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연(了緣)
【정견망】
이 미후왕이 성 밖으로 달려 나오다가 갑자기 발을 헛디뎌 비틀거리더니, 번쩍 정신을 차리고 보니 바로 남가일몽(南柯一夢)이었다.
네 건장(健將 건장한 장수)과 원숭이 무리가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대왕님, 술을 얼마나 드셨기에 밤새도록 주무시고 아직도 안 깨어나십니까.”
오공은 그제야 한잠 자는 사이에 죽음과 스쳐 지나갔음을 깨달았다, 정말 위험했다! 다행히 도를 배운 보람이 있어 저승을 제압할 능력이 있었고, 자신의 이름을 지워 후환을 없앴다. 이렇게 도를 얻은 원숭이라도 한순간 방심하면 삶과 죽음의 경계에 놓이게 된다. 정말이지 저승에 이름이 있으면 죽고, 이름이 없으면 사는 법이니, 세상에 태어나 이 기관(機關)를 타파하지 못하면 육도윤회는 언제 끝날 것인가! 만약 정(情)과 사랑에 얽매여 수련할 마음이 없다면 영원히 생사윤회를 벗어날 수 없으며, 세세생생 온유향(溫柔鄕 역주: 사람을 미혹시키는 부드럽고 편안한 세계 주로 여색에 빠지는 것을 표현함) 속에서 업과(業果)를 심게 되니, 이 어찌 헛된 삶이 아니겠는가! 얼마나 많은 기연을 놓치는가. 인간 세상은 집착할 가치가 없다!
이에 오공은 의기양양하게 염라전에서 보여준 자신의 패기 있고 위풍당당한 장거(壯擧)를 원숭이들에게 들려주었다. 동시에 하늘만큼 큰 좋은 소식도 발표했는데, 오공은 생사부에서 자기 이름만 지운 것이 아니라 수하들의 명호도 한꺼번에 다 지워버렸다는 것이다. 이는 나를 믿고 따르며 나를 왕으로 인정하는 자들은 모두 미후왕과 함께 장생하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왕으로서 져야 할 책임이며, 그 믿음에 보답하기 위해 자기 중생들을 책임져야 하는 것이니, 왕과 중생은 공생하는 인과(因果)다. 하나가 영광스러우면 모두가 영광스럽고 하나가 손해를 보면 모두가 손해를 본다 할 수 있으니, 굳이 말하자면 한 원숭이가 도를 얻으니 닭과 개까지 하늘로 올라간 셈이다.
왕관을 쓰려면 반드시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 역대 개국 황제들의 보위 쟁탈전은 모두 수많은 시체와 유골을 밟고 왕위에 오른 것이다. 먼저 살업(殺業)을 짓고 나중에 선업(善業)을 지으니, 어느 제왕인들 살생의 업이 없겠는가? 이 세상에서 가장 견고한 인연은 살연(殺緣)이며, 또한 가장 풀기 어려운 원한의 인연(怨緣)이다. 일단 원한을 맺으면 세세생생 해탈하기 어려우며, 이를 선해(善解)하고자 한다면 오직 수련뿐이다. 충분한 보상과 하늘 같은 행운을 준다 해도 상대방이 화해할 마음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심지어 어떤 이는 한이 너무 깊어 사부님이 직접 나서 혜택을 약속해도 화해하려 하지 않는다. 차라리 양패구상(兩敗俱傷)할지언정, 목숨은 목숨으로 갚아야 한다며 자신을 구도하지 않아도 좋으니 목숨을 내놓으라고 버티면 참으로 난처하다.
