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정(堅定)
【정견망】
선물하는 것은 상당히 골치 아픈 일이다. 많은 사람이 이 문제로 고민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선물을 받을 대상에 따라 어떤 것이 적당할지, 가격은 높거나 낮지 않은지, 유행이 지난 물건은 아닌지, 상대방이 싫어하거나 거절하지는 않을지 등 참으로 복잡하다. 쇼핑 앱을 열어보면 품목은 또 왜 이렇게 많은지. 잠시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30분이 훌쩍 지나가고, 눈은 어지러우며 머릿속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사실 선물은 정말 깊이 있는 ‘학문’이다. 단순히 상대의 기호를 맞추는 문제가 아니라 중국 전통의 가치관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선물을 하고 싶다면 옛사람의 지혜를 빌려야 할 듯하다.
선진(先秦) 시기 중국인은 이미 대면 예절을 매우 중시했다. 손님이 주인을 처음 방문할 때는 반드시 소개인의 추천을 거쳐야 했으며, 그 후 예물을 지참하고 집을 찾아갔다. 물론 사회적 지위에 따라 지참하는 예물에도 규정이 있었다.
《예기(禮記)》에 따르면 “무릇 폐백은 천자는 창(鬯), 제후는 규(圭), 경(卿)은 새끼양(羔), 대부(大夫)는 기러기(雁), 선비(士)는 꿩(雉), 서인은 집오리(匹)로 한다”라고 했다. 이 폐백(摯)이 바로 만날 때 지참하는 선물을 뜻한다. 선비들의 만남을 예로 들면 꿩을 예물로 사용했는데, 손님이 두 손으로 주인에게 전달하고 세 번의 사양을 거친 뒤 주인이 최종적으로 선물을 받았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 주인은 지난번 받은 예물을 가지고 손님을 답방해야 했는데, 이것이 복견례(復見禮)다. 오고 가는 예우 속에 예물은 다시 원주인에게 돌아갔다. 실제로 선물은 전달되지 않았지만 주인과 손님의 관계는 이로 인해 가까워졌다. 즉, 선물의 목적은 정말 상대에게 무언가를 주는 것이 아니라 예의라는 제도하에서 서로 존중을 표시하는 방식이었다. 시대가 변함에 따라 선물의 종류도 많아져서 시문(詩文)을 증정하거나 특산물이나 의복을 보내기도 했고 직접 돈과 식량을 보내기도 했다.
군자의 사귐은 물처럼 담담하다고 했다. 사실 옛사람들도 보내온 선물을 무조건 다 받지는 않았다. 받는 이가 어른일 경우 두 번 사양한 이후에도 받지 않으면 주인이 정말로 선물을 받을 뜻이 없음을 나타냈고, 주는 이도 더는 고집하지 않았다. 이러한 규칙 아래에서 받는 이의 번거로움도 많이 해소되었다.
물론 억지로 보내는 경우도 있었다. 청대 건륭 연간에 엽존인(葉存仁)이 하남(河南) 순무로 있었는데, 그는 관직 생활이 청렴하여 백성들의 사랑을 깊이 받았다. 그가 관직을 떠나 승진해 갈 때 부하들이 배를 띄워 전송했는데, 배 안에는 그를 위해 준비한 두둑한 예물이 있었다. 엽존인은 끝내 이를 거절하며 《거례시(拒禮詩)–선물을 거절하는 시》 한 수를 남겨 사양했다.
달 밝고 바람 맑은 한밤중,
조그만 배로 전송하며 일부러 늦추는구나.
전송하는 마음 감사하나 선물은 돌려보내니,
남이 아니라 자신이 아는 게 두렵기 때문이오!
月白風清夜半時
扁舟相送故遲遲
感君相送還君贈
不畏人知畏己知
사실 선물을 보내는 것 외에도 타인을 방문하기 전에는 명함과 같은 배첩(拜帖)을 써야 했는데, 이를 알자(謁刺)나 투자(投刺)로도 불렸다. 쉽게 말해 방문 편지를 쓰는 것이다. 편지에는 자신의 상황과 방문 사유, 축복과 찬사를 담았다. 시선(詩仙) 이백(李白)도 시문으로 고관대작들을 찾아가 천거를 기대한 적이 있다. 그는 서신에서 한조종(韓朝宗)을 크게 칭송하며 이렇게 썼다.
“제가 듣기로 천하의 선비들이 모여 말하기를 ‘만호후(萬戶侯)가 되는 것보다 한형주(韓荊州)를 한 번 아는 것이 소원이다’라고 합니다. 어찌 사람으로 하여금 이토록 사모하게 한단 말입니까! 이는 주공(周公)의 기풍을 지녀 선비들을 극진히 대접하니, 천하의 호걸들이 달려와 귀부하고 한 번 용문에 오르면 명성이 열 배나 높아지기 때문이 아니겠습니까!” (《여한형주서(與韓荊州書)》)
선물에서 중요한 것은 귀한 것인지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다. 당 정관 연간 운남(雲南) 토사 면씨(緬氏)가 당왕(唐王)에 대한 존경을 표하기 위해 면백고(緬伯高)라는 사람을 시켜 예물과 귀한 백조 한 마리를 가지고 장안에 입조하게 했다. 일행이 호북(湖北) 면양호(沔陽湖) 가에 이르렀을 때, 백조가 물을 마시는 틈을 타 날아가 버렸다. 면백고가 급히 쫓아갔으나 백조의 깃털 하나만 잡았을 뿐이었다. 그는 절망하여 땅을 치며 통곡했으나, 당 태종이 성군임을 알고 사명을 계속 완수하기로 결심했다. 그는 질 좋은 비단으로 그 거위 깃털을 싸고 시 한 수를 덧붙였다.
“백조를 당 조정(唐朝)에 바치려니
산은 높고 길은 멀구나.
면양호에서 보물을 잃고
땅에 엎드려 통곡하네.
위로 당 천자께 아뢰오니
면백고를 용서하소서.
선물은 가벼우나 정은 무거우니
천 리 길에 거위 깃털을 보내나이다.”
태종 황제는 이 시를 읽고 과연 그를 탓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선물을 받고 면백고를 장안(長安)에 한동안 머물게 했다.
역사와 전통 이야기는 우리에게 말해주고 있다. 선물은 물건 자체가 얼마나 귀중한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는 이가 상대에게 얼마나 진실한지, 마음에서 우러나온 선의(善意)와 경의(敬意)가 있는지에 달려 있다. 만약 도움을 구하거나 관계를 맺기 위해 선물을 한다면 그것은 물질 교환일 뿐이며, 진정한 ‘예(禮)’의 영혼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때 선물하는 사람은 얻고자 하는 마음과 득실을 따지는 마음 때문에 당연히 생각할수록 골치가 아파질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8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