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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의 왕 루이 14세——프랑스를 휩쓴 션윈 열풍으로부터

원산(遠山)

【정견망】

머리말

‘발레의 왕’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는 프랑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일 뿐만 아니라, 서양 고전무용 체계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다. 그의 추진력 아래 발레는 궁정 오락에서 벗어나 규범화와 제도화를 거쳤고, 마침내 서양 고전 예술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그런데 고전 발레를 잉태한 바로 이 땅에서, 중국 고전무용을 핵심으로 하고 전통 중화문화 부흥을 사명으로 하는 션윈예술단이 최근 몇 년 사이 프랑스 무대에 고요히 모습을 드러냈다. 동서양의 두 고전무용 체계가 프랑스에서 만나 대화하는 모습은 참으로 의미심장한 현대 문화의 한 장면을 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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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필자가 우연히 페이스북에서 한 프랑스 친구의 게시물을 보았을 때 일련의 숫자들이 즉시 시선을 사로잡았다. 뉴욕 션윈(神韻)예술단의 2026년 세계 순회공연은 프랑스 15개 도시를 횡단하며 약 100회에 달하는 공연을 펼쳐, 관객 약 25만 명을 동원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내용이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이번 순회공연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프랑스 전역에서 티켓 예매 열풍이 불었다는 사실이다. 9개 도시의 총 17만 장의 티켓이 매진되었으며, 심지어 2027년 공연 티켓조차 벌써 1만 5천 장이 선예약되었다.

현재 전 세계 공연 예술 시장이 여전히 침체된 배경 속에서,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흥행의 기적이라 할 만하다.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중국 전통문화를 사랑하고 중국 고전무용을 전문 핵심으로 하는 젊은이들로 구성된 션윈예술단이, 서양 패션과 예술의 고지로 여겨지는 프랑스에서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고 주류 관객들의 열렬한 추앙을 빠르게 얻어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상은 단순한 상업적 성공을 넘어 선명한 문화적 의미를 드러낸다.

중국 고전무용과 발레는 각각 동서양의 독립적이고 완전한 두 고전 무용 체계를 대표한다. 그리고 서양 고전 발레가 규범을 확립하고 발전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의 통치 시기에 완성되었다. 후세에 발레의 선구자를 논할 때 거의 예외 없이 이 국왕을 언급한다. 그의 추진력 덕분에 발레는 비로소 독립된 예술 형식으로 나아가는 결정적인 첫걸음을 뗐기 때문이다.

1667년 <루이 14세 기념 메달>: 한쪽 면은 루이 14세의 측면상, 다른 쪽 면은 대지를 비추는 태양신을 표현.

춤을 사랑한 소년 루이

1638년 9월 5일, 어린 루이 14세가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났다. 파리 시는 이를 축하하기 위해 사흘 동안 축제를 열었다. 왜 이토록 성대한 축제를 했을까? 그의 부친 루이 13세와 오스트리아 출신의 안 왕비가 결혼한 지 20년이 넘도록 자식이 없어 프랑스인들이 애를 태웠기 때문이다. 그들이 마침내 고대하던 왕실 후계자를 맞이했으니 어찌 기쁘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불과 몇 년 뒤 루이 13세가 세상을 떠나면서 겨우 다섯 살이었던 어린 루이 14세가 프랑스의 새로운 통치자가 되었다.

그러나 루이 14세의 유년 시절은 평탄하지 않았다. 그가 열 살 되던 해, 파리를 중심으로 한 ‘프롱드의 난’이 프랑스 전역에서 일어나 왕권에 도전했다. 이후 끔찍한 내전이 5년 가까이 지속되었고, 그 사이 어린 루이는 폭동 속에서 두 번이나 파리를 탈출해야 했다. 가장 비참할 때는 빈 성의 차가운 짚더미 위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정치적 동요는 어린 루이에게 큰 정신적 트라우마를 남겼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아예 왕궁을 파리 밖으로 옮겨 파리 남서쪽 교외에 거대한 규모의 베르사유 궁전을 건립했다. 그는 지방의 봉건 귀족들을 베르사유 궁전에 모여 살게 함으로써 프랑스 전체 관료 기구를 자신의 주변으로 집중시켰다.

