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생(道生), 신우(新宇)
【정견망】
대법제자들은 모두 인체에 요시(遙視)라고는 특이공능(초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사람의 천목(天目)이 열린 후 먼 곳을 볼 수 있는 능력이다. 유럽과 미국 등 선진국의 인체 과학 연구자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이를 연구하여 공개적으로 인정해 왔으며, 지난 세기 80~90년대 중국에서도 보편적으로 연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마두(魔頭)이자 당 두목인 자가 내심의 질투로 인해 신과 적이 되었다! 그는 독단적으로 1999년에 불법(佛法) 수련을 파괴하고 진선인(真善忍) 파룬따파를 박해하는 사악한 정치 운동을 일으켰다. 그는 이미 ‘문화대혁명’을 통해 파산이 증명된 서구 유령인 공산 사악주의의 무신론을 구실로 내세워, 사실을 외면하고 모함과 죄명을 씌웠으며 강제적으로 탄압했다. 또한 신적(神跡)이 존재하는 사실을 강제로 부정하며 불법을 박해하고 대법제자의 인체 장기를 적출하며 잔혹하게 살인하는 천인공노할 죄악을 저질렀다. 국가 선전 기구를 총동원해 파룬 수련대법(修煉大法)을 모함함으로써, 진상을 모르는 사람들이 파룬궁 수련생을 원수처럼 여기게 하고 심지어 악행을 돕게 했다. 이러한 공동의 죄업 때문에, 공산 사악주의에 몸을 바치겠다고 맹세한 모든 사람은 단호히 탈퇴하지 않으면 하늘의 이치가 용납하지 못하고 만겁(萬劫)에도 회복하기 어려운 죽음의 길로 가게 될 것이다. 아직 그 안에 있는 모든 중국인은 당, 단, 대에서 탈퇴하는 삼퇴를 통해 철저히 중공 마귀와 결별해야만, 하늘이 중공을 멸하는 천벌의 대재앙 속에서 도태되는 것을 피할 수 있다.
구제 불능인 중공 사당은 대법제자를 잔혹하게 박해하는 동시에 필사적으로 진상을 봉쇄하며, 공산 사악주의 무신론과 진화론 그리고 변이된 전통문화를 통해 중국인들을 반복해서 세뇌하고 있다. 사람이 신을 믿지 않으면 신적 또한 믿기 어려워지며, 사람이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황당무계한 망언으로 여겨 콧방귀를 뀌게 된다. 설령 초능력의 존재를 긍정하더라도 이를 진화론적 관점에서의 ‘진화 돌연변이의 기적’으로 간주하여 신통과 신적을 부정하고 나아가 신의 존재를 부정한다. 심지어 신을 믿는 선량한 신앙인들을 적대시하고 증오하기까지 한다. 이처럼 사악한 당의 거짓 이론이 추앙하는 ‘무신론, 진화론, 과학만능주의’는 사람의 마음을 독해하고 어리석게 만들며 그 해악이 자못 깊다.
그러나 5천 년 동안 중화 신주(神州) 대지에서 신(神)에 관한 기록은 각종 정사와 전적 속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며 결코 고립된 증거가 아니다. 무신론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진실을 탐구하고 근원을 찾아본다면 신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증거가 매우 확실함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고적 중 공자와 안회(顔回)가 요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는 기록은 다음과 같다. “공자와 안회가 태산에 올라 천 리 밖의 성문을 멀리 바라보았는데, 공자가 본 것은 백마였고 안회가 본 것은 한 줄기 흰 비단이었다……”
마음이 닿은 김에 관련 출처를 찾아 상세한 내용을 알아보자.
