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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씨 집안의 풍수 보물터

안단

【정견망】

청나라의 건륭, 가경, 도광, 함풍 네 조정을 거치며 덕망이 높았던 명신이 있었으니, 바로 자가 괴당(槐堂)인 반세은(潘世恩)이다. 그가 태어난 날 집 뜰에 갑자기 영지초 한 주가 자라났는데 광택이 나고 매우 선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자란 후 지헌(芝軒)을 자신의 호로 삼았다. 한림원(翰林院)에서 무영전(武英殿)에 이르기까지, 각 부 시랑을 역임하고 남방 여러 성의 학정(學政)을 지내기까지 그는 줄곧 황제의 신임을 얻었으며 그 영향력은 조정과 재야를 흔들기에 충분했다. 청조 300년 역사상 장원, 재상, 태부의 직함을 두루 역임한 이는 오직 그 한 사람뿐이다.

혹자는 그가 이토록 현달한 이유가 집안에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풍수 보물터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틀리지 않지만 더욱 중요한 점은 그 땅이 사실 깊은 내력이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반씨 가문이 강소 오현(吳縣)의 명성이 큰 가문이긴 하지만 그 보물터를 찾아내고 얻은 반씨 조상은 안휘 흡현(歙縣) 사람이었다.

당시 이 반옹(潘翁)은 장사를 하는 사람으로 형편이 넉넉했다. 그는 선서(善書)인 《태상감응편》 읽기를 가장 좋아했으며 평소에도 늘 즐거이 선을 베풀고 보시했다. 매년 연말이 되면 그는 사방으로 다니며 미리 나누어 담은 은조각을 거리와 시골의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많은 사람이 그의 은혜를 입었으나 그의 성명은 알지 못했다.

어느 해 섣달그믐날 밤, 반옹은 집에서 섣달 밤을 지새고 있었다. 그가 홀로 당옥(堂屋)을 지나갈 때 갑자기 구석진 어두운 곳에 사람 그림자가 있는 것을 보았다. 횃불을 들어 가까이 비추어 보니 뜻밖에도 이웃집 아이였다.

그 아이는 이미 성인이 되어 있었고, 반옹의 물음에 매우 부끄러워했다. 한참이 지나서야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정말 못나서 오랫동안 도박을 하느라 집안 돈을 다 날리고 외채도 많이 졌습니다. 이 섣달그믐날 밤에도 빚쟁이들이 문 앞까지 찾아왔습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이웃집에 손을 댈 생각을 했습니다. 마침 어르신 댁이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둔 옆집이라 제가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첫 번째로 이곳으로 직행했습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하게 어르신께 현장에서 붙잡혔습니다. 이제 제게는 죽는 길밖에 없는 듯합니다.”

반옹은 말을 다 듣고 평온한 마음으로 물었다.

“지금 네 빚이 얼마나 되느냐?”

“금 10냥이 남았습니다.”

반옹이 말했다.

“아니, 고작 10냥이라니, 그리 큰일도 아니구나! 진작 나를 찾아왔어야지!”

그는 그를 데리고 당옥으로 가서 먼저 앉게 한 뒤, 자신은 방에 가서 돈을 가져왔다. 돌아온 그는 돈을 건네며 말했다.

“여기 20냥이 있으니 10냥은 빚을 갚는 데 쓰고, 남은 10냥은 생활비로 쓰거라! 오늘의 일은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여길 것이며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지 않겠다. 너는 이후로 다시는 옛길을 가지 마라.”

그 사람은 눈물을 흘리며 만감이 교차하는 마음으로 반옹에게 끊임없이 절을 했다.

10여 년 후, 반옹은 산에서 땅을 한 곳 찾으려 했다. 하루는 우연히 마음에 드는 땅을 보았으나 주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산을 내려온 후 그는 주막에 들러 잠시 쉬었다. 막 자리에 앉자 한 쌍의 남녀가 다가왔다. 두 사람은 반옹을 보자마자 무릎을 꿇고 절을 했다. 반옹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 남자는 바로 그 옛날 섣달그믐날 밤 자신의 집에서 마주쳤던 그 이웃이었다.

알고 보니 산기슭의 그 주막은 그 남자가 운영하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반옹의 선한 마음에 감동하여 정말로 개과천선했다. 도박을 끊었을 뿐만 아니라 주막 장사를 시작했다. 이후 장사가 갈수록 번창하여 돈을 모았고 가정도 꾸렸다. 부부는 반옹을 자신의 주막에 머물게 하며 정성껏 대접했다. 당시의 일을 이야기하며 다시금 감사의 마음을 품었다.