하지만 문제가 뒤따랐다. 어떻게 하면 이 고분고분하지 않은 귀족들이 기꺼이 왕권의 지고무상함을 인정하게 만들 것인가? 루이 14세가 내놓은 답은 예상 밖이었지만 매우 효과적이었다. 바로 ‘춤 추는 것’, 즉 발레였다.

8세 때의 루이 14세

17세기 유럽에서 무용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그것은 신분 언어였으며 귀족의 수양과 사회적 계급의 상징이었다. 귀족 자제들은 규범적이고 우아한 춤사위를 통해 자신의 교양과 품격을 보여주어야 했다. 섭정 왕후였던 안은 이 이치를 잘 알고 있었기에, 왕자를 위해 당대 최고의 무용 교사를 초빙했고 궁정 무도회에서 직접 무대에 오르도록 격려했다.

루이 14세의 무용 재능은 금세 두각을 나타냈다. 춤에 대한 그의 열정은 또래 귀족들을 훨씬 능가했으며 그 근면함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다. 그의 스승 중 한 명은 훗날 고전 발레의 규범을 확립한 핵심 인물인 피에르 보샹(Pierre Beauchamp)이었다. 보샹의 엄격한 훈련 아래 젊은 국왕은 복잡하고 정교한 무용 체계를 습득했을 뿐만 아니라, 상상을 초월하는 신체 조절력과 무대 표현력을 길렀다. 그의 기량은 전문 무용수에 뒤지지 않을 만큼 숙련되어 있었다.

청소년기에 접어들며 루이 14세는 춤에 더욱 매료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춤을 추었고 마술(馬術) 훈련 후에도 춤을 추었으며, 저녁 식사 후에도 반복해서 연습하여 때로는 심야까지 이어졌다. 의사들은 그의 건강 상태를 염려했으나 역사는 가장 강력한 대답을 내놓았다. 루이 14세는 72년 110일 동안 재위하며 기록이 확인된 군주 중 가장 오랫동안 재위한 주권 국가의 군주가 되었다.

춤은 그에게 있어 사치스러운 소일거리가 아니라 신체와 의지, 그리고 권위를 형상화하는 방식이었다. 바로 이 춤을 사랑한 소년으로부터 발레는 프랑스 정치와 문화 무대의 중심부로 고요히 걸어 들어갔다.

‘태양왕’ 칭호의 유래

1653년 2월 23일, 루이 14세를 위해 맞춤 제작된 궁정 발레극이 상연되었다. 극의 이름은 <밤의 발레(Ballet de la nuit)>였고, 14세의 소년 루이는 온 궁정의 왕공 귀족들을 초청해 자신의 춤을 보여주었다.

음산하고 가공할 만한 밤의 장면 속에서 루이 14세는 아끼는 붉은 굽의 하이힐을 신고 등장했다. 그가 연기한 태양신 아폴로는 빛나는 의상을 입고 높은 왕관을 쓴 채 나타나, 광명이 길고 칠흑 같은 밤을 뚫고 정의가 사악함을 이기는 것을 상징했다.

루이 14세는 무대 위에서 회전하고 도약했으며 모든 동작은 완벽했다. 온 궁정이 경탄했다. 스페인의 한 외교관 기록에 따르면 티켓을 받고 입장 줄을 서는 데만 3시간이 걸렸고, 전체 공연 시간은 무려 12시간에 달했다고 한다!

소년 국왕 루이 14세의 이 전무후무한 공연은 즉시 프랑스 전역을 뒤흔들었고 프로그램은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는 단순한 무용 공연이 아니라 정교하게 기획된 정치적 선언이었다. 루이 14세는 태양이며, 그가 광명으로 프랑스를 비추고 춤으로 왕권의 위엄을 보여줄 것이라는 메시지였다. 이후 루이 14세는 스스로를 ‘태양왕’이라 칭했으며 이 칭호는 유럽 각국으로 퍼져 나갔다.