진지하게 찾아보면 많은 기록이 있는데, 그중 적지 않은 기록이 《공자가어》(주: 이 책은 삼국시기 위의 왕숙이 수집 편찬했음)에서 나왔다. 그러나 《공자가어》를 자세히 살펴보면 그 안에는 이 내용이 없다. 필자는 한참을 조사한 끝에 소위 《공자가어》라 불리는 것이 청 가경(嘉慶) 연간에 손성연(孫星衍)이 집필한 《공자집어(孔子集語)》임을 알게 되었고, 해당 사적은 이 책의 권16에 기재되어 있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어람》 818권에서 인용한 《한시외전》: 공자와 안연이 노나라 태산에 올라 오나라 창문(閶門)을 바라보았다. 안연이 이르기를 ‘한 필의 비단이 보이는데 앞에는 풀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이르기를 ‘백마와 꼴이다’라고 했다.
《어람》 897권에서 인용한 《논형》: 유가 서적에서 일컫기를 공자와 안연이 함께 노나라 동산(東山)에 올라 오나라 창문을 바라보았다. 공자가 묻기를 ‘너는 무엇이 보이느냐?’ 하니 ‘한 필의 비단과 그 앞에 난 풀이 보입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이르기를 ‘아! 이것은 백마와 갈대 꼴이다’라고 했다. 사람을 시켜 보게 하니 과연 그러했다.
《논형·서허(書虛)》: 전해지는 책 혹은 말에 이르기를, 안연과 공자가 함께 노나라 태산에 올라 공자가 동남쪽을 바라보니 오나라 창문 밖에 매어 있는 백마가 있었다. 안연을 이끌어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너는 오나라 창문이 보이느냐?’ 하니 안연이 ‘보입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문 밖에 무엇이 있느냐?’ 하니 ‘매어 놓은 비단 같은 형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그의 눈을 어루만져 그치게 한 뒤 함께 내려왔다. 내려온 후 안연은 머리가 세고 이빨이 빠지더니 마침내 병으로 죽었다. 대개 정신이 공자와 같지 못함에도 억지로 힘써 스스로 끝까지 다하니 정화(精華)가 고갈되어 일찍 죽은 것이다.
《속박물지》 권7: 안연과 공자가 함께 태산에 올라 동남쪽으로 오나라 창문을 바라보았는데 공자가 백마를 보고 안연을 이끌어 가리키며 ‘너는 오나라 창문이 보이느냐?’ 하니 안연이 ‘보입니다. 매어 놓은 비단 같은 형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그의 눈을 어루만져 그치게 했다. 안연은 머리가 세고 이빨이 빠지더니 마침내 병으로 죽었다. 대개 정력이 성인에 미치지 못하는데 억지로 부렸기 때문이다.】
그 후 다시 《한시외전》(서한西漢 한영韓嬰 편찬)을 조사해 보았으나 그 안에는 이 기록이 없었고, 《논형·서허》와 《속박물지·권7》의 기록이 동일했다. 물론 연대가 오래되어 고적의 내용이 소실되면서 기록이 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탐색을 통해 정보의 전달 과정에서 종종 ‘와전’ 현상이 존재함을 발견했을 것이다. 진실을 구하고 근원을 찾는 과정에서 고적에 존재할 수 있는 소홀함을 발견하기도 한다. 물론 선의의 관점에서 역사가 오래되어 내용이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오늘날 판본의 《한시외전》에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이로 보건대 진리와 진상을 구하는 과정에서 ‘진(眞)’을 근본으로 삼고 ‘선(善)’으로 지도한다면 최대한 사실의 본원에 가까워질 수 있다. 물론 이 과정은 정력이 소모되고 인내가 필요하므로 ‘참음(忍)’ 또한 매우 중요하다.
위의 고증을 통해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가장 이른 기록은 동한 초기 《논형·서허》임을 알 수 있다. 먼저 그 내용을 해석해 보겠다.
《논형·서허(書虛)》: 전해지는 책 혹은 말에 이르기를, 안연과 공자가 함께 노나라 태산에 올라 공자가 동남쪽을 바라보니 오나라 창문 밖에 매어 있는 백마가 있었다. 안연을 이끌어 가리켜 보이며 말하기를 ‘너는 오나라 창문이 보이느냐?’ 하니 안연이 ‘보입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문 밖에 무엇이 있느냐?’ 하니 ‘매어 놓은 비단 같은 형상이 있습니다’라고 했다. 공자가 그의 눈을 어루만져 그치게 한 뒤 함께 내려왔다. 내려온 후 안연은 머리가 세고 이빨이 빠지더니 마침내 병으로 죽었다. 대개 정신이 공자와 같지 못함에도 억지로 힘써 스스로 끝까지 다하니 정화(精華)가 고갈되어 일찍 죽은 것이다.