예를 들어 병업관(病業關)을 보자면, 병업은 가상(假象)이지만 집착은 진짜이며, 괴로움과 통증은 가상이지만 살고 싶고 죽기 싫어하는 사람마음은 실질적으로 존재한다. 관건은 표면이 아니라 내면에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련인에게 병이 없다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인심이 불러들인 귀신은 가짜를 진짜처럼 보이게 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므로 병업관을 넘기는 것은 당신이 어느 층차까지 믿느냐, 생사를 내려놓을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사실 병업관을 넘기는 것은 다이어트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다이어트 하는 사람이 음식을 적게 먹는 것에만 중점을 두면 대부분 말뿐이거나 오히려 더 많이 먹게 된다. ‘적게 먹어야지’ 하는 생각이 있으면 금방 배고픔을 느끼기 쉬운데, 이는 조건반사다. 먹지 않으면 배고프다는 습관적인 사고가 다이어트 생각을 하는 순간 배고프다는 가상을 부여한다. 방금 먹어서 전혀 배고프지 않더라도 배고픈 느낌을 가상으로 만들어내며, 억제할수록 더욱 먹고 싶어져 오히려 식욕이 강해진다.
맞다, 문제는 욕망에 있다. 적게 먹으려 고민하지 말고 단지 먹는 것에 대한 욕망을 제거한다면, 욕망이 줄어듦에 따라 음식에 대한 집착도 자연히 줄어든다. 집착하지 않아야 유혹되지 않으며, 청심과욕(淸心寡欲)의 상태에 들어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음식을 취하게 되면 과도하게 탐하는 마음이 사라진다. 욕망의 견인을 제거하면 정념(正念)이 강해지며, 다이어트니 뭐니 하는 개념 자체가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과도한 지방은 존재할 공간이 없게 된다. 마음을 닦아 욕망을 끊으면, 마음이 고요해져 자연히 살이 빠진다.
다시 이 홍진탁세(紅塵濁世)를 돌아보며 욕망이 이끄는 내력을 명확히 알게 되면, 그로부터 연유한 각종 집착과 사람마음에는 모두 뿌리가 있음을 알게 된다. 집착의 뿌리를 따라가 욕망이라는 열매를 찾아내어 뿌리째 뽑아버리는 것만이 문제를 철저히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이다. 앞의 원인(前因)은 모르고 후과(後果)에만 공을 들이면 모두 헛수고일 뿐이다. 열매는 따버려도 다시 열릴 수 있다. 뿌리가 있으면 열매가 나오기 마련이며, 이는 원한을 원한으로 갚는 악순환을 불러올 뿐이니 어찌 인과응보를 벗어날 수 있겠는가.
인과의 높이에서 문제를 바라보면 이 세상에 가련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온갖 재난을 겪는 자신을 포함해 표면만 보면 두아(竇娥)처럼 억울해 보이고 쓰라린 눈물뿐일 것이다. 하지만 시간의 선을 조금 길게 늘려 세세생생 배후에 심은 그 원인을 보라. 채권자가 빚을 받으러 온 것이고, 빌렸으면 갚는 것이 천경지의(天經地義)한 일인데 무슨 억울함이 있는가. 불쌍한 해본들 당신의 채권자가 당시 당했던 것보다 더 비참하겠는가? 맹파탕(孟婆湯 환생할 때 기억을 잃게 하는 탕)를 마신 것은 전생의 일을 잊은 것일 뿐, 잊었다고 해서 빚이 제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잊었기에 갚는 것이 더 고통스럽다. 하지만 사람은 진상을 모르니 느닷없이 닥친 재앙이라 생각하며 ‘왜 하필 늘 나만 상처받는가?’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야 원망하고 고통스러워하며 업을 소멸할 수 있다.
병업관은 바로 이렇게 오는 것이다. 다이어트와 마찬가지로 당신이 늘 그 병을 생각하면 이는 마치 신체 모든 세포에 명령을 내리는 것과 같으며, 스스로 병의 상태에 있도록 유도하는 것과 같다. 집착이 깊어지면 병이 없어도 불러오게 된다. 하물며 실제로 업력이 병의 형식으로 당신을 단련(魔煉)시키러 오기도 한다. 수련인에게 병이 있으면 공(功)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즉, 공이 있다면 병이 있을 수 없다. 아무런 느낌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수련 초기 신체 정화 과정에서 심신의 변화는 매우 크다. 건강한 신체는 모든 제자가 수련을 견지해 나가는 최초의 체험이다. 그러므로 몸에 문제가 생겼을 때 병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 한 생각은 사부님이 설하신 법을 믿지 않는 것이며, 병원에 가서 치료받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어떤 이는 “나는 사부님을 믿지 않는 게 아니다, 약도 안 먹고 버텼다. 그런데 몸은 더 심하게 병들고 고통이 끊이지 않는다”라고 말할지 모른다.
