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오공은 사부에게 쫓겨나자 잠시 멍해져 어디로 가야 할지 잠시 잊었다. 조사가 돌아왔던 곳으로 돌아가라고 일깨워 주자, 자신이 화과산 수렴동에서 왔음을, 즉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산, 인과가 순환하는 곳임을 그제야 떠올렸다.
조사가 말했다.
“너는 빨리 돌아가서 네 성명(性命)을 온전히 하거라. 이곳에 있으면, 절대로 안 된다.”
이 말은 다소 급박한데, 화과산에 큰 문제가 생겼음을 보여준다. 분명 오공의 수련이 어떤 요소들을 건드려 표면으로 나타난 것이며, 오공이 가서 처리할 필요가 있었다. 그렇지 않으면 보금자리를 마(魔)에게 빼앗겨 근기(根基)를 잃어, 오공이 돌아올 길조차 끊겨 갈 곳이 없어지니 이것이야말로 성명(性命 목숨)이 달린 중대한 일이 아닌가.
오공이 산을 내려와 법을 찾은 때부터 법을 얻어 수련에 이르기까지 20여 년을 집을 떠나 있었다. 문득 고향과 자손들이 몹시 그리웠지만, 스승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했기에 감히 떠나지 못했다.
조사가 말했다.
“어디 무슨 은혜가 있느냐? 네가 단지 화를 일으키지 않고 나를 끌어들이지만 않으면 그만이다.”
수련이 성취됨에 따라 오공이 격발한 마성(魔性)이 이미 싹을 보이고 있었고, 화과산은 이미 난잡해졌다. 오공은 필경 사람 몸이 아니었기에 사람의 이성과 도덕적 단속이 부족했다. 동물이 수련 성취하면 곧 요마(妖魔)가 된다. 하지만 오공은 내력이 비범했고, 더욱 비범한 스승의 지도 아래 수련해 온갖 재주를 배웠으니, 난동을 부릴 능력이 있었다. 조사는 이미 이 모든 것을 예견했으니, 어찌 뒷일을 대비하지 않았겠는가. 요괴의 몸으로 수련하려면 반드시 마성을 깎아버리고 금신(金身)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원숭이가 사부를 떠난 후 천궁(天宮)에 난동을 부린 것도 필연이었다.
당시의 천궁은 이미 상황을 진압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말법(末法)이 도래하자 뭇 마(魔)가 세상에 나와 세상을 어지럽히면서, 정사(正邪) 대결의 천칭이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때의 천궁은 이미 인간 세상에 만연하는 마성(魔性)을 억제하지 못했고, 장래를 대비하고 말세의 도태를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원숭이는 이 선택을 코앞으로 밀어붙였다.
오공은 미친 듯이 날뛰며 위로 쳐들어갔고, 각 방면의 세력들이 구원하러 오게 했다. 이것은 장래 인간 세상의 정법(正法)이 시작되는 인연이었다. 이때의 천궁은 스스로 살길을 모색할 것인지, 아니면 법에 동화되는 길을 선택할 것인지 태도를 분명히 해야 했다. 그래서 취경인(取經人)을 배치해야 했고, 각 방면의 신선들, 석(釋)·도(道)·유(儒) 사상을 통일하고 전선을 통일해 법에 동화되는 길을 선택했다. 이는 장차 대법(大法)이 널리 전파되는 것을 위해 미리 포석을 깔아두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 함께 취경(取經)이란 대계획의 진도를 추진해 후세에 정법이 널리 전해지기 위한 기초를 다졌다.
오공은 남자 조연 1호였지만, 실제 등장 횟수는 주인공의 후광을 훨씬 능가할 정도로 빼어난 정면(正面)적인 이미지이다. 다만 초기, 선봉에 나섰을 때 마로 변하는 과정을 벗어나 처벌을 기꺼이 받아들여 마성(魔性)을 제거하고, 본성의 순진과 선량을 보존하며 여전히 광명을 향한다면, 돌아올 수 있다. 마음을 선하게 내어 한 마음으로 취경인을 보호하여 영산(靈山)에 이른다면, 똑같이 공덕이 원만(圓滿)할 수 있다.
사실 서쪽 여행에서 진경(真經)을 얻는지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경을 구하는 과정이다. 이는 후세인들에게 생생하면서도 깊은 의미를 지닌 수련의 심리적 여정 전체를 연기로 보여주었다. 후세 사람들에게 무엇이 수련인지 알려, 수련이라는 두 글자를 볼 때 단순히 하나의 단어만 생각하는게 아니라 “백골정을 세 번 치고”(三打白骨精)… “우마왕(牛魔王)”… 고통을 구제하는 관세음보살… 제천신불(諸天神佛) 등 일련의 다채롭고 뛰어난 취경 이야기들을 연상케 한다. 수련의 내포는 바로 이야기 속에서 기쁘게 보고 즐겁게 받아들이는 가운데 세상 사람들에게 펼쳐진다.
서쪽 여행 이야기는 한 주원신(主元神)과 세 부원신(副元神)이 취경인의 사상 속에서 각종 염두가 나타나고, 사심(私心)과 잡념, 욕망과 정념의 선택, 선과 악의 시소 게임, 마음이 고양이에게 할퀴는 것처럼 흔들리는 불안정함, 심마(心魔)가 촉발하는 인성에 대한 각종 검증을 거쳐 심성(心性)을 제고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최종적으로 모든 사심(私心)을 버리고 욕망을 끊어내며, 한 가닥 진심(真心)을 다지고, 잡념을 제거하고 초심을 견고히 하면서, 하늘과 사람이 싸우는 복잡하고도 다채로운, 사람에서 신(神)으로 탈바꿈하는 과정이다.