해설:
이 기록은 공자와 안연이 ‘요시’ 공능을 사용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오나라 고소성(소주)에서 태산까지의 거리는 직선우로 최소 600km가 넘는다. 일반인의 육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거리다. 이는 고적에 ‘사람’이 신통을 가졌다는 기록이며 공자와 안연을 예로 들어 설명한 것이다.
이때 호기심이 생겨 《논형》의 다음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 사적을 기록한 목적이 뜻밖에도 공자와 안연이 이런 능력을 갖추었다는 것이 ‘허(虛)’함을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말하자면 믿을 수 없다는 뜻이다. 이 책의 저자는 아주 ‘영악’해서 ‘가짜(假)’라는 글자 대신 ‘허(虛)’라는 글자를 썼다.
“세속에서는 이 이야기를 듣고 모두 그러하다고 여긴다. 사실대로 논하자면 거의 허언이다. 《논어》의 글을 살펴보아도 이런 말은 보이지 않는다. 《육경》을 고찰해 보아도 역시 이런 말은 없다. 안연(顔淵)이 천리 밖을 볼 수 있어 성인과 같았다면, 공자와 제자들이 무엇 때문에 숨기고 말하지 않았겠는가? 대개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범위는 십 리에 불과하다. 이를 지나면 보이지 않으니, 밝게 살필 수 없는 것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전(傳)에 이르기를 “태산(太山)의 높음이 우뚝하나, 백 리만 떨어져도 그 기슭이 보이지 않는 것은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라고 하였다. 살펴보건대 노(魯)나라에서 오(吳)나라까지는 천여 리나 되니, 설령 이주(離朱)로 하여금 바라보게 한다 해도 끝내 볼 수 없을 것인데, 하물며 안연으로 하여금 어찌 그것을 자세히 살피게 할 수 있었겠는가? 만약 안연처럼 성인에 가까운 이의 눈 밝기가 남들보다 유별나게 뛰어났다면 세상에서는 마땅히 아성(亞聖)이라 칭송해야 했을 것이지, 이주를 말해서는 안 된다. 사람 눈의 시력은 물체가 큰 것은 살피기 쉽고 작은 것은 살피기 어려운 법이다. 안연을 창문(昌門) 밖에 있게 하고 태산의 형상을 바라보게 하더라도 끝내 볼 수 없을 것이다. 하물며 태산 위에서 백마의 색깔을 살피게 한다면 그 색을 볼 수 없음은 명백하다.
안연만 볼 수 없는 것이 아니라 공자 역시 볼 수 없다. 무엇으로 그것을 증명하는가? 귀와 눈의 작용은 대등하다. 눈으로 백 리 밖을 볼 수 없다면 귀 역시 들을 수 없다. 육가(陸賈)는 “이루(離婁)의 밝음도 휘장 안쪽은 살필 수 없고, 사광(師曠)의 뛰어난 청력으로도 백 리 밖의 소리는 들을 수 없다”라고 하였다. 창문과 태산 사이의 거리는 단순히 휘장 안이나 백 리 밖 정도가 아니다.”
저자는 “세속 사람들이 이를 듣고 모두 그러하다고 여겼으나 사실로 논하자면 거의 허언이다”라고 했다. 즉 당시 사람들은 이 일을 듣고 모두 진짜라고 믿었는데 이는 당시 사람들의 순박하고 진실하며 믿음을 지키는 사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러한 상황을 실제에 비추어 보면 반드시 허언일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저자의 첫 번째 이유는 “《논어》에서 이 말을 보지 못했고 《육경》에도 이 말이 없다”는 것이다. 이 이유는 논리에 맞지 않고 매우 억지스럽다. 《논어》에 기록되지 않았다고 해서 공자에게 그런 사적이 없었다는 뜻인가? 《육경》에 전해지지 않는다고 해서 공자에게 그런 능력이 없었다는 말인가?