이것이 바로 깨달음(悟性)의 문제다. 자신이 병을 어느 정도까지 고치고 싶은지를 봐야 한다. 만약 여전히 몸을 건강히 하는 층면에 머물러 사고방식이 속인과 비슷하다면 그는 속인일 뿐이다. 비록 법을 얻기 전의 병이 다 나았더라도 수련 수년 후에 다시 나타날 수 있다. 이는 당신의 사상이 제자리걸음을 하며 법을 얻은 초기의 상태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정법(正法)의 노정은 하루가 다르게 나아가고 있고 시간 역시 사람의 수명을 소모하고 있는데, 법은 영원히 제자리에서 당신을 기다려주지 않는다. 머물러 나아가지 못해 기회를 너무 많이 놓치면, 거리가 벌어진 고차원의 에너지가 당신을 견인할 수 없게 되며 생명의 연장 또한 중단된다.
법을 얻어 병이 나았는데 그것을 생활을 즐기는 데 사용하고 마음이 법에 있지 않다면, 속인과 똑같이 생로병사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 착실히 수련하는 다른 이들은 이미 대학을 졸업했는데 당신은 여전히 싫증 내지 않고 초등학생 노릇을 하며 자신을 속이고 있다. 법 속에서 혜택만 얻으려 하고 감당하려 하지 않다가 도태된다면 법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 마라. 당신이 파룬따파(法輪大法) 제자라는 칭호를 저버린 것이고, 중생의 기대를 저버린 것이다. 계약을 위반한 결과는 자신이 가장 잘 알 터이니 여기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만약 문제를 단번에 영원히 해결하고 싶다면 업을 갚아야 하며 장부를 청산해야 한다. 기억하라, 빚을 갚으라는 것이지 목숨을 갚으라는 것이 아니다. 파룬따파 제자의 목숨은 사부님께 달려 있으며 그야말로 사부님과 공생(共生)하는데 누가 감히 가져가겠는가? 스스로 구하는 것이 아니라면 누구도 당신을 건드릴 수 없다. 물론 수련인에게 가장 좋은 변제 방식은 선해(善解)이다. 즉 채권자를 제도하는 것인데, 빚도 갚고 사람을 구하는 사명도 이행하니 이 얼마나 좋은 기연인가! 이 모두가 기쁜 일인가.
사실 우리가 역사적으로 지은 살생의 업 중에는 주유가 황개를 때리듯 서로 짜고 친 것도 있다. 왜 그러한가? 바로 오늘날 인연이 되어 당신 앞에 나아와 진상을 듣기 위해서다. 구도받을 기회를 위해 당신에게 한 번 죽는 것이 뭐 대수겠는가. 오직 살연(殺緣)만이 당신을 단단히 묶어 전세(轉世)를 거쳐도 따라다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빚이 사라지지 않으면 당신은 도망갈 수 없고, 당신이 법을 얻어 수련할 때까지 이 기연이 안정된다. 남은 것은 당신이 진상을 알리는 능력에 달렸다.
당신이 역사 속 개국 황제들을 보라. 걸핏하면 공신을 죽이고 툭하면 구족, 십족(十族)을 멸하며 심지어 어린아이조차 놓아주지 않는다. 살업이 일어나면 수천수만 명의 목숨이 부추 베듯 거둬진다. 역사는 늘 반복되며, 물론 이 안에는 구세력이 강요한 요소도 있다. 우리는 선(善)을 닦고 자비심을 닦아야 하기에 이를 권장하지 않지만, 이미 역사 속에서 저지른 일들을 모두 선해하려 해도 누구나 이치를 알아듣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이는 도태될지언정 목숨을 목숨으로 갚으라며 당신의 목숨을 노리니, 그러면 난처해지고 확실한 사관(死關 풀기 힘든 매듭)이 된다.
