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简体 | 正體 | English | Vietnamese

초문화(楚文化) 탐구: 천년 시신의 수수께끼

소양춘(小陽春)

【정견망】

1975년 6월 8일, 호북성 형주(荊州)성 밖 초나라의 옛 수도인 기남성(紀南城) 내에서 전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2,10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부패하지 않고 보존된 서한(西漢) 시대 남성 시신 한 구가 출토되었다. 이는 초나라 고지에서 1972년 장사(長沙) 마왕퇴(馬王堆)의 서한 시대 여성 시신이 발견된 이후 또 하나의 중대한 고고학적 발견이다. 가장 신기한 점은 이 고대 시신이 막 출토되었을 때 사지와 전신의 관절을 모두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으며, 피부 및 피하 연조직에 여전히 탄력이 있었고 신체의 내장 또한 온전했을 뿐만 아니라 한쪽 귀의 고막까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중국에서 보존 상태가 가장 좋고 연대도 가장 오래된 습시(濕屍 부패하지 않고 수분을 유지한 채로 보존된 시신)이다.

장사 마왕퇴 신추 부인 복원도 및 밀랍상

인류 역사의 기적, 내장이 온전한 ‘습시’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천 년 이상 보존된 고대 시신은 드물지 않으나, 그것은 미라로서 사전에 내장을 비우고 시신 내부에 향료를 가득 채워 보존한 건시(乾屍)들이다. 그러나 초나라 지역의 이 두 구의 시신처럼 완전한 내장을 유지한 채 2,000여 년의 세월 동안 부패하지 않은 부드러운 습시는 세계적으로 유례가 드물다. 이 두 구의 고대 시신 발견은 인류 역사상의 한 가지 기적일 뿐만 아니라 중국 고인(古人)의 지혜를 충분히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가 탐구하고자 하는 것은 중국 고인(古人)이 사후에 왜 시신을 땅속에 묻으려 했으며, 왜 시신을 보존하여 부패하지 않게 하려 했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중국 고대의 토장(土葬) 습속에서부터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토장이란 시신을 관에 넣어 구덩이를 파고 땅속에 묻는 것으로 화장(火葬), 천장(天葬), 수장(水葬)과는 구별되는 장례 형식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토장은 가장 많은 민족이 사용한 장법으로 전 세계 곳곳에서 유행했다. 토장 습속은 영혼 신앙에서 기원했다.

『예기·제의』에서는 “중생은 반드시 죽고, 죽으면 반드시 흙으로 돌아가니 이를 귀(鬼)라 한다. 골육은 아래에서 썩어 음한 들판의 흙이 된다[眾生必死,死必歸土,此謂之鬼。骨肉斃於下,陰爲野土]”라고 했다.

『한시외전』에서는 “사람이 죽은 것을 귀라 하니, 귀란 돌아가는 것이다. 정기는 하늘로 돌아가고 육신은 흙으로 돌아간다[人死曰鬼,鬼者歸也。精氣歸於天,肉歸於土]”라고 하였다.

이는 당시 사람들의 명부(冥府)나 지부(地府)에 대한 관념과 일치한다.

장사 마왕퇴 서한 고분에서는 ‘견책(遣策)’이라 불리는 죽간과 『주역』, 『노자』 등의 간서(簡書) 및 백서(帛書)가 발견되기도 했다. 강릉 봉황산(鳳凰山) 한묘(漢墓)에서도 사자의 신분과 관을 묻은 시간(한 문제 13년, 즉 기원전 167년)이 기록된 ‘견책’이 출토되었는데, 이처럼 ‘지하 관리에게 알리는 글’이라고 명시된 견책은 다른 고대 토갱묘(土坑墓)에서도 자주 발견된다. 이를 통해 그들이 생전에 천국과 지옥, 그리고 영혼의 윤회 전생을 믿었음을 알 수 있다.

왼쪽: 강릉 봉황산 한묘 출토 ‘견책’ 죽간, 오른쪽: 장사 마왕퇴 출토 백서 노자

수련계의 신비: 육신불부(肉身不腐)

수련계에도 육신이 부패하지 않은 사례가 있다. 중국 4대 불교 명산 중 하나인 구화산(九華山)은 당 개원 연간 김교각 스님이 지장보살 도량으로 개창한 이래, 기록으로 확인된 육신보살만 14존에 달한다. 그중 ‘문화대혁명’ 당시 5존이 불태워졌고 현재 볼 수 있는 것은 5존이다. 당대 선종의 6조인 혜능(惠能) 대사는 금강불괴(金剛不壞)의 육신을 남겨 지금까지 1,200여 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평온한 모습으로 생생하게 광둥성 남화사에 모셔져 있다.