저자의 두 번째 이유는 태산에서 고소성까지의 거리가 천 리나 되어 육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다는 생각이다. 저자는 안연뿐만 아니라 공자에게도 그런 능력이 없다고 보았다. 저자는 이를 검증하는 이유로 “귀와 눈의 쓰임은 균등하다. 눈으로 백 리를 볼 수 없으면 귀로도 들을 수 없다”라고 했다. 그는 눈과 귀의 기능에서 사람의 능력은 균등하다고 보았는데 백 리 밖을 볼 수 없다면 귀로도 멀리서 들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일반인에게는 확실히 그러하다. 그래서 이것이 그가 말하는 검증 방법이다. 즉 자신이 생각하는 속인의 상식으로 신통의 존재를 부정한 것이다.
본문의 서두에서 우리는 사람에게는 초능력이 실제로 존재하며 ‘요시’가 그중 하나임을 알았다. 현대 과학도 이러한 능력이 실제로 존재함을 인정하지만 현재의 과학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어 그 결과만 알 뿐 원인은 알지 못한다. “여름 벌레에게 얼음을 이야기할 수 없다(夏蟲不可以語冰).” 육안으로 보이는 보통 산의 높이와 히말라야산의 높이를 같이 논할 수 없듯이, 어찌 일반인이 가진 능력으로 일반인의 견해를 훨씬 초월한 지식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원인은 《논형》의 저자가 “학문에 신중하지 못하고 일맥도 통하지 않으며 견식이 좁아 신을 믿지 않았다”는 점이다. 선의적인 관점에서 저자가 처했던 시대적 상황을 고려하면 교통이 불편하고 정보가 한정되어 견식이 적었기에 이런 신적의 현상을 접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정보가 발달하여 오늘날 많은 사람이 이런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등 일반인이 갖지 못한 초상 능력을 갖추기도 한다.
왜 “학문에 신중하지 못하다”고 하는가? 저자는 “육경의 전함에서도 이 말이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육경》 중 하나인 《예기·중용》에서는 “귀신에게 물어도 의심이 없으니 하늘을 아는 것이요, 백세 뒤에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되지 않으니 사람을 아는 것이다”라고 했다.
즉 학문하는 사람이 사물 변화의 본질이 귀신(신)에서 비롯된 것임을 의심한다면 하늘을 모르는 것이다. 고대에는 30년을 일세(一世)라 했으니 ‘백세 뒤에 성인을 기다려도 미혹되지 않는다’는 것은 3천 년 뒤에 일어날 일도 성인은 명확히 알 수 있다는 뜻이며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람’을 아는 것이다. 이처럼 《육경》을 고찰해 보아도 신성(神聖)의 능력은 확실하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
따라서 《중용》의 기준으로 본다면 이는 실제 저자가 “하늘도 모르고 사람도 모른 채” 저층차 속인의 인지에 갇힌 어리석은 표현이다.
이것은 중공 사당이 교과서에서 학생들을 세뇌할 때 별다른 의도를 가지고 이 ‘어리석은’ 《논형》에 대해 “중국 역사상 어떠어떠한 무신론 대작”이라며 매우 높게 평가하던 것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서 다른 내용도 살펴보니 《논형·권22·정귀편》의 귀신에 대한 견해가 뜻밖에도 사당이 현재 국민을 세뇌하며 세상에 귀신이 없다고 믿게 하는 설명 근거였다.
사당은 사람들에게 귀신이 없다고 말하며 흔히 “이것은 모두 사람의 심리 작용으로 인한 것”이라고 둘러대는데, 이는 이미 오늘날 중국 대륙 무신론자들의 보편적인 습관적 사고가 되었다. 그런데 《논형》에서는 “모두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바에서 이른 것이다”라고 했으니 두 가지가 똑같다.