사람 공간에서 서유 이야기는 단지 취경인의 사상 투쟁, 심신 정화, 신념을 견정하게 하고, 사명 완수를 통한 개오(開悟)와 승화 과정일 뿐이다. 반면 다른 공간에서는 훨씬 더 흥미진진하게 표현된다. 네 사도(師徒)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연기하는데, 처음에는 오합지졸처럼 흩어져 서로 발목을 잡고 헐뜯으며, 누구도 누구를 얕보지 않는 자가 없었다. 요괴가 없을 때는 그나마 괜찮았지만, 기껏해야 말싸움을 하고 몰래 함정을 파거나 뒤통수를 치는 정도였다. 요괴가 나타나자 상황은 복잡해졌다. 요괴가 조금 몸을 비틀어 미녀로 변하면 사제들의 눈을 멀게 하여 내부 갈등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육체 범태(凡胎)라 눈이 멀고 마음이 어두운 삼장(三藏);
미녀만 보면 지능이 마비되는 팔계(八戒);
별다른 주관이 없는 사승(沙僧);
그리고 요괴를 보면 일단 싸움부터 걸고 보는 오공.
이 조합은 정말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집안싸움을 구경하던 요괴들조차 기다리기 지루해져서, 계속 인간 행세를 하며 그들을 속여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입속에 들어온 당승 고기가 날아갈 터였다.
사실 원숭이 한 마리만 깨어 있었다. 환상(幻像)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화안금정(火眼金睛) 아래에서는 어떤 요괴도 본모습을 숨길 수 없었고 모두 정체가 드러났다. 하지만 원숭이 혼자만 깨달을 수 있을 뿐,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여 깨닫게 할 수는 없었다. 요괴라고 외치고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다. 취경단(取經團)은 사상을 통일하고 일치단결하여 외적에 맞서지 못하고, 서로 의심하고 불신하며 힘을 한데 모으지 못했다. 각자 제 갈 길을 가니, 요괴의 몸이 아닌 자기편을 공격하는 꼴이 되었다.
이것이 바로 정체(整體) 협력에서 발생하는 모순의 근원이다. 소통 능력의 문제이자 지혜의 부족이다. 누가 이런 누락의 근원을 찾아내, 더 큰 용량의 자비심을 불러일으켜 타인의 결점을 포용하고, 지혜롭게 타인의 오성(悟性)을 높여 자신의 부족함을 인식하게 하고, 법 속에서 바로잡고 원만하게 만들 수 있는가. 선(善)의 힘은 모든 집착과 장애를 격파하고 간격을 깨뜨려 전체를 형성할 수 있다. 마음이 하나가 되면 법의 위력이 발휘되어 어떤 요마귀괴(妖魔鬼怪)도 정진하는 발걸음을 막을 수 없다.
선의(善意)의 소통, 신성(神性)의 각성은 대중의 혼란스럽고 복잡한 사유 주파수를 정리하고 한데 모아 전체를 형성할 수 있다. 더 높은 차원의 에너지와 연결되어 모든 바르지 못한 요소를 바로잡을 수 있으며, 여의법(如意法)을 수련한다면 어찌 사명을 완수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겠는가. 그러므로 마음과 마음의 소통을 이루려면 선(善)의 힘이 필수적이다. 선의(善意)가 결여된 소통, 사심이나 개인적인 목적이 섞인 소통은 목적이 순수하지 못하여 그 자체가 간격이며, 종종 역효과를 낳고 자칫 모순을 격화시키기 쉽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만약 한 사람이 어떠한 관념도 없이, 개인의 이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 진심으로 남이 좋아지도록 남에게 그의 부족함을 말해주거나, 혹은 그에게 어떤 것이 바른 것이라고 알려준다면, 그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릴 것이다.”(《싱가포르 법회 설법》)
이야기가 멀리 갔으니, 다시 본론으로 돌아오자. 오공은 조사 옆에 남을 수 없음을 알고 작별 인사를 올렸다.
조사는 안심이 되지 않아 다시 한번 겁을 준다.
“네가 이 길로 떠나면 반드시 좋지 못한 짓을 할 것이다. 네가 아무리 화를 초해하고 못된 짓을 하더라도, 절대 나의 제자였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 네가 반 글자라도 말한다면, 나는 즉시 알게 될 것이고, 너 이 원숭이 녀석의 가죽을 벗기고 뼈를 깎아 신혼(神魂)을 구유(九幽)의 깊은 곳에 떨어뜨려 만겁(萬劫) 동안 다시 태어나지 못하게 할 것이다!”
오공이 말했다.
“절대로 사부님에 관해서는 한 글자도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저 혼자 배운 거라고 말하겠습니다.”
조사가 한 이 독한 말을 보면, 그의 내력이 고심(高深)해서 헤아리기 어려움을 알 수 있다. 조사는 단지 오공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원숭이는 당연히 그 대단함을 알기에, 나중에 천궁에 붙잡혀 가서 온갖 재난을 겪으면서도 감히 스승을 들먹여 재앙을 막으려 하지 않았다. 스스로 모든 고통을 견뎌냈으니, 참으로 좋은 원숭이였다. 사부가 뒤를 맡길 만한 좋은 제자였던 것이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58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