하북성 향하현(香河縣) 숙양진(淑陽鎮) 호장자촌(胡莊子村)의 불교 거사인 주봉신(周鳳臣 저우펑천) 노인은 1992년 11월 24일 평온하게 세상을 떠났는데, 시신에 어떠한 처리도 하지 않았음에도 자연 상태로 현재까지 부패하지 않고 보존되어 국내외 수많은 의학 전문가가 이 ‘육신불부’의 수수께끼를 탐구하기 위해 찾아오게 했다.

중국 고대 문명사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육신불부’의 경지에 도달한 거의 모든 이들이 불교나 신을 믿는 수련인이라는 점을 발견할 것이다. 마왕퇴에서 출토된 현재 가장 완벽한 두 판본의 노자 『도덕경』과 묘벽에 조각된 도가(道家) 양생도를 통해 묘의 주인인 신추(辛追) 부인이 ‘도(道)를 닦던’ 사람임을 단정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승려, 거사, 그리고 수십 년간 불교를 믿은 조봉신 노인은 모두 우리가 정신적 신앙을 가졌다고 간주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생전에 남들과 다른 점이 별로 없었으나 다만 명확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다. 승려와 거사들은 매일 각자의 경전을 읽으며 경전 속의 요구에 따라 일상생활의 언행을 다스리고 세상과 다투지 않는 삶을 살았다. 그들이 세상에 있을 때는 아무도 그들이 누구인지 몰랐을 것이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도 거의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타인이 세속의 이상인 부귀영화를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후에 세계를 놀라게 하는 신적 자취를 남겼다. 그들의 경지는 고위 관료나 부유한 상인들이 갈구하면서도 실현할 수 없는 것이며, 영단묘약으로도 도달할 수 없는 것이다.

육신이 썩지 않는 구화산 ‘인의(仁義) 사태’ 진신(真身)과 주봉신 노인

영생을 향한 인류의 염원과 ‘파룬따파’

이로 보건대, 중국 고대인들이 사후에 화장을 하지 않고 토장을 실시하며 시신을 온전하게 보존하여 부패하지 않게 한 것은, 어쩌면 진정으로 사람을 구도하는 각자(覺者)가 나타나 미래에 죽은 이가 다시 살아나거나 육신을 빌려 혼이 돌아올 그날을 기다린 것일지 모른다. 이 승려나 거사들이 임종 전 제자나 가족들에게 시신을 보존하라고 당부한 것 또한, 이른바 현대 과학을 맹신하며 귀신을 믿지 않고 영혼의 존재도 믿지 않는 ‘무신론자’들에게 어떠한 계시를 남기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이 외에도 중국 역대 제왕들도 온갖 방법을 동원해 불로장생과 청춘을 영원히 유지할 방법을 찾아 헤맸다. 기록에 따르면 일찍이 진시황은 세 차례에 걸쳐 동쪽을 순행하며 서불 등으로 하여금 동남동녀 500명을 이끌고 동해로 가서 젊음을 되찾아주는 영단묘약을 구하게 했다. 서한의 무제(武帝)도 그 뒤를 이어 곤륜산 깊은 곳에서 불로의 술법을 찾았다.

중국 역사상 진애제(晉哀帝), 수 양제 양광, 당 태종, 당 헌종, 당 목종, 당 선종, 남당 열종 , 명 광종, 그리고 명 세종과 청 옹정제 등 여러 황제둘이 단약을 복용해 장생을 꾀했다. 역사적으로 장생불로를 연마하는 온갖 공법이 등장했으나, 천만 년 동안 사람들은 여전히 죽음을 정복하지 못했다.

1992년 고대 신주의 땅에 ‘진·선·인(眞·善·忍)’이라는 우주의 최고 특성을 준칙으로 하는 수련 방법이 나타났다. 성(性)과 명(命)을 함께 닦는 이 공법은 짧은 7년 만에 1억 명의 사람을 매료시켰다. 이에 1998년 북경, 무한, 대련 지역 및 광동성에서는 각각 현지 의학계 주도로 현지 파룬궁 수련생 집단에 대한 다섯 차례의 의학 조사를 실시했으며, 조사 대상 인원은 약 3만 5천 명에 달했다. 조사 결과, 파룬궁 수련의 질병 퇴치 및 건강 증진 총 유효율은 97.9%에 달했으며 그중 완쾌 및 기본 회복률은 77.5%였다. 조사는 또한 파룬궁 수련 집단 내에서 보편적인 초상적 현상을 발견했는데, 즉 대법 수련자들에게서 신체가 젊어지는 현상이 보편적으로 나타났으며 많은 노년 여성이 다시 생리를 시작하기도 했다.

파룬따파야 말로 수천수만 년 동안 사람들이 기다려온, 그리고 찾아 헤맨 장생술(長生術)이 아닌가? 나는 중국 국가체육총국이 조직한 상기 의학 조사가 이미 명확한 답을 주었다고 믿는다.

 

원문위치: https://www.zhengjian.org/node/80749