나라 중기, 어느 마을에 시기방(施其方)이라는 자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천둥번개가 치는 가운데 그는 논밭 한가운데서 벼락을 맞아 죽었는데, 진흙탕 속에 무릎을 꿇은 채였다. 목격자들의 말에 따르면 시기방은 머리가 산발이 되고 눈이 튀어나왔으며, 혀가 입 밖으로 몇 치나 빠져나와 있었고 얼굴은 칠흑같이 변해 무척이나 끔찍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그의 등은 이미 벼락에 맞아 타버렸고, 유황으로 쓴 듯한 두 줄의 글자가 희미하게 보였으나 아무도 그 글자가 무엇인지 알아보지 못했다.
남편이 벼락을 맞아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시기방의 아내가 급히 달려와 울며 말했다. “당신이 지금 죽는 것은 이미 늦은 일이오.” 아내는 왜 그렇게 말했을까? 시기방이 대체 어떤 양심에 어긋나는 일을 저질렀던 것일까?
원래 작년에 성이 진(陳) 씨인 40대 마을 주민이 있었는데, 집이 매우 가난했다. 그는 집에 남은 귀중한 옷가지를 시장에 내다 팔아 쌀을 사고, 남은 돈으로는 장사를 해서 처자식을 먹여 살릴 계획이었다. 진 씨는 길을 가던중 시기방을 만났다. 시기방은 그가 혼자 짐을 지고 가는 것을 보고는 그것을 강탈하려 마음먹었다. 시기방은 처음에 짐을 대신 들어주겠다며 가식적으로 접근했으나 거절당하자 억지로 짐을 뺏었다. 진 씨가 저항하자 시기방은 칼로 그를 찔러 죽인 뒤 시신을 돌무더기 사이에 던져버렸다.
진 씨의 집에는 전처의 어머니(장모), 젊은 후처, 그리고 부양해야 할 어린 자녀 둘이 있었다. 그들은 진 씨가 돌아오지 않자 매우 근심하며 이웃집에서 쌀을 빌려 겨우 끼니를 때웠다.
다음 날, 진 씨의 아내는 온몸에 오한이 들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밤이 되자 그녀는 꿈속에서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강도를 당해 죽은 비참한 상황을 울며 호소했다. 아내는 깜짝 놀라 깨어났고 꿈속 장면이 생생했다. 이튿날 그녀는 사람을 시켜 남편의 시신을 찾게 했고, 과연 돌무더기 언덕에서 시신을 발견했다. 치명상은 바로 칼에 찔린 상처였다. 당시 아내는 관가에 고발할 힘조차 없어 이웃들에게 간절히 부탁해 남편을 서둘러 장사 지냈다.
진 씨가 죽은 후 가계는 더욱 어려워져 하루 한 끼조차 잇기 힘들었다. 장모는 슬픔에 잠겨 길을 가다 발을 헛디뎌 넘어졌고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어린 딸을 민며느리로 팔아버렸다. 그 후 아내는 지나친 슬픔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젖먹이 아들은 먹일 사람이 없어 곧 굶어 죽었다.
한 집안의 네 식구가 연달아 목숨을 잃은 이 처참한 비극의 시작은 바로 시기방이었다. 처음에 그는 사람을 죽인 후 다른 곳으로 도망쳤으나, 진 씨 가족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돌아왔다. 그가 돌아온 후, 진 씨 일가족의 원혼이 그의 몸에 붙어 시기방은 큰 병을 얻었다. 투병 중 그는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자신이 저지른 악행을 하나하나 실토했다. 그의 아내는 그 말을 듣고 그가 가져왔던 장물들을 대조해 보았는데, 과연 모든 것이 일치했다.
시기방의 정신이 맑아졌을 때, 아내는 그의 사악한 마음을 원망하며 자주 그를 꾸짖었다. 시기방은 오히려 적반하장으로 아내에게 주먹질과 발길질을 일삼았다. 이제 그가 벼락을 맞아 죽자, 아내가 명확히 말하지 않았음에도 마을 사람들 사이에는 인과응보에 대한 이야기가 파다했다.
더욱 기이한 일은 시기방을 장사지낸 후에도 벌어졌다. 그의 무덤과 관이 다시 한번 벼락을 맞아 부서졌고, 시신이 밖으로 드러나 들개의 먹이가 되었다. 그의 아내는 곧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999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