여기서 서유기 사도 네 사람의 조합이 갖는 절묘함이 드러난다. 이치를 따지는 당승(唐僧)이 제도하니, 비록 선(善)해서 사람과 요괴를 구분하지 못 할지언정 제도해야 할 이는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이치를 따지지 않는 자는 오공이 제도하니, 몽둥이 한 대로 해결 못 할 것이 없다. 어차피 장부를 결산하는 것으로 그저 하는 방식과 방법이 좀 다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닦는 것은 틀림없으나, 불법(佛法)에는 위엄의 일면(一面)도 있다. 선해하지 못하는 것은 단지 자신이 충분히 강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채권자가 빚을 독촉할 자격조차 없을 정도로 강대해진다면, 법에 동화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가 없게 되어 사관(死關)이 존재하지 않게 된다. 강경하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박력이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강경하게 하는 것은 흔히 도리에 어긋나기 쉽지만, 박력은 고층차의 법리 위에 세워진 것이다. 법리 또한 우주의 법칙이니 어느 층차를 깨달으면 그 층차의 법리와 지혜를 장악할 수 있다.
수련인은 또 우주 법칙의 밖으로 내보내는 사람(輸出者)이라 이해할 수 있으며, 말이 곧 법이 된다 해도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론 당신의 경지가 그 위치에 도달해야 한다. 경지가 미치지 못하고 입으로만 떠들면 우주 에너지를 동원할 수 없으니 채권자도 당신을 우습게 본다. ‘보아하니 별거 없는데, 나보다 못할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당신이 주는 보상이 실현될 거라 믿을 수 있는가? 만약 마지막에 당신이 수련 성취하지 못해 혜택도 못 받고 내 빚만 날아가면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되는 것이 아닌가’라며 채권자가 어디 가서 하소연하겠는가.
경지에 도달하면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해도 에너지가 미치는 범위 내의 중생은 자동으로 정화된다. 사람의 일면(一面)은 모를지라도 부원신(副元神)이 일깨워준다. 순정(純淨)한 에너지장은 사람을 상쾌하게 만들고 뭔가 모르게 당신이 좋게 보이게 해서 첫눈에 맞아떨어진다. 그러니 무슨 빚을 독촉하겠는가. 호랑이를 따르면 고기를 먹고 능력자를 따르면 위풍당당해지며 허리도 꼿꼿이 펼 수 있다. 불(佛)·도(道)·신(神)을 따르면 문지기만 해도 소선(小仙)이 되는 것이니, 이는 꿈속에서도 웃으며 깰 큰 행운이다. 그까짓 빚이 뭐 대수인가, 웃으며 원한을 씻지 못할 게 무엇인가. 나를 말리지 마라, 내 발로 가서 선해하고 동화하는 것이 남는 장사다. 보라, 이것이 바로 법의 위덕(威德)이다. 위덕은 닦아서 나오는 것이지 입으로 말해서 나오는 게 아니다.
많은 경우 경지에 도달해 정념이 일단 나오기만 하면 오공의 근두운보다 빠르다. 일념으로 채권자를 항복시키니, 당신이 주는 것은 희망뿐만 아니라 확실한 실익이며, 채권자가 고민할 필요도 없이 자동으로 혜택과 교환해 즉시 변신하고 승화할 수 있을 만큼 강대하기 때문이다. 강자가 존경받는 것은 어디서나 통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법에 동화하는 것은 고사양 버전의 구도이며, 삼계 내의 ‘초안(招安, 불러서 달래 순종하게 함)’과 같은 묘미가 있다. 사실 우리가 마음을 닦고 업을 없애는 과정에서, 업력을 소멸하는 과정은 ‘초안’이 우선이고 그다음에 정화하는 것이다. 흑색 물질을 백색 물질로 전화시키되 부(負)의 에너지도 조금도 버리지 않고 모두 불성(佛性)으로 충실히 채운다. 후속 편에서 필자는 《마변(魔變)》이라는 글을 통해 법에 동화되는 내력을 상세히 서술할 것이다.
