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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향 십삼릉 전설 이야기

정의(正義)

【정견망】

명(明) 십삼릉은 북경(北京) 창평구(昌平區) 북산 기슭에 위치하며, 명나라 13명 황제의 능묘군으로 총 23명의 황후와 1명의 귀비가 안장되어 있다.

명 십삼릉은 중국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황제와 황후의 능침 수량이 가장 많은 황릉 건축군이다. 능 구역은 영락 7년(1409년)에 건립되기 시작하여 숭정 17년(1644년) 명나라가 멸망할 때 기본적으로 완공되었으며 전후로 200여 년이 걸렸다. 능 구역은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중간은 약 40평방킬로미터의 작은 분지이며 남쪽으로 북경 평원과 접해 천연 문호를 형성한다. 입구 좌우에는 각각 산봉우리가 하나씩 있는데 이를 용산(龍山)과 호산(虎山)이라 부른다. 13개의 능묘는 능구의 동, 서, 북 삼면에 분포하며 각 능묘는 모두 하나의 산봉우리를 배경으로 하고 규모는 각기 다르나 형식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각 능의 주요 건축물은 순서대로 능문(陵門), 영성문(欞星門), 능은전(陵恩殿), 명루(明樓), 보성(寶城) 등이다. 보성 아래가 바로 지하궁전이다. 전체 구역이 혼연일체를 이루면서도 각 능은 저마다의 국면을 갖추고 있어 격식이 다르고 특색이 각기 괴이하다.

정릉(定陵)

정릉은 십삼릉 중 유일하게 정식으로 발굴된 능묘다. 정릉은 만력 12년(1584년)에 착공하여 만력 18년(1590년)에 완공되었으며, 명나라에서 재위 기간이 가장 길었던 황제인 명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鈞)과 그의 두 황후의 합장릉이다.

정릉의 신기한 이야기

전설에 따르면 정릉 부근에 원래 한 마을이 있었고 마을에는 많은 백성이 살고 있었다. 어느 날 밤, 마을 사람들은 누군가 큰 소리로 “빨리 떠나야 큰불을 피한다!”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전해지는 바로는 한 백발노인이 마을에서 밤새도록 외쳤으나 한 사람도 나와서 개의치 않았다. 노인은 사람들의 오성(悟性)이 너무 낮아 신(神)의 일깨움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을 보고 유감스럽게 떠났다.

다음 날 밤, 마을에 갑자기 큰불이 났고 마을 전체에서 한 명도 피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는 사람들에게 무엇이든 믿지 않는 태도를 갖지 말라고 훈계한다. 때로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생명을 보존하고 재난을 피할 수 있는데, 그것이 바로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다.

파룬궁 수련자는 사람을 구하러 온 것이며, 파룬따파는 이미 15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파되어 사람들에게 선을 권하고 쩐(眞)·싼(善)·런(忍)으로 자신을 요구하게 한다. 세상 사람들이 파룬따파하오 쩐싼런하오를 기억하여 대재난을 평안하게 지나고 아름다운 미래를 가지길 희망한다.

석패방(石牌坊)의 신기한 이야기

십삼릉 신도(神道)에 있는 석패방은 규모가 거대하다. 건립 당시 석공들은 무거운 거석을 마주하고 어떻게 세워야 할지 몰라 속수무책이었다. 이때 대변을 줍던 한 노인이 다가왔다. 석공들이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자 노인은 오직 한 마디만 남겼다. “나는 흙이 목까지 찬 사람이다.” 말을 마친 노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석공들이 이 말을 반복해서 음미하다 마침내 그 함의를 깨달았는데, 흙으로 조금씩 쌓아 높이면 비석을 천천히 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과연 성공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노인의 말에는 흔히 지혜가 담겨 있으니 성현의 말씀을 많이 들으면 손해를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려준다.

신도

십삼릉의 각 능에는 모두 가지런히 깔린 신도가 있다. 대홍문(大紅門)으로 통하는 도로 양옆에는 거대한 돌 하나를 통째로 깎아 만든 석상들이 배열되어 있는데, 사자, 낙타, 말은 각각 두 마리는 꿇어앉고 두 마리는 서 있는 모습이다. 석인은 총 12존으로 문신, 무신, 공신으로 나뉜다. 영성문은 일명 용봉문(龍鳳門)이라고도 하며 3문 6주의 석방식 건축물로 기둥 머리에는 운판(雲板)과 이수(異獸)가 조각되어 있다. 전해지는 바로는 이 석상들이 밤이 되면 걸어 다닐 수 있다고 한다.

구애(鉤崖)와 산묘(山廟) 이야기

십삼릉 덕승구(德勝口) 일대의 산에는 구애라는 곳이 있는데, 산속에 일찍이 작은 사묘(寺廟)가 있어 향불이 매우 성했다. 묘 안의 늙은 도사가 조밥 한 그릇을 끓이면 아무리 많은 사람이 와도 다 먹지 못해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겼다. 산길이 험준했으나 신을 공경하고 병을 고치러 오는 사람들을 막지 못했다.

내가 열 살 때 마을 동무들을 따라 산에 오른 적이 있는데 길은 극히 위험했고 거석 위에 큰 뱀 한 마리가 또아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이 오가도 그것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마을 사람이 막대기로 뱀을 치려 하기에 내가 즉시 붙잡으며 말했다.

“저건 자고 있는 거예요. 당신이 치면 저 뱀이 당신을 잡아먹지 않겠어요?” 그러자 그 사람이 물러났다. 마을 노인들은 이 산의 뱀은 네가 건드리지 않으면 너를 해치지 않는다고 말했다.

노인들은 또한 문화대혁명 기간에 어떤 이들이 산에 올라 묘를 헐었을 때 목재들이 땅에 흩어졌다고 했다. 나중에 묘를 허는 데 참여한 사람들은 모두 끝이 좋지 않았다. 묘 안의 물건은 누구도 가져갈 수 없으며 만약 사사로이 가져가면 반드시 하산하는 도중에 사고가 났다. 산속에 관(關)씨 성의 노도사가 있었는데 유물은 훼손되었을지언정 영기(靈氣)는 여전히 존재한다.

나는 또 산을 지키는 한 노인에게서 들었는데, 그가 낮잠을 자던 중 백발노인이 곁에 나타난 것을 보았고 이로 인해 세상에 참으로 신령이 존재함을 믿게 되었다고 한다. 나도 그에게 장쩌민이 파룬궁을 박해한 사실과 중국공산당의 온갖 사악한 행태를 말해주었다.

오늘날 파룬따파는 이미 세계 150여 개 국가에 널리 전파되었으며 세계 각국은 중국공산당의 죄행을 규탄하고 있다. 수억 명의 사람이 중국공산당 및 그 부속 조직에서 탈퇴했는데 이것은 천의(天意)다. 세상 사람들이 중국공산당의 사악한 본질을 뚜렷이 인식하고 멀리하여 스스로 광명하고 아름다운 미래를 선택하기를 희망한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