이 저자의 귀신에 대한 인식은 다음과 같다.
“무릇 천지 사이에 귀신이 있는 것은 사람이 죽어 정신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바에서 이른 것이다.”
즉 그는 당시 사람들의 보편적 인식인 “사람이 죽은 것을 귀신이라 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다. 사당의 유물론적 관점으로 본다면 이는 ‘귀신’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사물임을 인정하지 않고 귀신이 생명임을 부정하는 것이다. 오히려 ‘귀신’을 사람 마음이 생각한 결과로 보았으니 이것이야말로 유심론(唯心論)이 아닌가? 유물론자가 유심론을 답으로 삼았으니 자가당착이며 웃음거리가 아닐 수 없다!
원문은 다음과 같다.
【무릇 천지 사이에 귀신이 있는 것은 사람이 죽어 정신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모두 사람이 생각하고 상상하는 바에서 이른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질병 때문이다. 사람이 병들면 근심하고 두려워하게 되며 근심하고 두려우면 귀신이 나타나는 것을 보게 된다. 무릇 사람이 병들지 않으면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병들어 자리에 누우면 귀신이 올까 두려워하고, 두려워하면 상상하게 되며, 상상하면 눈에 헛것이 보인다. 무엇으로 효험을 보는가? 전하기를 ‘백락이 말을 감정하는 법을 배울 때 눈에 보이는 것마다 말이 아닌 것이 없었다. 송나라의 포정은 소 잡는 법을 배운 지 3년 만에 살아 있는 소는 보이지 않고 보이는 것이 모두 죽은 소였다’라고 했다. 이 두 사람은 정신을 집중함이 지극했다. 생각하고 상상하면 스스로 기이한 물체를 보게 된다.
병자가 귀신을 보는 것은 백락이 말을 보고 포정이 소를 보는 것과 같다. 백락과 포정이 본 것이 실제 말과 소가 아니라면 병자가 본 것 또한 귀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병자가 고통이 심해 몸이 아프면 귀신이 몽둥이를 들고 때린다고 말하며, 귀신이 쇠사슬과 포승줄을 잡고 곁에서 지키는 것을 보기도 하는데, 이는 병의 통증과 공포로 인해 헛것을 보는 것이다. 병의 초기에는 두려워 놀라서 귀신이 오는 것을 보고, 병이 위중해지면 죽을까 겁나서 귀신이 노하는 것을 보며, 몸이 아프면 귀신이 치는 것을 보는데 이는 모두 상상이 헛되게 만든 것이지 반드시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무릇 정신을 집중하여 상상하면 혹 눈으로 나타나거나 입으로 나타나거나 귀로 나타난다. 눈으로 나타나면 눈에 그 형체가 보이고 귀로 나타나면 귀에 그 소리가 들리며 입으로 나타나면 입으로 그 일을 말한다. 낮에는 귀신이 보이고 밤에 누우면 꿈에서 들린다. 빈방에 혼자 누워 두려운 마음이 있으면 꿈에 부인이 몸을 누르고 우는 것을 보게 된다. 깨어서 보고 누워서 듣는 것이 모두 정신을 쓰는 것이며 두려워하고 상상하는 것은 동일한 실체다.】
문제는 “귀신을 보는 것이 정말 사람의 생각과 상상으로 인한 것뿐인가?” 하는 점이다. 저자는 “《논어》 문장에서 이 말을 보지 못했고 《육경》의 전함에서도 이 말이 없다”는 논리로 신적의 실제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우리도 그가 말한 전적들을 가지고 논증해 보자.
《우서·순전》에 “정월 상달 초하루에 문조(文祖)로부터 제위를 물려받았다. 선기옥형으로 칠정(七政)을 고르게 했다. 이에 상제께 제사 지내고 육종(六宗)에 정결히 제사하며 산천에 멀리 제사하고 여러 신에게 두루 제사했다”라고 했다. 또한 “여덟 가지 악기 소리가 조화를 이루어 질서를 어지럽히지 않으니 신과 사람이 화목해졌다”라고도 했다.