필자는 단지 자신이 깨달은 법리를 묘사할 뿐이며, 독자가 수확이 있느냐는 스스로 깨달을 몫이다. 나는 실을 꿰어 길을 잡아줄 뿐이고 결정적인 점은 찍어줄 수 있다. 소위 방관자가 명확히 보듯, 어쩌면 누군가는 읽다가 화룡점정이 있는 곳을 발견할지도 모른다. 돌 하나가 천 겹의 파도를 일으키듯 법리상의 바른 깨달음(正悟)은 탄탄한 수련의 내공이 체현되어 나오는 지혜다.
다시 말해 빚을 받는 것은 틀림없고 천경지의(天經地義)한 일이지만, 우리에게는 정법 제자라는 칭호가 있다. 빚 독촉을 선해할 수 있고 배로 보상할 수 있으며, 구도 차원의 보상은 생명을 직접 차원을 상승시켜 불국(佛國) 세계 중생이 되는 행운을 줄 수 있으니 이 얼마나 많은 생명이 부러워할 기연인가! 알았다면 역사적으로 전생(轉生)하면서 목을 빼고 미래의 예비 파룬따파 제자에게 죽여달라고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선해를 거부하고 기어코 파룬따파 제자의 목숨을 노리는 자는 단지 빚 독촉의 문제가 아니라 정법 파괴에 가담하는 것이다. 파룬따파 제자들은 모두 무량한 중생을 구도할 사명을 짊어지고 왔는데, 당신 작은 원령(怨靈) 하나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면 그 무량한 중생의 목숨을 당신이 책임질 것인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러므로 무엇이 진정한 선(善)인지 도량을 크게 가져야 하며 우주의 시각으로 사고해야 한다.
마난 앞에서 사악에 타협하는 것은 선이 아니라 최대의 악(惡)이다. 가족이 죽음으로 압박할 때 타협한다면 가족을 위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가 당신의 계약 위반이라는 악과(惡果)를 짊어지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가족의 죽음을 불사한 압박을 무시함으로써 구세력이 이용할 빌미를 없앤다면, 가족은 통제에서 벗어나 자연히 이성적으로 위협과 유혹을 포기할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선(善)이며, 악을 행하지 않고 중생이 당신으로 인해 악을 행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정을 제거하고 파룬따파 제자의 자비로운 구도를 보여주자. 때로는 지나친 이성이 냉막함이 될 수 있으나, 속인 중의 이런저런 정 때문에 친척과 친구의 고통이 싫어서 그들의 무리한 요구에 부합하거나 타협하지 말아야 한다. 인성(人性) 중의 사(私)를 가중하고 사람마음의 악을 키우며 수련인의 원칙을 위배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표면적인 호의는 실질적으로 중생에 대한 최대의 상처이며, 당신이 정에 빠져 인간 세상에서 수련해 올라가지 못하는 것이야말로 그들에 대한 가장 큰 악이다!
사부님께서는 말씀하셨다.
“사람이 이 정에서 뛰쳐나왔다면 누구도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며, 속인의 마음은 당신을 움직이지 못하는데, 그것을 대체하는 것은 慈悲(츠뻬이)이며, 더욱 고상한 것이다.”(《전법륜》)
자신의 내면을 보라, 중생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이며 정(情)이 차지하는 비율은 얼마인가. 비교가 없으면 상처도 없겠지만, 비교해 보고 얼마나 많은 중생에게 상처를 주었는지 보라! 수련인으로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단지 중생의 일원일 뿐이다. 정 때문에 중생의 일원(一員)이 대다수 중생의 영토를 차지하게 하고, 심지어 진정한 사랑(眞愛) 하나가 내면을 가득 채운다면 그 죄는 중생이 아니라 당신에게 있다. 당신이 정을 무한히 확대하여 무량한 중생이 당신 마음속에 앉을 자리조차 없게 만들었으니 무슨 자비를 논하겠는가. 머릿속이 색욕장(色欲場)으로 가득 차 가까이만 가도 오염된다면 묘하게 배척감을 줄 터인데, 어찌 수련인이라 하겠는가. 채권자조차 당신을 멸시할 터인데 왜 빚 독촉을 포기하겠는가.
