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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운익이 의도(醫道)로 치도(治道)를 논하다

유립행(劉立行)

【정견망】

양운익(楊雲翼)은 자가 지미(之美)다. 선조는 찬황(贊皇) 단산(檀山) 사람이다. 6대조 양충(楊忠)이 평정주(平定州) 낙평현(樂平縣)으로 옮겨와 이때부터 이곳에 정착하여 살았다.

양운익은 어려서부터 천성이 총명하여 겨우 말을 배웠을 때 이미 땅에 글자를 쓸 줄 알았다. 조금 자란 뒤에는 매일 수천 자의 문장을 암송할 수 있었다. 금(金) 장종(章宗) 명창(明昌) 5년(1194년), 양운익은 진사에 장원으로 합격해 승무랑(承務郞), 응봉한림문자(應奉翰林文字)에 특별히 제수되었다. 그 후 관직이 현달하여 예부상서, 이부상서, 어사중승, 태상경, 한림학사, 시독 등의 직책을 역임했다.

양운익은 성품이 고아(高雅)하고 장중(莊重)하며 자신에게는 엄격하고 남에게는 관대했다. 사람과 사귐에 있어 한번 정의(情誼)가 정해지면 생사와 화복에 관계없이 시종 변치 않았으며, 국가 대사를 만나면 언제나 아는 바를 말하지 않음이 없고 다 말하지 않음이 없었다. 황제는 이 때문에 그를 각별히 중히 여겼다. 애종(哀宗) 3년(1226년), 조정에서 익정원(益政院)을 설치하자 양운익이 가장 먼저 선발되었다. 황제는 매번 그를 불러 접견할 때마다 자리를 내려 앉게 하고 이름을 직접 부르지 않음으로써 예우를 표시했다.

1. 먼저 그 마음을 바르게 하다

양운익이 일찍이 풍비(風痹 중풍의 일종) 증세를 앓은 적이 있었다. 병세가 조금 나아졌을 때 황제가 친히 그에게 병을 고친 방법을 물었다.

양운익이 대답했다. “그저 마음을 다스렸을 뿐입니다. 심기(心氣)가 조화롭고 순조로우면 사기(邪氣)가 침범할 수 없습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도리 또한 이와 같습니다. 임금 된 자가 만약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할 수 있다면, 조정의 백관은 자연히 모두 정도(正道)로 돌아올 것입니다.”

황제는 듣고 깜짝 놀라 깨달았으며, 양운익이 의학의 이치를 빌려 간언한 것임을 알았다.

2. 천지인(天地人)은 통하여 일체가 된다

당시 하남(河南)에 가뭄이 들자 금 애종은 조서를 내려 관리를 하남에 파견해 원통한 옥사를 다스리게 했으나 섬서(陝西)는 언급하지 않았다.

양운익이 상소를 올려 말했다. “천지와 사람은 본래 서로 통해 일체가 됩니다. 만약 인체의 한 지체가 병들면 나머지 사지도 이로 인해 편안치 못합니다. 어찌 병든 곳만 전적으로 치료하고 나머지 부위는 방치할 수 있겠습니까?”

황제는 그의 말이 이치에 맞다고 여겨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출처: 《금사(金史)》 권110 〈양운익조병문뢰연열전(楊雲翼趙秉文雷淵列傳)〉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3014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