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운
【정견망】
고전 기록인 《송창록(松窗錄)》에 따르면, 당나라 태위 이덕유(李德裕)가 병주종사(并州從事)로 부임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을 때, 스스로를 ‘왕산인’이라 칭하는 한 이인(異士)이 찾아왔다. 두 사람이 마주 앉자 왕산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나는 미래의 일을 예견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이덕유는 처음에 이를 예사로운 기담으로 치부하며 크게 개의치 않았다.
왕산인은 곧 이덕유에게 잠든 척할 것을 청하고는, 사람을 시켜 종이와 붓, 향수 등을 준비하게 했다. 이어 휘장을 내리고 실내를 정적에 잠기게 한 뒤, 왕산인은 이덕유와 함께 안채 맞은편 서쪽 작은 방에 앉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왕산인이 “이제 확인해 보아도 된다”라고 일렀다. 책상 위 종이에는 정갈한 주석과 함께 여덟 글자가 크게 쓰여 있었다.
“위극인신, 수육십사(位極人臣, 壽六十四).”
(지위는 신하로서 최고에 이르고, 천수는 예순넷이다.)
글자가 나타난 후 왕산인은 즉시 일어나 작별을 고했다. 그는 그 길로 자취를 감추어 다시는 나타나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회창(會昌) 연간에 이르러, 이덕유는 과연 세 차례나 봉해지며 일품 관직에 올라 권세가 당대를 호령했다. 그러나 이후 해남(海南)으로 유배되어 생을 마감했는데, 세상을 떠난 해가 바로 예순네 살이었다. 왕산인의 예언과 조금의 오차도 없이 완벽히 일치한 것이다.
이로 보건대 왕산인은 참으로 이덕유의 수명을 꿰뚫어 보고 있었다. 본래 생사를 예견하는 것은 천기를 누설하는 일이기에 흔히 스스로에게 화를 부르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의문이 생긴다. 왕산인은 왜 굳이 이덕유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가? 그는 명예를 구하지도, 이익을 쫓지도 않았으며 겉으로 보기에 아무런 도모하는 바가 없었다.
세상 사람들은 흔히 ‘명예’와 ‘이익’의 관점에서 동기를 추측하곤 한다. 그리하여 이 두 가지 범주를 벗어나면 그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역사 속에는 개인의 득실이 아니라 특정한 사명을 띠고 세상에 온 이들이 분명 존재한다. 수많은 중대 역사 사건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더 큰 인연과 질서를 위해 준비한 길인 경우가 많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중요한 인물이 사명을 순조롭게 완수할 수 있도록 암암리에 돕는 ‘고수’나 ‘이인’이 나타나기 마련이다. 마치 《제공전》에서 제공을 보좌하는 노방장이나, 영화 《다시 신이 되다》에서 광명왕의 사명을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를 지키는 도인과 아내의 역할과도 같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왕산인 역시 그러한 인물이었을 것이다. 그는 결정적인 순간에 이덕유를 깨우쳐 인생의 종말을 경계하게 함으로써 행실을 자성하게 했다. 동시에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명명백백한 하늘의 안배가 있으며 신의 뜻이 허망한 것이 아님을 믿게 하려 한 것이다. 그의 행보는 개인적 목적이 아니라, 자신에게 부여된 사명에 순응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16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