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망(寒芒)
【정견망】
모래 한 알에 하나의 세계가 있고 꽃 한 송이에 하나의 천국이 있듯이, 작은 한자 한 글자에도 창세주(創世主)의 무량한 자비와 심혈, 당부와 축복이 담겨 있다.
전통문화는 창세주께서 사람에게 깔아주신 하늘로 돌아가는 길이다. 전통을 배반하는 것은 근원 없는 물이나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결국 마르고 시들게 된다.
미혹 속의 사람들은 도리어 험난한 재앙을 알지 못하고 공산 마귀의 충동질에 쉽게 넘어가 전통을 원망하고 신을 원망한다.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온갖 마음을 다 쓰시는 창세주께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시겠는가!
이에 필자는 《단어 깨달음(詞悟)》 시리즈를 쓰고 싶은 염원을 품게 되었다.
5. 황량일몽(黃粱一夢)
의식이 꿈속을 달릴 때 길고 긴 일생은 단지 좁쌀밥이 익을 정도의 짧은 순간일 뿐이다. 만약 나도 이 범간(凡間 속세)에 떨어져 사람 몸을 빌려 홍진(紅塵)에서 겁난을 겪고 있다면, 누가 내가 돌아오기를 바라고 있으며 누가 나를 깨울 수 있겠는가?
전설에 따르면 창세주께서 말후(末後)에 세상에 내려오시어 제자들로 하여금 진상을 이용해 좋은 사람을 찾게 하신다고 한다. 그분은 자비로 사람의 죄업을 소멸해주시고 파룬(法輪)을 돌리시며, 진선인(真善忍) 큰 광명을 발산해 사람을 환경(幻鏡)에서 제도하신다.
만년의 꿈에서 깨어 성은(聖恩)에 감사드리니, 천국의 친인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기다리고 있다.
6. 바둑 용어
공산당의 통치하에서 사는 것은 마치 도망갈 길 없는 축과 같고, 당문화(黨文化) 속에서 당에 반대하는 것은 죽은 국면(死局)과 같다.
서방에서 온 유령이 정권을 찬탈한 후 중화 대지에 단 하루라도 안녕한 날이 있었던가? 공산 비적의 치하에서 봉쇄하고 옥죄고 핍박하며, 끊고 젖히고 씌우고 파내니, 매번 생활을 다시 좋게 바꾸려 해도 늘 절망적인 접불귀(接不歸 돌아갈 수 없음)가 될 뿐이다.
타협과 양보를 거듭하다가 끝내 그것이 아이들을 에워싸고 장기를 적출해가기에 이르렀다.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해, 판을 엎어 복기하며, 전통으로 회귀해 중국을 살려내자.
[역주: 여기에 나오는 축은 바둑에서 끊임없는 단수로 막다른 골목까지 쫓긴 상황이고 접불귀란 연결하려 해도 연결할 수 없어서 돌아가고 싶어도 다리가 끊긴 상황을 말하는 바둑 용어다.]
7. 구(救)
1) 글자 형태: 왼쪽은 구할 구(求), 오른쪽은 글 월(文)
뜻: 저지하다, 구호하다, 다스리다
가족의 번성은 혈맥의 이어짐에 의지하고, 민족의 번영은 문맥(文脈)이 끊기지 않음이 바탕이 된다.
전통을 부흥시키는 션윈(神韻)은 사람을 심연으로 끌어당기는 당문화를 차단한다.
개막을 알리는 징 소리는 내게 커다란 진동을 주었으니, 마치 근원에서 온 활수가 메마른 심전(心田)에 흘러드는 듯했다.
나는 신께서 이미 세상에 오셨음을 알기에, 이 구도의 복음을 사방에 전하려 한다.
2) 사람이 고난 중에서 신에게 구원을 청할 때, ‘구(救)’라는 글자 자체가 그 원인을 말해주고 답을 제시하며, 병의 원인을 말해주고 처방전을 내려준다.
탐욕 때문에 구해서 얻은 관념은 우리를 먼지투성이로 만들고, 구해서 얻은 업력(業力)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신전문화(神傳文化)로 회귀하고 신으로 회귀해야 한다. 전통문화는 현대 관념을 씻어낼 수 있고, 신을 믿는 선념(善念)은 업력을 소멸하게 할 수 있다.
8. 진(進)
‘진(進)’을 ‘진(进)’으로 바꾼 것은 당문화의 음침함이니, 아무리 단 우물물이라도 흐르지 않으면 썩고 오래되기 마련이다. 한결같이 탐욕스럽게 구하기만 한다면 인생은 장차 꽉 막힌 우물(井)이 되고 말 것이다.
생명은 본래 좋은 경지로 나아가야 하며, 무신론의 안개에서 걸어 나오고 진화론의 함정에서 걸어 나오며, 이기심에서 벗어나 남을 배려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우주는 진상을 명백히 안 선량한 사람들에게 대문을 열어주니, 그것은 이토록 생기발랄하며 진선인이 ‘위타(爲他)’한 생명을 주조했다.
9. ‘진(眞)’과 ‘가(假)’
1) 중국의 오래된 문자 속에는 수많은 천기(天機)가 감추어져 있다. ‘부유자주(不由自主 자신도 모르게)’도 그중 하나다.
진정한 자아는 선량하다. 사상이 악념(惡念)에 점거당했을 때 신체는 진정한 자아가 주재하는 것이 아니다.
악념이 인체를 빌려 일을 행하지만, 저지른 잘못은 사람의 몸에 기록된다.
‘거위존진(去僞存眞 거짓을 제거해 참을 보존)’이니 인생은 한바탕 수행(修行)이다. 곧 악념(惡念)을 식별하고 악념을 제거하며, 진정한 자아의 선량한 본성을 찾는 과정이다.
2) 진짜와 가짜는 분별하기 어렵다
악념은 마귀가 파견한 병사다. 악념을 변별하기란 쉽지 않은데, 때로는 그것이 ‘정의(正義)’의 외투를 입고 질투를 깃발 삼아 내걸어 자아를 밖으로 구하는 불귀의 객으로 유혹하며, 결국 하늘을 뒤덮듯 자라나는 신(神)에 대한 원한으로 자아를 삼켜버린다.
마귀는 욕망을 날줄로 삼고 구함을 씨줄로 삼아 원경(願景 원하는 장면)이라는 하늘 그물을 짜놓았다. 그것은 사람을 가두어 진정한 소원을 잊게 하려는 것이다. 사람의 진정한 소원이란 바로 겸허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신이 부여하신 미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7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