15세의 루이 14세가 처음으로 태양신 아폴로를 연기했을 때의 모습

왕립무용아카데미의 탄생: 발레의 규범화

루이 14세는 발레를 통해 정치를 형상화했을 뿐만 아니라 발레 그 자체에도 영향을 미쳤다. 발레는 르네상스 시기 이탈리아에서 기원하여 프랑스 국왕 앙리 2세에게 시집온 카트린 드 메디치에 의해 이탈리아에서 프랑스 궁정으로 전해졌다. ‘발레’라는 단어 역시 이탈리아어에서 유래했으며 ‘춤추다’, ‘도약하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1661년, 루이 14세가 23세가 되어 친정을 시작했다(흥미롭게도 이 해는 청나라 강희제가 즉위한 해이기도 하다). 그의 뜻에 따라 파리에 세계 최초의 무용 학교인 ‘프랑스 왕립무용아카데미’가 창립되었다. 그는 자신의 발레 스승인 피에르 보샹을 원장으로 임명하여 발레의 창작과 공연을 담당하게 했다.

프랑스 왕립무용아카데미

보샹은 궁정의 미학을 규범으로 삼아 발레의 완전한 동작 체계를 확립했다. 무용수의 5가지 기본 발 위치, 12가지 기본 손 위치, 그리고 두 다리를 밖으로 벌리는 등 고정된 무용 자세들이 이때 확립되었다. 이것들은 고전 발레 미학의 핵심을 구성하며 대를 이어 발레 무용수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칙이 되었다.

발레 무용수의 5가지 기본 발 위치

왕립무용아카데미는 특별한 궁정 예법 학교이기도 했다. 당시의 ‘발레’는 일종의 궁정 예절에 더 가까웠다. 우리가 영화에서 보는 번거로운 궁정 예절, 즉 걷기, 인사하기, 손 잡기 등은 모두 여기서 파생된 것이다. 루이 14세는 프랑스 귀족들이 반드시 발레의 기본 자세로 자신의 귀족적 거동을 훈련하도록 요구했는데, 이는 루이 14세 시대 특유의 정치 예술이었다.

매주 루이 14세는 궁정 무도회를 열었으며 전쟁 중에도 결코 거르지 않았다. 그는 무도회를 왕실의 존엄을 유지하는 힘으로 만들었고, 대신들에게 매년 12가지 춤을 준비하게 하되 몸짓과 발걸음이 중복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령했다. 평민들도 이 궁정 무도회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이를 보고 듣는 과정에서 민간에서는 수준 높은 무용 기술뿐만 아니라 그에 상응하는 우아한 사교 예절과 행동 규칙을 배우게 되었다.

무용 교사(Le Maître à danser), 1725

베르사유: 궁정 발레의 황금시대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파리 남서쪽 교외에 위치하며, 1682년 루이 14세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해 여러 단계에 걸쳐 완공되었다. 이 기간 베르사유는 파리를 넘어 프랑스의 실질적인 수도가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의 건축 양식은 사치스럽고 화려하며 상상력이 넘치는 디자인으로 세계에 이름을 알렸고, 17~18세기 유럽 각국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며 이후 유럽 각국 황궁의 본보기가 되었다.

베르사유 궁전 거울의 방

베르사유 궁전은 프랑스 왕권의 상징일 뿐만 아니라 17세기 유럽의 문화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베르사유에서 발레는 곧 국왕의 상징이었다. 중대한 축제가 있을 때마다 궁정에서는 성대한 발레 공연이 열렸고, 귀족들은 국왕 앞에서 자신의 우아함과 충성심을 보여주기 위해 반드시 춤을 배워야 했다. 루이 14세의 추진 아래 발레는 프랑스 궁정 생활의 일부가 되었으며, 이는 예술을 넘어 정치와 직결되었다. 춤사위가 가장 우아한 이가 국왕의 총애를 더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루이 14세 본인 역시 평생 발레를 즐겼다. 그는 일생 동안 40편의 대형 발레극에서 80개의 역할을 맡았는데, 때로는 주연으로 때로는 카메오로 출연했다. 현재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이 루이 14세 초상화는 예술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실 초상화 중 하나로, 자세와 다리 노출, 전체적인 구도를 통해 국왕의 발레에 대한 사랑과 영향력을 교묘하게 체현하고 있다.

