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德惠)
【정견망】
북송 휘종 숭녕 연간(서기 1102-1106년), 송 휘종은 꿈을 하나 꾸었는데 꿈이 매우 선명했다. 꿈속에서 한 청의동자(靑衣童子)가 하늘에서 내려와 송 휘종 앞에 나타나 옥패를 보여주었는데, 옥패에는 ‘병오창기, 진인당출(丙午昌期, 眞人當出)’이라는 여덟 개의 큰 글자가 적혀 있었다. 그 후 송 휘종은 꿈에서 깨어났고, 이것이 하늘이 내린 예언이라 여겨 이를 기록해 두었다. 그는 병오년이 되면 북송 왕조가 번창할 시기이며 진선(眞仙)이 강림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조서를 내려 이 꿈을 이야기하며 사람들에게 고인(高人)과 신인(神人)을 찾아보라고 명했다. 많은 사람을 찾았으나 그가 생각했던 진선은 한 명도 없었다.
을사년(서기 1125년, 북송 선화 7년)에 이르러 금나라 군대가 동쪽과 서쪽 두 길로 나누어 남하하여 송나라를 공격했다. 송 휘종은 형세가 위급함을 보고 태자 조환에게 제위를 물려주니 이가 곧 송 흠종이다. 송 흠종의 연호는 ‘정강(靖康)’이었으므로 병오년(서기 1126년)은 정강 원년이 된다. 정강 2년인 정미년(서기 1127년)에 이르러 송 휘종과 송 흠종 및 수많은 귀족, 관리, 시녀들이 모두 금나라 군사에게 붙잡혀 갔으니, 이를 역사에서는 ‘정강의 치(靖康之恥)’라 부른다.
송 휘종은 금나라로 압송되는 길에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숭녕 연간에 꾼 기이한 꿈을 반복해서 읊조리며, ‘병오창기, 진인당출’이라는 하늘이 내린 꿈의 징조가 영험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홀연히 깨달았다. ‘창(昌)’은 ‘창(猖)’과 음이 같고 ‘진인(眞人)’은 여진인(女眞人)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원래 하늘은 병오년이 되면 여진인이 세운 금나라의 세력이 강대해지고 창궐(猖獗)하여 송나라에 거대한 위협이 될 것임을 경고한 것이었다.
하늘은 해음(諧音)의 방식으로 송 휘종에게 경고했으나, 애석하게도 송 휘종은 당시 이를 깨닫지 못하고 때가 되면 북송이 자연히 번창할 것이라고만 여겼다. 이 일은 사실 역사는 안배가 되어 있음을 설명한다. 그렇기에 일부 신령과 예언가들이 어떤 은어, 해음, 파자 등의 방식으로 미래의 큰 사건을 사람들에게 미리 누설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깨달음[悟性]은 왕왕 낮아서 대부분 일이 일어난 후에야 예언의 참뜻을 깨닫는다. 이렇게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이를 통해 당사자의 신심과 깨달음을 시험하기 위함이다.
2026년 오늘날은 역사적인 정강의 치부터 이미 900년이 지났다. 오늘날 중화 대지에도 ‘천멸중공(天滅中共)’이라는 예언이 널리 퍼져 있는데, 이 예언은 이전의 것들과 달리 중공의 역사적 결말을 명확히 지적하고 있다. 이 또한 하늘의 자비다. 너무나 많은 중국인이 중공 조직에 가입하여 중공의 ‘신선한 피’가 되었고 중공의 일원이 되었기에, 중공이 훼멸될 때 이 사람들도 중공과 함께 멸망하게 되기 때문이다. 과거의 예언이 지목한 재난은 단지 소수의 사람만을 겨냥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중국인은 중공 조직에 가입했다. 하늘은 대량의 비극이 나타나는 것을 차마 보지 못하여 특별히 수련인을 통해 예언을 전파하고 있다. 또한 이 예언은 구체적인 시간과 방식을 언급하지 않았는데, 이 역시 중생의 신심과 깨달음을 시험하는 것이다.
사실 많은 수련인이 어떤 특이공능(特異功能) 상태에서 ‘천멸중공’ 시의 어떤 정경들을 보았다. 수많은 수련인이 ‘천멸중공’의 소식을 널리 전하며 사람들에게 중공의 당, 단, 대 조직에서 탈퇴할 것을 권하는 것은, 그들이 정치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로 사람을 구하는 것이다. 중생들은 반드시 믿어야 하며, 하루빨리 당, 단, 대에서 탈퇴한다는 의사를 표명해야 한다.
자료 출처: 남송 강만리 《선정잡록(宣政雜錄)》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