이때 반옹이 산에서 보았던 그 땅에 대해 물었다. 그 사람이 즉시 대답했다.

“그 땅은 원래 제가 조상을 모시려고 사둔 것입니다. 이제 어르신을 뵈었으니 어떻게 보답해야 할지 생각하던 참이었습니다! 어르신께서 좋아하신다면 그것을 어르신께 드리겠습니다!”

반옹은 이 말을 듣고 거절했으나 그 사람은 완강히 주려 했다. 결국 성의를 거절하기 어려워 받아들였지만, 반옹은 그 사람에게 후한 사례를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풍수 대사(大師)가 그 땅을 보고는 극상의 풍수 보물터라고 말하며, 그 땅에서 장원이 나올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리고 수년 후 이 예언은 반세은에게서 실현되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반세은 이후에도 반 씨 가문에는 여전히 관직에 나아가 출세한 후손이 많았는데, 전하는 바로는 탐화(探花)가 2명, 진사가 18명, 거인이 3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그들 대부분은 조정에 임용되어 한 시대의 중요한 신하가 되었다.

풍수 보물터는 희귀한 것이라 집집마다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반옹이 우연히 얻게 된 배경에는 사실 선한 일에는 선한 보답이 따른다는 필연이 있었다. 진정으로 후손에게 복을 내리는 것은 온전히 풍수 때문만이 아니며,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결국 덕행(德行)이다.

반씨 가문의 가장 성취가 높은 후손인 반세은도 자연히 이 도리를 깊이 깨닫고 있었다. 그는 조상의 두터운 덕을 계승하여 늘 백성을 평안케 하고 세상을 구제하며, 즐거이 선을 베풀고 보시하는 자선지심(慈善之心)을 품고 있었다. 그가 관직에 있을 때 행한 선행에 관한 이야기 역시 전설적인 색채로 가득하다.

어느 해 강소와 절강 일대에 수해가 발생했다. 당시 가장 먼저 세금을 감면하고 재난을 구제하자고 제안한 관원이 바로 반세은이었다. 그는 굶주린 백성들이 거리를 떠도는 것을 보고 직접 몸소 나서서 구걸하러 온 사람들에게 쌀을 나누어 주었다. 하루는 관청에서 정한 배급 시간이 지났고 다른 굶주린 백성들은 모두 흩어졌다. 이때 비틀거리는 발걸음의 한 노부인이 멀리서 걸어왔다. 그녀는 낡은 포대 하나를 짊어지고 관청 문앞에서 쌀을 구걸했다. 수비병이 들여보내 주지 않자 노부인은 구슬프게 울며 도무지 떠나려 하지 않았다. 수비병은 어쩔 수 없이 반 대인을 모셔 왔다. 반세은은 노인이 가련해 보여 즉시 그녀를 관청 안으로 데려가 쌀을 좀 담아 주려 했다.

노부인의 포대는 좀 이상했다. 보기에는 쌀 1승(升) 정도만 들어갈 듯했는데, 반세은이 퍼 담아 준 쌀이 거의 1말(약 10승)가 되어가도 여전히 가득 차지 않았다. 모두가 의아해하고 있을 때 부인이 반세은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됐습니다 됐습니다, 더 담지 않으셔도 됩니다. 반 대인, 당신이 이토록 즐거이 선을 베푸시니 하늘이 반드시 당신에게 복을 내릴 것입니다.”

말을 마친 노부인은 포대를 메고 떠났다. 이때 주변 사람들이 발견하니 그 포대는 전혀 터진 곳이 없었는데, 조금 전 포대를 놓았던 탁자 위에는 어느새 쌀이 가득 쌓여 있었다. 게다가 그 쌀은 이전보다 더 광택이 났으며 알알이 진주처럼 반짝거렸다. 사람들이 거두어 무게를 재어 보니 딱 9승이었다. 즉 노부인이 가져간 것은 여전히 1승뿐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의논하며 그 노부인이 아마도 보살의 화신일 것이라 말했다. 보아하니 사람들의 마음속에 반 대인의 덕행은 족히 하늘을 감동시키고 땅을 울릴 만했던 것이다. 그러한 선조와 이러한 후손이 있으니 반 씨 가문이 어찌 흥성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참고자료: 《이원총화(履園叢話)》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3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