이아생트 리고, <루이 14세의 초상>, 1701

유화 속에서 국왕의 겉옷은 일부러 어깨에서 흘러내리게 하여 종아리와 발 부분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국왕이 오랫동안 견지해 온 춤 덕분에 다리 근육이 고르고 힘차다는 것을 보여준다. 국왕의 자세는 매우 우아하다. 왼발을 약간 앞으로 내밀고 오른발을 뒤에 두었는데, 이는 고전 발레의 ‘제4번 자세(fourth position)’를 완벽하게 재현한 것으로 권위와 자신감을 상징하는 고전적 자세다. 또한 국왕이 신은 그 유명한 붉은 굽 하이힐은 발레 슈즈에서 직접 유래한 것이며, 당시 유럽 각국 귀족들이 다투어 쫓는 유행이 되었다.

하지만 1680년대에 이르러 마흔에 가까워진 루이 14세는 점차 자신의 무용 공연을 줄여나갔다. 그러다 1715년, 루이 14세는 베르사유 궁전에서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레에 미친 그의 영향력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 왕립무용아카데미와 파리 오페라 극장이 성장함에 따라 프랑스 발레는 세계로 뻗어 나가 유럽 각국이 모방하는 전형이 되었다. 루이 14세의 궁정 무용 전통은 그 이후 수 세기 동안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마침내 낭만주의 발레와 고전 발레를 잉태하며 오늘날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루이 14세는 ‘태양왕’이자 ‘발레의 왕’이었다. 그는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나보다 발레를 더 잘 아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내가 춤을 추는 것만큼 우아하게 내 나라를 통치한다.”

서양 고전무용에서 중국 고전무용으로

프랑스의 태양왕 루이 14세가 선구적으로 발레를 위한 완전한 체계를 세운 이래, 서양 고전 발레는 300년이 넘는 발전 역사를 거쳐왔다.

그렇다면 중국 고전무용은 어떠한가? 서양 고전무용의 대표인 발레와 유사하게, 중국 고전무용 역시 풍부하고 완비된 훈련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심지어 발레보다 훨씬 더 유구하고 방대한 문화적 내포를 지니고 있다.

중국 고전무용은 중화 5천 년의 문명 역사 위에 토대를 두고 있다. 역사 기록이 시작된 이래 중국 무용은 궁정 무용, 민간 무용, 연극, 잡기 그리고 무술 속에 존재해 왔으며, 각 조대(朝代) 문화의 제련을 거치고 대대로 전승되며 끊임없이 풍부하게 완성되어 오늘날의 중국 고전무용을 형성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완전한 무용 체계 중 하나로 발전했다.

첫째, 신법(身法)과 기교 측면에서 보자면 ‘발끝으로 추는 춤’이라 불리는 발레는 무용수의 다리 근육과 발끝의 공력을 훈련하는 데 더 치중하며 동작의 정확한 규범을 강조한다. 반면 중국 고전무용은 ‘신운(身韻)’, ‘신법(身法)’, ‘기교(技巧)’, ‘표현’의 융회관통을 중시한다. 무용수가 춤을 출 때 동작이 표준적이고 기술이 뛰어나야 할 뿐만 아니라 내적인 운치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둘째, 발레와 중국 고전무용수 모두 신체의 유연성과 근육 소양을 엄격하게 단련해야 하므로 체형이 매우 가늘고 길다. 무용수들의 체형은 비슷하지만, 이 두 무용의 훈련 방식은 매우 다르다.

발레의 무용 기술에는 회전, 도약, 들어 올리기(리프트) 등이 있다. 중국 고전무용의 기술 범위는 매우 넓으며 크게 도약(跳), 회전(轉), 공중회전(翻), 제어(控制)로 나뉜다.