《우서·대우모》에서는 “내 뜻이 먼저 정해졌고 상의하여 모두 동의했으며 귀신도 이에 의지하고 거북점과 시초점도 이에 부합하니 점을 치지 않아도 길하다”라고 했다.
《상서·태갑상》에서는 “선왕께서 하늘의 밝은 명을 돌아보시어 위아래의 신지(神祇, 하늘 신과 땅 신)를 받드셨다”라고 했다.
이상은 4~5천 년 전의 왕들이 ‘상제, 신, 여러 신, 천지신명’에 대해 한결같이 가졌던 경건한 신앙 태도를 반영한다.
또한 《논어》 중에도 귀신에 관한 기술이 적지 않은데 “제사를 지낼 때는 조상이 계신 듯이 하고 신에게 제사 지낼 때는 신이 계신 듯이 한다” 등이 그러하다.
다음으로 경전의 으뜸인 《주역》의 기록을 살펴보자.
《계사상》에서는 “정기(精氣)가 사물이 되고 유혼(遊魂)이 변화가 되니 이로써 귀신의 상황과 상태를 안다”라고 했다. 해석하자면 정(精)과 기(氣)는 모두 물(物, 즉 실제 존재)이며 유혼은 그것들이 변화하여 나타난 산물이니 이로 인해 귀신의 정황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즉 《주역》은 귀신이 실제로 존재하는 ‘물(物)’임을 지적하고 있다.
《예기》는 어떠한가? 《예기·제법(祭法)》에서는 “무릇 천지 사이에 태어난 것을 모두 명(命)이라 한다. 만물이 죽는 것을 절(折)이라 하고 사람이 죽는 것을 귀(鬼)라 한다”라고 했다.
《예기·제의(祭義)》에서는 “재아가 말하기를 ‘제가 귀신의 이름은 들었으나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습니다’라고 하니 공자께서 이르시길 ‘기(氣)라는 것은 신(神)의 왕성함이요 백(魄)이라는 것은 귀(鬼)의 왕성함이다. 귀와 신을 합하는 것이 가르침의 지극함이다. 모든 생명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니 이를 귀라 한다……’라고 하셨다”.
즉, 만물은 모두 생명이고 사람이 죽은 것을 귀(鬼)라 하니 이것이 바로 공자가 사람들에게 무엇이 ‘생명’이고 무엇이 ‘귀’인지 가르쳐 준 도리다.
그런데 이 저자는 어찌하여 이를 못 본 체하고 제멋대로 ‘귀신’이라는 실제 현상에 대해 자신의 생각대로 정의를 내렸단 말인가?
그렇다면 왕충은 왜 “일맥도 통하지 못한 채 그릇된 길로” 빠졌는가? 그가 쓴 《논형·권9·문공편(問孔篇)》이 바로 그 답이다.
“세상의 유학자들은 스승을 믿고 옛것을 옳게 여기기를 좋아하여 현인과 성인이 하신 말씀은 모두 틀림이 없다고 생각하며 오로지 정밀하게 강습할 뿐 따져 묻지 않는다. 무릇 현인과 성인이 글을 쓸 때 뜻을 상세히 살폈더라도 다 실상을 얻었다고 할 수 없는데 하물며 급히 뱉은 말이 어찌 다 옳겠는가? 다 옳지 않음에도 당시 사람들은 따져 묻지 않고, 혹 옳더라도 뜻이 깊어 보이지 않으면 당시 사람들은 물을 줄 모른다. 성현의 말을 살펴보면 앞뒤가 서로 어긋나는 것이 많고 그 글도 앞뒤가 서로 충돌하는 것이 많은데 세상의 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
즉 당시 학자들은 보편적으로 “스승을 믿고 옛것을 옳게 여기며 성현의 말씀은 모두 틀림이 없다”고 믿었다. 공자라는 스승을 믿고 옛 가르침이 옳으며 성현의 말씀은 모두 맞다고 확신한 것이다. 그러나 《논형》의 저자는 “성현의 말을 살펴보면 앞뒤가 어긋나는 것이 많고 글도 서로 충돌하는데 세상 학자들은 이를 알지 못한다”라며 남들이 자신만큼 똑똑하지 못해 이런 자가당착을 모른다고 여겼다. 그는 “성현이 급히 말을 뱉었으니 어찌 다 옳겠는가”라는 이유로 이를 판단했으니 이로써 “일맥도 통하지 못한 채 그릇된 길로” 빠진 것이다!