신(神)의 길을 걷는 사람이 신다운 모습이 없으며, 괴롭다가도 잠시 정진하여 몸이 좀 나아지면 사명을 이행할 생각은 않고 ‘좀 편해졌으니 먼저 나 자신에게 보상하자’는 생각부터 한다. 강제로 억눌렸던 욕망이 순간적으로 방출되니, 병업관 하나가 81난의 간험(艱險 어렵고 험함)함이 된다. 이 사람마음은 끝이 보이지 않으나 미래는 한눈에 보인다. 계약 위반의 끝은 바로 도태이다.
수련은 이토록 엄숙하다. 정법 노정이 추진됨에 따라 심성에 대한 요구는 점점 높아질 것이다. 정법 노정이 어느 경지에 도달하면 우리는 그 경지의 위덕과 과위를 갖추고 그 경지의 사명을 완수해야 한다. 후방부대가 되지 말고 선봉대가 되어야 한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으니 함께 정진합시다!
사실 많은 경우 선해되지 않는 원인은 모두 자신이 충분히 순정(純淨)하기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문제를 만났을 때 안으로 찾는 것은 틀림없으며, 표면적인 옳고 그름을 떠나 부족함을 살피고 누락을 보완해야 한다. 남이 당신을 곱지 않게 보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다. 탁기를 가득 품고 인연이 닿으면 첫눈에 드러나는 것은 옛 장부다. 역사 속의 옛 장부가 이번 생으로 넘어오면 대개 막무가내로 따지는 식이 되니, 옳고 그름을 따지려 들면 이 인과를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선해되지 않는 것은 충분히 강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병업관처럼 병에 집착하지 마라, 소용없다. 마음을 법에 두고 배후의 원인을 찾아 바로잡고 선해하여 인과를 끝내라. 근원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관을 넘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은 음과 양이 병존하며 서로 인과가 된다. 무언가 요구하는 바가 있다면 업을 짓게 된다. 오공은 사문(師門)을 떠나자마자 마(魔)와 가까워졌고 욕망이 팽창했다. 마성이 처음 나타난 것 또한 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전됨)의 법칙에 따른 것이다. 본래 장생은 천지의 조화를 빼앗아 하늘을 거스르는 행위로 천기는 차단했을지언정 오공 자신의 업의 부채(業債)는 차단하지 못했다. 주인이 윤회를 초월하려 하니 채권자는 당연히 죽자 사자 들러붙는 법인데, 어찌 ‘청산했다’는 말 한마디로 끝나겠는가. 오공이 요괴 무리들을 위해 지옥 명부를 지워주며 선해하려 했을지라도 그들이 원한다는 보장은 없다!
장생은 곧 윤회의 길을 끊는 것인데 이것이 꼭 좋은 일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는 인연을 맺어 장래에 법을 얻기 위한 밑거름을 만들러 왔는데, 윤회가 없어져 버리면 인연 맺을 기회도 사라진다. 당신은 이것이 좋은 일을 한 것인가, 나쁜 일을 한 것인가? 인과는 일반적인 수련인이 꿰뚫어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수련에서는 무위(無爲)를 논한다. 우리가 진상을 알리고 사람을 구하는 것 또한 자신이 깨달은 법을 출력하는 것이다. 사부님께서 대부분의 인과를 감당하시고 우리에게는 업을 소멸하고 덕(德)으로 전환할 몫만 남겨주셨으니, 즉시 연공하여 공으로 연화시켜야 한다. 그렇지 않고 쌓이기만 하면 견디지 못해 각종 교란이 들어온다.
그러므로 수련은 간단하면서도 복잡하다. 간단하다는 것은 사부님 말씀을 듣고 게으름 피우지 않으며 배운 것을 활용하고 오직 꾸준히 정진하기만 하면 바로 광명대도(光明大道)다. 반대로 사심(私心)과 잡념을 품고 엄격히 요구하지 않으며 정진과 나태를 반복하는 것은 인과에 얽매인 것이다. 제때 끊어내고 연화하지 못하면 그것이 바로 81난의 시작이다. 대도는 지극히 쉽고 간단하니 오직 심성에 달렸다. 생각이 단순하고 순정한 마음으로 순정한 에너지장을 지니고 수련하며 인간 세상에서 신적(神跡)을 행하고 위덕을 세우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생각이 복잡하고 자신의 에너지장에 정보가 혼란스러우면 예민한 사람은 보기만 해도 불편해하고 이유 없이 당신을 배척할 터인데 어떻게 사람을 구하겠는가. 마음이 발라야(心正) 생각이 바르고(念正), 생각이 발라야 에너지장이 순정(純淨)해진다. 순정한 에너지장은 사람을 봄바람처럼 편안하게 하고 친화력을 갖게 한다.
