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철(青徹)
【정견망】
고적 《대당신어(大唐新語)》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무측천이 정사를 돌보고 있을 때 항주 녹천사에 정만(淨滿)이라는 승려가 있었는데, 수행이 정진하고 도행이 꽤 높아 같은 사찰 승려들의 질투를 샀다. 어떤 이가 몰래 거짓으로 꾸며 그림 한 점을 그려 정만의 경전 상자 속에 숨겨두었다. 그림에는 한 여인이 고루 위에 단정히 앉아 있고, 정만이 그 곁에서 활을 당겨 화살을 먹여 마치 그 여인을 쏘려는 듯한 모습이 묘사되어 있었다. 그 후, 자기 동생을 시켜 궁에 고발하게 하여 기회를 틈타 함정에 빠뜨렸다.
무측천은 이 일을 알게 된 후 크게 진노하여, 어사 배회고(裴懷古)에게 이 사건을 철저히 조사하라고 명하며 정만을 처형하려 했다.
배회고는 명확히 살피고 신중히 판단할 것을 견지하며 황제의 의중에 영합하지 않았다. 재상 이소덕(李昭德) 또한 진언하기를 “배회고가 이 사건을 심리함에 있어 너무 소홀하니, 청컨대 다른 사람을 보내 재심하게 하소서.”라고 했다.
배회고는 이 말을 듣고 엄한 목소리로 상소하여 대답했다.
“폐하께서 법을 집행하심에 마땅히 친소(친하고 멀고)를 따지지 말고 똑같이 대해야 합니다. 어찌하여 제가 무고한 사람을 함부로 죽여 성지에 영합하게 하려 하십니까? 만약 정만이 정말로 위를 범한 죄가 있다면 제가 어찌 감히 감싸고 방치하겠습니까? 저는 공정함을 견지하여 원통한 옥살이를 줄이기를 원하오며, 설령 이로 인해 죽음에 이를지라도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무측천은 이 말을 듣고 마침내 명을 거두어 원래의 살해 명령을 취소했다.
훗날 배회고는 부사(副使)의 신분으로 염지미(阎知微)를 따라 돌궐에 화친하러 갔다. 그러나 돌궐 측은 염지미를 ‘남면가한’으로 봉하고 군사를 이끌고 조지(趙地)를 침범하게 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야 배회고는 기회를 보아 몸을 빼내 귀환 길에 올랐다.
도중에 연일 달려온 탓에 체력이 다하자, 그는 스스로 지탱하기 어렵다는 것을 알고 하늘에 간절히 기도하며 죽더라도 반드시 대당의 국토 위에서 죽기를 서원했다. 그가 기진맥진하여 혼미하게 잠이 들었을 때, 꿈속에서 홀연히 외모가 정만과 매우 흡사한 한 승려를 보았는데 그가 가리키며 말하기를 “이 길을 따라 나가면 된다.”라고 했다.
배회고는 깨어난 후 꿈에서 본 대로 걸어갔고, 과연 위험을 벗어나 평안히 당나라로 돌아왔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 이것이 그가 충서(忠恕)와 공정무사함을 견지하여 감응받은 선보(善报)라고 여겼다. (《대당신어》)
배회고는 무측천의 권세가 가장 성했을 때에도 풍조를 따르지 않고 법에 따라 판결하기를 견지했으니, 그 용기가 참으로 얻기 힘든 것이다. 조금만 신중하지 못했어도 목과 몸이 분리될 수 있었다. 세상에서 진정으로 권세에 아부하지 않고 정의를 마음에 품을 수 있는 자는 실로 드물다.
동시에 우리는 무측천의 이성적이고 맑은 일면도 보았다. 그녀는 무조건 독단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정의와 양심 앞에서 명을 거둘 줄 알았다. 그러나 더 깊은 층면에서 보면, 진정으로 그녀를 위압한 것은 배회고의 강직한 말뿐만 아니라, 정의 그 자체가 지닌 신성한 위엄이었다. 불법(佛法)은 끝이 없으니 그 힘은 결코 사람의 마음이나 권술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정말 대법 사부님께서 설법 중에 말씀하신 것과 같다.
“표현상에서 우리가 세상 사람들의 대법에 대한 지지를 얻고자 하는 이것은 사람 여기에서 표현된 세상 사람 그 일면의 생각이다. 그러나 다른 한 면에서 보면 그것은 거꾸로 된 것이다. 누가 대법을 지지하고 바른 일면으로 대법을 널리 알렸다면 그는 바로 자신의 미래에 생명의 존재를 창립한 것이며 미래에 법을 얻기 위하여 기초를 닦은 것이다” (《미국서부법회설법》)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승려 정만이 인간 세상의 공평한 길을 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신불(神佛)이 세인들에게 정의를 선택할 기회를 한 번 제공하는 것이다. 사람이 진정으로 신불에게 어찌할 수 있겠는가?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은 겉보기에는 세인의 이해와 지지를 구하는 것 같지만, 실은 세인을 위해 구원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대법을 지지하고 대법제자를 선하게 대하기를 선택하는 것은 곧 자신의 미래를 선택하는 것이며, 반대로 하면 기회를 놓치는 것이다.
창세주께서 중생을 구도하기 위해 거대한 고난을 감내하고 계시며, 대법제자들이 진상을 알리는 것 또한 고생을 감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좋은 기회를 마주하여 세인들은 어찌하여 여전히 깨어나지 못하고 소중히 여기지 않는단 말인가?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065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