중국 고전무용만이 가진 독특한 강점 중 하나는 많은 기술 동작이 중국 전통 무술과 매우 흡사하다는 점이다. 고대에 무용은 ‘문무(文舞)’와 ‘무무(武舞)’로 나뉘었다. 무용을 문(文)적으로 사용하면 각종 축제와 연회에 쓰이는 궁정 무용이 되고, 무용을 무(武)적으로 사용하면 전장에서 적을 상대할 때의 무술이 된다.

무용(舞)과 무술(武)은 그 뿌리가 같으며 한 가지 몸짓을 두 가지 용도로 쓴다. 발음은 같으나 글자가 다르고(舞와 武), 음과 양, 문과 무의 조화는 바로 중화 신전문화(神傳文化)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무술의 호신과 생명 보존이라는 특수성은 중국 고전무용의 많은 신법(身法)과 기교가 수천 년의 세월을 거치면서도 변하지 않고 전해 내려오도록 효과적으로 보장해 주었으며, 오늘날 세계 예술 무대에서 큰 빛을 발하게 했다.

최근 몇 년간 사람들이 보아온 중국 본토 공연단의 무용은 대부분 순정(純正)한 중국 고전무용이 아니다. 그 안에는 발레, 현대무용, 재즈 댄스가 혼잡하게 섞여 있으며 너무 화려하거나 과장된 음향과 조명 효과를 더해 관객들이 고아하고 평화로운 예술적 향유를 누리지 못하게 한다.

2006년 뉴욕에서 션윈예술단이 성립된 이래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션윈예술단의 종지는 진정한 전통문화를 부흥시키는 것이며 여기에는 순정한 중국 고전무용의 부흥도 포함된다. 짧은 20년 사이 션윈예술단은 거대한 성공을 거두었고 사람들은 중국 전통 예술에 대해 새로운 인식을 갖게 되었다. 프랑스에서의 션윈 매진 사례가 그 증거 중 하나다.

비단 프랑스뿐만이 아니다. 2025년에는 8개의 예술단이 전 세계 20개국 200여 개 도시에서 동시에 공연을 상연하여 800여 회의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가는 곳마다 매진 사례가 잇따랐고 찬사가 쏟아졌다.

관객들이 말하듯, 개막을 알리는 징 소리와 함께 중국의 역사 이야기들이 차례로 펼쳐지고 각기 다른 민족 무용이 잇따라 등장하는 모습은 마치 운치 있는 동양의 긴 두루마리 그림이 눈앞에 펼쳐지는 듯하다. 이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하며 마치 봄바람을 쐬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필자는 여기서 묘한 역사의 윤회를 떠올려 본다. 300여 년 전 루이 14세는 베르사유의 거울의 방에서 발레를 통해 왕권을 선포하고 춤으로 질서와 미학을 형성했다. 300여 년 후, 서양 고전무용을 잉태한 바로 그 땅에서 동양의 젊은 무용가들이 전혀 다른 문화적 연원과 정신적 내포를 가지고 관객들 마음 깊은 곳에 있는 ‘진정한 고전’에 대한 공명(共鳴)을 깨우고 있다.

루이 14세 시대의 발레가 규범, 질서, 외적 형식을 통해 이성적이고 대칭적이며 외부로 확장하는 미학 체계를 세웠다면, 중국 고전무용이 보여주는 것은 내면으로의 회귀, 마음으로 형체를 다스리고 덕(德)으로 기예를 싣는 문화적 기질이다.

이런 의미에서 프랑스에서 션윈의 성공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진정으로 시간의 시련을 견뎌낼 수 있는 예술은 유행에 영합하는 산물이 아니라 전통에 뿌리를 박고 영원함을 지향하는 창조물이다. 발레가 루이 14세 시대에 궁정 오락에서 클래식 예술로 승화되었듯, 중국 고전무용 역시 현대 세계 무대 위에서 마땅히 갖추어야 할 높이와 존엄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