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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현모(賢母) 이야기

이흥(李興)

【정견망】

1. 방경백의 어머니

청하(淸河) 사람 방애친(房愛親)의 아내 최씨(崔氏)는 같은 군 사람 최원손(崔元孫)의 딸이다. 그녀는 성품이 엄명하고 품행이 고결했으며, 많은 서적과 전기를 읽어 박학다식했다. 그녀의 두 아들 경백(景伯)과 경선(景先)은 모두 그녀가 직접 경서의 의리를 전수했다. 경백과 경선의 학업과 품행은 모두 우수하여 당대의 명사(名士)가 되었다.

방경백이 청하태수(淸河太守)를 지낼 때, 매번 의문나는 사건에 부딪히면 자주 먼저 어머니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패구(貝丘)에 한 백성이 있었는데, 그의 아들들이 모두 불효하여 관부(官府)에서 이 일을 조사해 처벌하려 했다. 방경백은 이 일로 슬퍼하며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고했다.

최씨가 말했다. “내가 듣기에 ‘듣는 것이 보는 것만 못하다’고 했다. 산골 백성들이 예의 교육을 받지 못했으니 어찌 나무랄 수 있겠느냐? 그들의 모친을 불러와 나와 함께 생활하게 하거라. 그리고 그 아들들을 네 곁에 머물게 해서, 네가 나를 어떻게 모시는지 보게 한다면 아마 그들이 스스로 허물을 고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경백은 그들의 어머니를 모셔왔고, 최씨는 그녀와 한 침상에서 자고 함께 밥을 먹었다. 경백은 어머니를 모심에 정성을 다하지 않음이 없었으며, 그 아들들은 당 아래 서서 이를 지켜보았다.

열흘이 채 지나지 않아 그들은 모두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가기를 청했다.

최 씨가 말했다.

“이때 그들이 비록 얼굴에는 부끄러운 기색이 있으나 마음속으로도 부끄러운지는 알 수 없으니, 마땅히 그들을 계속 이곳에 머물게 해야 한다.”

이렇게 모두 20여 일을 지내자, 아들들이 머리를 조아려 피가 날 정도였고 그들의 어머니 역시 울면서 집으로 돌아가기를 청하니 그제야 허락했다. 결국 이 아들들은 모두 원근에 이름난 효자가 되었다.

최씨는 이처럼 견식과 기개가 있어 타인을 권면할 수 있었으며, 후에 천수를 누리고 편안히 세상을 떠났다.

(《위서(魏書)·열녀열전 제80》)

2. 정선과의 어머니

수나라 때 청백리 정선과의 어머니는 청하 최언목(崔彦穆)의 딸이다. 그녀는 정성(鄭誠)에게 시집가서 선과(善果)를 낳았다. 정성이 위형(尉迥)을 토벌할 때 전쟁터에서 전사하자, 최씨는 20대 나이에 과부가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재가시키려 하자, 최씨는 선과를 품에 안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정군(鄭君)께서 비록 전사하셨으나 다행히 이 아들이 있습니다. 아들을 버리는 것은 자애롭지 못한 것이요, 죽은 자를 배반하는 것은 예법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차라리 귀를 자르고 머리카락을 깎아 마음을 밝히겠습니다. 예제를 어기고 자애를 저버리는 일은 감히 명을 따를 수 없습니다.”

정선과는 아버지가 조정을 위해 전사했기에 어려서부터 무덕군공(武德郡公), 자사(刺史), 태수(太守) 등에 봉해졌다.

정선과의 어머니는 현숙하고 개명하며 절조가 있었고, 많은 문헌과 사서를 읽어 다스리는 법에 통달했다. 매번 선과가 나가서 일을 처리할 때면 어머니는 늘 침상에 단정히 앉아 휘장 뒤에서 그를 관찰했다. 그가 사리를 분석하고 판단하는 것이 이치에 부합한다는 말을 들으면, 돌아온 후 매우 기뻐하며 그를 앉히고 웃으며 대화했다.