이쪽에서는 원숭이 무리가 오공의 일필삭제에 감사하며 이제부터 생사를 관할할 자가 없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산속 원숭이 중에 늙지 않는 자가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얻는 것이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 역할을 바꾸어 다른 삶을 체험하며 다른 인생을 느껴볼 기회는 영영 사라졌다. 저쪽에서는 오공의 하룻밤 저승 여행이 이미 천정(天庭)에 고발되었다. 능소보전(凌霄寶殿)에서 먼저 용왕이 고통을 호소했다. 요선(妖仙) 손오공에게 압박당해 정해신침 등 풀세트 장비를 바쳤고, 무예를 뽐내며 신통력을 부리는데 구름 위에서 시끄럽게 굴었다는 것이다. 남의 보물을 거저 빼앗고 강탈하다시피 했으면서 오히려 잔소리 말라며 면박을 주었으니 어디 가서 따지겠는가? 옥황상제께 이 요물을 거두어달라 청했다.
이어 저승의 염라가 불길에 기름을 부었다. 오공이 저승을 어지럽히고 흉포하게 굴었으며 구속과 소환에 불응하고 명부를 강제로 지웠음을 고발했다. 이로 인해 원숭이 무리들을 통제할 수 없고 미후(獼猴) 따위의 짐승들이 수명이 길어졌다. 윤회가 멸하고 생사가 없어졌다는 것이다.
속세에서 윤회가 사라지면 생사도 없어진다. 그렇다면 삼계가 존재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인간 세상의 질서가 어지러워졌고 초상적인 능력을 갖췄으니 일거수일투족이 인간 세상의 법칙을 벗어날 터이다. 제약 없는 원숭이는 매우 위험하니 이 세상에 용납될 수 없다. 역시 옥황상제께 이 요물을 거두어달라 청했다. 옥황상제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어 당장 장수들을 보내 잡아 오라 명했다.
이때 태백금성이 나서서 원숭이를 위해 공정한 한마디를 했다. 삼계 중 구규(九竅, 아홉 구멍)가 있는 자는 누구나 신선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오공이 수련하여 도를 얻은 것은 합리적이나 천지 기운으로 태어나 내력이 크니 잡으려 하면 번거로울 것이라 짚어주었다. 뿌리조차 파악하지 못한 채 건드렸다가 큰코다칠 수 있다는 뜻이다. 차라리 은혜를 베풀어 상계(上界)로 불러 관직을 내려준다면 정식 천정 공무원이 되어 신선 대우를 받게 된다. 이것도 그를 거두는 셈이며 천정에 안착하면 인간 세상에서 난동 부릴 틈도 없을 것이다. 이것이 곧 ‘초안(招安)’이니 얌전히 출근하면 너도 좋고 나도 좋고 모두가 좋은 일이다. 만약 통제에 따르지 않으면 그때 잡으면 된다. 이미 우리 안의 가둔 격이니 문 걸어 잠그고 개 잡듯 하면 그만이라 원숭이를 다스리지 못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옥황상제는 이 방법이 절묘하다 여겼다. 무력을 쓰지 않고 오공을 거둘 수 있고, 본래 상선(上仙)이 되어 지옥 명부에서 이름이 빠졌으니 천정에 이름을 올리는 것도 당연한 대우였다. 모르고 지나쳤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명분을 주는 것이 마땅했다.
그리하여 태백금성에게 초안을 명했으나 결과적으로는 이리를 집안으로 들이게 되었다. 원숭이의 마성을 완전히 폭발시켜 하늘의 수많은 신선이 뒷짐 지고 구경만 할 수 없게 만들었고, 직접 나서게 만들었으니 이는 훗날의 이야기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28997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