말하자면 동한 시기의 이 ‘왕충(王充)’은 성현의 책을 읽고도 그 뜻을 이해하지 못해 스스로 모순된 결론을 많이 내렸던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의 품성에 따라 짐작하고 의심하며 성현의 책에도 오류가 있다고 여기기 시작했고, 자신의 오해에 따라 근거 없는 ‘엉터리 이론’들을 무더기로 써 내려갔다. 그러나 공자는 《논어·이인편》에서 이미 제자들에게 “나의 도는 하나로 꿰어져 있다(吾道一以貫之)!”라고 이미 알려준 바 있다.
결론적으로 사악한 당이 추앙하는 소위 무신론 대작인 ‘어리석은’ 《논형》은 사실 저자가 성현의 책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해 성인의 말씀이 자가당착이라고 오해하고 자신의 주관적인 억측으로 함부로 지껄여 후세에 해를 끼친 ‘사설(邪說)’에 불과할 뿐이다.
가소로운 것은 중공 사당이 2천 년 전 동한 시기 왕충의 부패하고 어리석은 엉터리 이론을 가져다가 오늘날의 교과서에서 사람들을 세뇌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저자는 요시 기능조차 믿지 못했는데, 자신이 무지하여 써 내려간 이 어리석은 견해가 천년 뒤 사당이 고취하는 ‘과학’이 될 줄을 그가 어찌 예견했겠는가!
인연 있는 독자들이여, 역사 속에 실재했던 성인 각자(覺者) 석가모니, 예수, 노자, 공자는 모두 우리에게 광활한 우주에 신이 존재하며 사람은 선량하게 신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치셨다. 오늘날 만고에 만나기 어려운 파룬따파(法輪大法)는 무신론이 범람하고 도덕이 상실된 독한 세상에서 세인들에게 우주는 층층마다 신이 존재하며 신이 사람을 창조하셨고 무신론과 진화론은 사람을 해치는 엉터리 이론이라고 알려주고 있다! 사람이 신을 철저히 배반하면 신에 의해 도태될 것이다! 파룬따파 제자들은 지금 진상을 알리며 사람을 구하고 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신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없다고 생각하는가? 신을 믿는 자가 지혜로운가, 아니면 신을 믿는 자가 어리석은가? 여러분 내심의 양지(良知)로 판단해 보기 바란다!
만약 신이 정말 존재하고 사실 또한 그러하다면, 약육강식의 논리를 받들며 도덕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인류와 하늘과 땅과 신불(神佛)을 반대하며 이미 온갖 악행을 저질러 천리에 용납될 수 없는 무신론 공산 사당이야말로 하늘이 반드시 소멸시킬 도태 대상이 아니겠는가? 아직 삼퇴를 하지 않고 사악한 당에 헌신하겠다는 맹세를 풀지 않은 채 그 안에 빠져 있거나 심지어 그것을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은 매 순간 위태로운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 역병이 창궐하고 각종 천재지변이 빈발하며 기이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모두 세인들에 대한 신의 경고이다. 진선인(真善忍) 파룬따파는 자비롭게 일깨우고 있다. 당신이 자신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고 하늘이 멸하려는 대상인 중공 사당을 멀리하기를 희망한다! 반드시 당, 단, 대에서 탈퇴하는 ‘삼퇴’를 하길 바란다! 선량함을 지켜야만 평안할 수 있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93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