만약 일 처리가 부당하거나 함부로 화를 내면, 어머니는 집으로 돌아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며 온종일 음식을 먹지 않았다. 선과는 침상 앞에 무릎을 꿇고 감히 일어나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제야 일어나 그에게 말했다.

“내 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네 가문을 대신해 부끄러워하는 것이다. 네 아버지는 충성스럽고 근면한 분으로, 관직에 있을 때 청렴하게 직무를 다하며 사적인 일을 돌보지 않다가 결국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셨다. 나 역시 네가 그분의 뜻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랐다. 너는 어린 나이에 고아가 되었고 나는 단지 과부에 불과할 뿐이라, 자애로움은 있으나 위엄이 없어 너로 하여금 예의와 훈계를 깨닫게 하지 못했으니 어찌 국가의 대업을 짊어질 수 있겠느냐? 너는 어릴 때부터 조상의 덕을 이어받아 지위가 백작에 이르렀는데, 이것이 어찌 네 스스로 얻은 것이겠느냐? 어찌 이런 일을 생각지 않고 멋대로 화를 내며, 마음속으로 오만하고 즐길 것만 생각하여 나라의 큰일을 망치느냐! 안으로는 가풍을 망치거나 관직을 잃는 것이요, 밖으로는 국가의 법도를 해치고 죄악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내가 죽는 날, 무슨 면목으로 황천에서 네 조상님들을 뵙겠느냐?”

정씨 어머니는 자주 실을 잣고 베를 짰으며 밤이 깊어서야 잠자리에 들었다.

선과가 말했다.

“아들이 작위를 받고 나라를 세웠으며 이미 관직이 3품에 이르러 봉록이 충분한데, 어머니께서는 왜 이토록 고생하십니까?”

어머니가 대답했다.

“아아! 네가 이미 다 컸기에 천하의 도리를 아는 줄 알았더니, 오늘 네 말을 들으니 아직 깨닫지 못했구나. 너의 지금 이 직위와 봉록은 네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얻어준 것이다. 너는 마땅히 재물을 친척들에게 나누어주어 네 아버지의 은혜로 삼아야 한다. 어찌 처자식이 이런 혜택을 독점하여 자기의 재산과 지위로 삼을 수 있겠느냐! 하물며 실과 마를 짜는 것은 여인의 본분이니 위로는 황후로부터 아래로는 사대부의 아내에 이르기까지 각자 규정이 있다. 만약 길쌈을 버린다면 그것은 교만하고 사치하며 방탕한 것이다. 내가 비록 예제(禮制)를 다 알지는 못하나 어찌 스스로 내 명성을 망치겠느냐?”

정선과의 어머니는 과부가 된 후부터 연고와 분을 바르지 않았고 늘 거친 삼베옷을 입었다. 성품이 검소해서 제사를 지내거나 손님을 대접하는 것이 아니면 술과 고기를 함부로 앞에 차리지 않았다. 조용한 거처에서 단정한 생활을 하며 함부로 문밖을 나가지 않았다. 자신이 직접 만든 것이나 장원에서 생산된 것, 혹은 봉록과 하사품으로 얻은 것이 아니면 집안에 들여놓지 못하게 했다.

정선과는 여러 주와 군의 장관을 지내면서 늘 자기 집의 음식을 가져다 관아에서 먹었다. 관청에서 제공하는 물건은 어머니가 모두 허락하지 않았으므로, 전부 관아의 건물을 수리하거나 하급 관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어머니의 교육 아래 선과는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여 청렴한 관리로 칭송받았다. 황제가 어사대부(御史大夫) 장형(張衡)을 보내 그를 위로하게 했는데, 조사 결과 그의 정적이 천하 제일로 평가되었다. 황제는 그를 도성으로 불러 광록경(光祿卿)이란 직책을 수여했다.

(《수서(隋書)·열녀열전 제45》)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6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